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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새벽에 나가면서 남긴 메모.
 아들이 새벽에 나가면서 남긴 메모.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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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은 본격적인 삶의 여행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25일 새벽, 아내의 부산한 움직임에 비몽사몽 눈을 떴습니다. 아내는 걱정스런 얼굴로 급히 옷을 갈아입으며 "밖으로 나가는 기척이 있어 아들 방을 봤더니 아들은 없고 메모만 있네"라며 메모를 내밀었습니다.

"아들 학교 일찍 가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새벽 2시. 예전에도 새벽 같이 일어나 1시간 넘게 걸어서 학교에 갔던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아들은 지금 강력한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와 정면으로 마주한 것입니다.

"당신 어딜 가려고?"
"나가서 우리 아들 찾아 봐야 하지 않겠어요?"
"어떻게 찾아. 놔두게. 청소년기 스스로 넘기도록 지켜보는 수밖에."

아내는 기어이 걱정을 안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들 방으로 갔습니다. 이불은 침대에서 몸만 쏙 뺀 상태였습니다. 아들이 남긴 체온을 느끼며, 아무 일 없기만 바랄 뿐이었습니다. 급박했던 지난 2주 동안을 떠올렸습니다.

"아들이 담배 피우다 걸렸대, 가족회의 해야겠어"

"여보, 충격적인 소식이야."

지난 9일, 전화 속 아내 목소리는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놀라움과 충격, 실망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좀처럼 놀라지 않는 상황대처 능력을 지닌 아내를 놀라게 한 소식은 어떤 걸까? 잠시 숨고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내의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

"당신 아들이 담배 피우다 걸렸대. 오늘 저녁 가족회의 좀 해야겠어."

헉.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내가 받은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고 남았습니다. 아내는 '다른 아이도 아닌 내 배 아파가며 낳은 내 새끼가~'했을 것입니다. 평소 "착한 우리 아들~"을 입에 달고 살았기에 배신감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겁니다.

아버지인 저는 한숨과 웃음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의미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가장 무섭다는 중학교 2학년이라지만 착한 아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또 하나는 어리게만 여겼던 아들이 많이 컸군, 하는 거였습니다.

어쨌거나 아내 말처럼 가족회의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자세로 가족회의에 임할 것인가? 마음가짐이 필요했습니다. 자칫하다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담배를 피워?"라고 화낼 게 뻔했습니다. 먼저, 중학교에서 상담 경험이 많은 지인에게 전화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반성문 쓰게 하고, 매일 니코틴 점검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집에서는 담배가 몸에 왜 안 좋은지 등을 교육해. 화내지 말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지인을 찾아 상담했습니다.

"다 큰 우리 아들도 몇 년 전에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담배 몇 번 피웠다고 실토하대. 우리도 그랬잖아. 한때 호기심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니 언제부터 피웠는지부터 파악해."

"어제 계단에서 너한테 담배 냄새 나더라"

지난 추석 연휴 집에서 TV를 보던 중 아들은 제 다리에 머리를 댔고, 딸은 동생 허리에 머리를 올렸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 집에서 TV를 보던 중 아들은 제 다리에 머리를 댔고, 딸은 동생 허리에 머리를 올렸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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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하던 중, 퍼뜩 떠오르는 상황 하나가 있었습니다. 지난 9월 초, 약속시간에 맞춰 나가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승강기 대신 계단으로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한 녀석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고, 2층 계단에 앉아 있는 아들을 만났습니다.

"아들, 거기서 뭐해?"
"잠시 앉아 친구 기다려요."

그런데 아들 옆을 지나가다 담배 냄새를 맡았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 '에이~, 설마~~~'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쪽이 걸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학교 갈 준비 중이던 아들에게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아들, 너 담배 피우냐? 어제 계단에서 너한테 담배 냄새 나더라."
"예?"

아들은 한 마디로 끝. 말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싶었습니다. 아들과 조용히 차분하게 이야기해야 할 사건인데 살짝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그 틈을 비집고 아내가 더 날뛰었습니다.

