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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일심회 사건과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폭력사태를 거쳐 최근 '이석기 사태'(내란음모 의혹)까지 터지면서 진보운동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 이석기 사태를 진보운동의 위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진보운동에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진보운동은 이석기 사태에서 무엇을 성찰하고 얻어야 하나? <오마이뉴스>는 보수와 진보진영 등에서 활동해온 인사들과 연쇄인터뷰를 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김기식 민주당 의원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석기 사태'에 대해 "사법적 평가와 정치적 평가는 명확히 달라야 한다고 본다. 이것을 사법처리하는 데서는 엄밀한 사법적 잣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국정원이 가진 의도, 내란음모죄로 부풀린 것,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리면서 여론재판으로 몰고간 것 등은 비판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석기 사태'에 대해 "사법적 평가와 정치적 평가는 명확히 달라야 한다고 본다. 이것을 사법처리하는 데서는 엄밀한 사법적 잣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국정원이 가진 의도, 내란음모죄로 부풀린 것,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리면서 여론재판으로 몰고간 것 등은 비판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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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서울대 구학련(구국학생연맹) 출신이다. 1986년 결성된 구학련은 자민투(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의 비공개 학생운동조직이었다. 공안당국에서는 구학련을 '주체사상파' 혹은 '김일성주의조직'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핵심 지도부에 있었던 김영환(<강철서신>의 저자)씨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NL 비주사'로 정리됐다.

"녹취록에 폐쇄적 신념집단의 경향이 엿보인다"

▲ 김기식 "국정원 의도를 이유로 정치적 비판을 유보해선 안돼" 김기식 민주당 의원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석기 사태'에 대해 "국정원 의도를 이유로 정치적 비판을 유보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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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국회의원실에서 만난 김 의원은 "그 이전까지 학생운동이 민주주의와 계급 모순 문제에 천착했다면 자민투와 구학련은 민족문제를 한국사회 3대문제의 하나로 끌어올렸다"며 "구학련의 대부분은 계급 모순과 함께 민족 모순을 한국사회 주요 모순으로 인정했지만 주사파는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NL 비주사파'이긴 하지만 학생운동 시절 분단과 통일 등 '민족 모순'에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김 의원에게 이석기 사태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는 "솔직히 황당했다"며 "30년 전에나 했을 법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전쟁이 임박했다'는 현실인식이 제일 황당했다. 80년대에 '혁명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문구가 매년 반복됐듯이 말이다. 이것은 아주 극단화된 주관적 정세인식이다. 솔직히 무슨 골목대장 같은 모습이다.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서와 인식체계를 가진 사람들 안에서 마치 골목대장 노릇하는 것처럼 보였다. 국민들도 그렇게 보지 않았을까?"

김 의원은 "NL그룹 안에서도 주사적 경향은 소수화되고 주사파랑 선긋고 민족 모순의 문제의식만 가진 운동들이 나타났다"며 "오히려 그런 것에 영향을 받았던 비수도권 지역, 학생운동의 메이저 대학이 아닌 대학에서 그런 세력들이 성장해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때도 소위 주체사상 관련 문건이 돌아다녔다. 그때 가장 놀란 것은 수령론에 관한 거였다. 하지만 사회과학 공부를 했던 운동권 처지에서 보면 수령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서울대 운동권에서는 주사파 문제가 빠른 시간 내에 대중적으로 정리됐다. 사회과학적 학습과 훈련이 된 이들에게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슨 종교도 아니고…. 그래서 (NL주사파와는 다른) '관악 자주파'라는 정파가 생겨난 거다."

5·12 합정동 모임 녹취록은 이들이 80년대 운동권의 폐쇄적 조직문화를 여전히 유지해왔음을 보여준다. '지하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김 의원은 일본의 '전공투'를 떠올렸다. 전공투란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의 줄임말로, 1968년부터 1969년까지 도쿄대 등 일본의 각 대학 학생들이 만든 공동투쟁조직을 가리킨다. 이들은 도쿄대 야스다 강당 점거, 대학 해체 주장 등으로 인해 일본 공산당과도 대립했다.

