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들은 필립스 선장을 납치해 구명보트로 달아나고 미 해군의 필립스구출작전이 시작된다.

해적들은 필립스 선장을 납치해 구명보트로 달아나고 미 해군의 필립스구출작전이 시작된다. ⓒ 소니픽쳐스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의 <캡틴 필립스>(Captain Phillips)는 2009년 최초로 공해 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미국인 리처드 필립스(Richard Phillips) 선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필립스 선장이 지휘하는 머스크 앨라배마(Maerk Alabama)호는 세계식량계획(WFP)이 소말리아와 우간다에 지원할 구호 물자를 싣고 케냐의 몸바사 항으로 향한다. 상습 해적 출몰 지역을 항해하게 된 필립스 선장은 출항 전부터 안전 시설들을 꼼꼼히 점검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예상대로 8명의 해적이 두 척의 소형 모터보트에 나누어 타고 앨라배마호에 접근한다. 필립스 선장은 기지를 발휘해 해적들을 따돌리지만 4명의 해적이 다시 승선을 시도한다. 필립스 선장과 선원들은 물대포를 쏘며 저항하지만 앨라배마호는 결국 해적들에게 장악된다. 선원들은 대부분 기관실로 대피하고 해적들에게 억류된 필립스 선장은 설득을 시도한다.

나머지 선원들을 찾기 위해 해적들은 앨라배마호를 수색하고 선원들은 격투 끝에 해적 리더를 생포한다. 선원들은 리더를 석방하는 조건으로 해적들에게 현금 3만 달러를 지불하고 육지로 돌아갈 수 있는 구명보트를 제공하겠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해적들은 필립스 선장을 납치해 구명보트로 달아나고 미 해군의 '필립스 구출 작전'이 시작된다.

폴 그린그래스는 특유의 사실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캡틴 필립스>를 구출했다. 아마도 폴 그린그래스가 아니었다면 <캡틴 필립스>는 유치한 할리우드 애국주의로 무장한 3류 상업영화에 그쳤을 것이다.

<캡틴 필립스>는 60% 이상 바다에서 촬영됐다. 상영시간의 90% 이상이 바다 모습이다. 사막과도 같은 망망대해에서 2시간 동안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폴 그린그래스는 속도감을 거의 느끼기 힘든 대형상선과 모터보트의 추격장면조차 탁월한 연출과 편집으로 자동차 추격전 못지 않은 긴장감과 박진감을 연출해 낸다. 만일 폴 그린그래스의 탁월한 연출력이 없었다면 <캡틴 필립스>는 흥행과 비평에서 거의 재앙 수준의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폴 그린그래스는 재앙을 막았지만 그의 재능도 거기까지였다. 아마도 <캡틴 필립스>는 폴 그린그래스의 영화 이력에 가장 씁쓸한 작품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본>(Bourne) 시리즈와 전작 <그린 존>(Green Zone)에서 보여준 그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할리우드 애국주의의 견고한 장벽에 갇혀 질식되어 버렸다.

비판의식이 제거된 폴 그린그래스의 영화는 블록버스터 시사다큐멘터리가 되고 말았다. 한 마디로 <캡틴 필립스>는 거대한 재연극,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폴 그린그래스의 예술적 성취는 극영화와 기록영화의 중간지대에 '그린그래스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것 뿐이다.

그나마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폴 그린그래스가 할리우드 애국주의 상업적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을 끝까지 유지했다는 점이다. 폴 그린그래스의 카메라는 건조하리만큼 냉정하고 차분한 시선으로 필립스 구출 작전을 추적한다. 이러한 객관성은 <캡틴 필립스>의 유일한 미덕이며 폴 그린그래스를 여전히 작가로 인정할 수밖에 이유이기도 하다.

왜 소말리아는 해적의 천국이 되었나?

소말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다. 솔직히 나라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소말리아는 2013년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발표한 실패국가지수(failed state index)에서 177개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2008년 이후 6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다.

