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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에 있었던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아래 전공노)의 대선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 개인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지 만 하루만의 일이다. 새누리당은 민주당 측이 대선 당시 전공노와 유착해 지지를 얻어내고, 전공노가 트위터에 반복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남김으로써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자발적 의사기구인 노동조합의 입장 표명과, 국가기관의 직원들이 상부의 지시 하에 신분을 숨기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하는 글들을 쓴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더구나 문재인 후보 측과 전공노는 정책질의를 통해 공식적인 정책 협약을 맺은 상태였다. 이 협약서는 전공노의 웹사이트에 원문 그대로 공개되어 있다.

또 전공노와 정책협약을 맺은 것은 문재인 후보 뿐만이 아니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와 무소속 김순자·김소연 후보도 모두 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전공노의 정책질의서가 전달되었으나, 박대통령의 캠프 측에서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와 전공노의 협약이, 특정 후보를 겨냥하고 맺은 밀월관계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11월 1일자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11월 1일자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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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이를 국가기관의 조직적 대선개입이라는 심각한 국기문란 사태와 동일시했다. 그야말로 '맞불'도 못 되는 '물타기' 수준의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1일 자의 방송뉴스들은, 이 억지를 그럴 듯한 '의혹'으로 포장했다.

공개된 정책협약을 비밀 문서처럼... 새누리당 입장만 읊은 MBC

이날 방송 3사는 전공노 관련 문제를 각각 한 꼭지씩 편성했다. SBS <8시 뉴스>는 여 '"전공노 대선 개입"…야 "군 개입" 폭로'라는 제목으로, 여당의 전공노 대선 개입 의혹과 야당의 군 기무사 정치 댓글 작성 의혹을 묶어 다뤘다. 양 당의 입장을 모두 보도하긴 했지만, 그들의 발언을 기계적으로 받아적기만 했을 뿐 의혹의 정당성에 관한 분석이나 문제제기는 보이지 않았다.

11월 1일자 SBS <8시 뉴스> 화면 갈무리.
 11월 1일자 SBS <8시 뉴스> 화면 갈무리.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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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MBC는 보다 적극적으로 새누리당 측의 '전공노 대선개입'의혹을 보도했다. KBS <뉴스 9>와 MBC <뉴스데스크> 모두 민주당-전공노 간의 정책협약서 원문과 전공노 트위터의 지지발언을 보도에 활용했다. 그러나 이 협약문이 공식적인 것으로 전공노의 홈페이지에도 공개되어 있다는 점은 설명하지 않았다. 전공노가 모든 후보들에게 정책 질의를 보냈으며, 다른 후보들과도 정책 협약을 맺었다는 점 또한 보도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뉴스만 통해서는, 마치 문재인 후보측과 전공노가 비밀리에 협약을 맺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11월 1일자 KBS <뉴스 9> 화면 갈무리.
 11월 1일자 KBS <뉴스 9> 화면 갈무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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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MBC의 경우, 정책 협약서 원문을 분석하며 "문 후보가 이 협약을 맺은 후 전공노 소속 공무원들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도록 하는 불법선거를 했다고 주장했다"는 새누리당 측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협약에 응한 모든 후보가 같은 내용으로 정책 협약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 전공노의 "박근혜 후보는 단 한 가지도 공무원을 위해 약속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는 100% 수용했다"는 트윗을 보도에 인용했지만, 이 글이 전공노가 보낸 정책 질의서에 응답하지 않은 박근혜 후보와 긍정적으로 응답한 문재인 후보를 두고 작성되었다는 배경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보도와 동시에, 화면에서는 문재인 후보와 전공노 위원장이 공식석상에서 마주치는 모습들이 여러 컷 편집되어 흘러나왔다.

11월 1일자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11월 1일자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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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와 노조 등 특정 집단이 정책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협의를 맺는 것은 불법 선거운동이 아니다. 더구나 특정 후보를 골라 접촉한 것이 아니고, 모든 후보에게 같은 정책을 제안한 후 응하는 측과 맺어진 협약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여당이, 이를 밀실에서 맺어진 유착관계인 양 비난하며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과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그러나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방송사들이 이들의 억지를 '의혹'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그 부당함을 감추는 일이다. 지적도 의문도 없이 모순된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방송뉴스들. 이들이 잃은 것은 지성일까, 아니면 양심일까.


태그:#방송 3사, #KBS, #MBC, #SBS, #선거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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