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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터 옆에 고즈넉한 분위기의 동묘가 있다.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터 옆에 고즈넉한 분위기의 동묘가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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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애용하는 서울 시민들에게 동묘는 전철역 이름인 동묘앞역과, '중장년층 아저씨들의 홍대앞'이라는 동묘 벼룩시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문난 벼룩시장 덕분에 주말이면 외국인들까지 찾는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동묘의 본 이름이 '보물 제142호인 동관왕묘(東關王廟)'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관왕'은 '관우'의 별칭이다. 그러니까 동쪽에 있는 관우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촉한(蜀漢)의 장수 관우(關羽, ?~219)의 소상(塑像)을 안치하고 그의 혼백을 모신 사당이다.

가끔 동묘 벼룩시장 구경을 갈 적마다 동묘는 누구의 무덤일까 생각해보긴 했지만 중국의 관우 장군이라니···. 호기심과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이자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그 유명한 관우 장군의 묘가 왜 중국이 아니라 서울 동쪽에 있는 걸까? 관운장은 우리 민족과 어떤 인연이 있기에, 수백 년간 관운장과 그의 묘를 경애하며 잘 받들어 주었던 것일까?

약소국의 비애가 서려있는 동묘

바깥의 소란스러움과 달리 조용한 분위기의 동묘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바깥의 소란스러움과 달리 조용한 분위기의 동묘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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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는 약소국가인 속국(屬國)의 비애가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동묘가 있는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관우 장군의 묘가 생긴 데는 사연이 있었다. 관우의 첫 번째 사당인 남관왕묘는 선조 31년(1598) 명나라 장군 진인(陳寅)이 울산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서울 남대문 밖에다 거처를 정하고 요양을 하면서 후원에 사당을 설치한 것으로 관왕묘의 기원이 되었다. 이것이 남관왕묘(南關王廟)이며, 줄여서 '남묘(南廟)'라고 불렀다. 남묘는 6·25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었다가 관성묘 유지재단에 의해 1956년에 재건되었다. 그 후 서울역전 도동지구 재개발로, 현 위치인 사당동 180-1번지에 옮겨 복원하였다.

두 번째 사당인 동관왕묘는 1596년 명나라 신종황제가 건립을 요구하는 조서와 함께 보내온 관왕묘 건립기금 4천금으로 1602년 봄에 준공한 것이다. 이 무렵 경북 성주(星州)와 안동(安東)에서도 관왕묘를 세웠는데 모두 명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물론 동원 인력은 고스란히 조선 조정, 정확히는 전쟁으로 고통 받는 조선의 백성들이 떠맡았다. 동묘를 짓기 시작한 것이 1600년 임진왜란 직후의 겨울,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난 후라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의 군대가 약소국에 주둔할 때 피해자는 약소국 백성이다.

저 왜국 평정하여 靖卉桑
우리 동쪽 되찾아주셨기에 重奠吾東
이제 우리가 평안해졌으니 維藩小康
그 높은 훈공 어찌 잊으리 勛敢忘
- 허균, <관우송시(關羽頌詩)>

외국인들이 단체로 답사 여행을 오기도 한다.
 외국인들이 단체로 답사 여행을 오기도 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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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사신으로부터 관왕묘 설치 명령을 받아 든 허균(許筠 1569~1618)은 선조(宣祖) 임금에게 허락을 얻어 동대문 밖 평지에 쌓아 만든 조산(造山) 근처에 건설을 추진하였다. 본시 이 조산은 성 밖 연못인 동지(東池) 뒤에 땅이 낮고 습하여 방비가 허약함을 보충하려한 봉우리였다. 허균은 동관왕묘 비명(碑銘)인 <관왕묘비>란 글에 공조(工曹)에게 지시하여 산에서 재목을 베어오고, 야철(冶鐵)하는 기구와 기와 굽는 기구 및 기술자를 모아 착수했다. 1600년 겨울에 시작해 1602년 봄에 완공했는데 백여 간에 이르는 건물내부의 소상(塑像)이며 그림 같은 시설 모두를 중국의 형식을 따르게 한 다음 크게 낙성식을 하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관우 장군을 모신 사당이었을까? 이역만리 조선 땅에 관우가 나타난 것은 그리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다. 적장의 목을 마치 주머니 속 구슬 꺼내듯 가져왔던 관우는 사후에 무신으로 중국인들의 추앙을 받았다. 북경이나 대만의 식당에 가보면 한쪽 벽면에 관우의 상이 놓여 있는 조그마한 제당을 종종 볼 수 있다.

