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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소마 오다카
 미나미소마 오다카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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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2차선 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렸다. 이른 아침부터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더니 그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동차 앞 유리에 매달린 와이퍼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갑자기 "삑삑" 소리가 차 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방사능측정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오쿠보 테츠오씨가 가져온 방사능측정기로 방사능 오염 수치가 올라갈 때마다 소리가 났다. 오쿠보씨는 아예 자동차 창문을 열고 팔을 내밀어 방사능을 측정했다. 삑삑 소리가 대기로 퍼져나갔다.

10월 6일, 일본 센다이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행 8명은 센다이 교회의 가와카미 목사와 이정임씨, 야오야기 준이치씨의 안내로 후쿠시마의 노다에 있는 이즈미 루터 교회에 들렀다가 미나미소마로 향했다. 미나미소마는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에서 20~30km 떨어져 있는 지역.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사능 피해를 입었다. 미나미소마 시의 면적은 398.50㎢, 인구는 7만여 명이며 이 가운데 6만여 명이 피난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누출된 방사능은 일정한 간격이나 농도로 확산되지 않았다. 바람을 타고 흩어진 방사능은 후쿠시마 원전과 가까운 곳보다 먼 곳이 더 많이 오염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마을이 이타테무라다.

이타테무라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40km 정도 떨어져 있는 지역으로 유기농업을 하면서 농가소득을 올린 대표적인 마을이었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은 이 마을을 피해 가지 않았다. 이곳으로 피난을 간 이들도 제법 많았는데 결국 이 마을도 피난 지시가 내려졌다. 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늦어져 주민들 대부분 방사능에 피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타테무라는 원전과 전혀 관련이 없는 마을이었다. 그런데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직격탄을 받은 사례다. 후쿠시마에 원전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이 지역 주민들은 평화롭게 농사를 지으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타테무라는 원전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미나미소마 오다카
 미나미소마 오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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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테무라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고리나 울진, 월성, 영광 지역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만드는 사례이기도 하다. 우리 마을은 원전에서 40km 혹은 100km 이상 떨어져 있으니 안전하다? 이타테무라 같은 피해를 입는 마을이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탈핵 원전 투어'를 하면서 만난 많은 일본인들은 다음에는 한국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그들이 점찍은 곳은 지난 2007년에 1차 수명연장에 들어간 고리 핵발전소다. 일본은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백만분의 1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남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여기가 이타테무라예요."

운전을 하던 이정임씨가 말했다. 방사능측정기에서는 계속해서 삑삑 소리가 났다. 좁은 2차선 도로가 양 옆에 마을을 두고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에는 정적이 흘렀다. 대부분의 집들이 비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도 6호선 도로를 따라 이어진 마을에 사람이 아예 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달리자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보였다. 점점 더 후쿠시마 원전과 가까워지고 있는데 방사능 수치가 떨어졌고, 사람들이 살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나중에 가와카미 목사의 설명으로 밝혀졌다.

미나미소마에 가까워지자 방사능 수치는 다시 올라갔다. 방사능측정기는 계속해서 울려댔지만, 나중에는 그 소리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방사능이 퍼진 지역이니 울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나미소마 오다카 모토마치를 둘러보고 있다.
 미나미소마 오다카 모토마치를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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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도착한 곳은 미나미소마 시 오다카 구의 모토마치 부근. 빈집들이 즐비한  거리는 유령도시 같았다. 잿빛으로 흐린 하늘에 비까지 내려서 더 그런 느낌이 강했다.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거리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자동차에서 내리자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졌다.

이 지역은 낮에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으나 밤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낮에 집에 들러 물건을 가져갈 수 있으나, 밤에 잠을 잘 수는 없다. 대부분의 상점은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빈집을 기웃거려 보았으나, 대부분의 집들은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2차선 도로(120번 도로)로 이따금 차량들이 지나갔으나,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마을에서 멀쩡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풀과 나무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 왔다. 공포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아닌가? 아무도 없을 텐데? 잘못 들었나? 음악소리가 나는 곳을 두리번거리면서 찾자 불이 환하게 켜진 건물 하나가 보였다. 일종의 마을회관(小高浮丹ふれあい広場, 오다카부단 만남의 광장) 같은 곳으로 이곳에 도쿄전력의 자회사에서 파견한 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오다카 만남의 광장
 오다카 만남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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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광장 건물 안에 걸려 있는 게시판. 2011년 3월 11일 당시 상태 그대로다.
 만남의 광장 건물 안에 걸려 있는 게시판. 2011년 3월 11일 당시 상태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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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건물인 회관 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한쪽 벽에 걸린 월간계획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나던 달에 멈춰져 있었다. 10일까지는 날짜에 빗금을 쳐서 일정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2011년 3월 11일부터 이 마을은 시간이 멈춘 것이다.

