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관이 막힌 상태에서 대안으로 IPTV와 온라인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거기도 대기업들이라 자칫 미리 알려지면 막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 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천안함프로젝트> 상영 중단에 대한 영화인들의 기자회견에서 한 배급 관계자는 향후 계획에 대해 이렇게 귀띔했다. 예고했던 IPTV와 온라인 개봉은 12일 오전 시작됐는데, 이 관계자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IPTV-온라인 개봉이 확정됐더라도 미리 공개되면 갑자기 취소될 수도 있다고 봤기에 공개하는 것을 한발 늦게 했다"고 말했다. "일단 (영화가)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는 빼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그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이런 식으로 영화를 거부하는 것은 처음이고, 외압을 가한 세력의 힘이 상당히 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메가박스 '상영중단은 관객보호 위한 불가피한 조처' 해명

 <천안함프로젝트> 포스터

<천안함프로젝트> 포스터 ⓒ 아우라픽쳐스

메가박스에 의해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이 일방적으로 중단된 지 13일로 1주일을 맞는 가운데 파문은 정리되기는커녕 더욱 확산되는 모습이다.

배급사 쪽은 상영관 확대가 필요한 시점에서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자 온라인 포털 등과 IPTV 등에서 관람할 수 있는 우회 전략을 택했다. 이들 멀티플렉스 중 일부는 대관상영까지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정치적 외압 논란을 키우는 모습이다.

12일에는 한국작가회의와 민족예술인총연합 등이 성명을 발표해 메가박스를 규탄했다. 이들은 이번 상영 중단 사태에 대한 이유와 책임은 전적으로 상영관인 메가박스 측에 있다면서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를 명백히 침해한 것에 대한 정중한 사과와 상영 재개를 요구했다.

메가박스 역시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해 그간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메가박스 측은 상영 중단은 관객의 안전을 고려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조하고 협박에 대해 수사 의뢰를 한다고 해도 관객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한 일부 단체라고 표기했을 뿐 보수단체란 표현을 쓴 적이 없다며 보수단체라는 주장은 <천안함 프로젝트>의 트위터에서 처음 사용된 표현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배급계약은 "아우라픽쳐스가 아닌 '엣나인(AT9)'과 맺었다"며 계약서상의 계약자 '엣나인'과 상영 중단 결정전에 상의를 거쳤고 엣나인은 다른 이유가 아닌 관객의 안전 이슈이므로 우선 중단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언제든 협박있으면 영화 상영이 중단될 수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영화인들 뿔났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과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과 영화인들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이들은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대해 "이번 사건은 영화계 전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중대한 위기로 판단한다"며 "메가박스 측은 압력을 가한 보수단체의 이름을 밝히고 수사당국에 고발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영화인들 뿔났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과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과 영화인들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이들은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에 대해 "이번 사건은 영화계 전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중대한 위기로 판단한다"며 "메가박스 측은 압력을 가한 보수단체의 이름을 밝히고 수사당국에 고발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 유성호


그러나 메가박스의 해명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남는다. 일제시대 이후 한국 영화사에 전례가 없던 상영중단을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영화평론가 변재란 순천향대 교수는 "관객들의 안전을 중요시 여기는 자세야 당연하고 바람직하지만 너무 쉽게 판단한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 볼 일이다"라며 "그럼 앞으로도 일부 견해가 다른 관객의 항의(와 협박)가 있으면 언제든지 영화상영은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배급사 관계자 역시 "메가박스 측이 일단 사과와 재발방지, 상영 재개를 이야기할 시점에서 이상한 해명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배급 노하우가 있는 엣나인필름에서 업무를 지원해 주는 것일 뿐 공식적인 배급사는 아우라픽쳐스임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마치 의도적으로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메가박스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아울러 "관행상 구두계약을 맺기에 계약서를 쓴 적이 없다"며 계약서를 언급한 메가박스 측의 언급을 꼬집었다.

수사 의뢰를 해도 관객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도 의문이다. 메가박스 측은 관객이 화를 내고 퇴장한 사례 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상영 중단을 결정할 근거로서는 빈약해 보인다.

더구나 업무에 커다란 지장을 받은 것이 분명한 데도 협박한 사람에 대한 고소 고발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부분은 스스로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엄연히 법적조처를 할 수 있음에도 이를 회피하려는 인상이 강하다는 점에서 이번 해명은 논란을 잠재우기 부족해 보인다.

이와 관련 정지영 감독과 배급사 관계자의 만남이 12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 감독은 이 자리에서 "메가박스는 다른 멀티플렉스들과 달리 상영을 위해 애쓴 곳인데, 상영 중단으로 욕 먹는 게 억울할 수 있다"면서 상영 재개를 통한 원만한 수습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메가박스 관계자는 "회사에 가서 상의해 보겠다"면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지영 감독과 백승우 감독은 13일 메가박스의 공식 입장에 대해 개인적인 소회를 밝혔는데 "영화계나 관객들에 대한 사과와 책임있는 조처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며 "재상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업무방해 및 손해배상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곧바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동반성장협약 휴지 조각... 부산영화제 통해 해외 영화계 이슈될 듯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 파문은 최근 한국영화계가 의욕적으로 합의한 '한국영화 동반성장협약' 자체를 무력화 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체결된 한국영화동반성장 협약에는 '모든 개봉영화에 대하여 1주일 최소 상영기간을 보장'하고 있다.

한국영화 동반성장협약은 제작사와 배급사, 상영관, 영화산업종사자 등이 머리를 맞대고 긴 시간 협의를 끝에 내놓은 상생협약으로 대기업의 일방통행 구조가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메가박스의 일방적 상영 중단으로 5개월 만에 그 의미가 사실상 상실됐다. 어렵게 만들어 놓은 상생협약이 이번 파문으로 인해 휴지 조각이 됐다는 게 영화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배급사 관계자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협약을 근거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계 전체의 합의가 이렇게 쉽게 깨진 것에 영화인들 역시 허탈해 하는 분위기다. <말아톤> 정윤철 감독은 "상생협약은 작은 영화를 보호하자는 의미인데, 극장에서 이런 영화를 쫓아낸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후 "다른 영화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실태가 이렇다면 자율적으로 영화산업의 불공정 거래를 해소하겠다는 동반성장이행협약은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소관부처인 문화부는 협약의 이행현황을 점검하고, 합의 내용이 지켜지기 위한 대책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자율적인 해결이 난망하다면 정치권은 어쩔 수 없이 제도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입법을 통한 해결을 시사했다. 영화계에서는 '천안함프로젝트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태라 향후 입법 과정이 주목되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 협약식. 동반성장에 대해 영화계의 합의가 담긴 상생협약이었다.

지난 4월 열린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 협약식. 동반성장에 대해 영화계의 합의가 담긴 상생협약이었다. ⓒ 성하훈


한편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파문은 해외 영화계로도 번질 조짐이다. AFP 등 외신들이 관련된 소식을 잇따라 보도한 데 이어 배급사 쪽은 10월 개막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을 비추고 있다.

특히 올해 정지영 감독이 핵심 경쟁부문인 뉴커런츠 심사위원으로 내정돼 해외영화계 인사들과 빈번하게 접촉한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문제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심사위원에는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집행위원장인 샤를 테송과 미국의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 수석 평론가인 스캇 파운더스 등이 선정돼 있다.

세계 영화계가 정치적 이유에 따른 표현과 상영 자유 억압 문제에 대해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고, 국내 영화인들의 분노 또한 상당하다 점에서 파문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국가적인 이미지에도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프로젝트 동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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