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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철도공사의 문화를 보면 시장 마인드가 약하다. 그저 열차를 문제없이 운행하는 것에만 만족한다. (95쪽)

1993년, 철도 민영화 당시 영국 교통부 장관 존 맥그리거의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일어난 대형 열차 사고 현장에서 어느 영국 시민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열차를 문제없이 운행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았다. (95쪽)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평소 우울증세를 보이던 용의자의 방화로 인해 전철과 지하역사는 순식간에 독성 가득한 연기로 가득찼다. 192명이 희생당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세계 2대 지하 참사로 기록되었다.

대구 지하철은 자동 운전 방식에 따른 인력 효율화를 명분으로 열차의 맨 앞 운전실에만 기관사가 근무하는 1인 승무 체제여서 열차 뒷부분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했다. (98쪽)

애꿎은 시민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참사는 '인력 효율화'라는 이른바 '시장 마인드'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력 효율화'와 '시장 마인드'가 불러온 그 비극적인 대구 참사로부터 얼마만큼의 교훈을 얻었는가.

'민간의 효율성' 주장은 허구의 프레임 놀이

<철도의 눈물> 겉그림
 <철도의 눈물> 겉그림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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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도를 살리는 24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철도의 눈물>은 철도 산업과 철도 민영화 정책에 대한 최신 비평서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철도 산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1부), 철도 민영화의 쟁점인 '공공성 대 효율성'의 문제(2부), 효율성의 가면을 쓴 민영화의 속살(3부), 정부의 철도 민영화 정책(4부) 등의 내용을 다룬다.

철도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립과 갈등은 어디서 비롯될까. 저자는 이 책에서 '공기업은 비효율적이고 민간은 효율적'이라는 허구적인 프레임의 폐해를 시종일관 강조한다. 이유가 뭘까. 저자가 보기에 공기업도 얼마든지 효율성을 가질 수 있다. 부실기업에는 민간기업도 많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재고 떠넘기기, 공사대금 연체하기, 불법 비자금 챙기기 등 '갑질'하는 기업들은 모두 민간 기업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저자 박흥수는 민간이 하면 효율화가 높아져 비용이 낮아진다는 정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고속도로만 하더라도 킬로미터당 평균 건설 단가는 민간투자 사업이 약 220억 원으로 국가가 담당했을 때의 157억 원보다 40퍼센트 이상 높다. 민자 고속도로 이용료는 도로공사가 관할하는 고속도로보다 훨씬 높게 책정된다. 한 마디로 '민간의 효율성'이라는 주장은 허구의 프레임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

정부 주장대로라면 효율적인 민간은 망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IMF 경제 위기를 몰고 온 것이 누구인가? 문어발식 확장, 부당한 내부 거래, 무리한 인수 합병, 탈세와 위장 증여 등 온갖 불법과 탈법의 주범은 바로 민간 기업이 아닌가? 게다가 민자 사업 전반에서 드러난 민간 기업의 행태는 최소한의 도덕성까지 팽개쳐 버린 모습이다. (52쪽)

서울 지하철 9호선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저자는 한국교통연구원이 경쟁을 도입해 효율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지하철 9호선의 실상이 민영화의 참혹한 미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지하철 9호선의 대주주는 인천공항을 매수하려다 사회적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호주의 다국적기업 맥쿼리 사(맥쿼리는 최근 지하철 9호선에 투자한 자산을 전량 매각하며 지하철 9호선 사업에서 손을 뗐다)다. 운영사는 프랑스의 다국적기업 베올리아 사다. 2012년 서울시가 이들에게 보상해 준 금액은 32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애초에 예상 수익을 높게 잡음으로써 모라자는 부분을 시민 세금으로 충당해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2011년 말, 지하철 9호선 주식회사는 공기업이 운영하는 다른 지하철과 달리 경기도 버스와의 환승 할인을 거부했다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슬그머니 취소시킨 사례도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 의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도덕한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서민들에게 더 큰 제약을 주는 한국의 교통수단

저자는 철도와 같은 대중 교통 정책을 공공성이나 보편복지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가 주목하는 개념이 보편적 복지로서의 이동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느 수준에 다다라 있을까.

저자는 2012년 4월 4일자 <매일경제신문>의 '대한민국 출근 보고서'(이하 '출근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한국의 교통수단이 사회적 약자는 물론이고 서민들에게 더 큰 제약을 주는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출근 보고서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직장인과 서울의 부촌 중 하나인 강남구 도곡 2동의 직장인 출근길 비교 체험 결과를 소개한다. 이들의 도착지는 을지로다. 직선거리로 중계동에서는 12.7킬로미터, 도곡 2동에서는 10.6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약 2킬로미터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출근에 소요된 시간은 노원구 직장인이 1시간 15분, 도곡 2동 직장인이 40분 정도였다. 거리 차이는 별로 없지만 시간 차이가 거의 배나 난 것이다.