"아빠가 너 담배 냄새 났다는 소리가 무슨 말이야?"
"아빠가 잘못 맡은 거겠지."

아들 변명은 그럴 듯했습니다. 아빠에게 "담배 끊어요"라고 요구하던 아들이라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다 아들이 학교에서 담배 피우다 적발된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엄청 후회되더군요. 역시, 자녀 교육은 미루지 않고 그 자리서 즉시 하는 게 정답인 것 같습니다.

"몇 주 전부터 호기심으로 담배 피웠어요"

"저녁 7시 가족회의"

문자 메시지로 가족회의가 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내, 중학교 3학년 딸과 셋이 앉았습니다. 아내는 "수십 통이나 전화해도 안 받고, 문자도 씹는다"며 불안해했습니다. 아들이 집에 온 후 이야기하면 될 터인데 겁먹고 늦게 들어오도록 유도한 건 아닌지….

한 살 터울인 딸도 "동생이 담배 피우는 걸 몰랐다"며 "왜 담배를 피웠는지 의아하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밤 9시가 넘자 아들은 누나에게 전화했더군요. 딸은 "집 상황이 어쩐지 살피는 거였다"고 합니다.

밤 10시가 넘자 아들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잠시동안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가족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아들의 항변은 간단했습니다.

"몇 주 전부터 호기심으로 담배 피웠어요. 이제 담배 안 피워요."

아내의 읍소와 딸의 "반성 기미가 없다"는 질책으로 진행되던 가족회의는 아들의 다짐과 더불어 웃음 속에 끝났습니다. 가족이 내린 벌은 학교에서 내린 봉사 명령 10일에 맞춰, 10일간의 핸드폰 압수와 집안 청소, 학교 끝나자마자 즉시 귀가였습니다.

이렇게 아들의 사춘기는 마무리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다음 날에도 10시가 넘어서야 들어왔습니다. 사랑으로 감싼 식구들에게 허탈감을 안겼습니다. 그렇지만 뭐라 할 수 없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쉽사리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아들의 가출과 돌아오겠다는 문자, 그러나...

아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아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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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에서 자고 올게요."

추석 연휴였던 지난 21일 아들은 가족이 내린 사랑스런 징계에도 불구하고 외박을 청했습니다. 딸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며 화를 냈습니다. 아내와 저는 "징계 중인데 외박이라니, 그건 안 된다"며 불허했습니다.

"나 가출할래."

지난 23일 밤, 아들이 잠자리에 들면서 아내에게 불쑥 던진 말입니다. 아내는 "네가 가출하면 이 엄마도 가출할 거야"라며 다독거렸습니다. 심각한 상황임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아들은 지난 24일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학교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문자를 남겼습니다.

"○○○, 학교 안가니? 이건 아니다.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나, 아들!"
"엄마가 애타게 사랑하는 아들을 찾고 이따. 이제 들어오렴. 사랑하는 우리 아들!"

애타게 기다리던 아들의 답은 없었습니다. 딸은 "아빠 힘내. 아빠가 힘이 없으니 나까지 우울하다"고 격려했습니다. 대신 어제 밤(25일)에 엄마에게 답신을 했더군요.

"엄마 내일 학교도 가고, 집에도 갈게요."

다행이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내일 학교에 가고, 집에도 들어올 아들을 생각하니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들의 인생 여행은 부모에게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사건임이 분명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반면교사라더니 정말 그렇더군요.

오늘(26일) 아침, 확인한 결과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어디에서 인생 여행 중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용히 기다림을 넘어 아들의 여행 흔적을 찾아 나설 생각입니다. 그래도 믿음이 있습니다. 아들이 결행한 여행의 뒤끝은 세상을 아름답게 혹은 제대로 바라보는 눈이 생기게 할 것입니다. 우리 아들, 사랑한다!

덧붙이는 글 | '가족이야기 공모'글입니다.



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태그:#아들, #딸, #문자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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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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