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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차례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게는 북한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정을 나눈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더 많은 북한 동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도 다시 북한에 다녀왔다. 지난 8월 1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차례 그리고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또 한 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새 연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통해 북한 동포들의 지금과 북한의 여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

지난밤 늦게 잠이 들어 오전 8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깼다. 서둘러 식당으로 달려갔다. 오늘도 역시 뷔페가 준비돼 있다. 식당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의 피아노곡이 흘러나온다. 아! 쇼팽의 <녹턴> 아닌가. 연이어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진다. 황홀함으로 내 가슴이 벅차오른다. 행복한 일들이 마구마구 생길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아침. 전에도 이곳 호텔에서 서양 음악이 나왔었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랬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고려호텔 아침 뷔페
 고려호텔 아침 뷔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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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을 위해 조선식 아침식사를 따로 가져다주는 게 무척 미안해 얼른 웨이트리스에게 다가가 말한다.

"저…, 있지요. 오늘 아침은 저희도 뷔페식 식사를 할 테니 조선식 식사는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일 없으시겠습니까?"
"그럼요."

대부분의 뷔페 음식은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리한 퓨전 스타일 조선 음식이었다. 우리식대로 조리한 두부요리 그리고 나물들이 있어 한 접시 담아 가져왔다. 웨이트리스가 다가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음식이 입맛에 맞으시나요?"
"네, 맛있어요. 뷔페음식이 대부분 조선식인데 왜 어제는 우리에게 따로 조선식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셨어요? 그냥 여기 있는 거 먹으면 되는데…."
"그래도 우리 조선사람은 순 우리식 음식을 먹어야지 싶어 그랬습니다."

웨이트리스가 우리를 위해 가져다 준 깍두기와 상추.
 웨이트리스가 우리를 위해 가져다 준 깍두기와 상추.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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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웨이트리스가 또 어제처럼 '입맛 나게 하는 특별한 요리'라며 반찬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아준다. 대동강 숭어조림이란다. 평양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하는 생선이 숭어라고 한다. 무와 풋고추를 넣어 간장에 졸였다. 담백함과 칼칼함 그리고 짭짤함과 들큼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밥이 술술 넘어간다. 안 가져다줬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게다가 '부부가 마주 보고 앉아 두 눈을 부릅뜨고 쌈을 싸 먹는 모습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져 이곳에서는 '부루'라고 불리는 상추와 쌈장 그리고 깍두기를 내왔다. 딸 아이 같은 웨이트리스가 제법 어른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한다.

"낯선 땅에 오셔서 힘드실 텐데 아침을 든든히 드셔야 합니다."
"내게 여기는 낯선 땅이 아니에요. 나도 여기에서 차로 몇 시간만 가면 닿는 남녘의 대구에서 태어났어요. 그리고 두세 시간이면 가는 서울에서 오래 살았고요. 유치원 때부터 대학 때까지."

"그러십니까? 재미동포라고 알고 있는데…."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어요. 그러나 해외에 산다고 해서 우리가 뭐 달라지나요?"
"맞습니다. 그래도 식사는 꼭 든든히 드시고 다니십시오. 오늘은 또 오데를 가시나요?"
"글쎄, 오늘은 어디를 가는지 모르겠네요. 보통 전날 밤 이야기를 해주는데, 어제는 그런 말이 없었어요."

전승기념관에서 기원한 평화

설향이와 영길 동생이 평소처럼 미리 나와 로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설향이의 얼굴이 좀 나아 보인다. 동생이 가져다 준 약을 먹고 땀을 좀 흘렸더니 기분이 상쾌하단다. 정말 다행이다. 영길 동생이 "오늘은 주로 평양 시내 관광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선 오전에 전승기념관을 참관한다고 하자 남편이 큰 소리로 불평을 해댄다.

"거길 또 가? 이번에 가면 벌써 세 번째야, 이 사람아."
"형님, 멋지게 다시 지어 이번에 새로 개관했습니다. 꼭 보셔야 하요. 가시는 길에 창전거리도 들러 보시고."

전승기념관 가는 길 유경호텔 앞 거리에서(평양의 거리는 지금 모두 잔디가 깔려있다).
 전승기념관 가는 길 유경호텔 앞 거리에서(평양의 거리는 지금 모두 잔디가 깔려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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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전거리는 새로 생긴 거리인 것 같다. 도로도 넓고 주위 환경이 깨끗하게 잘 정돈돼 있다. 거니는 사람도, 자동차도 다른 곳에 비해 많다. 거리의 상점과 레스토랑도 모두 고급스럽다. 새로 지은 현대식 고층아파트들도 줄지어 늘어서 있다.