"일본 전공투 몰락 과정에서도 나타났지만, 특정한 조직이 대중적 기반이 약화되고 폐쇄적 신념이 집단화되면 그 내부 성향이 더욱 극단화된다. 또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더 강한 카리스마를 요구한다. 북한 수령론과 같은 지도자 중심적 사고를 하거나 다른 견해나 반론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비상식적 정서나 문화가 폐쇄적 신념집단 안에서 나타나는 거다. 이런 것이 사이비 종교집단이나 극단적 테러집단으로 나타나지 않나? 이석기 그룹은 그런 정도로까지 안 간 걸로 보이지만, 녹취록 발언자들에게서 사회적 소통과 단절된 폐쇄적 신념집단의 경향이 엿보인다."

"그들의 문제가 진영논리에 의해 은폐됐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3년 동안 내사해오다가 국정원 개혁이 전면에 제기된 시점에 이 사건을 터트린 데는 정치적 의도가 분명하지만 저쪽(국정원 등)의 의도를 이유로 내부의 정치적 비판을 유보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3년 동안 내사해오다가 국정원 개혁이 전면에 제기된 시점에 이 사건을 터트린 데는 정치적 의도가 분명하지만 저쪽(국정원 등)의 의도를 이유로 내부의 정치적 비판을 유보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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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민주화 이후 2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런 낡은 흔적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의원은 "조직 내부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그런 정서와 문화가 유지돼온 측면이 있다"고 풀이했다.

"식민지 통치 하에서나 극단적 독재상황에서는 대체로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세력 내부가 극단적인 억압상태에 있기 때문에 일반조직보다 훨씬 강한 내적 신념구조를 조직 안에서 구현한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운동이 합법화되고 대중화되면 정당이나 NGO 형태로 변하게 마련인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과거 정파조직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정서와 문화가 작용한 것 아닌가 싶다."

김 의원은 "북한의 주체사상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유지 수단, 즉 주민들을 묶어두고 절대적 충성을 얻기 위한 걸로 쓰인 것처럼 (이석기 그룹도) 조직 안에서 북한을 극단적으로 왜곡해서 바라보는 인식을  권력유지 수단으로 유지해왔다"며 "북한의 수령론이 그 조직 안에서도 관철된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석기 그룹 같은 조직이 국회의원을 낼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유지해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 김 의원의 생각이다.

"그들 내부 관계가 강하게 유지되고, 세력이 확장될 수 있었던 데에는 물적 기반이 있었던 것 같다. 물적 기반 확보가 갖는 힘과 효용성을 다른 어떤 조직보다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접근한 측면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즉 구성원들의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물적 기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또 문제가 있었음에도 그것이 진영논리에 의해 은폐되면서 대중적, 정치적 평가대상에서 면제돼온 것도 조직 유지와 확장의 한 가지 요인이라고 본다."

이어 김 의원은 단호한 목소리로 "그들은 진보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특정사고와 이념을 절대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것(특정사고와 이념 등)을 상대적 평가의 장 위에 올려놨어야 했다"며 "하지만 진영논리로 대중적, 정치적 평가의 도마 위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구성원이나 그들에게 영향받는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정당과 국회의원은 헌법 체계 안에서 활동해야"

특히 김 의원은 이석기 사태가 이전의 다른 공안사건들과 달리 대중적 지지효과가 낮다는 현실에 주목했다. 그는 "이번 사안이 과거 공안사건과 달리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판적 진보지식인 사회나 민주진보진영, 운동사회에서 과거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것이 사건 내용에 의한 충격 때문이 아니라 헌법적 체계 안에 있는 정당, 국회의원과 연관된 사건이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일반 국민이 좌파적 사고를 갖고 있든, 극우적 사고를 갖고 있든 국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거나 사법적으로 처벌할 문제가 아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국가주의다'라고 한다. 물론 국기에 맹세하는 나라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일반 국민이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정당이나 국회의원은 대한민국이라는 헌법 틀 안에서 활동하는 걸 전제했기 때문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야 한다. 제가 시민단체 활동가였다면 일상적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인 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전제조건 위에서 정당을 조직하고, 국회의원을 하는 거다."

김 의원은 "그런 정당 안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라며 이석기 사태 직후 정의당에서도 제기한 '헌법 안 진보'를 거듭 강조했다.

"헌법이 보호하는 조직은 딱 두 개밖에 없다. 정당과 노조다. 그렇게 헌법이 보호해주고 있는 정당을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그것을 통해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면 헌법상 기본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전제된 위에서만 정당과 국회의원이 존립할 수 있다. 이건 명백하다. 머릿속에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으나 국회의원이고 정당인 한에서는 헌법 체계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

김 의원은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 헌법은 그 자체로 진보적이다"라며 "상식적인 그리고 대다수 진보주의자들이 지향하는 가치나 정책을 실현하는 데 우리 헌법이 전혀 걸림돌이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해석상 다툼이 있을지 몰라도 헌법의 명시적 조항이 진보적 가치와 정책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안된다"는 것이다.

