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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문명이야기'를 하면서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로마문명에서 단 한 사람을 뽑아 설명해야 한다면 그 사람이 누구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로마문명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한 사람, 이 사람을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44), 바로 이 인물이다.

카이사르를 간단히 소개하면 그는 정치인이자 군인이요, 문학가이자 역사가였으며 수사학자라 할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는 한 국가의 최고 위치에 올라간 권력자였고, 군인으로서는 거대한 로마제국을 만든 정복자였다. 문학가이자 역사가로서는 전장 속에서, 말을 타고 가면서도 책을 써서 라틴문학의 고전 <갈리아 전기>를 탄생시킨 작가였다.

수사학자로서는 당대 최고인 키케로에는 못 미쳤지만, 후세에 남는 명언을 남겼다. 반역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로마의 새로운 지도자가 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루비콘 강 변에서 그는 주저하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로마에 반역한 폰토스의 왕 파르나케스와의 싸움에서 이긴 다음 원로원에 보낸 전과 보고는 단 세 마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였다. 모두가 2천 년 뒤에도 세계의 이곳저곳에서 회자하는 어록이다.

고대 서양사 최고의 위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카이사르는 그리 잘 생기지는 못했다. 머리 숯은 적었으며 이마에는 깊은 주름살이 파여져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흉상,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공개 사용허가된 것임.)
 카이사르는 그리 잘 생기지는 못했다. 머리 숯은 적었으며 이마에는 깊은 주름살이 파여져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흉상,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공개 사용허가된 것임.)
ⓒ Andreas Wah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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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를 소개하는 문헌은 위인전을 비롯해서 너무나 많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서 그것을 요약 정리할 이유는 없다. 나는 단지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음미해 보면서 내 견해를 자유스럽게 밝힐 뿐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영웅 중의 영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로마제국 시대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당대의 위인을 넘어 지중해 전 역사를 통해 최고의 위인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가 중 한 사람이 그리스인 플루타르코스다. 이 사람은 기원후 1세기 후반에 <영웅전>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위인 50인을 선정하여 소개했는데 흥미롭게도 그리스의 영웅과 로마의 영웅을 비교하면서 서술했다. 두 시대에 같은 격의 영웅을 각각 한 사람씩 찾아내 그들을 비교했다. 그래서 이 영웅전을 <비교열전>이라고도 부른다.

이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서 카이사르는 그리스의 최고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비교된다. 즉, 로마제국 최고의 시절인 팍스 로마나 시기에 카이사르는 당대의 영웅을 넘어 그 시절 서양사 최고의 영웅으로 숭앙 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비교되는 인물로 평가되었다.

카이사르는 과연 인류사의 영웅인가

객관적으로 드러난 카이사르의 업적은 고대 서양사 최고의 위인으로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그가 어떤 영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웅 중의 영웅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희대의 독재자라는 평가도 있다. 그가 아무리 많은 업적을 이룩했다고 해도 독재자로서 역사에 남긴 해악은 결코 상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 전 15권 중 4, 5권을 카이사르에게 헌정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 전 15권 중 4, 5권을 카이사르에게 헌정했다.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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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십수 년에 걸쳐 2천 년 로마사를 15권의 대작으로 완성했다. 그녀는 그중에서 두 권을 그녀가 누누이 '로마사 최고의 천재'라고 말한 카이사르에게 헌정했다. 그녀에겐 카이사르만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춘 위인이다. <로마인이야기> 4권은 이탈리아 일반 고등학교에서 쓰이는 역사 교과서의 한 내용을 소개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 다섯 가지다. 지성,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 이곳저곳에서 카이사르의 어록 하나를 곧잘 소개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모든 게 보이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카이사르를 비난한다면 그것은 그에게서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카이사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면 그를 결코 싫어할 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시오노 나나미가 카이사르를 보는 관점이다. 장천을 나는 대붕의 뜻을 어찌 우리 같은 일개 필부가 알 수 있으랴, 이런 뜻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카이사르에 대한 반대 평가는 500년간 지속된 로마 공화정의 막을 내린 장본인이 바로 그 사람이니 카이사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죽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가 살해당한 것은 단순히 그가 독재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카이사르가 생각한 로마제국의 경영방식과 공화파들이 생각한 그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이사르 사후 1500년 후 카이사르의 후예인 마키아벨리가 그 대열에서 그를 비난한다.

