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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이의식씨의 미완성 작품(왼쪽)과 완성작품.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이의식씨의 미완성 작품(왼쪽)과 완성작품.
ⓒ 윤관석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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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화칠장 중요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에 참여한 한 심사위원이 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지정예고자가 일본기법을 사용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가 윤관석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문화재청의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제305호)에 따르면, 조사자(심사위원) C는 지난 7월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이의식씨의 전승능력을 평가하면서 "그가 구사하는 기법은 일본의 고시회(高蒔繪)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일본의 고시회'란 '다카마키에 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달걀흰자, 호분(굴 등 조개껍질로 만든 가루), 숯가루 등을 칠과 섞어 칠기 표면을 두텁고 높게 만드는 기법 가운데 하나다. 12세기 말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에 나타나 14~16세기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에 완성된 일본의 칠공예기법이다.

윤관석 의원은 "삼국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우리나라 전통공예 예술인 채화칠장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전통기법인 묘칠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일본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교칠기법, 소위 다카마키에 기법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까마귀를 까치로 속이는 것이다"라며 "이는 민족의 혼을 뒤흔드는 것일 뿐 이나라, 국격을 땅에 떨어트리는 국민 자존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8월과 9월 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지정의 공정성 시비 논란을 집중 보도하면서 이의식씨의 일본기법 사용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관련기사 : 일본 기법 쓴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됐다고? / "일본냄새 난다"면서도 인간문화재로 지정?).

"붓의 사용과 운필의 능력에 문제가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17일부터 18일까지 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신청자들(4명)을 대상으로 공방 현장조사를 벌인 데 이어 올 1월 14일부터 19일까지 기량평가(실기평가)를 실시했다. 서면조사와 공방조사, 기량평가 등을 마치고 지난 3월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이하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 네 명의 심사위원들은 전승가치(45%), 전승능력(35%), 전승환경(20%) 등 세 가지 항목에서 신청자들을 평가했다.

특히 옷칠전문가인 조사자 C가 <조사보고서>에서 이의식씨의 전승능력을 평가한 대목이 가장 눈길을 끈다. 전승능력에는 재료의 적합성(7.28점), 공정재현능력(7.28점), 작품의 완성도(5.04점) 등 항목이 포함돼 있다. 이는 지난 1월 6일간 진행된 기량평가와 직결되는 항목들이다.

조사자 C는 공정재현능력 항목에서 "현장에서의 상황이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과거 연수원에서 강사를 역임하여 시연하는 작업실의 조건을 다른 신청자들보다 가장 잘 인지하고 있는 이점이 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과 시험이라는 불편함 때문에 공정재현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기량평가가 진행된 장소는 이의식씨가 현재 강사를 지내고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충남 부여 소재)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씨는 기량평가가 진행된 작업실에 가장 익숙한 신청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6일간의 기량평가에서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점을 조사자 C가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이어 조사자 C는 "전수소 공방에서 확인한 완성된 작품들처럼 작업이 정교하지 못하고 붓질의 능력이나 구선의 능력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공방조사시 확인한 작품들과 올 1월 기량평가시 작업한 작품의 수준 차이가 컸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조사자 C는 "채칠과 사용과 색상의 배치는 공방에서의 작풍과 다르지 않으나, 채화칠장으로서 붓의 사용과 운필의 능력은 가장 중요하며 무엇보다도 우선이 되어야 할 조건이다"라며 "이것에 대한 결핍은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 '결핍의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가장 큰 예로 (구절판) 8각함의 몸체 측면의 긴 당초선은 현저하게 부족한 구선 능력을 드러낸다. 특히 선이 끊어졌다 이어지는 단속(斷續, 붓에 채칠이 적게 묻어 있어 생기는 과실)이라든지 선의 시작이나 멈춘 부분에 칠이 몰려 있는 음침(陰侵, 붓에 채칠이 많이 묻어 있어 생기는 과실)현상이 있고, 뚜껑의 화면에서 보이는 채칠의 희석농도를 맞추지 못해 도막의 고저(高低, 적당한 묽기를 놓쳐 버린 과실)가 생겨 일정하지 않은 등의 실수는 채화칠장으로서는 있을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지난 3월 문화재청에서 작성한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한 심사위원은 이의식씨가 일본기법을 구사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문화재청에서 작성한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한 심사위원은 이의식씨가 일본기법을 구사했다고 지적했다.
ⓒ 윤관석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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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구사하는 기법은 일본의 고시회로 보인다"

