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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9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대전충청입니다. [편집자말]
"호루라기를 뭐할라구 걸구 있냐구?"라는 질문에 장터뻥쟁이는 "기별두 읎이 '뻥'하믄 아줌씨들 놀래서 자빠져서 애 떨어질께 비 인자 뻥 허니께 귀구녁 간수혀라! 하는 뜻으루다가 부는 겨" 한다.
▲ 장터뻥쟁이 "호루라기를 뭐할라구 걸구 있냐구?"라는 질문에 장터뻥쟁이는 "기별두 읎이 '뻥'하믄 아줌씨들 놀래서 자빠져서 애 떨어질께 비 인자 뻥 허니께 귀구녁 간수혀라! 하는 뜻으루다가 부는 겨" 한다.
ⓒ 김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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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발 열차 안에서 한바탕 웃었다. 책을 손에 쥐고 낄낄 웃는 모습이 우스운지 곁눈질로 힐끔거리던 옆 좌석 그도 따라 웃었다. 그렇게 우린 서로 다른 이유로 부산역에 도착할 때까지 희희덕거렸다.

바야흐로 지금은 노년시대. '할배와 할매' 열풍이 불고 있다. 티브이엔(TVN) <꽃보다 할배>로 시작된 노년층에 대한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KBS가 파일럿 프로그램이던 <마마도>를 정규 프로그램으로 결정하면서 '노년 예능'이 대세로 굳어지는 듯하다.

입소문 탄 <충청도의 힘>... 웃다가 눈물 난다

출판계에서는 '할배와 할매'의 사소한 일상을 담은 <충청도의 힘>(저자 남덕현/양철북)이 인기다. 저자 남덕현(47)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재한 '충청도 촌동네 할배·할배 이야기'는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타고 입소문이 나면서 책으로 출판됐다. <충청도의 힘>은 귀촌자(저자 남덕현)가 본 시골 마을 노인들의 '사소한' 이야기다.

소재가 같은 <꽃보다 할배><마마도><충청도의 힘>은 시청자와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충청도의 힘>은 웃으며 읽다가 마지막 책장을 넘길 즈음이면 울게 하는 힘도 있다.

대전에서 태어나 19년을 산 뒤, 이후 서울 등에서 살아온 저자 남덕현. 그는 <충청도의 힘>이 "살짝 금이 간 플라스특 병마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충청도의 힘>이 시인 이성복의 말처럼 살짝 금이 간 '플라스틱 병마개'이기를 바란다. 영원히 헛도는 병마개, 그러나 헛돌기에 삶은 영원히 닫히지 않는다. 시인에게는 시가 병마개이고 나에게는 일상의 비루함이 그렇다. 이렇게 살고자 하였으나 저렇게 살고, 저렇게 살고자 하였으나 이렇게 사는 것이 삶이다. 얼마나 많은 성찰과 사유의 반복이 필요할 것이며, 삶은 또 얼마나 지쳐갈 것인가. 닫고 싶으나 동시에 닫히지 않기를 간절히 욕망하는 일상속에서, 불현듯 '헛돌면서' 한가롭고 싶을 때 옆에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 <충청도의 힘> 작가의 말 중에서

지난 11일 <충청도의 힘>의 저자 남덕현씨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로 차를 몰았다. 책을 읽으며 상상한 그의 모습은 언제나 장인어른에게 놀림 받는 '순진한 도시남자'였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를 따라 2킬로미터 남짓 달리자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예상과 달리 눈앞에 나타난 남덕현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쪽머리를 한, 예술가(?) 향기 물씬 풍기는 중년의 사내였다. 대화는 그의 저서처럼 사소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그가 처가의 터전인 '달밭골'에 집을 정착한 것은 작년. 이곳에서 그는 전통방식으로 제철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안심하고 먹을 게 없다"는 이유로 먹거리 장사를 시작했지만 일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젓갈을 담글 때 항아리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충청도의 힘>을 펴낸 저자 남덕현(47)씨, 페이스북에 연재하던 이야기를 묶어서 책으로 출판했다.
▲ "일상은 비루하다" <충청도의 힘>을 펴낸 저자 남덕현(47)씨, 페이스북에 연재하던 이야기를 묶어서 책으로 출판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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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남자에서 '촌놈'으로 변신중인 그에게 대뜸 "시골생활 할 만합니까?"라고 물었다.

