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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가 로마 공화정을 폐지하고 제정이라는 1인 독재의 길로 나아갔음에도 그의 인간적 매력은 대단했다. 아마도 그것이 카이사르의 신화를 지난 2000년간 가능케 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그에겐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병사들이 언제나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이것은 당대의 경쟁 관계에 있었던 폼페이우스나 크라수스에게 없었던 덕성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지은이 플루타르코스 / 옮긴이 천병희, 2010) 겉그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지은이 플루타르코스 / 옮긴이 천병희, 2010) 겉그림.
ⓒ 도서출판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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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와 부하 병사들의 관계가 어땠는지 카이사르 사후 100년 후의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영웅전>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카이사르는 군사들에게 충성심을 심어주고 호감을 사는데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전투에서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군사들도 카이사르의 명예를 높여주기 위해서라면 저항할 수 없는 불패의 용사가 되었으며 어떤 위험이든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예컨대 아킬리우스는 맛실리아 앞바다의 해전에서 적선에 올라가 오른손이 적의 칼에 절단되었음에도 왼손으로 방패를 거머쥐고는 적들의 얼굴을 후려쳐 마침내 적군을 모두 패주케 함으로써 그 배를 차지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152-3쪽)

그러면 어떻게 부하들의 이런 충성심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계속 살펴보자.

"첫째, 그는 아낌없이 보수를 주고 포상을 함으로써 그가 전쟁에서 부를 축적하는 것은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감한 행위를 위한 공동 기금으로 잘 간수해두려는 것이며, 그의 몫은 그럴 가치가 있는 군사들에게 그것을 나눠주는 것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둘째, 그는 모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어떤 노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54쪽)

한 마디로 카이사르는 혼자 배불리 먹었던 것이 아니다. 전투 현장에서 혼자 안전한 곳을 찾지도 않았다. 솔선수범의 미덕을 보이면서 부하들로부터 진정한 충성을 얻어낸 것이다. 아무리 그를 미워한다고 해도 이런 미덕을 보는 순간 그에 대한 저주는 봄 눈 녹듯 사라진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로는 이런 예도 있다..

"한 번은 행군 중에 그와 그의 측근들이 비바람을 피해 가난한 농부의 오두막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사람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방이 하나밖에 없자 그는 측근들에게 명예에 관한 것들이라면 당연히 가장 강한 자에게 주어져야 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은 가장 약한 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나서 옵피우스더러 방에 누우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다른 군사들과 함께 문간에서 잤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56쪽)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카이사르 이야기를 하다 엉뚱한 곳으로 빗나간다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잠시 우리 이야기 좀 해야겠다. 내가 로마 문명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단지 로마의 옛날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과 함께 오늘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목적이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말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실천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의 지도자로서의 덕성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카이사르는 자기를 희생할 줄 알면서 백성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아는 공감의 미덕을 갖춘 지도자다. 이런 지도자가 백성과 함께하는 사회는 대개 그 사회에 다가오는 위난도 극복할 수 있고, 구성원 대부분이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지도자의 덕성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중요시 할 수밖에 없다.

부의 철저한 사회환원 발렌베리 가문, 한국의 재벌에게 묻다

오늘날 우리의 지도자들은 고락을 같이하는 이들에게 자기희생을 통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 재벌 회장의 영광은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건만 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으려는 회장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최근의 동양그룹의 경우를 보자. 그룹 전체가 파탄 일보 직전에 처해 수많은 고객과 노동자들의 미래가 암담한 상황에서 회장의 부인이자 그룹의 부회장은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구좌에서 거액의 현금을 인출하고 동양증권 개인금고에서 현금과 금괴로 의심되는 물건을 가방 몇 개에 담아갔단다. 이게 우리 재벌의 현주소다. 고객이 죽든지, 자신의 회사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죽든지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탐욕스런 재벌이다. 그 엄중한 순간에도 내가 먼저 살고 볼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몸소 실행했으니 말이다.

재벌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말은 해야겠다. 재벌의 사회적 책임이다. 외국 이야기를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지난 1년간 살아 본 스웨덴 이야기를 해보자.