 해적들은 필립스 선장에게 자신들은 어부라고 말하는데 그 말은 정확히 사실이다. 적어도 서방 국가들에게 자신의 어장을 빼앗기기 전까지는 그들의 직업은 어부였다.

해적들은 필립스 선장에게 자신들은 어부라고 말하는데 그 말은 정확히 사실이다. 적어도 서방 국가들에게 자신의 어장을 빼앗기기 전까지는 그들의 직업은 어부였다. ⓒ 소니픽쳐스


소말리아의 1인당 국민소득(GNP)은 약 600달러다. 국민 1인당 하루에 2000원도 벌지 못한다. 소말리아의 물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한끼 식사도 불가능한 수입이다.

하지만 해적들은 최소한 연간 2만 달러 이상을 번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산업의 수익은 1억3500만 달러로 추산됐다. 결국 해적활동은 소말리아인들이 기아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셈이다.

그렇다면 소말리아는 왜 해적의 천국이 됐을까?

과거 어업은 과거 소말리아의 핵심 산업이었다. 소말리아인들은 전통적으로 해산물을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외국으로 수출했다. 하지만 정부의 기능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소말리아 해역을 외국 어선들이 장악했다. 심지어 외국 선박들이 무단으로 소말리아 해역에 유독성 폐기물을 방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폐기물처리비용은 유럽에서 1톤당 250달러였지만 소말리아에서는 2.5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때문에 납이나 카드뮴, 수은과 같은 중금속부터 심지어 방사성폐기물까지 소말리아 앞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결국 어부들은 자신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해적들은 필립스 선장에게 자신들은 어부라고 말하는데 그 말은 정확히 사실이다. 적어도 서방 국가들에게 자신의 어장을 빼앗기기 전까지 그들의 직업은 어부였다.

<캡틴 필립스>의 초반부에 해적들이 해변 가에서 인력을 선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새벽 인력시장을 연상시킨다. 해적 대다수는 단지 생계 때문에 위험한 해적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올린 수입의 대부분은 '보스', 즉 군벌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군벌들과 사업가들의 개입으로 소말리아 어부들의 자경활동은 해적산업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누가 어부를 해적으로 만들었나?

필립스 선장을 납치한 해적들은 앨라배마호의 소형 구명보트를 타고 소말리아로 돌아가려고 한다. 미 해군은 필립스 선장을 구출하기 위해 이지스 구축함 베인브릿지(USS Bainbridge)를 급파한다. 해적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근육량의 네이비씰 데브그루(DevGru) 대원들이 온갖 첨단장비로 무장하고 구출작전에 투입된다.

소형 구명보트와 미 해군의 첨단 구축함, 피골이 상접한 해적들과 람보나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네이비 씰 대원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기괴한 사실주의적 장면이 연출된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거대한 트롤이 돌도끼로 모기를 쫓는 듯하다. 돈키호테가 풍차로 돌진하듯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미국의 첨단 구축함과 대치하는 '말라깽이' 해적들에게 오히려 연민이 느껴질 정도이다. 아마도 폴 그린그래스는 이러한 극적 대비를 통해 우회적으로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들은 해적에게 자국 선박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상시적으로 해군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보호하는 것은 소말리아 인근해역을 운항하는 상선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소말리아 해역에서 외국 선박들의 약탈적 어로행위와 불법적인 폐기물 방류까지 보호하고 있다.

과연 누가 진짜 피해자일까? 진짜 해적은 자신들의 바다를 빼앗긴 소말리아 어부들이 아니라 오직 이윤을 위해 방사성폐기물까지 내다버리는 탐욕스러운 서구 자본주의일지도 모른다. 결국 미 해군은 큰 해적(대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소 해적들만 족치고 있는 셈이다.

소말리아의 어부들을 해적으로 만든 데는 미국의 책임도 크다.

