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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겉그림.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겉그림.
ⓒ 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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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개성'과 '영혼'을 느끼듯, '한국인'에게도 똑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p4]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책을 펴자마자 나오는 서문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글이다. 사람들 개개인이 가지는 다름, 독특한 향기 같은 그런 느낌이 한국인이라는 민족을 단위로도 있다는 그 말에 설렘이 몰려 왔다. 마치 이성을 만나고 처음 느끼는 '아, 이 사람은 다른 여자(혹은 남자)와 뭔가 달라' 라는 그런 것, 근래 들어 비참하고 속상한 양상의 정치 사회의 우울한 뉴스 속에 나는 구겨진 '한국인'이 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절망감이 힐링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졌다. 그렇게 이 책의 시작은 남다른 가을 날 독서데이트로 다가왔다.

[처음으로 민감하게 내 의식 속에 있었던 한국에 대한 표상들을 의심해 보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주로 '게으르고 무기력하며 정신적으로 정체되어 있는'과 같이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 p7]

저자는 '한국인'에 대해 좀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 상태로 더 부정적으로 써 나간 담론과 또 한편 의외로 긍정적인 묘사들, 이 두 현상을 만나면서 자기가 가졌던 '한국인'의 이미지를 다시 조명해보기 시작한다. 나도 이 책을 덮을 때 쯤 요즘의 내 조국에 대한 비관과 절망적 예단을 조금은 걷어낼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힘을 가진 세계의 패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재구성하고 싶은 대로 한국에 대해 쑥덕이고, 자치가 '부적절한 민족'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마침내 한국은 '열등 종족'으로 낙인 찍혀 일본의 한 지방으로 복속되었다. (생략) 내가 서구인들이 남긴 책을 읽으면서 점점 한국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대를 갖게 된 것은 '조상'이라기보다 '약자'로서의 한국이었다. - p11]

저자가 구한국의 처지에서 느끼는 우울과 내가 지금 이 한국의 상황에서 느끼는 우울에는 비슷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힘과 패권에 무기력해진 약자의 처지가 그렇고, 지금도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반역자들이 펼치는 억압과, 그들이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시대를 넘어오면서 무디어지고 꺾여버린 가치관들이 맥을 못 추는 내 우울함이 또한 그랬다. 분통이 터지지만 무기력한 채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울함이 더해질 수밖에.

[한국은 세상에서 '티베트 다음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였다. 고작 알려진 것은 '백의'와 '흑모' 뿐이고 나머지는 베일에 가려 있었다. - p24]

그러니 당시 한국을 다녀간 사람들은 신비한 목격담을 이웃에게 이야기하듯 각종 표현을 사용하면서 기록들을 남겼다. 일본과 중국과는 비슷하면서 끝내는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 때문이었다. 아, 이 짜릿한 기록들의 확인이라니! 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사실은 1894년 이전에 한국을 여행한 영국인이 자그만치 1060명의 성인 남자를 키를 재어서 평균이 163.4센티라는 기록을 남겼다는 점이었다.

가장 큰 사람이 179.9센티, 가장 작은 사람이 145.2센티미터! 마치 '당신은 다른 흔한 남자와는 달라요!'라는 연인의 고백을 듣는 순간처럼 기쁜 건 왜 일까? 한국인이 잘생기고 키도 크다는 역사적 확인들이 참 으쓱해졌다. 엽전, 양은냄비근성 운운하며 우리 스스로를 주눅 들게 하던 왜곡을 저만치 발로 차버리는 심정이었다.

[코레아인들은 일본이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다. 또한 신체가 잘 발달되었고 균형이 잡혀 있었다. 태도는 자연스럽고 여유가 있었다. 똑바로 치켜 올린 얼굴은 거침없이 당당했다. - p35]

위 기사는 스웨덴의 신문기자 아손 그렙스트의 부산포 입항 후 묘사 글이다. 기자니 일반인보다 어지간히는 정확하고 공정한 표현들을 했으리라고 믿고 보면 충분히 객관적으로 인정할 만하다. 키 크고 여유 있다는 것이 나라의 자존심이나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그래서 기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너무도 세뇌되어진 열등감 때문에 우리 민족이 본래 가졌던 장점이나 성품마저 부인하기 때문에 이 글이 반가웠다. 수십 년에 걸쳐 구부려놓은 의식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근래 역사교과서 편찬과 선정과정이 해괴한 방향으로 흘러서 문제가 심각하다. 그 큰 오류의 근원, 뿌리에는 아주 작은 보이지 않는 의식의 왜곡들이 분명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사실적 기록들이 그 오류를 와장창 깨뜨리고 부숴서 걷어내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그러나 나는 한국인이 자연스러운 기질과 자존심을 가진 것을 하나의 장점으로 보기는 해도 무조건적인 선이라고 억지 부리기는 싫다. 고종의 고문관이었던 윌리엄 샌즈는 한국인의 서민공연(광대놀이)을 양반에 대한 무조건적인 굴종을 싫어하는 한 표현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초로 한국을 서방에 알린 하멜은 '하멜표류기'에서 다르게도 말했다.