마키아벨리는 주저 <로마사논고>에서 공화정을 찬양하면서 이를 파괴한 카이사르에게 맹렬한 비난을 퍼붓는다. 공화국이나 왕국의 창설자는 명성을 누려야 하지만 참주정치(독재정치)의 시조는 응당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카이사르가 바로 이 독재정치의 시조라고 몰아붙인다. 마키아벨리는 많은 역사가들이 카이사르를 찬양하지만, 그것에 현혹되지 말 것을 부탁한다. 그에겐 카이사르를 칭송하는 자들이 그의 재력에 매수되었거나 로마제국이 오래 지속된 것에 압도되어 카이사르의 허상만을 보는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영웅은 호색한인가?

카이사르에 대한 수많은 인물평이 있는데 이런 주제부터 손을 대려니 선뜻 글이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카이사르의 인간적 면모를 이해하는 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주제로 많은 사가들의 주요 관심사이었다. 카이사르는 과연 난봉꾼이었을까? 이 질문에 사가들 사이에서 별로 이론이 없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문명사의 대가인 윌 듀런트가 50년간 집필한 책이 전 11권으로 된 <The Story of Civilization>이라는 책이다. 요즘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문명이야기>(민음사)라는 이름으로 번역되고 있다. 권당 5~6백 쪽의 두툼한 책이 11권이나 출판될 테니 정말로 대단한 번역이다. 이 시리즈 중 3-1권(카이사르와 그리스도)에서 카이사르를 다루고 있는데, 듀런트는 그 시작을 '난봉꾼'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카이사르는 당대에 로마사회에서 "모든 아내들의 남편이며, 모든 남편들의 아내"라고 불렸다. 그의 육체의 향연은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았으며, 평시는 물론 전투 중에도 습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 누미디아에서 에우노에 여왕, 그리고 갈리아에서 많은 부인들을 농락했기에 그의 병사들조차 농담조로 그를 대머리 오입쟁이라고 불렀다.

카이사르의 애인 세르빌랴, 그녀는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르투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카이사르의 정부로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았다. 사진은 HBO에서 상영한 드라마 ‘로마’에서 세르빌랴 역을 맡은 린드세이 둔칸.
 카이사르의 애인 세르빌랴, 그녀는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르투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카이사르의 정부로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았다. 사진은 HBO에서 상영한 드라마 ‘로마’에서 세르빌랴 역을 맡은 린드세이 둔칸.
ⓒ H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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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내에서는 카이사르에게 가장 많은 돈을 빌려 준 크라수스의 아내 테우토리아, 카이사르의 최대의 정적 폼페이우스의 아내 무키아를 포함하여 원로원 의원의 3분의 1이 카이사르에게 아내를 도둑맞았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이런 사나이임에도 시오노 나나미의 카이사르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는데, 역시 카이사르 광팬답다. 그녀는 카이사르의 이 바람기조차 노골적으로 변호한다. 카이사르가 여자라면 누구나 다 좋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취향에 맞는 상대를 골랐고, 그것도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원한 것이었다고 한다.

나아가 그녀는 카이사르의 사랑이 매우 강렬했기 때문에 수많은 여인들이 결국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카이사르에겐 여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기술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남자가 강렬히 원하면, 여자다운 여자는 굴복하기 마련이다."

이 글을 읽는 한국의 여인들이여, 이 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은 여자다운 여자인가. 그렇다면 어떤 남자가 당신을 강렬히 원하면 당신은 결국 그에게 굴복할 것인가. 나는 여기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남성관을 엿본다. 일종의 마조히즘적 애정관이라고 해야 할까. 강한 남자에게 철저히 굴복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그래서 그녀가 조금은 가련한 여성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편견인가.

어쨌든 카이사르는 여성으로부터 대단한 인기가 있었던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실 그는 여자들이 줄줄 따를 만큼 결코 잘 생긴 남자가 아니다. 그의 초상 조각을 보면 머리는 대머리이고, 이마는 깊은 주름살이 패 있다. 잘 생긴 그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얼굴이다.

그럼에도 어찌 그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그는 그 많은 과거의 여자들한테 원한을 사는 법이 없었다. 시오노 나나미 말대로 이것이야말로 바람기 많은 남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로망 중의 로망일 텐데 말이다.

이 역시 시오노 나나미가 분석한 것을 들어 보면 재미있다.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애인들을 화려한 선물로 공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시오노 나나미의 독특한 선물철학이 나온다. 아마도 그녀가 바라는 남자는 이런 선물을 하는 남자이리라.

"선물을 받으면 여자들은 기뻐한다. 카이사르는 인기를 얻기 위해 선물한 것이 아니라 여자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선물한 게 아닐까. 여자는 인기를 얻으려고 선물하는 남자와 상대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일념으로 선물하는 남자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법이다." (<로마인이야기>, 4권 94쪽)


태그:#카이사르, #세계문명기행, #로마문명이야기, #카이사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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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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