소말리아는 영국보호령이었던 북부와 이탈리아의 신탁통치를 받던 남부로 갈라져 있다가 1960년 소말리아민주공화국으로 통일되었다. 그런데 1969년 시아드 바레(Siad Barre)가 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주의정권을 수립하고 22년 동안 통치했다. 바레 정권은 미국과 구소련의 지원을 동시에 받으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바레의 사회주의 정부도 붕괴했다. 1991년 1월 아이디드(Farrah Aidid)가 이끄는 통일소말리아회의(USC)의 쿠데타로 바레가 실각하고, 이후 소말리아는 깊은 내전의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레 정권의 붕괴 직후 미국과 유엔은 소말리아 문제에 개입했다. 유엔은 1992년 12월 소말리아에 대한 인도적 무력 개입을 승인했다. 희망회복작전(Operation Restore Hope)으로 명명된 이 작전에 UN평화유지활동(PKO) 요원 4500명이 파견됐다. 곧이어 미국이 주도하는 2만여명의 다국적군도 파병되었다.

하지만 미국과 유엔이 회복하려는 '희망'은 소말리아인들의 '희망'이 아니었다. 미국과 유엔은 소말리아의 안정보다는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정부를 세우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

 소형구명보트와 미 해군의 첨단 구축함, 피골이 상접한 해적들과 람보나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네이비 씰 대원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기괴한 사실주의적 장면이 연출된다.

소형구명보트와 미 해군의 첨단 구축함, 피골이 상접한 해적들과 람보나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네이비 씰 대원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기괴한 사실주의적 장면이 연출된다. ⓒ 최한욱


애초 유엔은 거대 군벌들이 참여하는 평화회의를 통해 내전을 종식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다수파인 아디이드가 아니라 자신들이 다루기 쉬운 소수파들을 지원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아디이드가 1993년 파키스탄 소속 평화유지군 24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군은 아이디드의 주요 거점과 시설에 대한 폭격을 시작하고 아이디드 체포작전에 돌입한다. 이 사건이 바로 영화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에 등장하는 1차 모가디슈전투였다.

미국이 만든 소말리아의 비극

이 작전으로 미군 19명이 죽고 80명이 부상을 입었다. 소말리아인들도 2000여명이 희생됐다. 미군 희생자들이 소말리아 민병대에 유린당하는 참혹한 영상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결국 미군은 소말리아에서 철수한다.

2006년에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2004년 9월 미국 주도 하에 내전 종식을 목표로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과도연방회의가 개최됐다. 그런데 미국은 이 회의에 북부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이슬람법원연합(UIC)을 제외시켰다. 그리고 과도연방회의는 친미 성향의 유스프 아메드(Yusuf Ahmed)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과도연방정부(TFG)가 출범한다.

미국의 개입으로 소말리아는 남북으로 분단될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결국 분단을 저지하기 위해 북부의 이슬람법원연합이 군사행동을 개시하고 수도인 모가디슈를 장악한다. 하지만 미국은 에티오피아를 부추겨 소말리아를 침공하고 다시 친미세력들이 모가디슈를 장악했다. 이것이 이른바 2차 모가디슈전투였다.

만일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특정 세력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소말리아에서 적어도 내전은 종식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언제나 소말리아의 안정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웠다. 이러한 미국의 개입 때문에 소말리아는 아직도 내전의 수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소말리아 해적들은 약 5~6억 달러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캡틴 필립스>의 제작비는 약 5500만 달러다. <캡틴 필립스>는 11월 현재 북미시장에서 70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리고 있다. 2011년 동안 소말리아 해적들이 올린 수입의 절반이 넘는다. 미국인들이 <캡틴 필립스>를 소비하기 위해 지불한 비용만 소말리아 어부들에게 지원해도 필립스 선장은 보다 안전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다. 미국이 해적소탕을 위해 지출하는 군사비의 1/10만 소말리아에 투입해도 소말리아 해적산업은 상당히 위축될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어업허가를 철회하고 소말리아의 바다를 어부들에게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해적들의 상당수는 다시 어부로 돌아갈 수 있다.

필립스 선장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소말리아의 말라깽이 빈민해적들이 아니라 필립스 선장의 '보스'들이다.

덧붙이는 글 <캡틴 필립스>는 지난 10월 23일 개봉되었다.
캡틴 필립스 소말리아 해적 모가디슈전투 바레 이슬람법원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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