[하멜은 한국인이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경향"이 농후해서 "지나치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가, "기독교도인 우리 유럽인이 부끄러울 정도로 선한 사람들"이라고 썼다. 한국인은 "남에게 해를 끼치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영웅적인 행위"를 한 양 우쭐댄다고 했다가, (후략) - p46]

뒤로도 하멜은 혹독한 표현들을 계속했다. 연장자에 대한 공경을 칭찬하면서 양반과 사찰에 대해 유흥을 즐기고 '매춘굴' 내지 '술집'과 같다고도 했다. 정말 놀랐다. 두 가지 다른 면, 양면성을 어쩌면 과학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쓴 사람처럼 정확히 표현을 했는지, 지금의 대한민국에 난무하는 온갖 부정과 일탈, 타락의 모습들을 정직하게 인정하면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마치 어젯밤 하멜이 몰래 한국을 들어와서 밤새 지켜보고 쓴 리포트 같다. 부끄럽지만.

썩고 비뚤어진 많은 상위층들의 정치관 인간가치관, 사회 속에 독버섯처럼 스며든 타락과 매춘의 현상들... 어찌 이것을 부인하면서 한국인의 기질적 본성인 자유로움과 자존심, 쾌활하고 흥에 겨워하는 장점들을 주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수용하고 조화를 이루며 나아갈지는 우리 앞에 놓인 미래의 숙제다.

그 두 가지 다른 모습, 양면성을 당시 외국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쪽에서는 한국인들이 한없이 게으르다고 했고, 한쪽에서는 한국인들이 가진 깊은 낙천성, 예에서 나오는 가치관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부지런한 일본과 그렇지 않은 한국을 비교하기도 했다. 평가는 언제나 두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손의 바닥과 손등을 묘사하듯, 동전의 앞이나 뒤를 말하듯.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우리들의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일 것이다. 누가 바람 넣는 대로 눌리거나 우쭐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으로 살아가는 것. 그렇지 못할 때 식민사관도 자리 잡고, 노예근성도 생기며, 스스로 열등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비극이 장기화 되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가진 지적열정과 교육열, 타고난 우수함은 당시 여행에서 목격한 시골구석 가난한 집마다 책이 있는 것으로 입증이 되기도 하고, 연해주나 해외에서 살아나는 동포들로 인해 질긴 생명력 개척정신 또한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거짓말과 속임수, 뻔뻔스러움은 '없는 자'의 기질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가지지 않은 자'가 '많이 가진 자'보다 더 순수하고 고상할 때가 많다.(중간 생략) 오페르트의 관찰에 의하면 나라는 쇄국을 했지만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한국인의 생활규범은 엄격했다. 도둑질과 간통은 죄악시 되었고 강도는 특히 엄한 처벌을 받았다. 서양인들이 중국이나 일본을 여행할 때에는 누군가가 까닭 없이 급습하는 일을 당하곤 했지만, 한국은 그 어느 곳을 여행해도 그런 경험을 할 수가 없었다. - p72~7]

그러나 정말 자랑스럽고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는 것은 이런 점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바로 떠오른 한 가지는 광주의거 때 당시의 광주시내의 안정 질서였다. 어디 점포 유리창 하나 깨진 곳도 없을 정도였고, 무법지대의 치안부재 시 일어나는 불미한 일들도 없었다. 흔히 치안 질서의 상징이라는 경찰과 군인의 개입 없이도 집단적인 동의로 지켜진 질서, 그것이야말로 외신이나 바깥의 누구도 믿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민족성에서 나오는 것들이었다.

정말 아쉬운 점은 시대가 흐르면서 계속적으로 그들을 향해 북한의 사주니 폭동의 무리라느니 왜곡하는 같은 민족의 후안무치한 모략으로 그 높은 정신이 시들어간다는 점이다. 이제 누가 다시 그 같은 상황이 온다면 그때처럼 하나 되어 당연한 듯 질서를 유지할까 우려스럽다. 그 노력과 선의가 짓밟힐 것이라는 빤한 예상 앞에서 말이다.

이 성향을 저자는 '냉정과 정열'사이, 혹은 두 가지를 다 가진 민족성이라고 표현했다. 물이 100도까지 잠잠하다 100도가 되는 순간 갑자기 펄펄 끓어오르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보았다. 참다가 한계점에서 욱! 하고 터져버리는 성격. 논리적 설명이 필요 없이 혈관 속에서 끄덕이는 공감대가 말해준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나는 지도자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엄격한 감시와 국민들에 대한 관대하며 일관된 정직한 통치가 지도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더라면 한국 사람들은 훌륭한 민족으로 육성되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 p84]

지금 이 시대에도 딱 맞을 이 멋진 말이 우리가 가진 냉정과 정열, 합리적 순종과 자유로운 정의감을 말해 준다. 정작 이 정확한 평가를 한 사람이 미국외교관 '윌리엄 샌즈' 라는 외국인이라는 게 아쉽다. 더 아쉬운 건 우리 땅의 지도자와 국민 중에도 이 사실을 모를 뿐 아니라 점점 그릇된 흐름으로 몰아간다는 게 비극이지만.