거리를 구경하며 한참 걷다 보니 목이 탄다. 평양의 여름도 어지간히 뜨겁고 후텁지근하다. 평양은 북쪽이니 서울보다 훨씬 시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원하기는커녕 서울보다 더 더운 것 같다. 하긴 거기가 거긴데 말이다. 나라가 오랫동안 갈라져 있다 보니 괜히 북한하면 저 멀리 북극 '동토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머리에 박혀있다. 시원한 냉커피라도 마실까 해서 찻집에 들어간다. 커피가 막 동났다며 한 30분만 기다릴 수 있겠냐고 묻는다. 냉커피 대신 소다를 마시기로 했다.

찻집의 메뉴판
 찻집의 메뉴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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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관했다는 말을 위로 삼아 찾아간 전승기념관은 대동강변을 따라 거대한 부지 위에 웅장하고 위엄있게 잘 꾸려져 있었다. 예전 기념관은 실내전시관으로만 돼 있었는데, 새로 지은 이 기념관은 실내와 실외로 나뉘어 전시품들이 배치돼 있다.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도 이곳에 옮겨다 놨다. 그렇지만 아무리 멋있게 지었다 해도, 전쟁은 그 어떤 것도 기념할 만한 게 없다. 또 기억하고 싶은 것도 없는 잔인하고도 야만적인 행위일 뿐이다.

전승기념관의 전시물의 대부분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했던 무기나 군사 물자들이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이 전쟁은 우리들의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한다. 북한을 여러 차례 여행하며 느낀 것은, 북한 주민들 역시 남한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두려워하며 평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 강토에서 또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우리 모두가 공멸하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남과 북은 겁이나 쉽사리 전쟁을 일으킬 수가 없다.


아무런 권한도 능력도 없으면서 북의 원점을 파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남한 관료의 말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북한의 말도 모두 다 알맹이 없는 수사나 호기에 불과할 뿐이고,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살기 바쁜 국민들을 인질 삼아 작금의 현실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할 뿐이다. 그들은 막상 전쟁에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걸 만한 의지가 없다. 더군다나 그럴 만할 배짱도 없다.

무엇보다도 남과 북은 민족을 파멸로 이끄는 전쟁을 절대로 하지 못한다. 문제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시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는 서글픈 사실이다.

민족이라는 거창한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자식을 사랑하는 원초적 본능이 가슴 한구석에 그리고 그들을 잘 키우려는 지혜가 머리 한구석에 남아있거든, 모두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전쟁이란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길 바란다.

한가로운 대동강가의 낚시꾼들

대동강의 낚시꾼들
 대동강의 낚시꾼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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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기념관을 끼고 있는 강 건너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낚시를 즐기고 있다. 낚시광인 남편이 이 풍경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우리는 그들 곁으로 다가간다. 조선식 긴 낚싯대에 찌를 달아놓은 사람도 있고, 릴이 달린 서양식 낚싯대를 들고 있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아예 고기를 잡아 담아두는 망조차 없다. 남편은 "대동강에 고기가 없나 보다"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한 낚시꾼 옆에 다가가 쭈그리고 앉는다. 함께 찌를 바라본다. 일전에 남편이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할 일 없는 사람이 낚시꾼 고기 잡는 거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 남편이 딱 그 꼴이다. 실제로 낚시를 하는 사람보다 더 날카로운 눈매로 찌를 노려보며 옆에서 훈수까지 둔다.

"아이구, 너무 일찍 챘습니다. 찌가 더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채야 하는 건데…."
"긴데 기게 일정치가 않습니다. 고기마다 조금씩 달라서리."
"여기서는 주로 뭐가 잡힙니까?"
"뭐…. 붕어, 잉어, 숭어 다 나옵니다."
"좀 잡으셨어요?"
"아침에 몇 마리 나오더니 지금은 잠잠합니다."

"어디 잡은 고기 좀 구경할 수 있을까요?"
"저는 고기 넣어두는 망을 갖고 다니질 않습니다."
"그럼 잡은 고기는 어떻게 하세요?"
"옆사람 주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하고 그럽니다. 잡은 고기를 가져가려면 자전거에 싣고 가야 하는데 기게 좀…. 그저 심심풀이로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요."

북한에서는 사람 얼굴을 보고 나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분은 대충 예순이 훨씬 넘은 은퇴 노인으로 보인다. 기계 수리공이었다는 이 할아버지는 낚싯대를 드리우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며 남편에게 얼굴을 돌려 순박한 미소를 짓는다. 사상과 이념,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분 없이 결국 인간은 세월을 낚으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뭐? 설경이를 볼 수 있다고?"

남편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낚시구경을 하고 있는데, 영길 동생이 내게 다가와 조용히 귓속말을 한다.

