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교양'은 어느새인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필수덕목이 되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겪으면서, 개인은 수 많은 사람과 만나고 집단을 이루게 된다. 그 집단의 무수한 집합이 곧 '사회'일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신의 닮은 점을 발견하고 친해지게 된다. 친구나 직장동료가 되어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사랑에 빠져서 연인이 되거나 결혼하기도 한다. 물론 만남이 항상 좋은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이웃에 살면서 다투기도 하고, 친구와 연인도 싸우면서 화를 낸다. 인간관계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런 일상의 만남과 다툼을 다룬 영화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지난 여름인 2012년 8월에 개봉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이다.

아이끼리의 다툼으로 만나게 된 이웃, 바라던 것은 화해였으나...

 영화 <대학살의 신>의 한 장면. 아이들의 다툼으로 이웃으로 지내던 두 부부가 거실에 모이게 된다.

영화 <대학살의 신>의 한 장면. 아이들의 다툼으로 이웃으로 지내던 두 부부가 거실에 모이게 된다. ⓒ 판씨네마(주)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인 두 부부가 만나게 된다. 그들의 자녀인 11살 재커리가 친구인 이턴에게 막대기를 휘둘러 앞니가 두개나 부러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싸움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재커리의 부모인 코원(크리스토퍼 왈츠)과 낸시(케이트 윈슬렛)가 이턴의 부모인 마이클(존 C.레일리)과 페넬로피(조디 포스터)의 집에 방문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처음에는 매우 보기좋게 일이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가해자 측인 재커리의 부모 코원 부부가 미안함을 전하고, 다친 아들의 부모인 마이클 부부가 "애들이 다 그러면서 자라는거죠"라며 웃으면서 받아넘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난다면 누가 보더라도 훈훈한 이웃사촌의 모습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지점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갈등을 드러낸다.

페넬로피가 자신의 아들을 다치게 한 일을 두고 계속하여 재커리를 깡패 취급하는 발언을 하자 코원은 자극받는다. 급기야 돌아가기 위해 방문을 나서던 중 그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아들이 때렸던 이유는 당신 아들이 따돌리고 고자질했기 때문이라던데요?"라고 응수해 버린다.

자녀를 향한 인신공격에 자존심이 상한 두 부부는 결국 다시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이클네의 거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아이들의 싸움이 점점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진다. 조금전까지 예의와 격식을 갖추면서 손님을 응대하고, 이에 감사를 표하던 양 측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상태. 두 부부는 이내 상대방의 자녀를 모욕하고, 두둔하는 상대방의 태도까지 거칠게 비난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자 드러나는 현대인의 고질병, '편견과 집착'

 영화 <대학살의 신>의 한 장면. 등장인물들은 성인으로서 '지성과 교양'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집착(사회관계를 비유한 스마트폰과 미모를 상징하는 손거울)으로 인해 편견을 갖게 된다.

영화 <대학살의 신>의 한 장면. 등장인물들은 성인으로서 '지성과 교양'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집착(사회관계를 비유한 스마트폰과 미모를 상징하는 손거울)으로 인해 편견을 갖게 된다. ⓒ 판씨네마(주)


이윽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가 서로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다. 진짜 피해자는 자신의 아들이라면서 말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이 속한 '가족'이라는 집단만을 생각하기에 점점 갈등은 깊어진다. 아내인 페넬로피가 이웃집 남자와 언쟁을 하자 남편 마이클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화제를 돌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각자의 일상이 담긴 얘기가 나오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두 가문의 충돌에서 상황은 각자의 신념이 담긴 언행을 마주하게 되면서 더욱 추한 몰골을 드러낸다. 자녀가 키우던 햄스터를 내다버린 얘기가 나오자 윤리적으로 공격하고, 두 남자가 서로의 직업에 대해서 헐뜯으며 우월감을 과시한다.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책을 쓰는 페넬로피가 인권의식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자 남편은 "또 시작이군"하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이에 상황은 또 한번 반전된다. 두 집안 간의 다툼이 부부싸움으로 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네 사람이 각자 다른 이유로 흥분해있는 가운데 남편과 아내는 평소 쌓여있던 감정을 무기삼아 서로를 겨냥하고 쏘아댄다. 이 과정에서 울음이 터지고 몸싸움이 오고간다. 이 부부싸움을 지켜보던 코원 부부는 말리려다가 각자 다른 의견을 말하게 되고, 사태는 남녀갈등으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하여간 남자들은"이라는 말로 시작된 여자들의 도발에 두 남자는 조금전까지 서로와 으르렁대던 상황을 잊은듯이 의기투합하여 대항한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네 사람이 가진 '정체성'과 '신념'이 싸움의 시작을 만들어냈다면, 절정에서는 '편견'과 '집착'이 기름을 끼얹는다. 쉴 새 없이 연합-분열하며 싸움을 하던 네 사람 중 코원 부부가 애지중지하던 스마트폰과 손거울이 망가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두 사람은 집착이라고 할만큼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잃게 되자 이성을 잃고 만다. 이에 말꼬리를 트집잡으며 상대방의 이미지에 대한 편견섞인 불평을 늘어놓는다. 결국 그들의 말다툼은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치닫는다.

지성과 교양을 갖춘 어른? 편견을 가졌다면 야만의 경계에 서있는 셈

 영화 <대학살의 신>의 포스터.

영화 <대학살의 신>의 포스터. ⓒ 판씨네마(주)

80분의 비교적 짧은 상영시간동안 영화는 쉴 새 없는 난타전을 이어간다. 작은 가정집의 거실에서 내용의 대부분이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대학살의 신>은 치밀한 각본이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력을 만난 덕분에 빛을 발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막장'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엉망진창인 네 사람의 언쟁을 보면서 느낀 점은 등장인물 모두가 '일상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네 명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기에 갈등을 일으키지만, 관객은 아마 그들 중 누구에게라도 감정이입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네 사람이 분노를 쏟아내는 거실은 (조금 과장하자면) 이 사회의 축소판인 셈이다. 영화를 보다가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내지르는 어느 캐릭터의 언행에 이유모를 쾌감을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감정이입의 증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믹한 상황으로 연출된 불편한 말싸움으로 <대학살의 신>은 편견이 가득한 현대인을 풍자하는 듯하다. 성인의 나이가 된 이후로 우리는 스스로를 '지성과 교양'을 갖춘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굳어가는 생각과 태도는 본인도 모르게 편견으로 나타나기 쉽고, 그것은 곧 갈등 속에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야만의 경계에 서있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대학살의 신>은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블랙코미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볼 거울이 되어주기도 한다. 성격과 생각이 다른 네 사람을 통해서 관객은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능수능란한 악플러인가, 아니면 세상만사가 좋게 해결되리라 믿는 긍정론자인가? 혹은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진보주의자인가, 아니면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는 염세주의자인가?

기발함으로 무장한 이 영화는 재치있는 대사와 상황전개의 꼼꼼한 만큼이나 영악하면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성숙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 맞느냐고. 답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라. 정말로?

대학살의 신 조디 포스터 크리스토퍼 왈츠 케이트 윈슬렛 존 C 레일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