이 회관에 비치된 '미나미소마 관광 가이드' 책자는 미나미소마의 비극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푸른 아름다운 미나미소마는 더 이상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미나미소마의 푸르디 푸른 바다에서 관광객들이 다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올까? 관광객들이 미나미소마의 축제를 보러오거나 특산품 가게를 기웃거리게 될까?

이 지역은 대기보다 식물과 토양이 더 많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방사능측정기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방사능측정기는 땅에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빨라지는 것 같았다. 유령도시로 변한 미나미소마에서 울리는 방사능측정기의 소리는 방사능이, 핵발전소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일깨워주고 있었다.

방사능측정기의 수치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방사능측정기의 수치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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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고 도로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일행의 대부분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저 비에도 방사능이 섞였을 텐데.

가와카미 목사는 일행을 도로 옆에 있는 오다카 교회로 안내했다. 굳게 걸어 잠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묵은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방사능도 이렇게 냄새가 난다면 사람들은 냄새가 나자마자 피난을 서둘렀을 것이다. 실내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고 했다.

가와카미 목사는 "이곳에서 본 것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려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어로는 절대로 알리지 말아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와카미 목사는 우리가 들어갔던 교회에 대해서 일본어로도 일본에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대신 외국에는 널리 알려달라고 했다.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방사능 피해를 입어 마을 주민들이 떠나 집들과 상점뿐만 아니라 교회까지도 텅텅 비게 되었다. 교회의 실내에는 방사능을 머금은 곰팡내가 떠돌게 되었는데 일본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니 말이다. 알려진다면 교회 사람들이 너무나 가슴 아파할 것이다, 그 마음을 헤아려 달라, 후쿠시마의 복잡한 사정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가와카미 목사의 말이었다.

가운데 깨끗한 건물이 오다카 교회
 가운데 깨끗한 건물이 오다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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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에 다시 주민들이 돌아올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미나미소마 오다카로 오는 길에 이타테무라를 지났고, 하라마치도 지났다. 미나미소마의 중심지인 하라마치는 이타테무라보다 방사능 수치가 낮았는데 청소를 했기 때문이라는 게 가와카미 목사의 설명이었다. 청소를 하면 방사능 수치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청소를 하고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을 걷어내면 방사능 수치가 낮아질 수 있지만 방사능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방사능을 청소하는 사람들은 방사능 오염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오다카 지역을 둘러본 일행이 향한 곳은 미나미소마처럼 방사능이 오염된 지역을 떠난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가설주택단지였다. 가설주택은 미나미소마 시와 인접한 소마 시의 오노다이 지역에 있었다. 일행이 방문했던 오다카 지역에서 30km 남짓 떨어진 곳이었다. 이곳에 가설주택단지가 밀집되어 있다. 

일행이 방문한 가설주택은 제7 단지. 이곳에는 4가구나 6가구가 살 수 있는 건물 30동이 들어서 있다. 어둠에 잠긴 가설주택 단지는 고요했다. 건물 앞마다 전등이 켜져 주위를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소마 시의 오노다이에 있는 가설주택단지
 소마 시의 오노다이에 있는 가설주택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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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주택은 1000세대 규모이며, 같은 마을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이웃으로 살 수 있도록 주택을 배정했다고 한다. 제7 단지에는 미나미소마에서 온 사람들이 살고 있다. 1인당 배정된 면적은 다다미 4개 반. 3인 가족 이상인 경우는 다다미 15개 규모. 가설주택의 내부시설은 보지 못했다.

가설단지 입구에 있는 집회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여러 칸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한쪽에서는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가설주택에 사는 주민들에게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가설주택에 들어올 때는 2~3년 안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른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오염된 지역을 청소하고 있지만 원전이 언제 또 터질지 몰라 불안하다. 오염수 유출 문제도 많고..."

원전사고 피해지역 주민들은 한 달에 10만 엔 정도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전에는 원전에서 30km 지역 이내 주민들이 지원금을 받았지만 지금은 20km 이내로 바뀌었다고 한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갈수록 지원금 액수가 깎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소마 시 오노다이의 가설주택
 소마 시 오노다이의 가설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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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니다. 이들은 언제까지나 가설주택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 가설주택 거주기간은 원칙적으로 2년이다. 하지만 일부 지역은 자치단체장이 정부와 교섭을 해서 거주기간을 5년으로 늘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은 지역주민들은 불안해하면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가설주택에 사는 피난민들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 살던 지역에 따라 혹은 여건에 따라 지원금이 차등 지급됨에 따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내가 받은 지원금과 남이 받은 지원금 액수를 비교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노다이 가설주택 단지를 떠나는 일행의 표정은 어두웠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즐거운 방문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지지만, 피해 현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깊은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동안 돌아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지역 미나미소마 오다카와 가설주택단지 오노다이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원전에서 오염수가 여전히 배출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고통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태그:#후쿠시마?원전, #미나미소마, #오다카, #가설주택, #오노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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