왕의 조상들을 모시는 사당이 종묘(宗廟)이고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와 그의 제자 성현들을 모시는 사당을 문묘(文廟)라 하고 관우를 모신 사당을 관왕묘(關王廟)라 부를 정도로 같은 격으로 표현하고 있다. 살아서 장군에 머물렀던 관우가 죽어서는 엄청난 출세를 한 것이다. 이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전국의 무속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은 최영이나 임경업 같은 장군으로 관우 장군처럼 모두 비명횡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왕권강화를 위해 관우를 모신 조선의 왕들

관우상이 모셔져 있는 정전, 어른은 물론 아이도 궁금한가 보다.
 관우상이 모셔져 있는 정전, 어른은 물론 아이도 궁금한가 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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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내가 수정공을 사모함은 절의와 정충이 만고에 높아서이네. 광복에 마음 쓰다 몸이 먼저 갔기에 천추토록 열사들 가슴에 눈물 그득하네" - 숙종이 동묘와 남묘에 걸어 놓은 시문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어 있던 관왕묘는 숙종에 의해 새로운 관심을 받게 된다. 숙종 17년 2월, 선조 이래 처음으로 관왕묘인 동묘에 제사를 지낸 것이다. 숙종은 관우를 경모하며 직접 시문을 지어 관왕묘인 동묘와 남묘에 걸어둔다.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신하들의 충의를 강조하는 자리로 관왕묘를 선택한 것이다. 숙종 이후 영조 대에는 관왕묘 제사가 정식 국가의례로 편입되었고, 정조대에는 기존의 소사(小祀)에서 중사(中祀)로 격상된다. 왕권을 강화하고 신하들에게 충의를 강조하고자, 조선의 왕들은 관왕묘를 숭상한 것이다.

6개 지역 관왕묘 제례가 국가의 사전에 포함되어 중앙정부에서 제관을 차임하거나 각 지역의 지방관이 감사의 책임아래 제관으로 차출되어 치제하도록 규정되었다. 국가의 치제행위로서 관왕묘에 대한 국왕들의 관심은 지속됐다. 장수들이 모두 관왕의 충의용절을 본받아 호국의 임무를 다하는 것은 곧 국왕에 대한 충성과 직결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왕묘는 조선후기 신하들 충성을 이끌어낼 목적으로 활용됐다. 국가 위기가 고조됐던 고종 때는 북묘·서묘를 추가로 설치했다. 이어 민간에서도 관운장을 떠받드는 민간신앙이 번성해서 곳곳에 관운장을 모신 민간의 사당들이 들어서게 된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관우는 무신이자 재물의 신이 되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관우는 무신이자 재물의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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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 건물인 동묘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중국식 건물이다. 앞뒤가 긴 직사각형 평면을 가진 이 건물은 전실(前室)과 본실(本室)로 구분되며 지붕은 T자형이다. 본실에는 '현령소덕의열무안성제묘'(顯靈昭德義烈武安聖帝廟)의 현판이 걸려 있다. <동국여지비고>에 보면 남관왕묘에 영조가 친히 '현령소덕왕묘'(顯靈昭德王廟)라고 써서 현판을 달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삼문 뒤로 긴 수염을 휘날리는 관우상을 모신 정전이 나타난다. 정전 안에는 온통 금빛으로 번들거리는 관우상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관우는 무신이자 재물의 신이기도 하다. 조조가 하사한 금은보화에 손 하나 대지 않았던 대쪽 무사 관우가 재물의 신이라니. 여기에는 그럴듯한 설명이 있다. 평생 믿음을 지켰던 관우는 신뢰의 화신이고 이러한 신뢰한 말로 장사로 돈을 버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 하지만 아무리 봐도 관우도 좋고 돈도 좋은 중국인들의 억지로 지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명나라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지은 관왕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 사람들에게도 관우는 중요한 신이 되었다. 몇 달 전, 이곳에서 조선 최대의 운룡도가 발견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오늘날의 동묘는 명나라 군사나 조선 국왕이 아니라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었다. 벼룩시장터에 나들이 온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곳에 고즈넉한 섬처럼 자리하고 있다. 동묘엔 여(呂)씨 성을 가진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관우가 여몽의 손에 죽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지하철 6호선 동묘앞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동묘공원 정문이 나온다. 공원은 무료입장이다.
서울시 온라인 뉴스에도 송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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