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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아게에는 아직도 쓰나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유리아게에는 아직도 쓰나미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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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 남쪽으로 가면 유리아게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인구는 3천명 남짓. 해안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바닷가 마을로 바다에 가까운 곳에 멋진 집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14m에 이르는 쓰나미가 이 마을을 덮쳤고, 1천여 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리고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5일 오후 비행기로 도착한 센다이 공항에서 곧장 찾아간 유리아게는 허허벌판처럼 보였다. 집이 사라지고 터만 남은 땅은 웃자란 풀들이 차지했다. 바다에서 먼 쪽에는 학교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바다와 가까운 곳에는 건물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느닷없이 닥친 거대한 쓰나미는 유리아게를 통째로 집어 삼켰다. 4층 이상으로 피난한 사람들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쓰나미에 그대로 휩쓸려갔다. 쓰나미 때문에 무너진 집의 잔해 등은 대부분 다 치워졌지만, 곳곳에 쓰나미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4일 저녁, 고베청년학생센터에서 열린 교류회를 마지막으로 '탈핵 아시아평화 일본서부지역 원전투어(이하 탈핵 원전투어)' 공식 일정은 끝났다. 5일 '탈핵 원전투어' 한국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국 참가자 가운데 기자를 포함한 4명은 2박3일 동안 후쿠시마 원전사고 지역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탈핵 원전투어’ 한국 참가자들. 왼쪽부터 전양규·장영진·김남규·오하라 츠타키·장시원·정현걸·양재승.
 ‘탈핵 원전투어’ 한국 참가자들. 왼쪽부터 전양규·장영진·김남규·오하라 츠타키·장시원·정현걸·양재승.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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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일행은 오사카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헤어졌다. 6명은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국제선 공항으로, 4명은 센다이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국내선 공항으로 갔기 때문이다. 김남규 대구 KYC 활동가는 배를 타고 돌아가기 위해 후쿠오카로 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지역 방문에는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 7명이 동행했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최승구 NNAA-J(탈핵 아시아 행동-일본) 사무국장. 오쿠보 테츠오씨(NNAA-J). 야기누마 유타카씨(NNAA-J). 가와세 해방출판사 편집자, 이대수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양재성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연대 대표, 이광우 삼척시의원.

센다이 공항으로 번역가인 아오야기 준이치씨와 동북 헬퍼의 이정임씨가 마중 나왔다. 두 사람은 일행을 곧장 유리아게로 안내했다. 아오야기씨와 이정임씨는 현재 센다이에서 거주하고 있다.

쓰나미가 몰려올 때, 아오야기씨는 부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만일 센다이에 있었다면 쓰나미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아오야기씨는 설명했다. 아오야기씨의 집 역시 쓰나미의 피해를 입었으며, 공항에 세워둔 차량은 쓰나미에 휩쓸려가 나중에 번호판만 돌아왔다고 한다. 당시 센다이 공항은 2층까지 물에 잠겼다.

"2~3주 동안 전기, 가스, 물 모두 끊겨... 돈도 소용 없었다"

 유리아게는 이렇게 집터만 남은 곳이 많다.
 유리아게는 이렇게 집터만 남은 곳이 많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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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씨는 전기 공급이 끊어져 쓰나미가 몰려온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증언했다. TV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기, 가스, 물 등 모든 라이프 라인이 차단된 상태에서 2~3주 동안 살았다. 전기가 끊겨 쓰나미가 코앞으로 몰려오는 것도 몰랐다. 센다이 시내 안까지도 물이 들어왔는데 그것을 몰랐다. 가스는 한 달 정도 공급이 중단됐던 것 같다."

가솔린을 살 수 없어서 운행이 중단된 차량들이 여기저기에 방치되어 있었으며, 돈이 있어도 물품을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는 것이 이정임씨의 설명이다.

"3월인데도 날씨가 어찌나 춥던지, 눈도 내렸다. 그렇게 추운 날 사람들이 슈퍼마켓이나 할인점 앞에서 물품을 사기 위해 서너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 문을 열면 거기서 3개 정도는 살 수 있었다. 돈이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물이 빠진 뒤에는 여기저기 물에 휩쓸려 사망한 사람들의 시체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으며, 생선들이 펄떡거리면서 튀어 올랐다고 한다. 이정임씨는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말했다.

