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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전 서구의 한 단독주택가에 위치한 우리집.
 대전 서구의 한 단독주택가에 위치한 우리집.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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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이~ 젊은 양반, 이리 좀 와봐."

이사 오던 첫 날. 한창 짐 나르기 바쁜데 골목길 저만치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날 부르신다. 허리가 많이 구부러지셨고, 삐쩍 마르신 그분은 80은 족히 넘어 보이셨다. 가까이 다가가니 대뜸 질문 공세를 퍼부으신다.

"새로 이사 오는겨? 거기 살던 분들은 어디로 갔댜? 그 사람들 참 좋았는디…. 얼마 주고 샀어? 젊은 사람들이 왜 이런 디로 이사 오는감?"
"아… 네, 할머니… 새로 이사 왔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저 그리 젊지 않아요… 헤헤."

그렇지 않아도 노후된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대뜸 왜 '이런 디(?)'로 이사 오냐고 하신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몇 살인디? 애는? 뭐 하는디?"

우리나라 할머니들이 보통 그러시기는 하지만, 첫 만남부터 내 신상을 한 번에 왕창 털어버리시려는 그 할머니와 길게 이야기하기 싫었다. 처음부터 손가락으로 까딱거려 날 부르시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내 나이 43살이고, 한 가정의 가장인데, 아무리 어리게 보셔도 그렇지, 강아지 부르듯 부르시다니….

"예, 할머니 저 올해 마흔셋이고요. 아이는 세 살 딸아이 하나 있어요. 그리고 회사 다녀요."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답하고 자리를 피하려는데, 내 등 뒤에 대고 또 다시 질문을 퍼부으신다.

"마흔셋? 거 뭐 아직 애네."

헉! 물론 할머니가 보시기에는 그렇기야 하겠지…. 앞으로 인사 잘 하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전 서구 단독주택가에 위치한 우리집 앞 골목.
 대전 서구 단독주택가에 위치한 우리집 앞 골목.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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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사 온 지 셋째 날 아침. 갑자기 한 할머니가 불쑥 집으로 들어오셨다. 우린 정말 깜짝 놀랐다. 우리 왼쪽 두 번째 옆집에 사신다는 그 할머니는 새로 이사 온 집을 어떻게 고쳐놨는지 구경하러 오셨다고 하셨다.

"아이고, 잘 고쳐놨네. 부엌은 어떻게 고쳤어? 옴마야 싱크대도 죄다 갈았고만? 잘했네 잘했어. 화장실은…."

뜨악! 아무리 우리 집에 대문이 제대로 없고, 오래된 동네로 이사를 왔기로서니 이렇게 예고도 없이 불쑥 남의 집에, 그것도 인사도 제대로 한번 하지 않은 집에 불쑥 들어오셔서, 거실로 부엌으로 화장실로 안방까지 두루두루 구석구석 살피시다니….

내가 비록 시골에서 커서 이런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2013년 대전'광역시'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하기야, 이 동네 집 보러 왔을 때부터 눈치 챘다. 심상치 않다는 것을.

신도시 아파트에서 살던 우리가 이 동네로 집 보러왔을때 나는 신기한 풍경을 보았다. '콜라텍'과 '만화방' 간판이었다. 실제 운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정말 10년 전쯤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또 신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풍경은 '철물점'이다. 아파트가 밀집한 곳에서는 '인테리어' 가게가 있었는데, 노후된 단독주택이 밀집된 이 지역에는 '철물점', '페인트 가게', '장판 가게' 등이 엄청 많았다.

'아~ 이래서 젊은 사람들이 없구나.'

콜라텍과 만화방 간판.
 콜라텍과 만화방 간판.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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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가 살고 있는 골목길에는 15채 정도의 집이 있다. 그 중 아이가 있는 집은 우리집을 포함해서 딱 세 집이다.

다행히 네 살, 두 살 남자 형제를 키우는 집이 부모도 우리 나이와 비슷하고 해서 금방 친해졌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가장 크게 걱정되는 부분이 바로 아이에게 친구가 없을까 하는 걱정이었는데, 그래도 한 집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사 오는 날부터 안면을 트더니 지금은 눈만 뜨면 '오빠'를 찾으며 달려 나간다. 엄마들도 금세 친해져서 날마다 만나고, 매일 집을 서로 오가며 지내고 있다. 다만, 아빠들끼리는 아직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그런데 하루는 아내로부터 카톡이 왔다. 사진에는 근사한 김밥이 담겨져 있다. 딸아이의 동네오빠인 '재준이 아빠의 솜씨'란다. 전직 일식요리사 출신이라는 그분은 못하는 게 없단다. 한마디로 '엄친아' 비슷한 존재다.

바빠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받은 문자에 짜증이 좀 났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랬더니 아내는 '예민하기까지…'라며 놀려댄다.

아내 한테서 온 카톡
 아내 한테서 온 카톡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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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당황스럽다. 철문 하나만 닫으면 내 사생활이 완벽하게 보장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몇 년씩을 살던 아파트 문화와 너무 다르다. 이사 온 지 겨우 3주가 지났는데, 난 벌써 이웃사람들의 사생활을 알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아내가 듣고 와서 전해주기 때문이다.

저 집에는 누가 살고, 몇 살이고, 직업은 뭐고, 여기로 이사 와서 몇 년 살았고, 어떤 일이 있었고 등…. 곧 나의 사생활도 이렇게 이 동네에 퍼져나갈 것이다. 아니 벌써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집 아주머니와 이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던 아내가 들어와 내게 한 말이 지금 내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다.

"여보, 우린 마을로 들어왔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다. 맹자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세 번의 이사를 다녔다고 하는데, 골목길 할머니들과 놀던 내 딸아이는 요즘 지팡이를 짚고 허리를 굽힌 체 할머니 흉내를 내고 다닌다. 웃어야 하는 건지~.


태그:#단독주택, #마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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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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