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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가려진 조도와 등대
▲ 속초 해수욕장 안개에 가려진 조도와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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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친 몸을 달래고 가을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 남자친구와 강원도 속초로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나는 사계절 중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단아하게 물든 나뭇잎들도 예쁘고 사각사각 낙엽 밟는 느낌도 좋다. 1박2일 동안 강원도 속초를 제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는데 혼자만 느끼기에는 아쉬워 여러분에게도 속초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자 한다.

* 여행코스 : 속초 해변 - 아바이 마을 - 속초 관광 수산시장 - 엑스포타워 - 영금정 해돋이정자 - 설악산

지난 2일 토요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났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동안 맑다가 하필 여행 가는 날 비가 오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거세지는 빗방울을 뚫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원래는 오전 9시 차를 타려고 했는데 매진이 됐다. 요즘은 단풍철이라 고속버스를 이용하려면 전날에 미리 예약해 두는 것이 좋다. 겨우겨우 낮 12시 차표를 구해 타고 가다가 또 한번의 고비를 맞았으니... 차가 많이 밀려 평소에는 3시간이면 가던 곳을 4시간 반을 달려 오후 4시 반쯤에야 속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갈 때도 4시간 정도 걸려 왕복 9시간 정도 걸렸다.

여행을 하면서 내내 느낀 것은 속초는 관광을 위해 최적화 된 장소라는 점이다. 속초의 명소들은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불과 몇 십분 거리에 있기 때문에 굳이 자가용을 갖고 와서 주차하느라 애를 먹기 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속초는 강원도에서 가장 작은 면적을 가졌지만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고 관광객 수는 연 1000만 명에 이르는 관광도시이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비좁고 막힌 지세로 인해 관광시설이 매우 집약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속초 날씨도 흐리긴 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코스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청호동의 속초 해수욕장이었다. 지평선 저 멀리 조도와 등대가 보였다. 조도는 무인도인데 새가 많이 앉아 조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조도는 속초 8경에 속하며 옆에는 무인등대가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하늘이 구름과 안개로 뒤섞여 수채화처럼 물들고 저 멀리 보이는 등대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해안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니 어린 시절 아무 걱정 없이 뛰어 놀았던 그때가 그리웠다.

바다를 보고 나니 배가 고파진 우리는 벼르고 별렀던 아바이 순대를 먹으러 갔다. 아바이 마을로 가려면 갯배를 타야 되는데 갯배 선착장과 아바이 마을이 너무 가까워서 깜짝 놀랐다. 선착장과 아바이 마을과의 거리가  불과 30m 밖에 안된 다고 하니 수영해서 가도 몇 분 안 걸릴 거리였다. 다리가 없던 시절 갯배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는데 이제는 갯배 자체가 관광명소가 되어 사람들이 아직까지 이용하는 듯하다. 여하튼 뱃삯 200원을 내고 갯배를 탔다(갯배는 쇠줄을 당겨서 움직인다).

건너편 갯배 선착장이 여기서도 보인다.
▲ 갯배 선착장 건너편 갯배 선착장이 여기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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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촌으로 유명한 아바이마을은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이북 피난민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속초를 실향민의 도시라고 하는 것은 이들이 악착같이 일해 속초의 상권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이북 각지의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문화를 일궜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바이 마을에 들어가자 식당 아주머니들이 호객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마을도 작고 식당도 별로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가게마다 1박2일 촬영지라는 홍보문구가 걸려 있었다. 과연 어디가 진짜 1박2일 촬영지인지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여러 식당 중 고르고 골라 우리에게만 새우튀김을 서비스로 준다는 식당에 들어가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손님들에게도 새우튀김을 서비스로 준다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2만원 어치인데 생각보다 양이 너무 적어 실망 했다.
▲ 아바이 순대와 오징어 순대 2만원 어치인데 생각보다 양이 너무 적어 실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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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너무 많이 시키면 음식을 남길 것 같아서 모듬 순대와 강원도 명물인 옥수수 막걸리를 한 병 시켰다. 아바이 순대, 오징어순대는 각각 만원이어서 둘이 합쳐 2만 원어치를 시켰다. 밑반찬으로 가자미 식해를 줬는데 처음 먹어봤지만 쌉싸름하고 매콤한 것이 씹는 맛도 좋았다. 음식이 나오자 생각보다 양이 너무 적어 실망했다. 아바이 순대, 오징어 순대 둘 다 맛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바이 순대보다 오징어 순대가 더 맛있었다. 그런데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파는 오징어 순대가 더 싸고 양도 많은 듯했다.

아바이 여정을 마친 뒤 닭강정을 사러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갔다. 중앙시장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닭강정, 수수부꾸미, 오징어 순대 등으로 유명한데 닭강정 중에서는 '만석 닭강정'이 유명해서 줄을 서서 먹는다고 한다. 실제로 지나가는 사람마다 손에 만석 닭강정이 하나씩은 들려 있었다.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니 안 먹어 볼 수 있나. 우리는 오랫 동안 줄을 설 각오로 만석 닭강정집으로 갔다. 그런데 손님이 너무 많아 대량 생산을 하는 모양인지 닭강정을 한무더기 쌓아놓고 바로 바로 나눠줬기 때문에 굳이 오랫동안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내 입맛에는 딱 맞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 아저씨와 잠깐 대화를 나눴는데 사실 강원도 사람들은 만석 닭강정을 굳이 줄서서 사 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옛날에 먹을 게 없던 시절 닭강정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생소한 맛에 반짝 유명세를 타고 만석 닭강정과 시장 닭강정이 라이벌 구도가 되었단다. 이후 홍보에 성공한 만석 닭강정이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단다. 지금은 백화점에서도 팔고 택배로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한손에는 닭강정을 들고 야경을 보러 속초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엑스포 타워로 갔다. 이때는 택시를 타고 갔는데 4천원 정도 나온 것 같다.

