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에서 태희를 연기하는 김지현

▲ '번지점프를 하다' 에서 태희를 연기하는 김지현 ⓒ 뮤지컬해븐


배우는 관객에게 극적인 감정의 고조를 보여주어야 한다.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다가도, 운명의 장난 앞에서는 한없이 통곡하는 식으로 말이다.

배우 김지현은 극적인 감정을 무대에 쏟기보다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무대 위에 연기로 쏟아내기를 바라는 배우다. 실생활에 있어서도 감정의 높낮이를 윈드서핑하기보다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잔잔하게 관조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니 말이다.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주인공 태희를 연기하는 김지현을 8일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났다.

- 작년 <번지점프를 하다> 초연일 때 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고사한 걸로 알고 있다.
"작년에 <번지점프를 하다>가 봄에 연습을 했다. 그런데 뮤지컬 연습 당시 같은 시기에 드라마 <대풍수>를 촬영했다. 당시 오현경 씨가 맡은 수련개 옆에서 비서 겸 호위를 하는 은비라는 역할을 맡았다. 방송은 10월부터 했지만 4월부터 촬영했다.

사극이라 지방 촬영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뮤지컬 연습을 중간에 빠지기가 애매했다. '다음에 인연이 되면 <번지점프를 하다>를 맡게 되겠지' 하고 애석한 마음을 가졌는데 올해 다시 작품을 맡게 되어 감사하다."

- <대풍수>를 찍기 전에 뮤지컬 작품 제의만 받았는가, 아니면 대본까지 읽었는가?
"작품 제의만 받았다. 그러다가 드라마를 찍는 바람에 초연 때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초연 공연만 보았다. 대본은 이번에 작품 참여하면서 처음 보았다. 작년 초연을 관람할 때에는 뮤지컬 속 음악과 무대 분위기가 관객의 입장에서 빠져들 만큼 매력적이었다.

대본을 처음 리딩할 때 울컥하는 부분이 많았다. 인우가 친구들 앞에서 제자 현빈이 예전의 태희인가 헷갈려 하다가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라는 장면에서 눈물이 저절로 났다. 인우가 얼마나 힘이 들까 느끼면서,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에 울컥했다. 첫 리딩을 상대 배우가 담담하게 읽었음에도 가슴이 찡하고 아팠다."

"통통 튀기보다 인우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모성애' 연기"

'번지점프를 하다'  에서 태희를 연기하는 김지현

▲ '번지점프를 하다' 에서 태희를 연기하는 김지현 ⓒ 뮤지컬해븐


- 극중 태희는 사랑에 진취적인 여자다. 짝사랑하는 남자 인우의 우산 속 품으로 들어갈 줄 아는 대담한 여자다. 김지현씨도 태희처럼 사랑에 진취적인 성향인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먼저 좋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고백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아보여도 고백은 하는 스타일이다. 될 것 같아도 고백하고, 안 될 것 같아도 밑져야 본전이니까.(웃음) 연애는 적극적이지 않은데 좋아하는 남자가 있을 때 고백하는 건 태희와 비슷하다."

- <풍월주>를 비롯하여 요즘에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아련하고 애절한 캐릭터를 맡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제대로 사랑하는 역할을 맡은 건 <번지점프를 하다>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카페인>과 <김종욱 찾기>는 밝은 캐릭터였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보헤미안 같은 느낌의 캐릭터였다. <왕세자 실종사건>의 중전은 우울하고 슬픈 캐릭터였다. 취향과는 상관없이 이미지가 아련하게 나오는 것 같아 부끄럽다.(웃음) 실제 생활은 아련하지만은 않다."

- 작년에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태희와 직접 연기하는 태희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작년 (전)미도씨가 연기하는 초연을 보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밝은 태희를 연기했다. 리딩하면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태희가 적극적인 인물이기에 자칫하면 '어장 관리하는 여자'로 보일 수 있다. 남자를 꼬시는 태희가 아니라,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인우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태희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전)미도 씨는 밝고 쾌활한 이미지로 연기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제가 연기하는 태희는 차분하면서도 당당하다. 통통 튀어볼까 하고 연습도 해보았지만 제가 보기에 가식적으로 느껴지더라.(웃음) 인우를 잘 보듬어줄 수 있는 모성애적인 태희를 연기하고 있다."

'번지점프를 하다'  에서 태희를 연기하는 김지현

▲ '번지점프를 하다' 에서 태희를 연기하는 김지현 ⓒ 뮤지컬해븐


- 연극뿐만 아니라 <대풍수> 같은 드라마와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같은 영화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관심이 있어서 드라마나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는 않는다. 좋은 인연이 닿아서 드라마나 영화를 몇 편 작업했다. 어릴 적부터 선생님들이 하던 말씀이 있다. '어느 한 장르만 하려고 하지 말아라. 뮤지컬을 하면 뮤지컬 배우고, 영화를 하면 영화배우인 것처럼 배우는 배우다'라는 말씀을 어려서부터 들어왔다. 제게는 모두가 같은 작업이다. 장르나 어려운 점은 분명히 다르지만, 연기를 한다는 점에 있어서만큼은 재미있는 작업이 연기다."

- 연기자 생활을 하면 할수록 느는 건 무엇일까.
"연기에 대한 욕심을 덜 부리고 연기를 내려놓는다는 점이다. 과하게 연기하거나 혹은 안 되는 것에 대해 욕심을 부리면 연기도 안 좋고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노력해도 잘 맞지 않거나, 도전해도 안 되는 부분은 포기하고, 조금 더 욕심이 나서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할 때 반대로 덜 하는 게 연기 면에 있어 숨 쉴 수 있고 여유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우가 너무 꽉 채우면 보는 사람이 버겁다. 어릴 적부터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랐다. 어릴 적에 시험을 망치면 대개는 '다음에는 100점을 맞아야지' 하는 각오를 한다. 하지만 저는 '이번에 80점이야? 다음에 잘 치르겠지..' 하는 식이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욕심을 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크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큰 요동이 없는 편이다.

연습할 때 상대방의 연기를 받아주는 게 편하다. 제가 상대방의 연기를 맞춰주면 되니까 '상관없어, 네가 편한대로 해 줄게' 하는 식으로 상대방의 연기를 받아주는 식이다. 공연할 때 제가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장면에서 상대 배우가 재미있고 더 잘 한다 싶으면, 제 연기를 보여주려 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연기를 리드하게끔 맞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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