이정임씨는 사고 이후 만들어진 '동북헬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동북헬프는 센다이 기독교연합에서 만든 기독교재단으로 쓰나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이정임씨는 쓰나미 피해와 관련한 언급은 동북헬프의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유리아게에서 누군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됐을 텐데 괜찮을까?
 유리아게에서 누군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됐을 텐데 괜찮을까?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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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게를 둘러보는 일행의 표정은 어두웠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려댈 것처럼 잿빛으로 잔뜩 흐려 있었다. 배가 정박된 곳에는 몇 사람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 바다가 오염되었을 텐데 생선을 잡으면 먹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이에 대해 이정임씨는 센다이 근해에서 잡힌 생선은 먼 바다에서 잡힌 생선에 비해 방사능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유리아게의 집터 곳곳에는 작은 노란 깃발들이 여럿 매달려 있었다.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깃발이라는 게 이정임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유리아게는 복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반이 낮아서 그대로 방치해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방사능 오염, 보이지 않으니 무감각해진다"

 쓰나미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쓰나미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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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노란 깃발은 다시 돌아겠다는 다짐을 나타낸다고 한다.
 작은 노란 깃발은 다시 돌아겠다는 다짐을 나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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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쓰나미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단을 설치해놓은 곳이 있었다. 올라가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집터만 남은 모습이 더 잘 보였다. 한쪽의 텅 빈 집터에서 어린아이 셋이 신나게 뛰어 놀고 있었다.

높은 건물이 없는 곳이라서 사망자가 많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가장 높은 건물은 학교로, 4층 이상으로 피난한 이들은 살아남았다고 한다. 14m의 높이로 달려든 쓰나미라면 2층 정도의 건물은 그대로 휩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센다이는 미야기현의 현청이 있는 도시로 인구는 100만 명 남짓. 미야기현은 후쿠시마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현 바로 옆에 있다. 2011년 3월 11일, 센다이시에서 동쪽으로 179km 떨어진 해역에서 진도 9.0의 지진이 발생했고, 그 때문에 엄청난 쓰나미가 이 지역으로 몰려왔던 것.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센다이는 방사능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였다.

일본에서 머무는 동안 '탈핵 원전투어' 한국참가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음식이었다. 일행이 가장 많이 먹은 것은 도시락이었는데, 내용물에 꼭 생선이 들어 있었다. 고등어를 포함한 생선류였는데 날생선이 들어 있을 때도 있었다. 한국 참가자들은 한국에서 후쿠시마현을 포함한 6개 현의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시락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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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일본 현지에서 음식을 먹는 게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할 때마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염려 혹은 우려를 털어놓곤 했다.

센다이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기 전에 방사능 오염 수치는 0.02~0.03마이크로시버트 정도였는데 사고 이후 수치가 높아졌다고 한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0.08~0.09 정도의 수치가 나올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실내에 설치한 방사능측정기가 울린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뒤 연간피폭량을 1밀리시버트에서 20밀리시버트로 상향 조정했다. 또한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피폭량은 100밀리시버트에서 250밀리시버트로 올렸다. 피폭량을 올리지 않으면 후쿠시마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피난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설치한 방사능측정기가 삐삐 소리를 내면 수치를 확인한다. 수치가 0.08이나 0.09로 올라가면 왜 올라갔지? 비가 내려서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심각하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살게 된다."

이정임씨의 설명이다.

 쓰나미 피해를 입은 집
 쓰나미 피해를 입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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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 고리야마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는 30만 명 정도가 사는데 그곳은 0.1~0.2의 수치가 나온다. 도망가야 하는 수치인데도 사람들이 그냥 산다. 너도 있어? 그럼 나도 있어도 되겠지, 하면서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마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가 유출되었다고 TV에서 나와도 나왔나 보다 하는 거다."

결국 이런 생각은 먹는 음식에도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나는 과일은 크고 예쁘면서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아무리 맛이 있어도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것이라면 일단은 망설여지지 않을까 궁금했다.

"먹는 것도 무감각해진다. 물은 미네랄워터를 사서 마시지만 먹음직스럽고 싼 후쿠시마 산 과일이 있으면 그냥 사서 먹는다. 사실은 야채나 수산물 등의 방사능 수치는 그리 높지 않다."

 이 4층 건물로 피신한 사람들은 대부분 생존했다고 한다.
 이 4층 건물로 피신한 사람들은 대부분 생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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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씨의 말에 따르면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식품을 팔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서 먹는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사람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수치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것. 일본정부는 음식물의 방사능 기준치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100베크렐로 제한했다. 하지만 사고가 난 뒤 500베크렐로 상향 조정했다가 200베크렐로 내렸고, 다시 100베크렐로 조정했다.

"방사능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에 방사능 생각을 하지만 늘 의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보니 '마비'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에게 방사능 오염 이야기를 하면 짜증을 낸다. 실상을 얘기하면 듣고 싶지 않은 거다. 저는 더 말을 못 한다. 외국인이니까. '너는 갈 데가 있지만 우리는 어떡하라는 거냐'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고, 쓰나미가 센다이를 덮친 이후 센다이는 오히려 경기가 좋아졌다. 무너지거나 피해를 입은 집들을 재건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었고, 우리 일행처럼 쓰나미 피해현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센다이는 쓰나미 피해를 입었는데도 집값이 올라갔고, 술집이나 음식점은 흥청거렸다고 한다. 그 경기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센다이는 여전히 복구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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