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 시네마달


2011년 4월에 오래전 만든 영화 상영을 위해 제주 강정을 찾았던 다큐멘터리 감독은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다.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마을 주민들과 해군의 대립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레미콘 차 앞에 주민들은 드러누웠고, 경찰에 끌려가면서 싸움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며칠만 있다가 올라오겠다는 계획은 아예 머무는 것으로 바뀌며 거처도 옮겨갔다. 지리산의 역사를 찍던 그의 카메라가 잠시 방향을 돌려 제주로 향한 이유였다. 그리고 마을에 밀착한 그의 시선에 강정의 속살이 담기기 시작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는 그 3년의 산물이다. 해군기지에 맞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제주 강정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면서,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의 모습이 담겨 있다.

1997년 2회 영화제 때 4·3 항쟁을 다룬 <레드헌트>로 파란을 일으켰던 감독은 16년 만에 <구럼비-바람이 분다>를 통해 부산으로 귀환했다. <레드헌트>는 당시 국가보안법 혐의를 받았던 상영했던 사람이 구속되기도 한 문제작이기도 했는데, 16년 만에 부산영화제를 찾은 작품의 공간도 역시 제주였다. 1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공교롭게도 부산을 통해 선보이는 그의 문제 의식은 모두 제주를 향하고 있었다.

<구럼비-바람이 분다> 조성봉 감독을 두 번째 상영이 있던 8일 저녁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만났다. 마침 이날 불어온 태풍 '다나스'는 영화를 응원하는 듯했다. 사실 조 감독은 태풍에 맥을 못추는 해상 구조물을 영화에 담고싶어 했다. 하지만 올해는 태풍이 오지 않아 아쉬워하던 차였다. 그런데 영화제에 맞춰서 태풍이 접근하자 마음이 분주해진 모양이었다. 인터뷰에 앞서 제주의 스태프에게 연락해 바다 모습을 담아달라고 요청하며,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열정을 나타냈다.

강정의 싸움보다는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에 초점 맞춰

 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의 조성봉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의 조성봉 감독 ⓒ 성하훈


그는 먼저 강정 해군기지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강조했다. 국책사업이란 명목 아래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주민들의 삶터를 강제로 빼앗으려는 해군의 못된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이날 70대 마을주민 한 분과 20대 여성 활동가가 법정 구속됐다는 소식됐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거워 보였다. 이로써 강정 구속자는 모두 5명으로 늘어났다.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는 제대로 된 조사도 안 하고 들어와 억지로 끼워맞추다 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순이나 위미로 결정했다가 주민 반발에 강정까지 온 건데 계속 오류가 드러난다.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안 하고 막무가내의 공사를 강행하다보니 강정 앞바다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연산호 군락지가 위협을 받고 있다. 바다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고 해녀들도 많은데 해군기지로 인해 마을 주민들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거다."

조 감독은 그래서 영화 제목을 <구럼비-바람이 분다>로 정했다고 말했다. 바람은 태풍만 오면 만신창이가 되는 거대한 해상 구조물인 케이슨과 방파제를 의미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만들어지는 볼썽사납기만 한 해군기지가 예산 낭비와 재앙으로밖에 남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태풍을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다. 태풍이 올 때마다 제대로 견뎌내지 못하는, 지형적으로 전혀 알맞지 않은 곳에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바람'에는 '바라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평화, 생명, 새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자연의 바람이라고 보면 된다. 강정의 현실과 자연 생태계가 함께 조화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럼비-바람이 분다>에는 강정의 아름다움이 잘 묘사돼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핵심이지만 그보다는 자연 다큐멘터리 쪽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영상미가 빼어나다. 특히 한라산에서 흘러 내려온 강정천과 바다가 합류하는 지점에서 물고기를 잡는 새의 모습은 흥미롭게 보일 정도다. 물론 마을주민들과 해군·경찰 간에 격렬한 대치가 벌어지는 장면도 있다.

특히 해상 공사를 하고 있는 선박에 접근해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과 배에 타려는 주민들을 바다로 밀어내려는 공사 인부들과의 대치는 박진감 있게 그려지면서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주민들이 먹을 밥이 가득 담긴 밥통과 농성 천막에 둘러 치기 위해 반입하던 비닐을 경찰이 시위물품이라며 막아설 때 웃옷을 벗어던지며 이에 맞서는 마을 여성의 모습은 강정의 지난 시간 싸움들을 압축적이면서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제목을 정하면서 평화의 염원을 담으려 했다는 감독의 말대로 구럼비 해안과 강정마을 주변의 모습이 환상적일 만큼 아름답게 묘사됐다.

불법행동을 막는 게 불법으로 처벌되는 이상한 나라

 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 조성봉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 조성봉 감독 ⓒ 성하훈

-영상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레드헌트> 때와는 상당히 다르다. 주민들의 싸움보다 주변의 자연을 주로 묘사한 이유가 있나?
"싸움보다는 강정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싶었다. 사실 싸우는 장면을 넣으려면 한도 끝도 없다. 격렬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장면들을 다 넣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다만 바다에서 싸우는 장면은 본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넣었다."