"생판 모르는 곳이었으면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 처갓집이고 지난 5년 간 왔다갔다 하면서 맛을 봐서 적응하기 쉬웠다. 장인어른 덕도 봤다. 동네에서 실수를 해도 '뉘집 사우(사위)니까 봐주기'라는 게 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길을 가다 어르신들을 보고 인사를 하면 고분고분 받아주는 경우가 없다. 어르신들이 외면을 한다. 뻘쭘하게... 그러다 다음에 또 뵙고 인사를 하면 그때서야 '누구냐?'는 식으로 쳐다보며 받아준다.

그러다 그 분이 불편할까봐 그 다음 마주칠 때 인사를 안 했는데, 장인어른이 나중에 와서 꼭 이야기를 한다. 도시 마인드로는 합리적이지 않다. 근데 여기는 합리성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인사를 받고 안 받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니가 여기서 잘 살다보면 언젠가 안면 트고 살겠지' 하는 뜻이다."

그 상황이 상상이 돼 서로 잠시 웃었다. 쉽지 않은 시골생활, 남덕현은 왜 그걸 자청했을까. 그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꽃과 나무, 벌레 등에 관심이 많아 나이가 들면 그것들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었다. 두 번째는 <충청도의 힘>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인데, 도시에서는 매일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모두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어쩌다 누군가의 발을 밟아야만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것도 형식적이다.

(도시에는) 나와 내적인 소통을 하지 않는 사람들 뿐이다. 직장생활 등 비즈니스로 만난 사람들도 모두 언어가 갖고 있는 기능에 충실한 말을 할 뿐이다. 확실하고 신속하게, 상대방이 잘 알아듣게 하는 말. 근데 이런 언어에 갇혀 살면서,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곳에서 사는 게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곳에서는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자라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사람들을 보면서, 서로 너무 잘 알고 교류가 깊다."

그는 삶에 대한 오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시골 생활을 결심했다. 언어, 특히 '사투리'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가만 보면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처럼 말을 빨리하거나 의미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충청도 사람들은 음흉스럽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 시골 사람은 다 똑같다. 시간과 공간이 새로운 언어 개념을 만든 것이다.

시골생활이 별 거 있나. 봄에 고추 심고 여름이면 무 심어야 하고, 가을 되면 고추 따고 고구마 캐고, 그러다 보면 겨울이다. 특별할 게 없다. 매일 만나는 옆집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결국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말이 재밌어야 했을 것이다. 거기서 유머가 나왔다고 본다. 매일 보는 사람과 똑같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진짜 충청도의 힘이 뭐냐고?

충청도의 힘(양철북, 2013, 12,000원)
 충청도의 힘(양철북, 2013, 12,000원)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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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사투리를 그대로 활자화한 이유를 물었다. <충청도의 힘>에는 충청도 사투리가 맛깔나게 펼쳐진다.

"현대문학을 보면 글을 전개하는 화자는 항상 표준어를 사용한다. 지역에 상관없이. 그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내가 볼 때 그건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자의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이 현실에 대한 생생한 전달일까?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일상적인 보통의 인간이 문제적 사건에 들어갔을 때 어떤 일어 벌어지는 보고 싶었다. 그래서 책에도 되도록 내 의견을 쓰지 않으려 했다. 만약 시장에 가면 뭘 보고 오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상황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궁금해졌다. 문제의식 없이 바라본 상황을 글로 옮긴 이유가 무엇인지.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시골은 겨울이 되면 밤이 길다. 처음엔 그냥 그날 느꼈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페이스북에) 책 읽은 소감과 사회 이슈에 대한 내 생각을 적었다. 그러다 장인어른과 대화를 하다 보니 그 이야기가 재미있고, 그 속에 뭔가 관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즈음 <충청도의 힘>을 읽으며 궁금했던 걸 물었다. 책에는 마치 노인들이 곁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생생한 대화가 실려 있다.