"국정원 의도를 이유로 정치적 비판을 유보해선 안돼"

이어 김 의원은 "이정희 대표가 '농담이었다'고 하는 등 이 사안에 대응하는 통합진보당의 태도 때문에 비판과 실망이 증폭됐다"며 "진영논리에 기대서 자기들을 방어하려고 하니까 그렇게 대응했고, 그래서 대중은 물론이고 비판적 지식인 사회의 반응이 싸늘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이것이 사법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엄정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도 사법적 평가와 정치적 평가는 명확히 달라야 한다고 본다. 이것을 사법처리 하는 데서는 엄밀한 사법적 잣대가 있어야 한다. 마녀사냥 하듯이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국정원이 가진 의도, 내란음모죄로 부풀린 것,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리면서 여론재판으로 몰고간 것 등은 비판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내부 모임에서 이루어진 행위들과 말들에는 엄정한 정치적 평가와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김 의원은 "일반 공안사건과 똑같은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 대중은 고사하고 운동진영 안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정당과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라며 "그 차이를 통합진보당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상의 자유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사법적 문제는 별개이고, 이런 행위들을 정치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내 사상의 자유인데 왜 비판하냐?'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사상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사법적 평가와 정치적 평가를 혼재해서 얘기하면 안된다. 오히려 지금까지 진영논리 때문에 비판할 걸 비판하지 못해서 이 지경까지 왔다."

김 의원은 "정당과 국회의원이 연루된 사건인데도 일반 공안사건처럼 대응하는 것은 국민들이 못받아들인다"라며 "사법적 판단은 사법적 잣대로 하더라도 정치적 평가와 비판은 명확하게 해주는 게 전체 진보를 위해서 좋은 거다"라고 강조했다.

"3년 동안 내사해오다가 국정원 개혁이 전면에 제기된 시점에 이 사건을 터트린 데는 정치적 의도가 분명하다. 또 보수성향 법률가들조차 지적하듯 적어도 내란음모죄를 주장할 만한 범죄적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몰아쳤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저쪽의 정치적 의도를 이유로 이쪽 민주진보진영 내부에서 '우리 내부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는 진영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러한 진영논리가 지난 10여 년간 지속돼 왔다. 그것 때문에 당연히 성찰해서 정리해야 할 문제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저쪽(국정원 등)의 의도를 이유로 내부의 정치적 비판을 유보하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김 의원은 "우리 사회에서 국정원과 극단적인 종북세력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유지해온 적대적 공생관계와 비슷한 형태로 남아 있다"며 "이제 이런 양극단의 적대적 공생을 청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내적 성찰을 상실한 진보는 진보의 탈을 쓴 보수"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시민사회와 지식인사회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비판과 성찰 기능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시민사회와 지식인사회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비판과 성찰 기능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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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통합진보당은 자체조사를 통해 진상을 파악하고도 조치를 못하고, 이상규 의원조차 '나도 모르는데 나는 6두품인가 보다'라고 말할 정도 정상의 기능을 상실했다"며 "통합진보당 내부에서 어떻게 자기혁신을 이루어내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극단적인 소수 운동그룹의 대중적, 정치적 평가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보고, 이제는 그런 것들이 진보를 한층 더 성숙시키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하길 바란다"며 진보진영에 이렇게 주문했다.

"사실 이석기 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보면 진보 내부에도 다양한 성찰지점들이 있다. 예를 들면,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늘 이러저러한 비판과 성찰이 제기됐다가 자본이나 정부가 보여주는 행태를 이유로 덮어져온 측면이 있다. 여기에 진영논리로 작동했다. 진보의 장점은 끊임없이 내적 성찰을 해내는 것이다. 내적 성찰과 자정능력을 상실한 진보는 진보의 탈을 쓴 보수집단이다. 진보는 모든 것을 상대화한다면 보수는 무엇을 절대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의 자유로운 비판정신과 성찰, 자정능력을 진보진영 전체에 걸쳐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노동, 시민사회, 정당 등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이를 통해 진보를 더욱 성숙시키고, 국민의 이해와 지지기반을 얻어야 한다."

