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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013년 8월 23일 시리아인들이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 앞에서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에 항의하고 있다.
 2013년 8월 23일 시리아인들이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 앞에서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에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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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복잡한 중동 문제가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온 불길로 인해 한층 더 타들어가고 있다. 2010년 12월 발생한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민중봉기가 벤 알리 대통령의 사우디 망명으로 연결됐고, 이것은 다시 이집트·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정권들의 연쇄적 붕괴로 이어졌다. 이 불길은 중동으로 넘어가 예멘·바레인·오만·사우디뿐만 아니라 시리아로도 번졌다. 

시리아는 국민의 4분의 3이 다수파 이슬람교도인 수니파이지만 집권층은 소수파 이슬람교인 시아파다.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신봉하는 알라위파 이슬람교는 시아파의 분파다. 수니파 반정부 세력은 시아파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위의 불길을 활용했다. 이로 인해 2011년 초부터 내전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현재까지 약 6만 명이 사망했다. 지난 8월에는 화학무기 공격까지 발생해서 수천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2011년만 해도 미국은 튀니지에서 번진 불길이 자국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 불길로 인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제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당황하고 있다. 제어하기 힘든 방향으로 문제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좀더 악화되면 미국 지도부는 "차라리 이란 핵문제가 훨씬 더 쉬웠다"고 한탄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시리아 사태를 통제하고 싶지만 상황은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검토했지만, 9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군사개입을 배제하는 전제 하에서 시리아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의했다.

유엔 안보리마저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 연방정부는 10월 1일부터 '부분 폐업' 상태에 들어갔다. 미합중국의 '셔터 문'이 부분적으로 닫힌 상태이니 미국의 중동 경영이 앞으로 얼마나 잘 굴러갈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미국이 중동에서 겪고 있는 곤혹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수천 년간의 중동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은 이 지역의 역대 슈퍼 파워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떨어지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패권국에 등극한 지 100년도 안 된 미국이 중동에서 겪고 있는 곤란과 당혹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기원전부터 19세기까지 중동에서 패권을 행사한 역대 패권국과 비교할 때, 미국이 해결하지 못한 주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은 왜 중동에서 현지화에 실패했나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 녹색으로 칠한 부분은 전성기인 슐레이만 1세(재위 1520~1566년) 때의 영토.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 녹색으로 칠한 부분은 전성기인 슐레이만 1세(재위 1520~1566년) 때의 영토.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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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현지화의 문제다. 중동의 역대 슈퍼 파워들은 어떤 형태로든 현지의 문화를 수용했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터키공화국의 조상인 투르크족(튀르크족)이라 할 수 있다.

터키의 영토는 지금은 아나톨리아 반도로 축소됐지만, 과거에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걸친 대제국이었다. 중간에 몽골제국이 중동에서 패권을 행사한 기간을 제외하면,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에 이 지역의 패권을 행사한 민족은 투르크족이었다.

투르크족은 한국인들은 '돌궐'로 발음하고 중국인들은 '투쥐에'로 발음하는 유목민족이다. 이 민족은 중앙아시아와 몽골초원에서 활약하다가 당나라(618~907년)와의 경쟁에서 밀려 중동과 동유럽으로 민족이동을 단행한 뒤 현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민족이다.

투르크족이 돌궐족의 후예라는 점은 오늘날의 터키가 서기 552년을 자신들이 나라를 세운 해로 기념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552년은 돌궐족이 몽골초원의 유목민족인 유연족의 지배에서 독립한 해다.

투르크족은 중앙아시아와 몽골초원에서 활약한 민족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착지인 중동에서는 당연히 이방인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중동에 성공적으로 정착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이 지역의 패권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도 현지화 정책이었다.