또한 조사자 C는 "특히 그가 구사하는 채화의 방법은 일본의 고시회와 중국 문헌에 보이는 채칠 도막의 살을 두껍게 올리는 퇴기(堆起)의 방법으로 보이는데, 고저(高低)의 과실은 그가 구사하는 기법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그의 채화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 알고 있는 것과 재현하는 것에 일치하지 않은 측면이 있으며, 그가 구사하는 작업이 한국에서는 흔히 보이지 않은 기법이라 하여 특별할 것은 없다. 이미 중국과 일본에서 응용되고 있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이의식씨가 한국의 전통기법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 응용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사자 C는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배점이 가장 높은 공정재현능력(7.28점) 항목에서 이씨에게 2.18점을 주었다. 이는 조사자 A, B, D가 이씨에게 만점을 준 것과 크게 대비된다. 또한 조사자 A, B, D가 작품의 완성도(5.04점) 항목에서 이씨에게 만점을 준 데 반해, 조사자 C는 1.51점을 주는 데 그쳤다.

조사자 C는 옷칠 회화전을 여러 차례 열었고, 한중일에서 옻칠과 관련한 논문들도 발표해온 옷칠전문가이고, 조사자 A, B, D는 홍익대 사제지간으로 목공예 전문가들이다.

특히 이의식씨의 '경력'이 이러한 일본기법 사용 의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씨는 1980년대 중반 스승으로부터 독립해 차린 '행촌칠예공방'이 어려워지지자 일본으로 눈을 돌렸고, 일본 백화점과 칠기상 등을 돌아다니며 판매에 발벗고 나섰다. 게다가 지난 1985년부터 1990년까지 5년간 일본 도쿄에 위치한 '도모다 칠예학원'에 머물면서 일본의 전통칠공예기법을 배웠다.

'천년전주명품사업단'의 홈페이지는 "이 명인은 도모다 칠예학원뿐 아니라 (일본의) 각 지방의 기법들을 하나하나 배우기 위해 가나자와, 시즈오카를 오가며 일본의 칠기법을 배웠다"고 이씨를 소개하고 있다(옻칠장 이의식). 일본의 지방들까지 돌아다니며 일본 칠공예기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력 때문인지 이씨의 작품들은 일본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윤 의원에게 낸 답변서에서 "우선 옻칠은 한중일 3국에서 수천년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된 사항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한 뒤 "다카마키에 기법은 일본에서 자주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한의 낙랑유적에서도 동일한 기법의 중국제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며 "이의식씨가 계란 흰자를 옻에 사용한 것은 다카마키에 기법과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
 윤관석 민주당 의원.
ⓒ 윤관석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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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분과위 회의에서도 "일본 것과 유사하다" 목소리

한편 지난 5월 24일 열린 무형문화재분과위원회에서도 일본기법문제와 관련한 목소리가 나왔다. <오마이뉴스>에서 입수한 회의록에 따르면, H위원은 "제가 (이의식씨 작품을) 딱 봤을 때 일본적인 느낌이 조금 들었다"라며 "선생님(P위원)이 말씀하기 전에 저는 벌써 '아 이거 일본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H위원은 "응용하는 것도 좋지만 무형문화재에서는 역사성, 원형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 고유한 정체성을 굉장히 강조해야 한다"라며 "(그런 관점에서) 저는 이것을 딱 보는 순간 일본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고 거듭 우회적으로 일본기법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홍익대출신으로 조사자로 참여했던 P위원은 "나전칠기 문양에는 저런 게 많은데 제가 보기에는 (이의식씨 작품은) 나전칠기를 칠로 바꾼 것이다"라며 "화려하게 하다 보니까 조금 일본 (느낌이 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독특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날 회의에서 이의식씨를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하지만 7명의 위원 가운데 4명이 점수편차와 특정 학맥의 조사단 구성 등을 이유로 인간문화재 지정예고 보류를 주장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보류하는 것으로 결정났다. 하지만 한달 뒤 열린 소위원회에서 이러한 결정은 뒤집혔다. "점수편차, 조사단 구성과 조사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며 이의식씨를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지난 7월 24일 이씨를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에서 기량심사기간 늘리기, 심사위원 특정 대학출신 편중 등 공정성 시비와 일본기법 사용 의혹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자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9월 13일 회의를 열고 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최종 지정을 오는 11월로 연기했다(관련기사 : '일본기법' 논란 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최종지정 연기).

윤관석 의원은 오는 17일 열리는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지정예고 과정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제기할 예정이다.


태그:#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이의식, #윤관석, #문화재청, #다카마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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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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