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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지정예고를 위해 구성됐던 '무형문화재 분과위원회 소위원회'의 한 위원이 변영섭 문화재청장에게 심사과정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소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군선 위원이 지난 8월 14일 변영섭 청장에게 보낸 내용증명에서 신청자(후보자)들 간의 점수 편차, 기량평가기간 연장, 편파적인 조사단 구성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문화재청 신뢰에 의혹이 가중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 위원은 "전통공예인과 현대공예인, 채화칠기와 옻칠을 30여 년간 지켜온 공예인들의 의견을 나름대로 조사 분석한 결과"라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이라고 사료돼 내용을 정리해 보내드린다"라고 내용증명 발송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 위원은 지난 6월 26일 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지정예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소위원회에 참석한 바 있다. 당시 7명의 소위원 가운데 5명이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출신(일명 '홍림회')이었고, 그도 그 5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문제제기는 경청할 만하다.

"심사위원 답함 의혹과 공정성 시비가 충분하다"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이의식씨 채점표. 홍익대 사제지간인 조사자 A, B, D는 배점이 높은 '공정재현능력'과 '작품의 완성도' 항목에서 이의식씨에게 만점을 주었다.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이의식씨 채점표. 홍익대 사제지간인 조사자 A, B, D는 배점이 높은 '공정재현능력'과 '작품의 완성도' 항목에서 이의식씨에게 만점을 주었다.
ⓒ 윤관석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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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선 위원은 먼저 편향적인 조사단(심사위원) 구성을 문제삼았다. "심사위원들이 최고점, 최저점을 제외시키지 못했고, 심사위원 4인 중 3인이 같은 대학 사제지간이고 선후배관계였으며, (한 심사위원이) 신청자(이의식씨)와 같은 지역(전북) 출신으로 친분이 두터웠고, 심사위원 3인이 채화칠기 전문가가 아닌 목공예 전문가였다"라는 것이다.

김군선 위원은 "작품을 다 마친 사람과 완전하게 끝내지 못한 사람이 있었데도 2인의 심사위원이 (작업을 다) 마치지 못한 참가자(이의식씨)에게 20~30점 차이가 나도록 우수한 점수를 준 것은 심사위원의 담합 의혹과 공정성 시비가 충분히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24일 열린 무형문화재 분과위원회 회의에서 참석한 7명의 위원 가운데 4명도 이러한 점수 편차와 편파적인 조사단 구성 등을 이유로 이의식씨의 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지정예고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과위원회도 이러한 문제제기가 타당하다고 보고 지정예고 보류를 결정했다.

실제로 심사위원 4명 가운데 3명이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홍림회')출신의 사제지간이자 선후배 사이로 드러났다. 특히 임승택 위원은 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지정예고자인 이의식씨와 전북지역에서 산학협력활동을 해왔고, 이씨가 임 의원이 개인전을 도운 것으로 확인되면서 '제척사유'라는 지적이 크게 일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제척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김군선 위원은 "보통 심사의 기준은 같은 동문이 30%를 넘지 않도록 규정함이 좋지만 그렇지 못해 충분히 의심과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며 "(특히) 채화칠장에 관한 많은 심사위원들이 있었는데도 채화칠기 전문가라고 볼 수 없는 심사위원들을 선정한 것은 의심이 갈 만하다"라고 지적했다.