"누나, 호텔로 빨리 돌아가야 갔아요."
"뭐? 이번에도 또 누가 보자고 그래?"
"설경이네 집을 가도 좋다는 전화를 방금 받았아요. 어서 돌아가 준비하시라요."
"뭐라구? 9월에 일반 비자를 갖고 올 때나 가능할 거라고 그랬잖아."
"하여간 어서 돌아가자구요. 일단 호텔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시고 2시까지 로비로 내려오시라요."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더 흥분된다. 호텔로 돌아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해치운 뒤 방에 올라가 미국서 가져온 선물들을 싸기 시작했다. 설경이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뿔난 도깨비들이 사는 나라'에서 만난 첫 '도깨비'인 설경이. 그런 설경이의 집을 나 또한 '양도깨비'(양엄마)가 돼 찾아갈 수 있다니!

모란상점
 모란상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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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 내려가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30분이나 일찍 내려왔으니 그럴 수밖에. 20분쯤 지났을까. 설향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아냐, 지금 막 내려왔어. 근데 너 설경이 어디 사는지 아니?"
"모란봉 구역에 삽니다. 설경언니가 학교 선배인데 결혼한 뒤 집들이 할 때 갔었습니다."

"설향아, 고기하고 미역을 좀 사야겠는데 그 근처에 혹시 상점이 있니?"
"상점이야 오데나 다 있습니다. 시내에 큰 백화점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리로 가시겠습니까?"
"아니, 설경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 있는 상점으로 가자. 설경이도 그 상점에서 장을 볼거아냐."

곧 영길 동생이 내려온다. 우리는 함께 설경이네 집으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아파트 근처에 '모란상점'이라는 슈퍼마켓이 있다. 염장 미역과 소고기, 특히 설경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그리고 수박 등 과일을 산 뒤 아파트로 향한다.



차 속에서 설향이에게 물었다.

"설경이가 지금 우리 오는 거 알고 있지?"
"그라믄요. 기런데 배가 잔뜩 불러있어나니 힘들게 걸어 내려오지 말고 집안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만났다, 내 수양딸 설경이



설경이네 아파트는 5층 건물인데 평소 차 속에서 평양 시내를 지나치며 봐왔던 평범한 아파트다. 설향이 이야기로는 30~40년 된 아파트인데, 곧 재건축할 것이라 한다.

설경이네 앞에 서서. 문 위에 '모범가정'이라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
 설경이네 앞에 서서. 문 위에 '모범가정'이라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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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파트 건물에 비해 설경이집 현관문은 무척 고급스러웠다. 문 위 벽에는 '모범가정'이라는 액자가 붙어있다. 설향이가 초인종을 누르자 설경이가 문을 연다.

"설경아!"
"오마니!"

우리는 얼싸안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 마치 꿈만 같다. 내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남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공산당이라면 무조건 증오하고 살아온 내게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 한복판에 수양딸이 있고, 그의 집을 찾아와 지금 우리는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간의 정과 사랑보다 더 강력하고 위대한 것은 없다.

우리는 응접실에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설경이의 얼굴과 몸이 많이 부어 있어 걱정이다.

"몸은 좀 어때? 막달이라 많이 힘들지? 몸이 많이 부은 것 같은데…, 괜찮아?"
"일 없습니다. 이제 해산날이 다 돼 가니까 산원에서 이틀에 한 번씩 저희 집으로 옵니다. 아마도 다음 주부터는 매일 방문할지 싶습니다. 막달에는 산모들이 다니기 힘들어지다 보니 집에 의사가 직접 와 검진을 해줍니다."

"어머, 얘, 정말 잘 됐다. 그몸으로 여기 아파트 5층을 오르락내리락 하기 매우 힘들 텐데 말이야. 참, 부모님, 시부모님 모두 안녕하시지?"
"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두 분께서 오신다니까 과일을 사다 놓고 가셨습니다."

"곧 손주 보시게 돼서 무척 기뻐하시겠구나?"
"두 어머님들께서 교대로 매일 집에 들르셔서 집안일도 거들어주시고 제 몸 상태도 살피시면서 손주 보실 날만 손꼽아 기다리십니다."
"그러시겠지. 그리고 오늘 과일 사다 주신 것 감사하다고 꼭 인사 전해드려. 그나저나 애기는 딸이니, 아들이니?"
"모릅니다. 초음파 검사를 해볼까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어른들께서 제 몸을 보시고는 딸같다고들 하십니다."

"여하튼 축하한다. 너 결혼하면 애기부터 낳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리고 직장 그만두고 살림만 하고 싶다고. 얼마나 좋니, 얘."
"고맙습니다. 그런데 관람은 많이 하셨습니까?"
"얘, 누가 관광안내원 아니랄까봐 그거부터 물어보니? 성불사가 있는 정방산하고, 장수산에 갔다 왔어."