 닭강정은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한박스에 만육천원인데 4인분은 되는 듯하다.
▲ 만석 닭강정 닭강정은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한박스에 만육천원인데 4인분은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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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건물은 소라같이 특이하게 생겼다. 조명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엑스포 타워를 잠깐 감상하고 꼭대기 전망대로 올라갔다. 엑스포 타워는 속초시 청초호 조명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는 하이테크 전망타워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설악산, 달마봉, 울산바위, 대청봉까지 속초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입장료는 1500원이다.

독특한 모양의 엑스포 타워
▲ 엑스포 타워 독특한 모양의 엑스포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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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가보니 새의 도시 답게 동해안 석호, 청초호에 머무는 새 관련 전시물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망원경이 있었다. 사실 이것 말고는 별로 볼 게 없어서 5분 만에 후다닥 둘러보고 나왔다. 속초에 오는 새 사진으로 꾸며진 엽서를 무료로 주고 있어서 몇 장 집어왔다.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별로 둘러본 곳도 없는데 벌써 깜깜한 밤이 되어 숙소로 향했다. 아침 6시 50분에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5시 반에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어제 산 닭강정으로 아침을 대충 때운 뒤 영금정 해돋이 정자로 일출을 보러 갔다.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한참을 기다리는데 날씨가 흐려 그런지 무심한 갈매기 떼만 날아다닐 뿐 해는 도무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갈매기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일출도 보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을 하려면 날씨를 잘 알아보고 가야 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음은 우리가 정한 메인 코스인 설악산이었다. 영금정 주변에서 7번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설악산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붉고 샛노랗게 물든 나무와 울긋불긋 물감을 쏟아 놓은 듯한 설악산 경치를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외국인들도 굉장히 많았고 형형색색 등산복 깔맞춤으로 꽃단장을 하신 아주머니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설악산 경치에 넋을 놓고 있었다.

속초의 야경도 여느 도시와 다름 없는 듯하다
▲ 엑스포 타워에서 보는 속초 야경 속초의 야경도 여느 도시와 다름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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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속초에는 여러 종류의 새가 머물고 있다
▲ 각종 새 사진들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속초에는 여러 종류의 새가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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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울산바위 코스로 등산을 했다. 신흥사에서 울산바위까지는 왕복으로 약 4시간 정도 걸리며 편도 3.8km정도 된다. 설악산은 여러 코스가 있는데 울산바위 코스는 특히 지금처럼 11월 초순까지 설악산 단풍감상의 최적 코스라고 한다. 그런데 신흥사에서 흔들바위까지 가는 길은 노약자도 쉽게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한 길이지만 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까지 가는 길은 계단이 많고 다소 험준하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 상태에 따라 코스를 조정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애초에 울산바위까지 오를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청바지를 입고 평소 들고 다니던 백팩을 매고 왔는데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강원도라서 추울 줄 알고 패딩도 두둑히 입고 갔는데 이게 웬걸 너무 더워 오히려 겉옷이 거추장스러웠다. 산까지 오르니 땀까지 뻘뻘 나서 가방을 던져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흐드러지게 핀 단풍이 아름답다.
▲ 단풍2 흐드러지게 핀 단풍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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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어우러지는 울산바위
▲ 울산바위1 단풍과 어우러지는 울산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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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등산객 아저씨가 말했다. 저기는 신들이 올라가는 영역이야~
▲ 울산바위2 옆에서 등산객 아저씨가 말했다. 저기는 신들이 올라가는 영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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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오르고 오르니 흔들바위가 보였다. 흔들바위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가면 흔들바위와 울산바위까지 나오도록 사진을 무료로 예쁘게 찍어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덕분에 좋은 사진을 간직할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사실 흔들바위까지는 오를 만했는데 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까지 가는 코스가 죽을 맛이었다.

평소에 운동도 하지 않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체력은 나에게 지금 당장 포기하고 내려가라고 마음 속 악마가 외쳤다. 올라올 때는 끝이 안보여서 울산바위가 너무 멀게 느껴졌는데 내려갈 때는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겨우 이 정도 거리에 내가 그렇게 힘들어 했다니 원효대사가 해골 바가지 물을 먹고 세상에 이치를 느꼈듯이 정말 모든 일에는 심리적인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설악산을 오르고 인생을 배웠으니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 성공은 코앞에 있다" 명언이 절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속초에서의 여행은 마치 이틀 동안 꿈을 꾼 것 같았다. 실망한 부분도 있었고 서투른 여행 준비로 고생도 했지만 고생한 만큼 추억이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강원도 속초에서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고 가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0&contents_id=108)



태그:#강원도 속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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