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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문학상 수상작 <홍도> 책표지.
 혼불문학상 수상작 <홍도>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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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만난 여자가 자신은 433살이며, 영화감독인 당신이 준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 '정여립'의 손녀라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그 이야기를 믿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당신이 모아둔 정여립에 대한 정보가 담긴 스크랩북을 읽고 난 이후라면? 이 상황은 소설 <홍도>에 나오는 장면이다.

소설 작법에 이런 게 있다.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실제인 양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주인공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고개를 도리질하는 그가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앞뒤가 맞게 그려 나간다면 독자 역시 작가가 이끄는 쪽으로 이야기를 믿어버리게 되는 법이다.

더욱이 이 소설 <홍도>에서처럼 주인공 '홍도'가 우연히 만난 동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할 땐 그녀는 상대방을 제대로 설득해야 한다. 설득하는 과정에서 어설프게 그려내 실패한 작품을 보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럼 <홍도>에서는 어떨까? 동현은 그저 듣는 수동적인 인물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 그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웃음소리로 그를 설레게 하는' 홍도에게 반해 '하마터면 그녀의 입술을 만져버릴 뻔'한 감정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그녀에 대해 궁금해하는 터라 동현은 홍도만큼이나 이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더욱이 그녀가 읊어대는 정여립에 대한 이야기는 함께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면 몰랐을 정도로 세밀하다. '타고난 이야기꾼', '과대망상증 환자'이었던 그녀는 어느새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닌 정여립 손녀로서 그에게 읽히게 된다.

실제로 작가는 "정여립이라는 불운한 혁명가를 홍길동이나 전우치처럼 픽션으로 멋지게 쓰고 싶었"고, "그 이야기를 전달할 사람이 내 주위에 있고 정여립과 연결된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쉽지 않을까"는 생각에 잘 아는 사람인 아내를 참조해 '홍도'라는 인물을 빚어냈다고 밝힌 바 있다.

<홍도>는 퓨전 사극에 환생을 덧댄 최근 유행하는 장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읽다 보면 그 장르만으로는 이 뜨끈뜨끈한 감정은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던 것만큼 김대현 작가가 이야기를 엮는 솜씨는 탁월하다. 시대를 앞서간 불운한 정치가(정여립)의 "사람은 귀하고 천함이 없다"는 정신을 '사랑', '인연'이라는 인간 보편의 감정과 엮어내며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겠다는 그의 의도는 성공적인 듯싶다.

홍도에게 있어 자치기는 처음에는 '천것'이었으나 왜구가 조선을 침범해 홍도를 위협할 적에는 그녀는 지켜 주는 '오라버니'였으며 다시 만났을 때는 '정인'이었다. '정주옹주' 역시 처음에 홍도에게 있어 감히 얼굴을 쳐다보지 못할 정도의 '조선의 공주'였으나 홍도가 자신의 아버지의 원수임을 안 이후에는 정주옹주는 '천것'이 되었다. 홍도가 머리를 써 왜구에게 잡힌 그녀의 신분과 자신의 신분을 바꿔치기 했기 때문이다. 조선에 들이닥친 왜구들은 조선 팔도에 뿌리박혀있던 신분제도 따위는 무력화시킨다.

예상과는 달리 환생이라는 소재는 김대현 작가가 소설 <홍도>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환생'을 그저 기법으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환생'은 인연이라는 무엇인가를 곱씹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을 주기도 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홍도가 살아온 힘은 인연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 낳아준 부모님/가족과의 인연, 친구와의 인연. 이것들이 이어졌기에 400년이란 세월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

이는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그 실체를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홍도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홍도와 동현에게 주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독자가 그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기에 알아보기는 어렵다. 그만큼 홍도와 그에게 점차 빨려 들어가는 동현의 심리 상태를 그려내는 작가의 말솜씨에 동현이 그녀를 꼬시는 데 성공할까 말까에 신경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가 한 번에 쭉 써내려간 다음 대목을 보면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해진다.

"홍도와 자치기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서 첫 정을 나누는 장면이 그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써내려가서 지금 다시 봐도 나도 의아할 정도다. 이 부분은 퇴고할 때도 고치지 않았다."

주인공 '홍도'의 이름은 정여립이 세상을 넓게 보라는 의미에서 당나라 여류 시인 설도의 자 홍도를 붙여준 것이다. 작가가 말하듯 '홍도'의 파란만장한 삶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파란만장한 삶 한 켠에는 그녀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함께했기에 그녀는 죽지 않고 433년이나 살아왔던 것이다.

작가는 홍도의 '절절함'을 작품 전체를 통해 보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과는 달리 건강하고 긍정적이며 역동적인 그 감정의 실체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홍도> (김대현 씀 | 다산책방 | 2013.09. | 1만3800원)

블로그, SNS에도 올려 놓았습니다.



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다산책방(2013)


태그:#혼불문학상 수상작, #다산책방, #김대현, #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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