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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술대회에서 연구자들 사이에 키가 작은 중학생(사실 그는 고등학생이었다)이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다른 어떤 학회 참석자들보다 열심히 배우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박종현 군이었다. 외국에서 해양생물을 공부하던 시절, 어릴 때부터 생물에 관심을 갖고 꿈을 키웠던 연구자들을 만나며 부러워했던 나에게, 한국에서 박종현 군을 만난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이후 수줍음 많은 그에게서 담수생물에 대한 열정과 전문가적 지식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가 지금까지 자연과 만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도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쁜 마음으로 추천의 글을 적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와 전문가 수준 이상의 글은 청소년기에 자연을 접하면서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청소년기의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통한 즐거움을 발견하며, 특히 미래의 자연과학도들에게 큰 용기를 주게 되길 기대한다. - <담수 생물's 노트> 원남일(K-water 책임연구원) 추천사에서

고2 소년이 담수생물 책 집필하기까지

<담수 생물's 노트>(박종현 지음, 책미래 펴냄)의 '저자의 말'을 매우 인상 깊게, 그리고 감동스럽게 읽었다.

<담수생물's노트>
 <담수생물's노트>
ⓒ 책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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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친척들과 어울려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단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해수욕장이나 계곡, 산림욕장까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했는데, 게임기를 가지고 놀거나 물놀이를 하며 노는 사촌동생들과 달리 소년(저자)은 물 속 생물들을 관찰하거나 잡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중학생이 된 후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점점 여행과 멀어지게 된다. 소극적이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소년은 늘 혼자. 학교 생활도 점점 힘들어하게 된다. 이런 소년에게 친구가 되어준 것은 '자연'이었다. 소년은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 몰래 혼자 산이나 계곡을 찾아다니며 가만히 앉아 경치를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생물들을 관찰하며 보내게 된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소년은 자연과 생물의 신비로움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그리하여 관련 책들을 대출해서 읽는 일이 점차 많아지고, 자연과 생물 등에 구체적인 관심을 갖게 된다. 그와 함께 더욱 적극적으로 계곡이나 하천 등을 찾아다니며 관찰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심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사귀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사교성도 좋아지게 된다.

그래서 운영하게 된 것이 네이버 카페 '녹원담'입니다. 생명에게는 가장 중요한 물질이자 생물들의 서식지이기도 한 '물'의 근원을 의미하는 '물방울'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습니다.(줄임) 하지만 제가 카페나 블로그에 후기를 올리고 후기를 올린 곳을 다시 가 봤을 때에,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었던 일도 가끔 있었습니다.

제가 올린 글을 보고 많은 분들이 방문해서였는지, 그 많던 민물고기나 새우들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작은 만행들이 자연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종수도 다양하고 수도 많던 담수의 생물들이 사람들 때문에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또 사람들이 특정 담수 생물들을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강, 하천, 여울 등 담수에 서식하는 생물들에 대한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의 최재천 교수님은 '알면 사랑 한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저도 담수생물들에 대한 정보를 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한다면 담수생물들을 보호하려는 분들이 많아지고, 잘못된 시선들도 고쳐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 <담수생물's노트>에서

카페 운영으로 관심과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과 좀 더 광범위하게 어울리고, 함께 하천이나 계곡을 찾아 관찰을 한 결과를 카페나 블로그에 올리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올린 글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같은 쓰라림을 겪게 된다. 그리하여 생각한 것이 담수생물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었다.

바다 살던 빙어, 어쩌다 호수로 오게 됐을까

소년은 대학생이 된 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수능 공부를 하면서도 책을 계속 쓴다. 그러나 대학 입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게 된다. 소년은 이미 완성에 가까운 원고를 들고 고민을 하게 된다.

'출간을 1년 미뤄야 하나. 거의 완성된 원고를 1년이나 묵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래, 비록 재수생이지만 책을 출간하자. 그런데 내가 쓴 글이 출판할 가치가 있기는 한 건가?'

이미 카페와 블로그를 통해 검증된 글이지만 생명과학이나 생태학을 전공한 바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자신이 동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포항공과대학교의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 '물방울의 담수생물 이야기'란 칼럼 연재를 시작한다. 담수생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책을 출간할 만한 역량이 있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등을 실험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연재 초기부터 조회 수가 1000회를 넘어설 정도의 인기를 끌게 된다. 이 책 <담수생물's 노트>는 이런 과정으로 나온 책이다.

