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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정치에 개입했다. 그것도 선거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물론, 군사행동 등의 물리력 행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의미는 간단치 않다. 현재까지 드러난 국방부 자체 조사만으로도 사실의 무게가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조사 당국도 당사자들의 '개인적 활동'이라 전제하면서도, 책임을 느끼는 눈치다.

이유와 경위를 떠나 군의 정치적 중립성, 나아가 민주주의의 공정성이 훼손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1992년 대선을 끝으로 전면에서 사라졌던 소위 '군인정치'의 그림자가 잠시나마 드리워졌다는 점도 개운치 않은 대목이다. 사태의 전후를 살펴본다.

거꾸로 돌린 시계바늘

"보안을 유지해야 할 조직이 정치적인 쟁점이 된 것이 안타깝다, 비록 수사 중이나 개인적으로 글을 올렸다고 해도 정치적 중립 위반은 사실이다."

최근 국회의 군사법원 국정감사에서 김관진 국방장관이 국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논란을 두고 한 말이다. 국가 안보 핵심 부처에서, 그것도 기밀로 여겨져 온 조직이 정치적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른데 대한 심각한 우려가 느껴진다. 우선 이번 일로 국군 사이버사령부는 세상이 다 아는 조직이 됐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오랜 기간 군으로서는 금기나 다름없던 정치적 중립성에 생채기가 났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는 군 내부적으로는 윤리적 문제지만, 국가적으로는 신뢰의 문제다. 비교적 합리적 일처리로 지난 정권에 이어 장기간 재임해온 김 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공개적으로 푸념을 드러낸 이유도 이것으로 해석된다.

이달 14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에 의해 폭로된 이번 사건은 그간 정국의 주요 쟁점이던 국정원 댓글 사건과 더불어 또 다른 정보기관의 대선 개입 논란으로 주목을 끌어 왔다. 두 사건의 주체가 각기 다른 기관임에도, 양 기관이 정보부서라는 유사점에 '댓글'이라는 공통분모가 더해져 폭발력은 배가된 상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갖는 휘발성에는 군대 조직이라는 특수성도 내재해 있다. 이는 자칫 사건의 파장이 정치적 쟁점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크게 실추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건의 의미를 확대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듯하다. 이쯤에서 지금까지 공개된 사건의 일면을 사실대로 확인하는 것이 그나마 판단을 돕는 근거가 될 것이다.

앞서 야당의 폭로 이후, 국방부는 서둘러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군 검찰단과 사이버수사대가 포함된 조사 본부가 합동 조사를 실시했고, 그에 대한 중간발표가 22일 있었다. 당시 발표에서 조사팀은 "이미 알려진 4건의 SNS 계정이 국군사이버사령부 소속 군무원 3명과 현역(부사관) 1명의 것으로 확인했고, 본인들은 '자신들의 계정이 맞다'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현역 군인이 포함된 '정치적 성향'의 댓글 활동이 있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조사팀은 "관련자들은 개인 블로그와 트위터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고 '별도의 지시는 받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말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한 조직적 댓글 활동은 아니라는 시각을 드러냈다.

중립성 치명타, 좋지 않은 선례

반면, 조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활동에 대한 의혹과 정황이 추가로 폭로되는 한편, "관련자가 더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국방부도 이번 사건을 조사에서 '수사'로 급전환해 진위 파악에 나서고 있다.

조사 발표를 지켜본 정치권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다소 수세적 입장에 놓인 새누리당의 반응을 먼저 들어보자.

"국방부는 일부 요원의 개인행동이며 상부 지시로 개입한 정황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군이 공정하게 조사를 해왔고, 앞으로도 중립을 지켜 조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유일호 대변인의 공식 논평 중 일부다. 새누리당은 '개인적 행동'에 방점을 찍고 파장의 확대에 대응하고 있다.

반대로 야당의 어조는 강하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이것은 사이버상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이다"고 비판했고,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디지털 유신이다"는 말로, 심각성을 대신했다.

문제는 국방부의 발표와 같이 사건 원인을 요원의 개인행동으로 돌리고 야당의 견해를 강도를 높인 정치적 수사로 치부한다 해도 댓글 사건에 '현역 군인'이 개입됐다는 점은 간과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대한 질의에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군은 항상 큰 사건도 다 처리해 왔다. 정책 중립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믿어주시는 게 국민의 군대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역시 중립성을 강조하면서도 우려가 섞인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군이 앞장서 헌법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더욱, 이번 사건의 이면에도 지난 댓글 의혹을 받아온 국정원이 연루됐다는 주장도 더해졌다.

"국정원 요원들이 생산한 트위터 글들을 사이버사령부 요원들도 퍼날랐다.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이 생산한 글을 국정원 요인들도 퍼날랐다고 한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다.

하지만, 군의 정치 개입, 나아가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 정가 일각에서는 "지난 노태우 대통령의 퇴임으로 군인 정치의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적어도 '정치를 하려면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인 시대다"며 "당사자들의 개인적, 조직적 개입과 상관없이 좋지 않은 선례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한 글입니다.



태그:#군인정치, #사이버사령부, #국정원댓글, #군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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