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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8일 기자회견을 연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의 임상경 기록관리비서관, 김경수 연설기획비서관, 이창우 1부속실 행정관.
 지난 7월 18일 기자회견을 연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의 임상경 기록관리비서관, 김경수 연설기획비서관, 이창우 1부속실 행정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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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 7일에는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검찰 조사 내용까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조 비서관이 유일하게 노 대통령으로부터 삭제와 관련된 지시를 들었다고 예전 1월 조사에서 진술했다는 건데…. 내가 참여정부 5년 동안 대통령 옆에 있으면서, 특히 이지원 개발 후에, '이지원 기록 삭제해라, 이관 기록 삭제해라'는 대통령 지시를 받았다면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오히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이 기록 남기는 일을 불안해하자 '지정기록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대통령기록물관리제도를 만들어놨으니까 안심하라'며 모든 기록을 남기도록 항상 주지시킨 분이다. 말이 안 된다."

- 정상회담 회의록 작성 과정을 설명해 달라.
"조 비서관에 따르면, 처음에 국정원에서 녹음을 풀어서 넘어온 게 책자 형태여서 노 대통령이 그것을 봤다. 이후 조 비서관에게 내려주면서 이게 뭔가 부정확한 게 있는 거 같으니 재검토 하라는 지시를 했다. 내 기억에도 '결재' 이런 게 아니라 '재검토' 이런 식으로 내려보낸 것 같다. 조 비서관이 받아서 회담 당시 메모를 기초로 두 달 가까이 수정했다. 그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이후 총리급 회담 등 이러저런 회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혼자 감당하느라 회의록은 조금씩 조금씩 고쳐서 12월쯤 완성했다. 그것을 보고 드리는데, 이지원으로 보고인지 종이 형태 보고인지는 기억이 불확실하다."

"초안과 국정원 공개한 회의록의 형태는 똑같다"

- 국정원에 넘긴 과정은?
"노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조 비서관이 12월 말 국정원에 넘겼다. 파일 형태로 넘긴 것 같다. 국정원은 2008년 1월 3일 김만복 당시 원장에게 국정원 양식대로 출력해 원장 사인을 받았다. 그래서 지난번에 공개된 회의록 제일 뒷장에 '생산'이라고 쓰여 있었다. '파일로 받아서 출력했다, 1급 비밀 문서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 국정원은 지난 6월 회의록 전문을 공개한 뒤 "우리가 자체 생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00% 거짓말이다. 국정원은 녹음을 풀어서 청와대에 보낸 후에 수정 작업을 맡지 않았다. 최종본은 조 비서관이 자신의 메모를 바탕으로 정리했는데, 국정원이 그 메모를 가지고 작업했을 리가 없다. 국정원에서 회의록을 만들었다면 이번 최종본과 국정원본이 일치할 수 없다. 국정원본과 최종본은 동일본일 거다. 그러면 국정원에서 지금까지 해온 얘기는 거짓말이다."

- 국정원에서 처음 녹음을 풀어서 보낸 것(초안)은 언제 어떤 형태로 청와대에 전해졌는가.
"책자(종이문서)와 문서파일이 함께 왔을 것이다. 그 초안과 국정원이 공개했던 회의록은 형태가 똑같다. 초안은 (2007년) 10월 9일 이지원에 등록됐다."

- 초안의 이지원 등록 시점이 10월 9일이면….
"4일이 남북정상선언 한 날이다. 귀환하자마자 바로 국정원에 녹음파일을 넘겨서 급하게 초안을 작성해 청와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 혹시 1차 수정본, 2차 수정본은 없었나.
"조 비서관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작성 담당자가 1·2차 수정본은 없고, 초안과 국정원에 보낸 최종본뿐이라고 말하니까, 그렇게 믿고 있다."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하는 모습. 노무현 대통령 뒤쪽에서 조명균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비서관이 책상위에 올려 놓은 디지털녹음기로 회담 내용을 녹음하며 동시에 메모를 하고 있다.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하는 모습. 노무현 대통령 뒤쪽에서 조명균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비서관이 책상위에 올려 놓은 디지털녹음기로 회담 내용을 녹음하며 동시에 메모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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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비서관이 노 대통령에게 회의록 최종본을 보고한 시점은?
"정확하게 잘 모른다. 추정은 할 수 있는데, 정확하게 언제 보고됐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임기 말에 안보실 쪽 보고 내용을 전부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현재 우리가 자료를 갖고 있지도 않다. 이런 것은 확인한 검찰이 이야기해야 한다."

- 그러면 10월 9일에 회의록 초안을 이지원에 등록했다는 물증은 있는가.
"음…, 하여간 이 부분은…, 10월 9일은 확실하다."

- 이후 초안이 이관 대상에서 제외돼 목록이 삭제된 시점은 2007년 12월말에서 1월 사이로 생각하면 되는가.
"벌써 수년 전 일을 자꾸 정확한 시점을 물으면… 그건 검찰이 확인한 것을 보고 얘기하자. 우리가 현재 자료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도, 유일하게 기억하는 조 비서관도 (그 부분은)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 회의록 초안과 최종본의 내용상 차이는 무엇인가. 현재까지는 "저는"이 "나는" 등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져 있다.
"저는, 나는, 이런 것은 조 비서관이 평소 브리핑 정리할 때 업무 그대로 고쳤다는 거고, 그것보다는 정상회담 때 배석해 작성한 메모를 확인해가며 일일이 오류를 바로잡았다. 내용이 빠지거나, 단어가 틀리거나, 발언자가 바뀌거나, '청취불가' 표시된 부분 등을 정리했다."

"초안 등록일 10월 9일은 확실하다"

- 조 비서관은 왜 속 시원하게 나와서 상황을 밝히지 않고 있는가.
"본인도 기억이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의 회의록 삭제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은 스스로도 좀 어이 없어 한다. 지금도 본인은 이지원에 삭제 기능이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때엔 (회의록 실종 여부가) 쟁점이 아니어서 (관련 진술 등을) 가볍게 생각했다고 한다. 또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검찰이 계속 물으니까 기억나지 않거나 부정확한 것도 그렇다고 이야기한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공개적으로 얘기했다가 또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듯하다."

- 어쨌든 표면적으로 볼 때, 조 전 비서관이 5일 조사에서는 '노 대통령이 이지원에 있는 회의록 삭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은 1월 진술을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같은 진술에 대한 해석의 문제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남기지 말라'고 한 걸 자신은 '종이문서를 남기지 말라'로 이해했다는 게 5일 검찰 진술이다."

[김경수 전 비서관 인터뷰] "이지원 보고시점은 10월 9일... 검찰, 초안 공개하라"
[인터뷰 전문 ①] "이지원 삭제 기능 없다... 이관 위해 목록 지우는 게 유일"
[인터뷰 전문 ③] "문 후보 조사하겠다는 건 정치검찰로 가는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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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에 몸담고 있습니다. 그때는 풋풋한 대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됐네요. 현재 본부장으로 뉴스본부를 이끌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점 있으면 쪽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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