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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10만인클럽 환경운동연합은 '흐르는 강물, 생명을 품다'라는 제목의 공동기획을 통해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구간을 샅샅이 훑으면서 7일부터 6박7일 동안 심층 취재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전문가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어민-농민-골재채취업자들을 만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이 기획은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와 4대강조사위원회가 후원했습니다. [편집자말]


꼬박 6일간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을 달려온 사람들에게 은은한 내성천을 닮은 용궁의 막걸리를 한 잔씩 대접하고 싶었다. 지난 12일 막걸리 몇 병을 비닐봉지에 담아들고 일행들과 만난 자리에는 존경하는 김정욱 서울대 명예교수님과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김영희 4대강 국민소송단 대표변호사님이 와 계셨다. 애써 고생하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찾으신 것이다.

내성천은 '두바퀴 현장리포트 오마이리버팀' 낙동강 일정의 마지막 코스다. 지리적으로 마지막 자리이기도 하지만, 4대강사업의 마지막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내성천이기도 하다.

내가 내성천에서 해야 할 일은 우선 사람들과 즐겁게 이 '강'에서 노는 것이다. 오마이리버팀은 지금 크게 고통 받는 내성천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지기 위해 왔겠지만, 아마도 내성천이 오마이리버팀을 위로할 것이다. 또한 내성천에서 어린 아이처럼 노는 것이 곧 내성천을 위로하는 것일 테니 사람과 강이 위로하고 위로받는다고 봐야 하지 않을가?

4대강 사업으로 이전 모습 잃어버린 낙동강

2013년 10월 내성천 예천 선몽대 일원.
 2013년 10월 내성천 예천 선몽대 일원.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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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 공사가 진행된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면서 우리가 본 것은 운치 있는 여울과 그 여울에 서서 고기를 낚던 백로의 모습이 아니다. 푸르스름한 물로 가득 차있는 강, 그리고 그 강을 가로막고 우뚝 솟아 있는 보라고 말해달라는 초대형 구조물과 백사장, 그리고 습지 대신에 들어선 소위 하천생태공원이라는 정체 모를 풀밭과 찾는 사람 없는 시설물들, 그런 것들의 지루한 반복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길을 6일간 달려온 오마이리버팀이 아침에 회룡포에서 10여km 상류에 있는 선몽대 일원을 찾았다. 비가 온지 며칠 되지 않은 백사장을 걷다보니 작은 물줄기나 웅덩이가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고인 것처럼 보여도 지층수가 모래 표면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물은 수정처럼 맑았다. 그 안을 조심조심 밟는 어른들의 표정은 아이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사실 강이 어떤지는 강을 만나는 아이들의 표정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2011년 6월 내성천 예천 개포.
 2011년 6월 내성천 예천 개포.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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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연의 강을 접하면 반갑게 환호하며 강으로 뛰어든다. 누가 일러준 사람도 없는데 누워서 하늘을 보며 강물 흐름 따라 떠다닌다거나, 모래를 웅덩이가 되도록 파기도 하고,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서 웅덩이에 넣어두기도 한다. 두꺼비 집을 만들기도 하고 재첩이나 자라새끼 등을 발견하곤 신기해하기도 한다.

최근 내린 비로 제법 강물이 올라온 까닭에 한 시간 정도 하류로 내려가다가 강을 한 번 건너는 것으로 짧게 걷기를 마무리하자 <오마이뉴스> 기자 몇 명은 아쉬운 듯 강으로 다시 뛰어들어 아이들처럼 뒹군다. 고된 6일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렸을까? 청다리도요라는 철새 세 마리가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선몽대 백사장을 걸었다 날았다 한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국가명승지

2011년 12월 내성천 선몽대 일원.
 2011년 12월 내성천 선몽대 일원.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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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몽대 일원과 회룡포는 국가명승지이다. 강 하류에 국가명승지를 둘이나 지닌 강은 내가 알기엔 내성천밖에 없다. 그렇지만 많이 알려졌듯이 낙동강 준설과 영주댐 공사로 모래수급의 균형이 깨지면서 시간이 갈수록 강이 거칠어지고 있다. 백사장을 바라보는 회룡포나 무섬마을 주민들의 근심은 깊다. 화창한 날 눈이 부셔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의 흰 백사장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뿐더러 거친 돌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2013년 10월 예천 용궁, 회룡포지구 하천환경정비시설설치 결사반대 현수막.
 2013년 10월 예천 용궁, 회룡포지구 하천환경정비시설설치 결사반대 현수막.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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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영주댐이 하류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던 국토부는 회룡포와 선몽대를 포함하는 국가하천 22.6km 구간에 대한 하천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2년 전 추진하다가 대구지방환경청의 반대로 시행하지 못한 사업인데 또 이 카드를 내밀었다.

4대강사업과 판박이로 닮은 자전거도로와 이 도로를 잇는 몇 개의 다리, 캠핑장, 산책로 및 다목적광장, 하천생태학습장 따위로 국가명승지인 회룡포와 선몽대의 품격을 더 높인다고 여기는 것일까?