빙어는 호수에 주로 서식하는 민물고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연안 바다에 살고 산란기에만 강으로 올라오는 희귀성 어류입니다. 그래서 차가운 물에만 살 수 있는 냉수성 어류임에도 북방계 어류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어가 민물고기처럼 민물생태계에 서식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경 일본인이 함경남도 용흥강에서 빙어의 알을 채취하여 국내 일부 지역의 호수에 방류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빙어는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높았기에, 호수에 빙어를 방류해서 더욱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바다로 갈 수 없게 된 호수의 빙어들은 곧 호수생태계에 적응하고 완벽하게 자리를 잡게 됩니다. - <담수생물's 노트>에서

해마다 겨울이면 빙어 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고, 포장마차나 주점 등에서 겨울철 잠시나마 쉽게 맛볼 수 있기 때문인지 빙어를 아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빙어는 원래는 연안 바다에 사는 물고기였다는 것. 그런데 '일본인들이 아무 때나 쉽게 잡아먹고자' 인위적으로 호수에 풀어놓아 오늘날처럼 민물고기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빙어'와 '일본'이란 두 단어를 검색창에 동시에 넣고 검색을 해본 결과,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빙어를 매우 좋아한다는 내용의 글들만 보이니 말이다.

가물치와 잉어, 외국에서 '애물단지' 된 이유

일본인들이 쉽게 잡아먹자는 욕심만을 앞세워 빙어의 운명을 바꾼 것처럼, 앞뒤를 세심하게 검토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오늘날 처치곤란 애물 덩어리가 된 외래종들도 있다. 배스, 블루길, 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이 그들이다.

이중 블루길은 '순자 붕어'로 불리기도 한다. 오래 전 낚시를 좋아하는 주변사람에게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심지어는 갑각류나 수서식물(물풀), 작은 물고기나 물고기 알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 때문에 순자 붕어라 부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이순자씨가 영부인일 때 대청댐에 블루길을 10만 마리 방류해서 붙은 별명이란다.

우리의 토종 물고기들이 외국에 도입되어 '보는 족족 잡아 없애야 하는 애물단지'가 된 경우도 있다. 산모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가물치와 보양식으로 요리해 먹기도 하는 잉어가 그 주인공.

2002년 미국의 한 연못에서 가물치 한 마리가 발견되자 연못의 물을 모두 뺄 정도로 가물치는 미국을 비롯한 일본과 캐나다 등지에서 골칫덩어리 고기다. 잉어 역시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골칫덩어리. 미국에서는 잉어의 수를 줄이고자 한 해에 60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할 정도로 이들 물고기들은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생물로 많이 알려졌다.

특히 가물치는 육상으로 이동해 애완 동물이나 아이들을 해치기도 한다는 등의 소문까지 무성할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때문인지 <프랑켄피쉬>, <가물치의 테러>와 같은 괴물 가물치가 주인공인 영화까지 제작되었을 정도다. 참고로 미국인들은 가물치를 '뱀 대가리'라 부르며 무서워한다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이나 생물들의 흥미로운 특성들을 풍성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배스나 블루길, 황소개구리나 붉은귀거북 등에 대해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 왔다. 이 저자 역시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 읽어온 관련 글들 중 가장 자세히, 그리고 주변의 이야기들까지 풍성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지 '개념있는 글'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생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 맞아?'란 생각과 '관련 책들을 꽤나 읽었지 싶은데 이런 사실들을 왜 몰랐지?'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 정도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평생 동족과 싸우는 베타의 격렬한 짝짓기 이야기, 민물조개에 알을 낳는 민물고기와 그런 민물고기에 붙어 이동하는 민물조개의 공생 또한 인상 깊게 읽었다.

관련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수십 개의 QR코드를 수록한 것도 이 책의 장점. 잉어가 사람들을 습격하는 모습이나 가물치가 배스를 퇴치하는 생생한 장면 등을 볼 수 있다.

덧붙여, 저자가 이번 수능을 원하는 대로 잘 봐서 대학에 합격해 '저자의 말'에 다짐한 것처럼 생물학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기억하고 응원하고 싶은 저자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담수생물’s 노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물방울의 물생활 이야기 | 박종현 (지은이) | 김명철 (감수) | 책미래 | 2013-09-14 | 정가 14,000원



담수생물’s 노트 -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물방울의 물생활 이야기

박종현 지음, 김명철 감수, 책미래(2013)


태그:#담수생물, #잉어, #블루길, #순자붕어, #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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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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