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을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눈, 코, 입의 크기와 위치, 모양 그리고 이마의 넓이와 얼굴의 주름, 귀의 모양, 또 점의 위치까지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을 듣다 보면 '나는 왜 이렇게 생겼지?'하고 어쩐지 뭔가 켕기는 사람들이 제 얼굴에 만족하는 사람보다 많을 것 같다. 관상을 보면서 사람의 이력을 맞추고 미래까지 예측하는 그런 사람, 이른바 '관상쟁이'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고 영화 <관상>을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영화의 도입부,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송강호'와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일명 '납득이'로 한동안 유명했던 '조정석'의 코미디가 볼만하다. 주거니 받거니 알콩달콩 마치 부부처럼 연기가 매끄럽다.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촌구석에서 조용히 살던 몰락한 가문의 두 사람, 관상쟁이 '내경'과 영화 속 설명에 의하면 그의 문제적 동반자 '팽헌'이 배우와 메니저의 관계처럼 한양으로 올라가 손님을 모아 관상을 봐주고 재물을 취해 갑부가 되는 과정을 그릴 거란 예상을 하게 한다.

 김종서는 호랑이상이고 수양대군은 이리상이라고 관상쟁이는 설명하고 있다. 호랑이와 이리가 싸우면 어찌 이리가 이기는가?

김종서는 호랑이상이고 수양대군은 이리상이라고 관상쟁이는 설명하고 있다. 호랑이와 이리가 싸우면 어찌 이리가 이기는가? ⓒ (주)주피터필름


헌데 영화는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말 길을 조준하고 있다. 조선의 여섯 번째 왕 '단종'의 삼촌 '수양대군'이 저지른 난을 겨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수양대군의 쿠데타! 영화를 보는 도중 허리를 곳추 세우게 된다. '계유정난'이 잘못된 쿠데타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문종의 동생 수양대군의 명분 없는 쿠데타에 대한 세심한 조명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만일'이라는 수식은 역사라는 명제에 부질없다. 하지만 역사는 미래를 내다 보는 거울이다.

수양의 조부는 태종 이방원이다. 이방원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은 수양은 시대정신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또 이방원의 '왕자의 난'과 수양의 '계유정난'은 그 역사적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리는 역사평설이 있다. 바로 이덕일 선생의 <조선왕을 말하다, 역사의 아침, 2010년 5월>이다. '세조' 편에 보면 그 설명과 평가가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수양은 명분이 없어도 힘만 있으면 국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인데, 이방원의 경우 '질서를 만들던 시기이고 (수양의) 당시는 질서가 잡혀 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태종이 형제들을 죽이고 또 정권을 잡고 나서는 자신의 아버지(태조)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개국공신들을 제거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공신들로 인한 부패와 무질서를 바로 잡자고 하는 명분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자연스럽게 왕권의 강화 또한 도모할 수 있다. 태종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힘으로써 다음 왕, '세종'이 성군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왕으로 평가될 수 있다.

'세조'는 다르다. 이미 잡힌 질서를 어지럽히는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종9품의 경덕궁 문지기(이나마도 음서로 된 것이다)에 불과했던 낙방거사 '한명회'를 책사로 맞아 술과 돈으로 교유를 맺은 신하들과 더불어 정적 김종서를 제거하고 왕좌마저 찬탈해버린 수양대군은 패륜과 패도로 얼룩진 왕으로 남게 된다. 단순비교라 무리이긴 하지만 지금으로 치자면 국무총리쯤 되는 사람이 일개 하사관을 책사로 삼아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 나라가 김씨의 것이냐 이씨의 것이냐'라며 정적 김종서에 대한 테러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수양은 애초에 단종까지도 왕으로 떠 받들 생각이 없었다.

세조는 자신과 역모를 꾸민 신하들에게 정난공신, 좌익공신 등의 이름으로 면책특권과 토지 등을 부여 해 그 혜택을 입은 자들이 공신들의 자식과 일가친척에까지 퍼져 수천 명까지도 됐다고 하니 조부 태종이 피를 묻혀 가며 구축한 왕권, 그 일극체제를 무너뜨리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바보 짓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시대정신이 없었던 수뇌부의 철없는 선택은 너무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고 세조 이후 왕들이 제대로 왕권을 누리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야 말로 '택군(擇君)'의 시대, 조선은 왕을 신하들이 선택하는 이른바 '신하들의 나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세조 때문에! 한명회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질서가 바로 잡힌 나라에서는 종9품 벼슬을 가진 자가 권력의 핵심에까지 이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조의 후사인 예종은 평소 공신들의 전횡에 분개하다가 즉위 직후 분경을 금지하고 "대납하는 자는 공신, 종친, 재추를 막론하고 곧 극형에 처한다"고 선포했다가 재위한 지 1년 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이덕일 선생의 설명을 대하다 보면 세조 이후 신하들은 더 이상 신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종을 보위하면서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를 누리며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수양대군'은 역사의 흐름을 무시하고 자력으로 왕위에 오름으로써 종묘사직에 누가 되고 말았다. 세조 스스로도 "내가 잠저에서 일어나 창업의 임금이 되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형벌한 것이 많았으니 어찌 한 가지 일이라도 원망을 취함이 없었겠느냐?"며 사망 넉 달 전 술자리에서 이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위정자들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이유는 딱 한가지 사리사욕때문이다.

<백범일지>에 보면 김구선생의 관상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먹고 살려고 역학을 공부하던 중 당신의 관상을 보게 됐는데 곰보자국도 있고 하니 자신의 상이 영 시원찮아서 실망하던 터에 '관상이 좋은것은 체형이 좋은 것만 못하고 체형이 좋은 것은 마음씀씀이(心相)가 좋은 것만 못하다'는 글을 찾아내 읽고서는 평생 마음을 갈고 닦으면서 살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관상이라는 것, 주인공 '내경'의 말대로 사람됨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관상외에 '몸가짐이나 주위환경, 시대적 배경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관상>으로 시작해서 '계유정난'의 역사적 현장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마음씀씀이가 좋아보이는 관록있는 배우들의 호연과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역사물임에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문종으로 잠깐 출연한 김태우는 그 관상에서 고상과 품격이 보인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몇 안 되는 배우들 중 하나일거라는 게 조심스러운 그에 대한 관상평이다.

덧붙이는 글 분경(奔競)이라는 말은 조선시대 이조와 병조등의 인사권자를 찾아 다니며 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직을 얻으려는 엽관운동인데, 단종이 왕위에 오른 뒤 수양의 역심을 의심한 재상들이 분경금지조치를 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수양의 주위로 친족이 아닌자는 모일 수 없다는 조치. 이에 반발한 수양이 두려워 영의정 황보인이 수양의 분경금지조치를 해제하게 되고, 수양은 신숙주, 권람, 한명회 등의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모아 모사를 하게 된다.
내경 팽헌 김종서 수양대군 계유정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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