2011년 5월 무섬마을 전경.
 2011년 5월 무섬마을 전경.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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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은 원래 연꽃이 물 위에 뜬 형상이라는 연화부수의 자리에 마을이 서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오마이리버팀과 함께 만난 한 노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2010년 무섬을 찾은 여러 사람들이 영주댐 공사로 인한 모래의 유실을 걱정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하회마을 백사장보다 격이 높다고 평가받던 백사장은 거친 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탄을 거듭하지만 한탄만으로 사라진 모래가 돌아올 수는 없다.

2011년 8월 영주댐 수몰예정지 장마 후의 금강마을 앞 내성천.
 2011년 8월 영주댐 수몰예정지 장마 후의 금강마을 앞 내성천.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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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던 마을, 주민의 입에선 '한숨만'

영주댐 완공 후 담수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잠기게 될 금강마을로 들어가는 다리에서 만난 주민도 한숨만 쉰다. 강을 내려다보니 과거 넓은 백사장 자리는 거의 대부분 풀들이 차지했다. 육화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 위 15km 구간에서 계절이 바뀌는 동안 광범위하게 벌어진 대규모 준설이 어떤 영향을 준 것일까? 댐 아래의 백사장들은 또 어떻게 될까?

강안의 모래는 평상시에도 상류에서 하류로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강변의 모래는 크고 작은 범람으로 강물이 세게 밀려들어오면 그때 하류로 이동하고, 그 자리엔 상류로부터 내려온 새 모래가 자리를 잡는다. 물론 이때 모래 위에 자라는 풀들도 같이 쓸려가서 백사장은 눈이 부시도록 하얀 백사장의 모습을 다시 유지하는 것이다. 물속의 물고기 등도 종족 번식을 위해서 이런 변화의 순간을 기다린다. 수 만년간 강에서 되풀이되는 과정이다.

한반도 모래강의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건강한 강 생태계의 유지를 위해서 강물이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는 이 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자연현상인 것이다. 비단 내성천만의 문제는 아니다. 댐 수몰예정지 운포구곡 뿐 아니라 나머지 절반이 자리한 댐 아래 굽이굽이 아름답던 강변도 이미 심하게 거칠어졌다. 모래강과 대규모 댐은 상극 중의 상극인 것이다.

댐에서 수 킬로미터 아래 내성천, 2011년 6월.
 댐에서 수 킬로미터 아래 내성천, 2011년 6월.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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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사업 추진과정을 살피다보면 1999년 송리원댐 반대운동 역사가 나온다. 1999년 경북 북부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 3명의 반복된 송리원댐 반대성명, 경북 북부권 행정협의회 11개 지역 시장 군수의 댐백지화 결의문 채택, 영주시의회 등의 국무총리실 방문 댐백지화 촉구 등. 물론 지역주민들의 격렬한 반대가 그 밑바탕에 있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결국 2000년 당시 기획예산처가 송리원댐 타당성조사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백지화된 줄 알았던 댐이 4대강사업과 함께 2009년 12월 전광석화처럼 다시 시작되었는데 그 목적이 기가 막히다.

하천환경개선 용수 공급이 이 다목적댐이 내세운 거의 유일한 목적이다. 그러면서 내성천이라는 지구상에 유례없는 아름다운 모래강 하나를 철저히 파괴하는 공사가 지난 몇 년간 조용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한국수자원공사 등의 당사자 외에 이 댐을 옹호하는 누군가를 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 댐 사업은 묵묵히 완공을 향해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내성천을 찾아보면 어떨까

2009년 8월, 상주 중동교 4대강사업 전 낙동강, 지금은 잃어버린 시간이다.
 2009년 8월, 상주 중동교 4대강사업 전 낙동강, 지금은 잃어버린 시간이다.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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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 후 학교 근처의 낙동강을 그리라 했더니 구조물과 직선을 강조해 그렸다는 아이들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걱정해야 할까? 이 아름다운 강마저 잃어버리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강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낙동강의 모습은 또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2012년 6월 영주댐 수몰예정지 평은.
 2012년 6월 영주댐 수몰예정지 평은.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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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뿐 아니라 한국의 여러 강을 위해서도 한 번쯤 내성천을 찾아 한나절 시간을 보내보면 어떨까?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것도 좋겠다. 아니 아이들을 데리고 한 번 가보면 더 좋겠다. 그리고 고전이 전해주는 글귀처럼  "날로 계산해서는 부족하지만, 해로 계산하면 남는" 그런 셈법을 좀 해보면 어떨까?

여태껏 영주댐으로 들어간 돈이 얼마였든지 간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내성천의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리들이 그동안 넘어서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을 넘는 것이 생각보다 쉬워지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내성천을 황폐화시키는 영주댐 공사는 일단 중단하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진작가입니다.



태그:#4대강 사업, #내성천, #영주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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