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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입니다. 10월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간 지역은 제주도입니다. [편집자말]
10월 17일 진행된 창비 팟캐스트 <라디오 책 다방> 공개방송. 김두식 교수와 소설가 황성은씨의 사회로 김선우 시인, 고재열 기자, 노종면 기자와 고권일 강정 해군기지반대 대책위원장이 강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십만대권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레게 뮤지션 태히언과 블루스 가수 김대중씨의 노래공연도 있었다.
 10월 17일 진행된 창비 팟캐스트 <라디오 책 다방> 공개방송. 김두식 교수와 소설가 황성은씨의 사회로 김선우 시인, 고재열 기자, 노종면 기자와 고권일 강정 해군기지반대 대책위원장이 강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십만대권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레게 뮤지션 태히언과 블루스 가수 김대중씨의 노래공연도 있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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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8일 강정마을에서는 '책마을'이라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추진한 두 가지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었다. 하나는 '담벼락 서가 프로젝트'. 중고 가구를 기증받아 리모델링해서 거리 서가로 만드는 작업이다. 아티스트들이 꾸민 냉장고 책장들을 강정마을 거리에 배치하였고, 사용하지 않는 창문 내부에는 책장을 짜 넣었다. 고재형 한샘인테리어 대표, 정혜경, 박재희, 한강, 한석경, 유지나 등의 여러 미술 작가들이 솜씨를 발휘했다.

이들 덕분에 강정마을의 중심 거리라 할 수 있는 '코사마트 사거리'는 비로소 '책마을'이라는 실감을 줄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거리 서가에서 책을 골라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독서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로서 고맙고 또 다행스럽다. 진행을 맡아준 박종훈 팀장의 얼굴에도 모처럼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 만연하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재미있는 거리 서가들이 얼굴을 내밀 기회를 엿보고 있다.

'십만대권 프로젝트'의 의미

십만대권 프로젝트란?
2013년 6월 1일부터 시작된 축제의 이름이에요. 한국의 시인, 소설가 등 420여 명의 작가들이 뜻을 모아 제주도 강정마을에 평화의 책마을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모아 보내는 시민들의 연대입니다. 100일간 육지에서 십만권의 책을 모아 유람선에 싣고 배 위에서 춤, 노래, 시와 소설 낭송, 각종 공연을 즐기며 밤새 항해해 제주도 강정마을로 찾아가는 축제였습니다. 해군기지 건설로 고통받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책을 통해 다시 예전처럼 평화를 되찾게 되길 염원하는 일종의 '북 무브먼트'였습니다.  - 김선우 시인
그리고 같은 날 마무리 된 다른 프로젝트는 바로 '십만대권 프로젝트'(김선우 시인이 쓴 박스 글 참고)이다. 6월부터 10월까지 장장 다섯 달에 걸쳐 책을 모으고, 배를 구하고, 컨테이너 도서관을 디자인하고, 강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논하며 실행으로 옮긴 십만대권 프로젝트. 십만대권 프로젝트는 다시 강정마을을 바라봐 달라고 설문대할망(제주를 만들고 지킨다는 거인 여성신)이 덩실덩실 추는 거대한 춤과 같았다.

그날 열린 '강정 책 잔치'는 '십만대권 팀'에서 모으고 가져온 책들을 받는 축제의 자리였다. 십만대권 프로젝트를 통해 바다를 건너온 책들을 자원봉사자들이 땀 흘리며 컨테이너 도서관과 창고에 채워 넣었고 '책맞이' 행사들이 이어졌다.

십만대권 프로젝트에 비하면 강정마을 안에서 치러진 강정 책 잔치는 소박했다. 두 가지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다. 먼저 '한 사람 또 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 십만대권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한 권씩 책을 들고 행진하여 거리 서가에 책을 꽂아 넣으며 직접 책마을을 만드는 일에 동참했다.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이 마을의 속살을 보며 걸어 다니게끔 유도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거리에 숨겨놓은 구슬을 찾아오면 음료와 책으로 바꿔주는 이벤트. 어떤 귀여운 꼬마 아이는 무려 30개에 달하는 구슬을 모아왔다. 그 꼬마 아이가 구슬을 독차지했기 때문인지 대체 구슬이 어디 있느냐고 푸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숨어있는 구슬들은 100개가 넘는다. 열심히 마을 거리를 '읽는'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발견되지 않을까. 강정마을에 들르면 마을 속으로 들어와 느릿느릿 마을의 오래된 길들을, 마을의 내력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강정마을의 길들이 어떻게 '책'과 관계를 맺게 될지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상상에 대한 보답으로 반짝이는 구슬 하나가 반길지 모른다. 조만간 구슬을 책갈피 등으로 바꿔주는 상시적 이벤트를 열 계획이다.

18일 오후 제주 강정마을 통물 앞마당에 도서관이 설치되고 있다.
 18일 오후 제주 강정마을 통물 앞마당에 도서관이 설치되고 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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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에서 그런 이벤트와 행사가 열리는 동안 십만대권 프로젝트 팀에서는 총 네 동의 컨테이너 도서관을 설치했다. 몇 시간 만에 뚝딱, 마을 두 곳에 도서관이 생긴 셈이다. 컨테이너를 지게차로 떠서 예정된 위치에 내려놓고 유리창을 끼운 것이 그날 작업의 전부로 보이겠지만 컨테이너 도서관을 만들고 설치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며 봉사한 관계자들의 노고를 생각해주시기를. 설치 전날까지도 좀 더 나은 디자인을 위해 숙고한 컨테이너 도서관 작업팀에 감사한다.