김 의원은 "진보는 모든 것이 다 비판과 성찰 대상이라는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민사회와 지식인사회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비판과 성찰 기능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발상 진보'를 강조했다.

"2006년 통과된 비정규직법을 '비정규직 양산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객관적인 것은 그 법에 의해 3분의 1은 정규직이 되고, 나머지 3분의 1은 무기계약직이 됐다. 이게 비정규직 양산인가? 아주 도그마적인 경향이 있다. 정치적, 운동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비정규직 전면 철폐' 등을 습관적으로 주장하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무기계약직이라도 만들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이 '진보가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는구나' 하지 않겠나?"

김기식 의원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박원순 현 서울시장 등과 함께 진보적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연대'를 만들어 사무처장과 정책실장, 정책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후 미국에 건너가 스탠포드대에서 1년 수학한 뒤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이 연합정당과 복지동맹으로 연대하는 '빅텐트론'을 주창했다. 시민정치운동단체인 '시민정치행동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로 활동한 뒤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인터뷰 어록] "정당과 국회의원을 의미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돼"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표결하던 날 오병윤 통합진보당 원내대표가 이렇게 말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국민 여러분, 죄송하다. 우리 당원들이 포함된 모임에서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 있어서 죄송하다. 당 차원에서 조사해서 헌법상 보호받는 공당으로서 부적절한 일이 있었다면 엄중하게 조치하겠다. 죄송하다. 하지만 이게 내란음모는 아니지 않나? 내란음모라며 사법적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온당한가? 국정원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뻥튀기 수사 아닌가?' 아마도 반대표나 기권표가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끌어와 '이번 사건은 신군부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뒤 그것을 덮기 위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한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공당의 원내대표가 한 마디 사과없이 이렇게 말한 건 너무하다는 것이다."

"저는 국보법 폐지론자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일반인들이 그런 모임을 했다고 하면 정치적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사법적 처리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그러나 정당과 국회의원이 그런 인식하에서 활동했다면 그것은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 정당과 국회의원을 아무 의미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걸 사법처리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걸로 영향받을 국민이 어디 있나?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그러면 안된다. 사람이 가진 사회적, 정치적 지위에 따라서 져야 할 정치적 부담도 다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정당과 정치인에게는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게 맞다. 예전에 이정희 대표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하니까 '말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 생각을 말하라고 강요받는 것 자체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거다. 민간 개인은 말을 안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정당과 정치인은 국민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답을 못하면 자신이 말을 못한 것을 정치적으로 평가한 것을 수용해야 한다. '저 친구는 민감하다고 말을 안하네. 소신이 없네'라고 비판해도 저는 할 말이 없다. 그게 정치인이다."

"북한 체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3대 세습도 용인할 수 없고, 독재정권인 것도 맞다. 체제경쟁도 끝났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을 설득하고 대화해서 남북관계를 풀어내 평화를 이뤄내야 할 파트너이기도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3대 세습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북한 권력은 실체로 인정하고 대화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북한을 혼란스럽게 인식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아닌가? 다만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가지고 북한 정부를 공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화 파트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인권운동진영에서 가장 경계하는 '인권의 정치적 무기화'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특정국가의 인권법을 제정한 것은 쿠바와 북한이다. 미국의 정치적 목적 하에 적대국가들을 대상으로 제정한 것이다. 다른 수많은 우익 독재국가를 대상으로 한 게 아니다. 미국의 인권법 발상은 인권을 정치적 무기화한 대표적 사례다. 이를 전세계 인권운동가들이 비난했다. 다만 정부가 인권문제를 다룰 때는 신중해야 하지만 시민단체는 일관된 철학과 원칙, 가치로 그것이 누구든 비판해야 한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은 다르다."

"2010년 안식년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윤여준 전 장관이다. 미국에서 안식년을 지내면서 적어도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경쟁하는 구도가 돼야 우리 사회가 정상적 사회로 갈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 보수가 보수 안에서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을까 궁금해서 윤 전 장관을 만났다. 제가 '합리적 보수가 보수의 헤게모니를 잡을 가능성이 있냐?'고 물었더니 윤 전 장관이 1초도 안 걸려 '없다'고 단언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북한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와 같은 적대적 남북관계에서 극단적 반북 이데올로기를 동원하는 극우세력이 보수진영 내부의 헤게모니를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가 합리적 보수로 바뀌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북관계의 변화가 없이는 보수 내부의 변화도 불가능하다고 본 거다."



태그:#김기식, #이석기 사태, #구학련,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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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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