-  능청스럽다 못해 음흉스럽기까지 한 어르신들의 생생한 대화를 어떻게 담았습니까?
"일단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다 있는 사실이다.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 장인어른이 하는 말을 들어서 쓴 간접체험도 있다. 많은 이들이 '녹취를 하느냐'고 묻는데 전혀 아니다. 몇 가지 단어를 기억한다. 그리고 단어를 가지고 이야기했던 이들을 기억하면서 글을 쓴 것이다."

책에는 어르신들의 능청과 음흉만 있는 게 아니다. 한 세상을 거뜬히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있는 힘과 여유도 물씬 담겼다. 그렇다면 남덕현이 생각하는 '충청도의 힘'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여기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힘이 느껴졌다. 말에도 진심이 묻어난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언제 밥 한 번 먹자'고 말하면 안 믿지만, 이곳 어르신들이 '언제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믿게 된다. 어르신들끼리 서로 '집구석에 먹을 쌀은 있어'라는 인사말이 정말 상대방을 걱정하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일화를 하나 들려주었다.

"한 번은 장인어른과 차를 타고 가다가 동네 할머니를 태웠다. 할머니가 차에 오르자 장인어른이 물었다. '영감님 아직 누워계신가?' 그러자 뒷좌석에 할머니가 '그렇다'고 말하자 또 장인어른이 물었다. '식사는 하시나?' 이번에는 할머니가 '식사는 못하고 베지밀만 넘긴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장인어른이 '그럼 베지밀 잔뜩 쌓아놔야겠네'라고 말하니 '두 박스 정도 남아 있다'고 할머니가 응답했다. 이때 장인어른이 하는 말이 '그럼 두 박스 다 드실 동안은 안 돌아가시겠네'였다. 그러자 할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그럼 다행이고'라고 말하더라.

참 무례한 이야길일 수도 있는 걸 농담으로 말한다. 그때 생각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사소하게 말하는 경지는 뭘까? 그게 여기 분들의 힘이다. 일상은 비루하다. 이걸 겪어내지 않은 사람은 힘이 없다. 그리고 결국 자기 일상을 재구성하는 것이 성찰이다. 여기 어르신들은 이걸 다 이겨낸 초인이다."

그의 말은 책을 관통하는 주제와 비슷하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중요함과 거기서 건져 올린 성찰의 힘을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남덕현은 이런 말을 했다.

"독자들이 참 난감할 것 같다. 글을 쓴 의도가 무엇인지 오히려 궁금할 것이다. 근데 참 표현하기 힘들다. 생각해보면 사소한 것의 위대함을 깨닫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나. 그냥 한 번 세상을 보이는 대로 보자. 책의 서문에 썼듯이 우리의 일상은 비루하다. 금이 간 플라스틱 병마개처럼 헛돌고 반복된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나. 그냥 헛돌 뿐이지. 영원히 헛돌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이 닫히지 않고, 그 안에서 사소한 일로 위안을 삼고 살아가고 의미를 끊임없이 발견하는 것 아닌가."

졸고 있는 '신발'에게 핀잔을 두며, 다가온 할배는 2500원짜리 고무신을 사면서 색깔별로 다 신어본다.
▲ 한가위 장터에서 졸고 있는 '신발'에게 핀잔을 두며, 다가온 할배는 2.500원짜리 고무신을 사면서 색깔별로 다 신어본다.
ⓒ 남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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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집을 나서며 "출판 후 어르신들에게 책을 보여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장인어른과 어르신들에게 보여주었다"고 답했다. 어르신들의 반응은 이러했다고 한다.

"노상(매일) 하는 이야기인데, 뭐 그걸 돈 주고 사본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유쾌한 책과는 너무 달랐던 저자와의 대화를 곱씹어 봤다.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저자의 사인이 적힌 <충청도의 힘>을 펼쳤다. '작가의 말'을 다시 읽었다. 아래의 글이 새롭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미 한 번 있었고, 여러 번 있었으며, 그렇게 다시 돌아 올 것이다. - 니체
일상은 그러하였고, 그러하며, 다시 그러할 것이다. - 머슴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 무창포, 굴 따는 노인
별거 읎다니께? 그란 줄만 알구 살믄 되는 겨! - 장인어른


충청도의 힘 -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 이야기

남덕현 지음, 양철북(2013)


태그:#남덕현, #충청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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