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상암동 하늘공원의 해진 후, 막다른 산책길에서 만난 나무
▲ 나무 상암동 하늘공원의 해진 후, 막다른 산책길에서 만난 나무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가을이 되자 억새가 피어난다.
도심에서 억새밭을 만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 가면 도심에서도 억새밭을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억세에 기생하는 야고도 있다는 소식이다.

억새가 피어나면 꼭 한번 가서 가을을 만끽하고, 야고도 만나고 오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전 부터 몇몇 일간지에 상암동 하늘공원의 억세를 담은 풍경이 나오고, 사진관련 동호회에는 야고사진이나 일몰사진 같은 것들이 올라온다.

어제(11일)는 하늘이 좋은 날이었다.

퇴근을 앞당겨 하늘공원에서 억새와 어우러진 해넘이 풍경을 담고 싶었다. 그러나 정시에 퇴근을 하면서 조금 차질이 생겼다. 사무실에서 하늘공원까지는 10km 정도니 잘하면 해넘이를 볼 수도 있겠다 싶어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여의도 방면의 야경과 풍력발전기
▲ 상암동 하늘공원의 야경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여의도 방면의 야경과 풍력발전기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퇴근길은 만만치 않았고, 하늘공원 주차장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해가 졌다.그래도 초행길이니 야경이라도 담을 겸 하늘공원으로 향했고, 280개가 넘는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사진에 종종 등장하는 구조물을 가려면 어느쪽으로 가야할까?
길이 통해있으려니 생각하고 왼쪽길을 택했다. 내 앞에는 청춘남녀 한 쌍이 다정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런데, 조금 걷다보니 목책에 막혀있는 막다른 길이다. 도심의 불빛은 나뭇잎 사이로 드문드문 산책길로 스며들고 그 외의 조명은 없었다. 커플은 핸드폰의 조명기능을 이용해서 걷고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초행이었던 것 같다.

'여기가 아닌가봐'하며, 돌아서는 커플. 나는 잠시 남아 장노출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사진(기사의 첫 번째 사진)을 담았다. 대략 45초 정도의 노출시간을 준 것이다.

사진을 담고 있는데 멀지않은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청춘남녀의 사랑다툼(?), 이다. 아무튼 너무 컴컴해서 소리만 들린다. 민망해서 사진을 담다말고 돌아서 나왔다. 어쩌면, 돌아나간 청년도 이곳이 막다른 길이고 으슥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왔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눈치없는 나 같은 작자가 뒤따라 걷고, 왔건만 이미 애정행각에 눈먼 커플이 있어 돌아섰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빛나고 공원은 암흑천지다
▲ 상암동 하늘공원의 야경 도시는 빛나고 공원은 암흑천지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드디어 제대로 억새밭을 찾았다. 억새밭으로 가는 길 역시도 어두워 산책을 하는 젊은이들은 스마트폰 라이트를 켜고 걷는다. 아마도 스마트폰이 있어도 나이가 드신 분들은 그 기능을 몰라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 자주 오시는 분들은 렌턴 하나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암동 하늘공원은 조명은 있으되 너무 드문드문 있고, 억새밭 사이로 난 길들은 조명이 거반 없어 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초행길이라,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구조물을 찾으려니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방향을 알려주는 간판이 달려있긴 하지만, 작고 조명도 없어 잘 보이지 않는다.

저 공원 아래 세상과 딴 판이다. 이것이 하늘공원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억새밭 사이 구조물, 하늘공원 전망대 근처에는 조명도 없고,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구조물 안 계단도 잘 보이지 않는다.
▲ 상암동 하늘공원 억새밭 사이 구조물, 하늘공원 전망대 근처에는 조명도 없고,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구조물 안 계단도 잘 보이지 않는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어둠을 해치고 찾아간 구조물, 거기엔 두 커플이 전망대에서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망대 근처에 아무런 조명이 없고, 전망대 안에 들어가니 위로 올라가는 계단조차도 보이질 않는다.

계단을 잘못 딛거나 헛딛으면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조명이 없으니, 걷는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위급한 상황이라면 애좀 먹게 생겼다.

한 커플이 내려가자 남아있는 커플이 맞은 편에 내가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어쩌면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들 형체만 보일 정도로 어두웠으니까.) 애정행각을 벌인다. 민망해서 전망대에서 내려왔다.

고작 오후 7시 조금 넘은 시간인데 이렇게 어둡고, 야간개장을 한 공원이 이렇게 가로등도 없이 어둡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사이사이 난 억새밭 산책길들은 마치 깊은 산 중에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어둠 속에서 또 남녀(?)의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애정행각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한 시간여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무려 네 건이나 목격한 것이다. 막다른 길에서, 전망대에서, 억새밭에서, 어두컴컴한 벤치에서. 애정행각 자체를 뭐라할 마음은 없다. 얼마나 사랑하면 그러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공원이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가로등이 없는 곳은 앞 1미터 정도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하고, 아예 사람은 형체만 보일뿐이다. 가로등이 이렇게도 적은 공원은 처음이다. 하늘공원에서 내려왔을 때에는 이미 어둠이 완연했다. 여전히 나무계단을 올라가는 이들이 있고, 관리소에서도 통제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야간개장을 하는가 본데 하늘공원의 밤은 너무 캄캄하다. 하늘공원 어둠 속 여기저기서 애정행각이 난무한다. 이게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하늘공원 일몰 1시간 후까지만 개방되고,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서울억새축제가 개최되는 기간에는 밤 10시까지 개방하며 야간조명이 설치될 예정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집에 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딸과 아내가 공격한다. 그런데, 절대 아니었다. 그냥 걷다가 들었고, 목격했고, 그런 현장은 너무 어두웠다는 것이다.

하늘공원, 야간조명이 너무 어두워 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시라도 야간에 우리 딸이 그곳에 간다면 나는 절대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몰래 간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덧붙이는 글 | 상암동 하늘공원 관리소에서는 적절하게 야간조명을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자칫하다가는 우범지대가 될 염려도 있어 보였습니다.



태그:#하늘공원, #억새, #가로등, #야간개장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