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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들의 전시회'를 안내하며 작품을 해설하는 자원봉사자 존. 그는 20년 전 특수강도 혐의로 체포되어 18년 형을 선고받아 10년을 복역했다. 동화작가가 된 존의 첫 동화책이 12월에 출간된다.
 '죄수들의 전시회'를 안내하며 작품을 해설하는 자원봉사자 존. 그는 20년 전 특수강도 혐의로 체포되어 18년 형을 선고받아 10년을 복역했다. 동화작가가 된 존의 첫 동화책이 12월에 출간된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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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철학자 미셀 푸코가 갈파했듯이 감옥은 '자유의 박탈'이라는 측면에선 '명백한 논리성'을 갖는다. 범죄자가 저지른 사회적 피해만큼 가두고, 이 구금의 시간을 형벌로 환치해서 금전적으로 계상하는 사회적 논리는 빈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명백한 논리성'이 애초에 의도했던 '개인들의 변화'는 얼마만큼 이뤄지고 있을까. 격리하고 가두어서 '교정'시킬 수 있다는 감옥의 기획 의도는 예나 지금이나 만족할 만한 효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

영국의 경우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 이는 인구 약 6300만 명 가운데 약 8만4000명(2012년 기준). 이들의 교정을 위해 영국 정부는 해마다 재소자 1인당 평균 4만 파운드(한국 돈으로 약 6600만 원)를 쓰고 있다. 그러나 재범률은 70%가 넘는다.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언젠가 사회로 돌아갈 것이 전제된 이들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없는 사람'으로 치고 만다. 어떤 날, 한때 재소자였던 그가 돌아오면 세상은 싸늘하게 응시하고, 구체적으로 멸시하며 '다른 종' 취급을 한다. 감옥이 아닌 세상에서 다시 '차별'이라는 격리를 당하는 것이다. 함께 하고픈 세상 속에서 다시 섬이 되고만 존재들. 재범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존(John, 52)은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 로얄 페스티벌 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9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의 주제는 <강하고 약한 것들의 벙커 The Strength & Vulnerability Bunker>. 놀랍게도 이 전시회는 교도소와 감호시설 등에 갇혀 있는 죄수들이 출품한 회화, 조각, 영상예술, 공예 등 모두 160 작품으로 꾸려져있다.

이 특별한 죄수들의 전시회는 케스틀러 재단(Koestler Trust)이 주최하는 것으로 올해로 만 50회째를 맞았다. 영국의 유명작가이자 언론인인 아더 케스틀러(1905~1983 Arthur Koestler)는 뉴스 편집자였던 데이비드 아스터(David Astor)와 함께 1962년 '케스틀러 상(Koestler Awards)'을 만든다.

케스틀러 상에 응모한 7000점의 죄수 작품들

브릭스톤 감옥에 있는 한 죄수가 그린 유화 <댄서들>.
 브릭스톤 감옥에 있는 한 죄수가 그린 유화 <댄서들>.
ⓒ 케스틀러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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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스틀러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영국의 한 신문 특파원으로 잠입했다가 프랑코 정권이 체포해 감옥살이를 한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 휘하에 들어간 프랑스에 잠입했다가 또 체포되었다. 두 번의 체포와 구금의 경험은 훗날 케스틀러가 갇힌 자들을 위한 잔치인 '케스틀러 상'을 마련한 배경이 되었다.

올해도 영국 안팎의 여러 수감시설에 갇혀 있는 이들이 7000점의 작품을 '케스틀러 상'에 응모했다. 로얄 페스티벌 홀에 전시되고 있는 160점의 작품은 이 가운데서 추려진 것이다. 이 작품들은 오는 12월 1일까지 전시되고, 각계의 예술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 가운데 대상과 금상, 은상, 동상 등 수상작을 결정한다. 작게는 20파운드에서 많게는 100파운드까지 총 3만 파운드(한화 약 5200만 원)가 상금으로 걸려 있다.

존은 이 전시회에서 안내와 작품해설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자원봉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어서 주최 측은 자원봉사를 신청한 이들 중에서 예술에 대한 소양이 있는 이들을 골라 전시회에 배치하고 있다. 올해는 모두 71명이 신청해서 존을 포함한 8명만이 자원봉사자로 선정됐다.

존은 "내가 이 의미있는 전시회의 자원봉사자로 뽑혔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금은 구김살 하나 없는 미소가 매력적인 중년의 사내지만 한때 존은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죄수였다. 존은 20년 전 특수강도 혐의로 체포되어 법정에서 18년 형을 선고받았다.

1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모범수로 가석방된 존. 그는 "내가 감옥살이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죄를 짓고 갇힌 사람들의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 그리고 가슴 속에 있는 그 어떤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화작가가 된 존은 12월에 첫 동화책을 출간한다. 존이 한 작품 앞에 섰다.

소년원에 있는 한 소년수가 함께 살던 할아버지를 그린 작품.
 소년원에 있는 한 소년수가 함께 살던 할아버지를 그린 작품.
ⓒ 전시작품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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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해설하고 있는 존 뒤로 한 수감자가 쓴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난 그 짓을 하지 않았다"는 글이 선명하다.
 작품을 해설하고 있는 존 뒤로 한 수감자가 쓴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난 그 짓을 하지 않았다"는 글이 선명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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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아직 소년원에 있는 한 10대가 그린 것인데 자신의 할아버지를 그린 작품이에요. 이 소년수는 어려서 부모와 헤어져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지 멀리 있는 할아버지를 이렇게 세밀하게 그렸어요.

갇혀 있는 모든 죄수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죄수들은 자신만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면서 잘못된 생각을 고쳐갈 수 있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죄수들의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서 죄수에 대한 생각도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존의 설명에 노(老) 부부는 귀를 기울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부부는 지난해에도 이 전시회에 와 작품을 구입했다. 이들의 작품 구입비는 케스틀러 재단의 기금으로 쓰인다. 재단은 이 돈으로 갇힌 자들을 위한 여러 사업을 또 진행할 것이다. 아름다운 피드백(feedback)이다.

존이 새로운 관람객에게 인사를 하는 어깨너머로 <댄서들>이란 제목의 유화가 세상 밖으로 나와 춤을 춘다. 이 그림은 브릭스톤 감옥에 있는 한 죄수가 그린 것이다. 그는 "댄서의 눈과 발에서 '샘솟는 기쁨'이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고 소개했다.

교정(敎正)이든 교화(敎化)든 궁극의 목적은 선의를 품고 함께 어울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계몽과 선교보다 교호(交互)가 절실한 까닭이다. 갇힌 자들과 그들을 가둔 세상이 미리 만나 어울리는 다양한 자리, 어디 없을까. 템즈강 바람을 타고 대형 바람개비가 시원하게 돌아갔다.

'죄수들의 전시회'가 열리는 로얄 페스티벌 홀 바로 옆 건물인 퀸 엘리자베 홀 옥상에 설치된 바람개비가 템즈강 바람을 타고 돌아가고 있다.
 '죄수들의 전시회'가 열리는 로얄 페스티벌 홀 바로 옆 건물인 퀸 엘리자베 홀 옥상에 설치된 바람개비가 템즈강 바람을 타고 돌아가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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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감옥, #소년원, #범죄율, #전시회,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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