바다에서 대치하는 모습은 상당히 위태위태하다. 지금 구속돼 있는 송강호 박사가 몸싸움을 벌이다 여러 명의 작업자들에게 제압돼 다치는 모습도 나온다. 하지만 흔들리는 배 안에서 어렵게 촬영한 대가는 벌금으로 돌아왔다. 4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촬영을 하다보니 해상 작업 바지선에 주민들이 올라갔고 자연히 나도 따라 올라가게 됐다. 그런데 업무방해라고 하더라. 벌금 400만 원이 나왔는데, 항소를 한 상태다. 곧 2심 판결이 나오는데, 불리하게 나올 경우 노역이라도 해야 하는지 고심 중이다. 하루 일당 5만 원씩으로 80일을 노역장에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참…."

<구럼비-바람이 분다>에는 수많은 강정마을 주민들이 각양 각색의 죄목으로 고소 고발돼 있음이 나온다. 명목이 상당히 많지만 그 중에서 업무방해가 가장 많다. 불법공사를 막은 것이 도리어 불법으로 규정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영화는 보여준다.

"오탁방지막과 바다 준설에 따른 부유물 저감 대책 등이 분명히 규정돼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제대로 안 지키고 불법적으로 공사를 하고 있는 것에 마을 주민들이 막은 거다. 하지만 도리어 지적하는 사람들이 고소 고발당해 불법으로 처벌을 받는다. 참 이상한 나라다. 해군기지 공사는 삼성물산과 대림 등이 주관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삼성이 대부분의 공사를 주도하고 있다."

조 감독은 그렇지만 그들 중에 양심적인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현장 관계자와 강정마을에 진압을 위해 내려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간 경찰의 이야기를 전했다.

"삼성 현장 책임자 중 한 사람이 우리가 구럼비에서 공연하고 할 때 멀찍이서 관심있게 구경하더라. 그래서 가까이 와서 구경해도 된다고 했다. 나중에 업무방해로 재판 받을 때 검찰이 증인으로 했던데, 나오지 않더라. 뭐 해외 근무하는 중이라 어렵기도 했겠지만 아무튼 그나마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한번은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기에 받았더니 해군기지 반대 싸움 과정에서 자주 얼굴을 받던 경찰 기동대 간부였다. 어쩔 수 없이 주민들과 충돌하고 진압은 했지만 많이 힘들었다면서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고 한다. 해군기지 싸움을 응원해주면서 서울 올 일 있으면 편하게 술 한잔 마시자고 하던데 고마웠다."

국책사업 명목으로 강행하는 해군기지는 마을과 자연에 재앙일 뿐

 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 시네마달


<구럼비-바람이 본다>는 처절한 외침보다는 부드럽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강정마을의 현재를 전달하고 있다. 신구범 전 도지사가 나서서 해군기지 건설이 갖는 무모함을 설명하고, 미국의 평화활동가 입을 빌려 "미국의 군사전략을 위해 활용하는 기지"임을 고발한다.

조 감독은 최근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도 <구럼비-바람이 분다>와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이 영화의 의미도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평화롭게 살아가던 마을에 밀어닥친 재앙이라는 것이다.

"강정마을은 민주주의 출발에 대한 문제다. 주민들이 지지한 국책사업이라고 하는데, 이게 다 사기고 거짓말이다. 4대강 사업이 수질개선과 주변 발전이라고 한 이명박의 거짓말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것을 거짓말로 덮으려 한다. 결국 재앙으로 다가오지 않나.

해군이나 정부는 마치 외부세력 몇몇이 개입했다고 하는데, 해군 기지에 대해서는 절대 다수가 반대한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해군기지 관사를 마을에 짓는 방안에 대해 주민투표를 해도 압도적으로 부결되지 않았나. 주민 투표에 외지사람들은 아무도 못 들어갔다. 주민들 스스로가 결정한 거다 그럼에도 해군과 정부는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밀양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지사나 정부에서는 외부세력 운운하는데, 거기 노인들이 다 반대하는 것 아닌가." 

조 감독은 "몇몇 장면을 더 넣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해 못 넣었다"면서 "개봉할 때는 싸움 장면보다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더 넣고, 바다 속에서 촬영한 영상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정 해군기지가 기정사실화 되는 것 같아 2012년 완성하려고 했으나 제작 비용이 부족해 미뤄졌는데, 부산국제영화제의 펀드 지원을 통해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서 부산영화제 측에 큰 고마움을 나타냈다.

부산영화제 펀드 지원 통해 완성... 내년 2월 극장 개봉 예정

 강정마을 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 조성봉 감독

강정마을 다큐멘터리 영화 <구럼비-바람이 분다> 조성봉 감독 ⓒ 성하훈


조 감독은 지난 7월 펀드 지원이 확정될 당시 "나로 인해 지원받지 못하게 된 다른 작품들에 대해 미안함"을 전하면서 "(앞으로) 이런 제작지원을 신청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후배들의 밥그릇은 뺐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의미를 이렇게 부연했다.

"독립영화 1세대로서의 자존심이라고 보면 된다. 선배들이 이런 지원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 많이 쑥스러운 일이다. 자립 시스템 만들어 후배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는 어려움이 있어도 직접 헤쳐나가겠다는 의미다."

<구럼비-바람이 분다>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내년 2월 극장 개봉을 준비 중인데, 조성봉 감독은 이에 앞서 11월 개최되는 '메이드인 부산독립영화제'에 초청됐다고 전했다. 아울러 독립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는 <진달래산천>은 2014년쯤 마무리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진달래산천>은 지리산 빨치산 출신들의 이야기로 조 감독이 10년 가까이 찍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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