저자가 '교통수단 이용의 양극화'로 이름 붙인 이러한 현상은 서울 시내 전체에 걸쳐 심각하게 펼쳐지고 있다. 서울시 도시철도역 접근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5백 미터 반경을 조사한 결과 도시철도 소외 지역 면적 비율이 강북(80.94퍼센트), 금천구(79.67퍼센트)를 상위권으로 해서 관악구·도봉구·성북구·은평구 등 강북 지역의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 차지한다. 이들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버스도 시에서 제공하는 기본 교통 인프라의 혜택이 부족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 철도 정책의 '뇌관'은 수서발 케이티엑스(KTX) 민영화 방안이다. 기존 서울발 KTX와의 경쟁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수서발 KTX를 관리·운영하는 자회사를 만들겠다는 게 현재 정부의 논리다. 이런 정부의 논리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저자가 제시하는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모회사와 자회사가 특성과 기능에 맞게 역할을 나누어 갖는 게 아니라 주력 상품을 갖고 경쟁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2)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의 간선 철도망 가운데서도 대표 상품이랄 수 있는 고속철도를 분리해 경쟁시키지 않는다.
(3) 국토부는 코레일의 방만과 비효율을 주장하면서 수서발 KTX 요금을 10퍼센트 인하하겠다고 하지만, 철도 요금 10퍼센트를 아끼려고 부산에서 수서행 KTX를 타고 올라와 다시 한두 시간의 이동 시간을 들여 목적지에 가는 비상적인 행위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4) 수서발 KTX는 서울에서도 소득수준이 높은 강남과 분당의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혜택은 부유층이 받게 되는 이런 정책을 정부가 유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저자가 보기에 철도 산업의 경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철도의 역사를 보아도, 철도가 경쟁을 통해 양산했던 비효율의 문제가 오히려 국가독점체제로 바뀌면서 해결된 역사가 존재한다. 철도 산업 초창기의 민간 운영은 상호 호환성과 경쟁 구간에서의 수익성 하락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다. 이들 문제가 철도 국유화 정책이 자리잡고 국가 독점적 체제가 들어서고 나서야 극복되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피눈물 흘리는 건 민영화 받아들인 우리가 될 것

철도 민영화를 들이대는 정부와 보수 언론이 앵무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코레일 경영 부실 심각, 7년 연속 1조 원대 적자'가 그것. 인터넷과 뉴스를 통해 이런 헤드라인을 보게 되는 일반 시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코레일, 뜯어 고쳐야겠군.'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을까.

열차 안에서 산 제육볶음 도시락을 먹고, '7500원 하는 KTX 도시락, 북한보다도 저질'(147쪽)이니 '너네 회사 도시락은 사람 먹으라고 주는 거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기실 열차 도시락 판매는 코레일이 아니라 코레일 자회사(도시락 공급업체)가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철도 적자 문제는 어제 오늘 불거진 게 아니다. 1975년 <동아일보> 6월 30일자 기사는 철도가 연간 2백억이 넘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한다. 7년 뒤인 1982년 7월 24일자 같은 신문에도 1298억 원의 만성적인 적자 재정 문제가 대통령 보고거리였다며 기사로 실린다.

이런 수십 년간의 적자 구조를 정부 당국은 경영 부실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일관되게 관리된 철도가 경영 부실이라면 먼저 정부 정책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213쪽)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민적 합의를 통해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들은 이 말을 섣부른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미 연내 수서발 KTX 법인 설립 의지를 밝히면서 경쟁 체제 도입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철도 정책과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기' 행각이 도마에 올랐다. 한국교통연구원의 보고서인 '철도산업구조개혁 및 철도발전계획 수립 연구'에 따라 2017년까지 지주회사 전환, 수서발 KTX를 비롯한 신설노선·적자선 민영화 등을 분명히 하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토부와 철도공사가 동해남부선과 경전선·진해선에 대한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저자는 수서발 KTX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한국 철도 시스템을 민영화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민영화를 통해 인력을 줄인 후, 결코 생겨나지 않는 효율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철도에서는 최대한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 '최소 비용, 최대 효과'나 흔히 말하는 가격 대비 성능과 같은 것들을 철도에 대입하게 되면, 당장의 지출은 줄일 수 있겠지만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122쪽)

이 책의 제목은 '철도가 흘리는 눈물'이다. 하지만 철도만 눈물을 흘릴까. 언젠가 피눈물을 흘리는 것은 철도가 아니라 두 손 놓고 민영화를 받아들인 우리 모두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철도의 눈물> (박흥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 10. 17 | 247쪽 | 1만 3천 원)



철도의 눈물

박흥수 지음, 후마니타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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