["한국이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 이유는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경쟁"때문이었다. 일본과 러시아가 한국을 집어 삼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유럽 국가들은 일본과 러시아의 경쟁을 막기는커녕, 그 속에 뛰어들어 경쟁을 부추기고 있었다. - p159]

또 하나, 구한국 시대와 지금 시대가 공통으로 당면한 한계를 느낀 대목은 이랬다. 샌즈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살아남는 길은 '중립화'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한국의 중립화를 위해 행정 개선, 교육진작 등 진보와 개혁적인 정책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일본의 무조건적인 반대와 세계열강의 고문관들에게 '악랄한 음모'로까지 간주되면서 끝이 나버렸다.

이 논리는 지금 시대도 별 다름이 없어 보인다. 각 분야, 각 기관마다의 개혁은 이익과 유지를 위한 세력들에게 씨도 먹히지 않고, 심지어 빨갱이나 이익추구를 위한 모리배쯤으로 몰리면서 물거품이 되어 간다. 세월이 흘러도 강자들의 깽판을 통한 욕심 채우기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서글프게도, 언제나 '선의'는 '악의'를 물리치고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일까? 영원히?

커즌은 일본의 근대화가 자발적인 한국의 근대화 광무개혁을 오히려 가로막았다고 보았다. 차라리 가만두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까지 보았다. 일본은 오로지 한국을 병참기지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근대화를 말했던 것이다. 그때의 근대화 명분은 지금은 부자 되는 경제 명분으로 지배적 권력들이 사용한다.

그때는 일본이 그 역할을 했고, 지금은 그 시대의 민족반역자들, 또는 그 후손이나 동조자들이 그 일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대표적으로 그 사례가 되고도 남는다. 힘을 사용하여 잘 살게 해준다는 명분을 내걸고 온갖 정의와 가치관들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자신들의 욕구 충족과 유지를 위해서, 차라리 가만두면 더 나을 지도 모르는 일들을.

[샌즈가 본 일본인들은 문관을 양성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외교는 아직도 '무사들의 외교'였다. - p289]

지금도 '무사의 외교'는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배역만 바뀌었고, 명분만 바뀌었을 뿐. 매켄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터무니없는 선전에 오염된 사람들은 '한국인이 열등민족이어서 자치를 하기 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이 서구문명과 접촉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러한 비난이 거짓이라는 것은 이미 분명해졌다. - p302]

지금 그 당시의 일본이 한 역할을 하는 내부의 권력자들은 쥐어 잡은 미디어와 공공기관들을 끝없이 활용하여 선전을 한다. 기어이 진보와 민주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열등민족'이나 '자치'를 하기 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로 만들어가고 있다. 많은 단순한 사람들이 그 선전에 혹하고, 또는 자신들의 이익에 결부하여 그 인식을 동조 하고 있다. 그래서 구한말에 한국인이 오래도록 희생되고 일어서지 못했던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제 한국인, 한국인의 기질과 구한국의 역사적 그늘이 두 갈래의 다른 이야기처럼 흘러오다가 드디어 하나의 바다에서 만나듯 끝을 맺는다. 그 지나간 구한말의 누명과 선전을 걷어치우고 바로 잡는데 큰 뿌리가 되었던 것이 바로 한국인, 한국인의 기질이었다고 본다.

이제 지금의 어두움과 빗나가는 선전들이 바로 잡히고 제대로 빛을 볼 가능성도 역시 한국인, 한국인만의 기질에서 오지 않을까? 역사 속에 나타났던 그 장점들 말이다.

한국인은 '높은 곳에서 외줄타기 하는 예술인!'같다. 줄은 높을수록 위기감이 강해지고, 성공할수록 박수도 많아진다. 반대로 줄이 낮을수록 위험은 없어지고 안전해진다. 당연히 거기에는 냉정과 정열도 별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높은 곳으로 줄을 매야만 직성이 풀리는 근성을 가진 민족이다. 이것은 뒤집어서 말하면 그 반대쪽, 떨어질 위험도 그만큼 많아지고, 그래서 쓸데없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비난의 여지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아래 부분의 글을 지금 이 땅에서 '한국 속의 일본'으로 존재하는 부류들에게 주고 싶다. 역사는 불행도 반복하지만, 희망과 결과도 반복한다는 것으로!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성격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끈질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한국인들이 겉으로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 밑바닥에는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단호한 정신력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동화하는데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민족성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매켄지) - p311]

덧붙이는 글 | '새로운 역사책 읽고 일본 가자' 공모 응모글입니다.



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지음, 예옥(2013)


태그:#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한국인, #구한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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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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