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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연탄은행으로부터 연탄을 지원받는 한 연탄 수급자의 아궁이에서 활활타고 있는 연탄.
 춘천연탄은행으로부터 연탄을 지원받는 한 연탄 수급자의 아궁이에서 활활타고 있는 연탄.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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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는 듯싶더니 어느새 낙엽이 지고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날이 점점 더 추워진다. 아침저녁으로, 대기가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서서히, 올 겨울 난방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날이 추워질수록 점점 더 따스한 기운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이때 전국의 연탄은행들이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는 소식이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은 지난 8일 '2013 연탄은행 재개식'을 갖고, 이날부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원주 시내 '에너지 빈곤층'에 연탄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한겨울 추위처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연탄을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연탄은 때로 밥보다도 더 소중한 물건이다. 연탄은행이 문을 열면서, 전국에 다시 삶의 온기가 번지고 있다.

전국의 연탄은행 중 춘천연탄은행 역시, 지난 11일 문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춘천연탄은행은 올해 춘천시 내 1000여 가구에 30만 장의 연탄을 지원할 계획이다. 원주와 춘천처럼 10월 들어 다시 활동을 시작한 연탄은행들은 지금 거의 매일 연탄을 배달하느라 그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외에도 전국의 연탄은행들이 대부분 10월 중에 문을 열고, 다시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한겨울 추위에 떠는 노인들에게 밥보다도 더 소중한 '연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은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이 2002년 12월 원주시 원동에 연탄은행 1호점을 개설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연탄은행은 그 이후로 전국에 모두 30개가 개설됐다. 이 연탄은행들은 지금 '연탄은행전국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목표는 딱 하나, 연탄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연탄은행전국협의회는 올해 전국의 연탄은행을 통해 모두 2만 5000여 가구에 300만 장의 연탄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연탄은행은 원주에서 밥상공동체를 운영해온 허기복 목사가 만들기 시작했다. 허 목사는 2002년 초겨울, 원주시 원동의 한 낡은 주택가를 찾아 갔다가 할머니 한 분이 "당시 250원 하는 연탄 한 장이 없어 일 주일 동안 냉방에 추위에 떨며 지낸"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좀 더 알고 보니, 한겨울에 냉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당시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빈곤이 고착화되던 시기였다. 홀로 사는 가난한 노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허 목사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잠 한숨 못 자며, "한겨울 추위에 떠는 빈곤층을 이대로 두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연탄을 통해서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뒤 원주에서 제일 먼저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이 시작됐다.

현재 연탄은행이 개설돼 있는 지역은 서울, 동두천, 연천, 여주, 인천, 남양주(이상 서울 경기권), 원주, 춘천, 속초, 영월, 강릉, 양구, 주천, 횡성, 양양(이상 강원권), 금산, 공주, 서산, 대전, 보령, 부여, 청주, 남제천, 제천, 전주(이상 충천 전라권), 부산, 대구, 상주, 영주, 예천, 달성(이상 경상권) 등이다. 강원도에 연탄은행이 가장 많이 개설돼 있다. 강원도에 소득 수준이 낮고 연탄을 난방연료로 소비하는 가구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원주에서 개최된 '2013 연탄은행 재개식' 행사 장면.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연탄은행을 최초로 개설한 밥상공동체복지재단 대표 허기복 목사.
 지난 8일 원주에서 개최된 '2013 연탄은행 재개식' 행사 장면.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연탄은행을 최초로 개설한 밥상공동체복지재단 대표 허기복 목사.
ⓒ 연탄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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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금은 줄어들고, 연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연탄은행은 연탄은 물론 배달까지 모두 무료로 제공한다. 그렇게 하려면, 상당히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국의 연탄은행들이 모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계속 후원금이 줄어들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허기복 목사에 따르면, 전국에 연탄을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 가구는 약 20만이다. 그 중 에너지 빈곤층은 약 15만 가구다. 그 중 올해 연탄은행이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있는 가구는 3만 가구가 채 넘지 않는다.

지난해, 연탄은행으로부터 연탄을 지원받은 가구는 5만여 가구였다. 5만 가구도 전국의 에너지 빈곤층을 구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그나마 올해는 후원금이 부족해 연탄은행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가구 수를 더 줄여야 하는 형편이다. 연탄은행으로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후원금이 절실하다. 연탄은행은 정부 보조금 없이, 순수하게 일반시민과 기업체들에서 보내주는 후원금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의 연탄은행들이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가구에 더 많은 연탄을 배달할 수 있을까? 춘천에서 연탄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정해창 목사는 "올해도 경기가 좋지 않아 기업이나 단체에서 후원금을 많이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연탄을 지원해야 할 가구는 많은데, 재정 문제가 걸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호소했다. 정 목사에 따르면, 춘천 지역에서 홀로 사는 노인 등 에너지 빈곤층은 최소 2000가구다.

그러나 춘천연탄은행은 그중 1000여 가구밖에 연탄을 지원하지 못한다. 정 목사는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은 홀로 사는 노인 등 어려운 형편에 처한 어르신들의 생명을 지키는 운동으로, 어르신들이 한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생명운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시민들이 이 운동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했다. 설사 후원금이 부족하다 해도, 정 목사는 어떻게든 올해 정한 목표는 반드시 달성한다는 각오다.

원주 시내 한 달동네에서 연탄을 배달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원주 시내 한 달동네에서 연탄을 배달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 연탄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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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탄은 어머니 품안과도 같은 것"

연탄은행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홀로 사는 노인들과 장애인을 비롯해,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정에 속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연탄 없이는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동사무소나 면사무소에서 실시하는 심사를 거치는 등 비교적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그리고 일단 한 번 '연탄 수급자'로 선정되고 나면, 언제든 필요한 만큼 연탄을 가져가거나 배달 받을 수 있다.

연탄은행이 연탄을 지원하는 기간은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다. 이 기간 동안 연탄 수급자들만큼은 난방비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다. 연탄은 난방뿐만 아니라 음식을 조리하는 데도 사용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탄은 가장 중요한 생활필수품 중 하나다. 연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연탄 배달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연탄은행은 연탄 판매업자와 달리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연탄을 어김없이 배달한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혹독한 추위가 예상된다. 이런 때 누군가에게는 500원짜리 검은 연탄 한 장이 누렇게 빛나는 순금 한 덩어리보다 더 소중하게 쓰일 수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하는 가구들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강원도 같은 지역에서는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하는 가구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에 반해 연탄은행으로 입금되던 후원금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연탄은행은 단순히 연탄을 쌓아두고 나눠주는 은행이 아니다. 연탄은행은 그 누군가를 위해 사랑과 희망을 적립해 두었다가, 누군가 그 사랑과 희망을 원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 넉넉히 나눠주는 은행이다. 한겨울 냉기로 가득 찬 방에서 살을 에는 것 같은 추위에 떨어야 하는 그 누군가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이 없는 은행이다. 연탄은행에 쌓인 적립금은 바로 그 사회가 쌓아올린 사랑과 희망의 높이를 상징한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 대표이자 연탄은행전국협의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허기복 목사는 연탄을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했다. 그는 "어머니는 따뜻하다. 그리고 이 세상 누구도 어머니 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듯이 연탄도 마찬가지"라며, "연탄은 이 시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어머니의 품안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전국의 연탄은행에 어머니의 품과도 같이 넉넉하고 큰 사랑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탄은행을 도와 연탄을 배달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연탄은행을 도와 연탄을 배달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 연탄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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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연탄은행, #허기복, #정해창, #밥상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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