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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내용의 상당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6일 개봉한 영화 <더 퍼지>의 한 장면. 영화 <더 퍼지>의 제임스 샌딘 역을 맡은 에단 호크

▲ 6일 개봉한 영화 <더 퍼지>의 한 장면. 영화 <더 퍼지>의 제임스 샌딘 역을 맡은 에단 호크 ⓒ 플래티넘 듄스


"지금부터 12시간 살인포함 분노표출이 허용됩니다."

6일 개봉한 영화 <더 퍼지>의 심의 반려 포스터에 적혀 있던 카피다. 영화는 일 년에 단 하루, 12시간 동안 살인을 포함해 어떠한 범죄도 처벌하지 않기로 사회적으로 합의한 '퍼지 데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퍼지 데이'가 지정되며 일어난 효과는 2022년 미국의 실업률과 범죄율이 1% 이하를 기록했다는 객관적 수치다. 영화 안에서 미국은 이 '퍼지 데이'가 곧 사회 안전망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확신한다.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의 분출을 나라가 일시적으로 허락한 것이다. 국민들은 국가를 신성시하기까지 하며 그 날을 축제처럼 즐기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퍼지 데이'가 미국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퍼지 데이'를 장사 수완으로 삼아 최첨단 주택보안시스템을 파는 영업사원 제임스(에단 호크 분)는 '퍼지 데이'를 앞두고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는 귀가 도중에 영업사원답게 고객들에게 자신이 판 상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판 상품이 판매 1순위를 달성했다는 축하 소식도 전해 듣는다.

한편에서는 제임스의 아들 찰리(맥스 버크홀더 분)가 자신이 만들었다는 감시 로봇을 엄마에게 자랑하고 있고, 남자친구 헨리(토니 올러 분)와 사랑을 나누던 딸 조이(애드레이드 케인 분)는 아빠의 기척을 듣고 헨리를 돌려보낸다. '퍼지 데이'를 목전에 두고 제이슨의 가족은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는데 분위기가 영 마뜩치 않다. 억지로 화목을 가장한 모습이다.

'퍼지 데이'가 시작되고 아들과 딸은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공포, 스릴러 영화는 이때부터 시작이다. 착한 아들의 실수로 가장 안전할 것만 같았던 제임스의 집에 누군가가 침입한다.

초반부터 긴장감 유발...하지만 늘어지는 전개 아쉬워

영화는 초반부터 관객의 긴장감을 배가시킬 만한 스릴러 요소를 과감히 차용한다. 먼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진행된 '퍼지 데이'의 실황이 등장하는데 CCTV 화면에 비친 폭력, 살인, 방화 등의 다양한 범죄 행각은 재연이 아닌 실제라는 사실에 방점이 찍히면서 상당한 충격을 선사한다. CCTV 화면에 연장선으로 찰리의 감시 로봇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카메라의 시선은 제임스 가족을 감시의 대상에 놓는다. 헨리 시점의 장면이 중간에 섞여 있는 것 같지만 카메라가 인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자주 잡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공포와 긴장이 유발된다.

영화는 어느 시점까지는 초반의 긴장을 유지하는 데 주력한다. 스릴러 영화로서의 틀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찰리의 실수로 흑인 부랑자가 집 안으로 들어오고 서로가 서로를 쫓을 때도 이 긴장의 틀은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흑인 부랑자를 쫓는 또 다른 악당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긴장의 흐름은 깨지고 영화는 진부해진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은 전쟁터에서나 가능한 일. 적이 자신의 계획을 소상히 밝히고 이를 제임스의 가족과 관객 모두가 알고 있으니 반전이 매력인 스릴러의 기능은 여기서 주춤한다.

팽팽한 긴장이 잠시 누그러질 때 영화는 제임스의 가족을 향해 윤리적 갈등을 종용하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의 핵심은 '당신도 퍼지 데이에 참가해야 하지 않겠냐?'하는 것. 제임스의 가족이 살기 위해서는 흑인 부랑자를 산 채로 악당들에게 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당들은 제임스의 가족을 몰살하겠다고 한다. 제임스의 가족 구성원들은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한다. 그 사이 흑인 부랑자는 자취를 감춘다. 제임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숨어버린 흑인 부랑자를 찾아내기로 마음을 먹는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이용하고 밀어내야하는 현대 사회의 추악한 면이 여기에 녹아 있다.

각종 침입자들이 집을 들쑤시면서 영화는 스릴러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연상하게 하는 액션으로 탈바꿈한다. 악당들이 쓴 무서운 가면들만이 이 영화가 잠시나마 스릴러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액션으로 변한 영화는 모두를 총잡이로 만든다.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명중률도 높고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다. '퍼지 데이'의 효과에는 이런 부수적인 부분도 있었나보다.

몇 차례의 의도가 불분명한 액션 장면이 끝나면 영화는 '퍼지 데이'를 대하는 상반된 태도를 토론식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꽤나 직접적인 것이다. 이쯤 되면 영화는 더 늘어진다.

미국 사회를 향한 <더 퍼지>의 풍자 돋보였다

6일 개봉한 영화 <더 퍼지>의 한 장면. <더 퍼지>에서 흑인 부랑자 역을 맡은 에드윈 호지

▲ 6일 개봉한 영화 <더 퍼지>의 한 장면. <더 퍼지>에서 흑인 부랑자 역을 맡은 에드윈 호지 ⓒ 플래티넘 듄스


<더 퍼지>는 끔찍하지만 기발한 발상에서 출발했다. '단 하루, 모든 범죄가 허용된다'는 한 줄의 콘셉트만으로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긴장이 사라지고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대사들이 강박적으로 나열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의 전개 속도는 늘어지고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는 과장이 느껴졌다.

흑인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현재 미국 사회라지만 <더 퍼지>는 흑인을 부랑자로, 백인을 엘리트로 묘사했다. 어쩌면 미국 국민 의식의 제자리걸음을 풍자하는지도 모르겠다. 제이슨이 귀가할 때 차에서 흐른 라디오 뉴스에서 '퍼지 데이' 반대론자들은 결국 이런 연례행사가 보호능력이 없는 빈민층과 장애인 계층을 제거하는 수난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결국 범죄는 줄고 경제는 호황이라며 긍정적 효과를 강조한다. 영화는 머지않은 미국의 모습을 현재와 비교하면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임스의 말대로 살인까지 막을 완벽한 보안설계는 없었다. 제임스의 상품은 1등으로 잘 팔리는 보안시스템일 뿐이지, 모든 범죄로부터 고객을 온전히 보호해 줄 수 있는 '천국'은 아닌 것이다. 미국 정부의 '퍼지 데이'가 제임스의 보안시스템처럼 국가의 안전을 위한 완벽한 수단처럼 악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생각하게 된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가 완성도에서 더러 흠을 보인 것이 못내 아쉽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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