"신청자의 기량을 20분씩만 지켜보고 심사했다"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이의식씨의 미완성 작품(왼쪽)과 완성작품.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이의식씨의 미완성 작품(왼쪽)과 완성작품.
ⓒ 윤관석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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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군선 위원은 기량평가 과정이 매우 불공정하게 관리됐다고 주장했다. 먼저 특정 신청자(이의식씨) 공방에서 기량평가에 쓰일 팔각함 백골을 공급했다는 점이다. 그는 "보통 시험문제의 노출을 막기 위해 당일 공개함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라며 "이의식씨는 (자신의 공방에서 공급된 백골에다) 충분히 문양을 그려볼 수도 있고, 충분히 연습을 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심사위원이 신청자의 기량을 20분밖에 지켜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군선 위원은 "최근에 경험한 다른 분야에서는 2일간 기량심사를 진행했는데 심사위원이 점심식사만 제외하고 한 공간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심사했다"라며 "하지만 (채회칠장 인간문화재 기량심사의 경우) 6일째 되는 날 신청자의 기량을 20분씩만 지켜보고 심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군선 위원은 기량평가 기간을 늘린 점도 문제삼았다. 문화재청은 원래 계획돼 있었던 6일의 기량평가가 끝났음에도 10일을 더 추가해 이의식씨 등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 위원은 "(조사자는) 동일한 공예품에 동일한 문양과 동일한 시간을 줘 심사해야 하고, 신청자들도 제각기 문양과 시간을 계산해 6일 안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며 "이를 마치지 못하면 감점이 돼야 하는데 예고도 없이 다 마치지 못한 2인에게 10일 더 줘 작품을 완성하게 한 점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홍익대 사제지간인 심사위원 3명은 작품을 60% 정도밖에 완성하지 못한 이의식씨에게 배점이 높은 일부 기량평가 항목에서 만점을 줬다. 게다가 기량평가 기간에 유독 이씨에게만 출·퇴근을 허락한 점도 공정성 시비를 부추긴다.

"일본기법 사용 의혹 알고도 묵인했다"

지난 3월 문화재청에서 작성한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한 심사위원은 이의식씨가 일본기법을 구사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문화재청에서 작성한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한 심사위원은 이의식씨가 일본기법을 구사했다고 지적했다.
ⓒ 윤관석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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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김군선 위원은 이의식씨의 일본기법 사용 의혹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국내가 아닌 기법과 재료로 해외에서 수학했다면 이를 심사에서 고려했어야 한다"며 "향후에는 일본의 기법과 재료, 문양의 잔재는 중요문화재에서는 검토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이러한 내용(일본기법 사용 의혹)을 심사위원 중에 한 명이 사전에 검토해서 알고 있었는데도 이를 묵인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심사위원 4명 중 유일하게 옻칠전문가인 이종헌 위원이 조사보고서에 "이의식씨가 구사하는 기법은 일본의 고시회(다카마키에) 기법"이라고 기술한 대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 위원은 "소위원회 심사가 진행될 때 전문가와 함께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 점은 소위원으로서 매우 부족했다"고 자책하면서 "중요무형문화재를 심사하는 과정과 이를 관리·감독하는 행정관청의 문제점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의심과 의혹의 상태에서 심사를 진행했던 위원과 소위원도 각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위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이의식씨가) 실질적으로 중요무형문화재가 된다면 향후 관심 있는 국민과 공예인의 원성을 살 만하다"라며 "'심사가 종료됐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할 게 아니라 국가의 중요무형문화재를 충분하게 검토하고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왜 의결사항과 배치되는 의견을... 유감스럽다"

문화재청은 "이제와서 소위원회에서 의결한 사항과 배치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제와서 소위원회에서 의결한 사항과 배치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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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김 위원에게 보낸 답변서를 통해 "백골 제작은 각자 준비토록 안내했으나 조사대상자 사전협의시 신청인 3인이 협의해 이의식씨에게 (공급을) 위탁한 사항이었다"라며 "기량심사도 (20분이 아닌) 작품제작 과정을 3시간여 조사해 실기능력을 평가했다"고 해명했다.

문화재청은 "조사위원(심사위원) 2인이 준 점수편차는 실기능력 평가를 포함해 공방 조사결과 등 전체적인 조사결과를 합산한 종합평가 점수 차이고, 추가기간은 문화재위원회 심의 후 조사결과 상위 3인에게 추가 완성기간을 동등하게 부여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문화재청은 "귀하가 지적하신 내용에 따르면 귀하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같은 동문출신이라 채화칠장 소위원회에 참가하는 것이 부적절함에도 소위원회 의결에 참여했고, 이제 와서 소위원회에서 의결한 사항과 배치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태그:#채화칠장 인간문화재, #김군선, #변영섭,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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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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