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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왕의 딸 수백향>. 오른쪽이 수백향(서현진 분).
 <제왕의 딸 수백향>. 오른쪽이 수백향(서현진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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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첫 방송을 탄 MBC 일일 연속극 <제왕의 딸 수백향>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생존한 수백향(手白香, 일본명 다시라카)을 다룬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 왕족이라고 기록된 수백향을 이 드라마에서는 백제 무령왕의 공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을 잠재우고자 제작진은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주인공의 한자 이름을 수백향(手白香)이 아닌 수백향(守百香)으로 표시해 놓았다. 일본 역사서의 수백향과 다른 인물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이와 더불어 제작진은 '역사왜곡은 없을 것'이라는 의지도 천명했다. 일본인 수백향과 무관한 백제인 수백향을 새롭게 상상해 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고대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따르면, 수백향은 일본 제24대 인현왕(일본명 닌켄 덴노)의 공주이자 제25대 무열왕(부레쓰 덴노)의 누이이며 제26대 계체왕(게이타이 덴노)의 정실부인이다. 계체왕은 선왕인 무열왕의 직계 후손이 아니다. 무열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했기 때문에 방계 왕족인 그가 백제의 지원으로 왕이 된 것이다. 왕이 된 뒤 그는 수백향을 왕비로 맞이했다.

참고로, 고대 일본의 군주 칭호는 천황이 아니라 왕이었다. 왕보다 높은 대왕이란 칭호가 나온 것은 서기 6세기이고, 대왕보다 높은 천황이란 칭호가 나온 것은 서기 7세기 후반이다. <고사기>나 <일본서기>에서는 초대 천황이 기원전 7세기에 출현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후대 역사가들이 이전의 왕이나 대왕을 천황으로 표기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수백향이 무령왕의 공주라는 이야기는 어느 나라의 역사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순전히 역사 해석에 의해 나온 이야기다. 역사학자 문정창이 집필한 <일본상고사>가 이야기의 출처다. 문정창은 1970년에 펴낸 이 책에서 수백향이 백제인임을 증명하고자 크게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문정창은 '계체왕이 수백향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하는 과정에서 수백향의 국적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이미 기혼자였던 계체왕은 백제의 지원으로 왕이 된 뒤 제사의식이라는 성스런 절차를 거쳐 수백향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했다. 그러자 기존의 정실부인은 수백향에게 안방을 내주었다. 이런 점을 보면, 수백향이 백제 왕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정창의 주장이다.

둘째, 문정창은 '<일본서기>에서 계체왕과 수백향의 부부생활을 수교우내(修敎于內)라는 글자로 표현한 사실에서도 수백향의 국적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수교우내는 속국 왕과 상국(上國) 공주의 부부생활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셋째, 문정창은 '수백향이 낳은 태자의 이름이 천국배개광정(天國排開廣庭)이라는 사실에서도 수백향의 국적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천국배개'를 말 그대로 풀이하면 '천국 즉 상국이 밀어주다'란 뜻이 되므로 태자가 백제 왕실의 외손자일 것이라는 게 문정창의 추리다.

이런 근거들을 제시한 뒤 문정창은 "현행 <일본서기>는 이러한 사실(수백향이 백제 왕족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 수백향을 인현왕의 제3녀로 만들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수백향이 백제인이라는 문헌상의 근거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틀림없는 백제 공주로 보인다는 것이다. 

수백향이 백제공주라 단정할 수 없다

  일본에서 수백향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는 서전총고분. 일본 나라현 덴리시에 있다.
 일본에서 수백향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는 서전총고분. 일본 나라현 덴리시에 있다.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일본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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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창이 제시한 근거 중에서 첫 번째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이미 결혼한 사람이 외국의 결정적 지원으로 왕이 되자마자 전처를 몰아내고 재혼했다면, 새로운 부인은 그 외국의 여인일 가능성이 있다. 백제의 지원을 받은 계체왕이 왕이 되자마자 전처를 버리고 수백향과 결혼했다면, 수백향이 백제 공주였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셋째 근거 역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조선이 명나라를 천조(天朝, 상위 정부란 의미)라고 부른 사실에서 나타나듯이, 천조나 천국(天國, 상위 국가란 의미)은 과거 동아시아에서 상국을 지칭할 때 많이 사용되었다. 수백향이 낳은 태자의 이름에 '천국'이란 표현이 들어갔다면, 이 태자가 일본의 상국인 백제와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첫째 및 셋째 근거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설득력이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추가적인 보강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이 정도만으로는 수백향이 백제공주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한편, 둘째 근거는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수교우내(修敎于內)는 말 그대로 풀이하면 '안에서 왕명을 수행하다'란 뜻이 된다. 하지만 이 표현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아니다. 이것이 왕의 부부생활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이라는 문정창의 주장은 틀리지 않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수교우내라는 행위가 있은 뒤에 계체왕의 태자가 태어났다고 했다. 중국 송나라 때 백과사전인 <태평어람>에서도 수교우내라는 행위가 있은 뒤에 주나라 무왕의 태자가 태어났다고 했다. 이런 점을 보면, 수교우내가 왕의 부부생황을 지칭하는 은유적 표현이라고 판단해도 별 무리가 없다. 

근래에 나온 어떤 책에서는 수교우내를 '왕비가 왕의 지시를 받아 궁궐 사무를 처리하는 것'으로 풀이했지만, <일본서기>나 <태평어람>의 용례를 보면 이것이 왕의 부부생활을 고상하게 표현하는 데 사용됐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에서도 '승은을 입다' 같은 완곡한 용어로 이런 상황을 표현하곤 했다.

새로운 수백향의 모습 어떻게 창조해낼까

그런데 수교우내가 속국 왕과 상국 공주의 부부생활을 표현한다는 문정창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태평어람>에서는 주나라 무왕의 부부생활을 지칭하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했다. 무왕의 왕비는 상국 공주가 아니었다. 그는 무왕의 신하인 강태공의 딸이었다. 따라서 수교우내가 일본 왕과 상국 공주의 부부생활을 표현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문정창이 제시한 근거 중에는 설득력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수백향이 백제 공주였다는 단언을 내리기가 힘들다. 문정창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강력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정창 본인도 나중에는 자기의 주장에 대한 확신이 떨어졌다는 점은 <일본상고사>보다 3년 뒤에 집필한 <일본고대사>에서 은연중에 드러난다. 참고로, <일본고대사>는 문정창이 살아 있을 때인 1973년에 집필되었고, 문정창이 사망한 뒤인 1989년에 발행되었다. <일본고대사> 제1편 12장에서 문정창은 수백향의 국적을 언급하면서 "수백향이라는 귀녀(貴女)가 백제 무령왕의 딸이었음은 나중에 전개된 역사 사실에 의해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라며 모호하게 말했다. 이런 상태에서 수백향을 백제 공주로 설정하는 드라마가 나왔으니,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왕의 딸 수백향> 제작진에서는 수백향의 한자 이름을 바꾸는 한편 '역사왜곡은 없을 것'이라며 시청자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제작진은 일본인 수백향과 관계없이 '백제를 수호했다고 해서 수백(守百)향'인 백제인 수백향의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이 드라마가 역사왜곡 논란을 피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수백향의 모습을 어떻게 창조해낼지 관심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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