설경이에게 선물을 전하며... 안경 쓴 이가 설경이 남편 주혁남이다.
 설경이에게 선물을 전하며... 안경 쓴 이가 설경이 남편 주혁남이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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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설경이 남편이 집으로 들어온다. 설경이 남편 또한 조선국제려행사 안내원이다. 대동강 맥주와 탈피(마른 명태)를 한 보따리 사 들고 우리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조퇴까지 하고 왔단다. 맥주하고 탈피를 좋아하는 수양 아버지에 대해 설경이가 미리 이야기를 넣어놓은 게 분명하다. 설경이 남편은 사진보다 훨씬 더 얌전하고 잘 생겼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니 심성도 착하고 속도 깊다. 안심이 된다.

설경이의 아파트는 방이 두 개, 화장실 하나, 부엌과 발코니가 있다. 이곳에서는 두 칸짜리 아파트라고 부른다. 남한의 평수로 따지자면 17~18평 정도 되지 않나 싶다. 국가로부터 배정을 받았다고 한다. 아파트 내부는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잘 돼 있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깔끔하고도 아기자기한 설경이의 취향이 물씬 풍긴다. 누가 봐도 달콤한 신혼집이다.  설경이 말이, 아이가 학교 갈 나이가 되면 좀 더 큰 아파트로 옮겨 주지만 자기는 아이가 커가도 그냥 이 아파트에 살 예정이란다.

"이 아파트는 오래돼나서 조금 있으면 부수고 고층으로 다시 짓습니다. 이제는 아파트들을 현대식으로 크고 멋지게 짓습니다. 새로 짓는 아파트들은 주로 네 칸인데 현재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세대에 제일 먼저 배정해줍니다. 그러니 조금 기다리면 우리한테도 큰 새 아파트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아이 하나 정도면 이 아파트에서 충분히 키우지. 하나가 뭐야, 둘도 키우겠다. 재건축할 때까지 여기서 그냥 살어, 알았지? 나 같아서도 그럴 거야."

"남조선 출신이 북에서 수양가족을 맺고 집에도 가다니... 역사적인 날이다"

설경이네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설경이네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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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위에는 과일이 잔뜩 차려져 있다. 과일을 사다 주고 가신 설경이 부모님들의 정성을 봐서라도 먹어야 하는데 손이 가질 않는다. 2012년 4월, 해방산 호텔에서 목격한 이산가족 상봉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차려진 음식에는 그 누구 하나 손대는 이 없고 그저 천정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부모형제들의 모습이 말이다.

마음이 통한 사람들은 오랜 시간 바라만 봐도 좋기 마련. 굳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나저나 설경이의 앉아있는 모습이 많이 불편해 보인다. 부은 다리를 펴지도 않은 채 장시간을 앉아있으니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까 싶다. 그만 우리가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설경이 의사 선생님이 곧 집으로 왕진 올 것이라는 전화를 받는다. 어서 준비하라며 우리는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쉽기만한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설경이의 눈빛으로부터 가슴 가득 따스함을 담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영혼가득 애정을 전하며 다시 만날 그 날을 또다시 기약했다. 설경이의 남편은 우리를 배웅해준다며 따라 나섰다. 상봉의 기쁨이 어느새 그리움이 돼 설경이네 아파트 계단을 내려온다.

아파트 입구에서 설향이(왼쪽)과 설경이 남편(오른쪽)과 함께.
 아파트 입구에서 설향이(왼쪽)과 설경이 남편(오른쪽)과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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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 때는 흥분에 들떠 못 봤었는지, 아파트 입구를 뒤덮고 있는 포도넝쿨이 눈에 들어온다. 파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마실 나온 동네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전한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또 오겠습니다."

설경이 남편은 우리를 차까지 배웅했다.
 설경이 남편은 우리를 차까지 배웅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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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앞까지 배웅한 설경이 남편의 손을 잡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굳이 '설경이를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아도 자상한 양사위는 금세 내 마음을 읽는다.

"걱정마십시오. 설경이 귀하게 여기며 제가 정말 잘 하겠습니다. 이렇게 설경이가 보고 싶어 멀리서부터 찾아와주신 두 분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그 사랑, 제 마음에 담아 좋은 남편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반가움과 섭섭함을 마음에 담고 차에 올랐다. 서로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다시 만날 날을 기원한다. 차 안에서 영길 동생은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란다.

"누나, 전쟁이 끝나고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일 거야요. 남조선 출신의 관광객이 북에 와서 수양 가족 관계를 맺고, 그 집을 방문한다는 일이 내 기억으로는 없었으니까."

영길 동생이 저녁식사 전에 한 군데 더 관람을 한다고 했지만 오늘은 그만 호텔로 돌아가자고 했다. 지금은 그 어떤 곳도 가고 싶지 않다.

'설경아, 애기 잘 낳고 잘 키워. 그리고 잘 살고 있어. 너를 찾아 꼭 다시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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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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