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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7시가 가까운 시각,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로 들어가는 밤길은 깜깜했다. 마을회관 옆 정자를 무대로 삼고, 회관 마당을 객석으로 삼아 '밀양 송전탑 반대 123번째 촛불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는 주민들이 어울려 한참 춤에 빠져 있다. 무대 앞과 옆으로도 주민들이 꽉 찼다. 박수와 노래 소리 속에는 시골 할머니들의 싸움을 지원하기 위해 온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멈춰라 제발, 이제 멈춰라'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드림비트의 난타 공연, 창원민예총 가수 김산의 노래는 이미 놓쳤고, 배진아 가수의 노래에 이어 박영운의 노래와 연주가 이어졌다.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김유철 시인(창원민예총 대표)은 장중한 목소리로 '멈춰라 제발, 이젠 멈춰라'는 시를 낭송했다.

그대가 말하는 송전탑
그대가 말하는 핵발전소는 없어도 그만이지만
어미의 삶터
어미의 숲
어미의 산은
지구별이 빛나는 한 지켜야 하고 남겨야 하는 것

그대의 광기를 잠재워라
그대의 지랄을 멈춰라
어미의 텅 빈 젖을 물고서
그대 이제 돌아가라 원래의 자리로
그대 이제 돌아가라 원래의 자리로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들이 노래와 춤으로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들이 노래와 춤으로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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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지난 16일 농사일 돕기 위해 바드리마을로 트랙터를 몰고 가다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져 구속된 이 마을 주민 박아무개씨를 석방하라는 구호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박00를 석방하고 폭력경찰 물러가라!"

무대인 정자 아래에 놓인 손팻말들이 어둠 속에서 주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겠노!"
"보상이 필요 없다고 수천 번도 더 이야기했다. 한전은 귀가 먹었는가?"
"우리는 반드시 이겨서 아름다운 땅과 고향을 물려줄 것이다."

서울 대한문 앞에서 20일간 단식농성을 하고 내려온 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대표 조성제 신부가 마이크를 들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송전탑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더라고요. 외로운 싸움이 아니구나! 힘으로 눌러도 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밀양에 송전탑 세우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거, 가능하다는 거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식량과 놋그릇을 빼앗아갔는데, 지금은 생명하고 재산, 미래의 희망까지 뺏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노조 부지회장과 조합원들이 나왔다. 부지회장은 지난 해 싸움 때 지지 방문을 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앞으로 시간 내어 찾아와 농사일 열심히 돕겠습니다."

노동자들과 농사짓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시골의 차가운 밤 기운을 녹이고 있었다.

송루시아씨의 눈물

"서울로 출발하는 날부터 돌아오는 4박 5일 동안 우리가 움직이는 곳곳마다 경찰이 따라다녔어요."

4박 5일 동안 상경하여 송전탑 문제를 알리고 온 송루시아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울먹이며 4박 5일 상경 활동을 보고하는 주민 송루시아 씨.
 울먹이며 4박 5일 상경 활동을 보고하는 주민 송루시아 씨.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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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서 발언할 때마다 울었어요. 왜 우리가 이렇게 억울하게 당해야 하나? 눈물이 막 쏟아졌어요."

"대한문 앞 농성장을 찾아온 어떤 분이 제 손에 봉투를 쥐어 주셨어요. 성함을 알려 달라고 몇 번이나 물어도 대답을 안 하고, 그냥 부산에서 왔다고만 하신 분이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찾아와 연대하고 힘을 실어 주었어요.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밀양 송전탑 발언을 하면서 한전의 잘못을 지적했어요."

뒤늦게 달려온 창원민예총 진효근 연주자의 톱 연주가 이어졌다. '동백아가씨'를 연주하는데 아주 톱날이 내는 날카롭게 떨리는 묘한 음이 군중들을 휘어잡았다.

청도 할머니들의 연대사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온 할머니들이 함께 힘내서 싸우자고 응원하고 있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온 할머니들이 함께 힘내서 싸우자고 응원하고 있다.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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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345kV 송전탑에 맞서 싸우는 할머니들이 두 분이 무대 앞에 섰다.

"양파 심고 오느라 다리가 아파 죽겠심다."
"우리도 밀양하고 똑같이 한전에 당해온 일이라 다 알고 있습니다. 실망하지 마시고 힘  내서 싸워 봅시다."

하루 전, 이웃 마을인 동화전의 주민들 가운데 반 이상이 한전의 보상안에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인지, 촛불 문화제에 온 주민들은 상당히 격해 있었다.

"도장 찍을라마 뭐하로 싸웠노."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송전탑 반대대책위 김준한 신부가 마무리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너무나 잘 해 왔습니다. 약간 틈이 생겼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밀양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싸웠기에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겁니다. 몇 주 사이에 여론조사에서도 밀양 주민들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 배로 늘었습니다. 희망을 가집시다."

 송전탑 반대 촛불 문화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밴드 '스카웨이커스'의 스카 공연 장면.
 송전탑 반대 촛불 문화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밴드 '스카웨이커스'의 스카 공연 장면.
ⓒ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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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부산에서 달려온 '스카웨이커스' 밴드의 스카 공연에 주민들은 모두 일어서 몸을 흔들며 한밤의 추위를 녹였다. 겨울 추위가 밀려오는 산골, 마을 회관 마당에서 200여 명이 밤 9시가 넘도록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송전탑 없는 마을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꿈이 그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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