앞으로 두 주 동안은 현장에서 마무리 공사를 진행한다. 늦어도 11월 초에는 컨테이너 도서관의 시원한 유리창 안에 불이 들어와서 노을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컨테이너 도서관이 강정마을에 성공적으로 안착되었다 판단하려면 앞으로 수년간 습도와 바람 등 강정의 환경을 견뎌내어야 한다.

책마을이 견뎌야 하는 게 자연 환경 뿐일까. 강정마을의 정치적 환경도 견뎌내야 한다. 일각에서는 책마을이 기계적인 중립을 유지해주기를 강조한다. 그러나 책마을이 또 하나의 단단한 벽이 되어선 곤란하다. 융통성 있고 살아 숨 쉬는 책마을이 되어야 한다. 강정을 둘러싼 정치적 입장들을 호흡하듯 마시고 내쉬면서 마을의 허파 역할을 하길 바란다.

강정마을에 오시면 책 한 권 읽으세요

왜 '책마을친구들'에서 강정마을에 책마을을 만들기로 했고, 왜 수많은 사람이 강정마을에 책을 보내고 있으며, 왜 강정마을회에서 책을 받아들였는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서두르지 말고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팽팽하게 조율하면서 강정마을에 가장 어울리는 소리를 찾을 수 있기를, 오래도록 공명할 수 있기를.

십만대권 프로젝트와 강정 책 잔치가 책마을에 대한 기대와 마을의 새로운 비전을 확인하는 즐거운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누구보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러한 시간이었기를. 그러나 흥겨운 만큼 축제 뒤에 이어지는 마을의 침묵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그 침묵의 시간은 민주와 절차와 환경을 위해 노력하다가 구속된 주민과 활동가들을 기억하고 부서진 공동체를 위로하는 시간이리라.

18일 강정마을은 책으로 가득했다.
 18일 강정마을은 책으로 가득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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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바라보는 강정마을의 피부는 얇고 투명하다. 살짝만 스쳐도 쉽게 찢어지고 만다. 속살이 다 드러난다. 그런 날, 마을은 밤새 한숨과 분노와 무력감에 시달린다. 마을이 제 상처를 견디기 위해 잔뜩 웅크리고 있는 날에는 '책'이 가진 의미를 다시 곱씹어 본다. 책이 가진 힘에 대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그러니 다만, 비어있는 자리에 책을 꽂는 것이다. 비어있는 민주의 자리에 한 권, 비어있는 절차의 자리에 한 권, 비어있는 환경 보호의 자리에 한 권, 비어있는 주민과 사람의 자리에 또 한 권. 그런 '한 권'들이 모여 책마을을 이루고 있다. 강정책마을에 들러서 책 한 권을 뽑아 읽게 되거든 그 빈 자리가 말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주기를.

작가들이 제안하고 강정마을회가 받아든 '책마을'은 꽤 예쁘고 튼튼한 구체적인 옷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낸 옷감을 기워 만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옷이다. 한 권의 악수, 한 권의 비폭력, 한 권의 자비, 한 권의 사랑, 한 권의 응시, 한 권의 위로와 한 권의 당신들로 만드는 부드러운 옷이다. 이런 옷감으로 만든 '책마을'이 강정마을의 따뜻한 외투가 되기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꿈꾼다. 이번 십만대권 프로젝트를 통해 책마을이라는 얇은 외투 속에 오리털이 가득 충전된 셈이다.

강정책마을을 한 권의 책으로 생각하면 몇 페이지짜리 책이라 할 수 있을까? '담벼락 서가 프로젝트'와 '십만대권 프로젝트'가 마무리 된 시점에서 살펴보니 이제야 겨우 두 번째 페이지다. 갈 길이 멀다. 강정책마을이라는 책은 한 30년 동안 밤새도록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닐까? 어쩌면 세상에 책이 존재하는 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한참 강정, 오래도록 강정이다. 도저히 눈 뗄 수 없는 지속가능한 마을 이야기. 바로 그런 내용이 강정책마을이라는 제목의 '책'에 담기기를 기대한다. 그러니,

다시, 강정이다.
다시, 다시, 강정이다.
다시, 다시, 다시, 강정이다.
강정에는 이렇게 책이 한 권씩 늘고, 거리 서가가 늘 것이다. 책 창고와 도서관이 늘 것이다. 상식이 늘 것이다. 다시, 강정에 사람들이 찾을 것이다. 다시, 눈 뜰 것이다. 다시, 볼 것이다. 다시, 말할 것이다.

언론이 왜곡하고 외면하는 강정마을로 사람들이 찾아와 직접 바라보고 판단하는 계기가 되기를. 다시, 강정이다.

PS) 10월 18일 오후, '책과 마을 이야기'라는 토크 콘서트를 열어서 제주올레에 '강정책올레'를 제안하고 조언과 협력을 부탁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주최 측에서 행사 시간을 앞당긴 탓에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을 모시지 못했다. '강정 책 잔치'를 기획하고 진행한 나의 미숙함 탓이다. 다음에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서명숙 이사장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김재훈씨는 '강정책마을친구들' 사무국장입니다.



태그:#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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