오늘날 스웨덴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이면서도 국가 경쟁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것을 '스웨덴 패러독스'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복지와 경제성장은 함께 가기 어렵다는데 말이다. 나의 관찰로는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우리와 사뭇 다른 역할을 해온 스웨덴 재벌의 역할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라울 발렌베리 동상, 이 사람이 수만 명의 유대인을 사지에서 구해냈다. 유태인들은 그의 인도주의 정신에 가슴 속 깊은 존경을 보낸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라울 발렌베리 동상, 이 사람이 수만 명의 유대인을 사지에서 구해냈다. 유태인들은 그의 인도주의 정신에 가슴 속 깊은 존경을 보낸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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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베리 가문, 이것은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전설이다. 150여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스웨덴의 경제 전체를 휘어잡고 있는 불세출의 가문이다. 지금도 스위스 GDP의 30%, 스웨덴 주식시장의 시가 총액 40%에 해당하는 돈을 이 가문이 움직인다고 한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웬 이런 공룡재벌이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 바로 스웨덴 패러독스에 대한 답이다. 공룡재벌이 있으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국민의 평등에 기여하는 나라, 그것이 스웨덴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부의 철저한 사회 환원이다. 이를 위한 것이 공익법인 발렌베리 재단인데, 이것은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하는 모든 기업 이윤이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종착역이다. 이 재단은 공익기부를 통해 사회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협조하는 역할을 무려 100여년간 지속해 왔다. 매년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 기부하는 기부금 총액이 지난 5년간만 무려 8500억 원에 달한다. 그러니 스웨덴 과학기술 발전에 있어 이 재단의 역할은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발렌베리 가문을 유명케 한 것은 이 가문의 사회적 처신이다.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이 말은 웬만한 스웨덴인이라면 아는 이 가문의 좌우명이다. 따라서 이 가문이 기업소유와 관련해 사회적 룰을 위반하거나 탈세를 함으로써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었다.

한 가지 더, 이 가문에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인물이 있다. 바로 내가 있었던 연구소 이름(룬드대학 발렌베리 인권연구소)의 주인공 라울 발렌베리다. 이 사람은 2차대전 중 헝가리 외교관으로 있으면서 가스실로 끌려가는 수만 명의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한 인물이다.

그는 중립국인 스웨덴의 위치를 이용해 당시 생사의 기로에 선 유대인들을 가짜 여권과 비자를 다량으로 발급해 줌으로써 목숨을 구했다. 라울 발렌베리는 지금 서구 사회에서 인권과 평화의 대명사다. 그의 이름을 딴 연구재단, 연구소 등이 몇 개나 있는지 모른다.

이런 말은 그저 서구의 잘 사는 나라의 이야기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스웨덴 사람들도 한국인을 대단하게 여긴다. 삼성 스마트폰은 이미 스웨덴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한국은 이제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우리라고 이런 재벌을 갖지 못할 이유가 없다.

카이사르의 덕성, 한국의 정치 지도자에게 묻다

이왕 나온 김에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만 능하지 국민의 아픔이 무엇인지 그것을 헤아리는 공감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안을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순간 우리 국민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게 무엇인가. 나는 두 가지가 많은 국민들을 좌절 속으로 빠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언필칭 민주국가에서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우리 국민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반드시 이 문제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처벌되어야 하고 국정원은 뿌리부터 개혁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내일은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위 사진을 싣고 위와 같은 멘트를 날렸다 한다. 좋으시겠습니다, 시원해서. 그런데 들리지 않습니까, 전국의 강이 끙끙 신음하는 소리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위 사진을 싣고 위와 같은 멘트를 날렸다 한다. 좋으시겠습니다, 시원해서. 그런데 들리지 않습니까, 전국의 강이 끙끙 신음하는 소리가….
ⓒ 이명박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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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4대강이 썩어가면서 전국의 산하가 신음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보고 우리 국민들은 통곡한다. 이것을 하루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후대의 자손들에게 버림받을 선조가 될 것이다. 시간이 없다. 우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강을 복원해야 한다. 아직도 이명박씨는 4대강 사업의 죄과를 인정하지 않고 자전거 길을 돌면서 시원한 강바람을 즐기는 모양인데, 그 뻔뻔함이 수백만 년을 흐른 한반도의 아름다운 강을 망쳐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 시국을 해결하는 열쇠는 박근혜 대통령이 쥐고 있다. 그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호전될 수 있고, 깨진 정치도 복원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카이사르 이야기를 쓰면서 이렇게 호소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열린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열린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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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시여, 카이사르의 미덕을 보십시오.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십시오. 저는 당신(여기서 당신은 3인칭 존칭을 뜻함, 가끔 이 대명사가 대통령을 격하시키는 것으로 오인되는데 나는 지금 분명히 경칭으로 사용하고 있다)이 적어도 이 나라의 지도자로서 전임 대통령과 같은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당신의 청렴함과 조국 사랑함을 믿고자 합니다. 부디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는 미덕의 지도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지금 우리 국민이 당신에게 바라는 최고의 바람입니다."


태그:#세계문명기행, #카이사르 이야기, #카이사르, #4대강,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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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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