투르크족의 현지화 정책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슬람교 개종이다. 이런 적응력이 있었기 때문에 투르크족 국가인 셀주크 투르크가 11세기부터 중동의 강자로 등극하고, 또 다른 투르크족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가 14세기부터 지역 최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개의 투르크 국가가 보여준 현지화 정책은, 이 지역에 먼저 정착한 민족들이 투르크족의 지배에 대해 반감을 덜 갖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현지화라는 측면에서 현대의 미국은 원초적 한계를 갖고 있다. 중동에 영토를 두지 않고, 이 지역을 원격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현지화를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중동 사람들을 존중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미국은 이마저 무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편파적 태도로 중동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는 점만 봐도 미국이 이 지역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다양성 존중 없인 중동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둘째, 다양성 존중의 문제다. 중동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이 만나는 지역이다. 또 이곳은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와 상업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그래서 세계의 여타 지역에 비해 문화적 다양성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충돌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그래서 중동의 역대 패권국들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는 이 지역을 지배할 수 없었다. 투르크족은 물론이고 투르크족 이전의 패권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나라는 고대 페르시아 왕조인 아케메니드 페르시아(기원전 550~기원전 330년)다.

투르크족이 중동의 여타 민족들과 혈통이 다른 것처럼, 페르시아 역시 중동의 주류 민족들과 혈통이 달랐다. 페르시아와 그 후예인 이란은 이라크·시리아·사우디·쿠웨이트·레바논 등이 속한 아랍권과 혈통이 다르다. 아랍권은 셈족인 데 비해, 페르시아는 인도·유럽어족이다. 그래서 고대 페르시아는 아랍권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 같은 이질감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아랍권 사람들은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서기 7세기를 문명의 출발점으로 인식하지만, 이란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믿기는 하지만 그런 인식을 거부한다. 이란인들은 서기 7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페르시아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제국이 인도·유럽어족으로서 아랍의 이민족들을 통치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다양성 존중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키루스 2세의 정책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키루스 2세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고레스 대왕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성경에서는 그가 이스라엘인들의 종교를 존중해준 사실을 전하고 있다.

키루스 2세의 조각상.
 키루스 2세의 조각상.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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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의 정복자들은 피정복민들에게 정치적 복종뿐만 아니라 종교적 개종까지 강요했다. 고대 사회로 갈수록 제정일치 경향이 강했으므로, 정복민이 피정복민에게 자기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키루스 2세는 그런 일반적인 방식이 중동에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중동처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그런 방식이 제국의 통치력을 도리어 약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피정복민이나 속국민들에게 페르시아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 자기 민족의 종교를 믿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기독교처럼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나라가 피정복민의 신들을 존중해준 것이다.

키루스 2세가 다양성을 얼마나 존중했는지는 기독교 성경에서 그가 매우 훌륭한 인물로 묘사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非)기독교권의 군주가 성경에서 훌륭한 인격자로 묘사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성경 이사야서 45장 1절에서는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키루스 2세)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세계 각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키루스 2세에게 기름을 부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그가 중동과 주변 지역을 정복했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키루스 2세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그를 왕으로 임명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키루스 2세의 정복사업을 하나님의 뜻에 의한 일로 평가한 것은 키루스 2세의 다양성 정책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음을 반영한다.

오늘날 미국은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페르시아 같은 과거의 패권국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석유에 대한 욕심에 빠져, 또 한편으로는 자국 문화에 대한 과도한 우월감에 빠져 중동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역대 패권국들에 비해 미국은 가장 '무지'하고 가장 '무식'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중동을 지배하는 나라가 갖춰야 할 '기본 예의'를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페르시아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돌궐족보다도 못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현지화 및 다양성 존중의 과제를 이루지 못한 미국이 2011년부터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현상을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지화나 다양성의 존중 없이도 중동을 지배하는 방법은 압도적인 파워를 보유하는 길 뿐이지만, 지금의 미국은 그것마저 힘들다. 현재의 미국은 연방정부의 '셔터 문'을 들어 올릴 기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한테 필요한 일은 하루빨리 중동을 포기하는 것뿐이다.


태그:#시리아 사태, #시리아 내전, #이슬람 문화, #오스만 투르크, #페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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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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