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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도서인 점을 감안해 이 서평은 도서 집필 취지에 보다 부응하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작성됐습니다. - 기자말

여러분은 전쟁을 떠올리면 어떤 것들이 생각나나요? 혹시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는 게임이 떠오르나요? 아니면 지구촌 저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TV에서나 보이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되나요? 실제 전쟁을 겪어보지 않고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전쟁이 우리에게 그런 이미지일 수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기록에 남아 있는 전쟁만 1만4000건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로 인한 희생자는 무려 35억 명이고요. 지금 지구촌 인구가 70억 명 정도 된다고 하니, 그 절반의 수치입니다.

한 번 생각해볼 일입니다. 막연히 '전쟁이 나쁘다'고만 알고 있거나, 그저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둘 다 그리 옳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전쟁을 무조건 악으로 낙인찍는 건 그 위험성과 조작 가능성을 꿰뚫어 보지 못하게 합니다.

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면, 전쟁이 보통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라는 책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전쟁에 대해 알아볼까요.

전쟁은 왜, 어떻게 일어날까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 - 청소년을 위한 '전쟁과 평화'이야기> 표지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 - 청소년을 위한 '전쟁과 평화'이야기> 표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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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게임을 떠올린 친구들은 전쟁을 참 재밌는 놀이 정도로만 알고 있지 않나요? 화면에서 선명한 피가 철철 넘치고, 빛이 번쩍이고, 포탄 소리가 요란하게 울릴수록 스릴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아마 '전쟁'이란 단어에 대해 무뎌졌으리라 생각해요.

체스란 게임을 알고 있지요? 체스도 전쟁을 차라리 게임으로 풀게 하자는 생각에서 탄생했습니다. 인도의 한 승려는 오래전부터 왕과 장수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괴로워했습니다.

당시에는 때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단지 왕과 장수의 무료함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승려는 왕과 장수들이 즐길 수 있는 전쟁과 비슷한 게임을 만들었지요. 바로 이렇게 탄생한 게임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지금의 체스가 됐습니다.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다고 해요. 현명한 작전과 적의 계획을 간파하는 두뇌 싸움의 재미에 푹 빠진 왕과 장수들은 더 이상 전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게임은 뭔가 변질되지 않았나요. 죽이고 죽고 하는 킬/데스 수치가 자신의 우월감이 되고요.

"멀티 플레이어 모드에서는 적을 많이 죽이는 만큼 자기도 죽을 수 있는데, 이때 죽고 죽이는 비율, 즉 킬/데스 수치가 중요하다. 게임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그 수치가 높다. 아들의 친구 중에서 착실한 학생이기도 한 어떤 친구는 킬/데스 수치가 1.65였다. 219시간 동안 게임을 하면서 3만2884번 죽이고 1만9956번 죽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지나치게 변질된 오늘날 전쟁놀이의 모습이다."(본문 96쪽)

앞서 말했듯, 전쟁에는 분명 원인이 있습니다. 그게 단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요. 그 명분은 다양합니다. 전쟁을 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은 다른 경우가 있지요. 예를 들어 2003년에 발생한 2차 걸프 전쟁이 그렇습니다.

이 전쟁의 지지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이라크가 대량 학살 무기를 감추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지요. 그러나 미군과 동맹군이 이라크에 진입한 뒤에도 대량 학살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배후에는 이라크에 매장된 석유를 노리고 있던 미국과 서구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던 것이지요.

이걸 내세워서, 세계대전 때 경제가 부흥했다며 전쟁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수많은 인명을 담보로 한 물질적 이득이 과연 정당할까라는 생각도 들지요. 전쟁으로 창출되는 경제적 부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겠지요?

책에서는 이 밖에도 전쟁의 원인을 정복·권력 경쟁·자원·식민주의·방어·헤게모니나 세계관·맹목적인 신앙·내전 등으로 분류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울 수 없는 전쟁의 상흔

전쟁의 원인을 생각해봤다면, 전쟁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TV에서만 봤다는 친구들에게도 묻고 싶군요. 전쟁이 설령 일어나더라도 나랑은 무관한 문제일까요. 군인이 아니라면 별 상관이 없을까요.

1차 세계 대전에 실제로 참전했던 시인 에리히 케스트너의 시 <학도병>을 소개할게요. 당시에는 여러분 또래의 아이들도 어른들의 독려 속에 전쟁에 참여했지요. 이 시는 당시 참상을 말해주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요?

교장 선생님이 저녁 시간에
슬픈 얼굴로 식당에 홀로 들어왔다.
학우 케른이 죽었다.
첫 번째 죽음이었다.

우리는 밤에 공원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랑에마르크에서 전사한 쿠르트 케른과
나눈 많은 이야기들을.

(중략)

케른의 어머니가 교장 선생님을 찾아왔다.
슬픔에 겨워 몸을 가누지 못했다.
케른의 어머니는 선생님들 앞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로홀리츠는 야전 병원에서 죽었다.
우리는 그를 묻었다.
교실에는 전사자들의 이름이 적힌 나무판이 걸렸다.

(중략)

우리는 두려웠다. 심지어 누군가
멈춰! 하고 말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그때 열여덟 살이었다.
많지 않은 나이였다.

우리는 로홀리츠, 브라운, 케른을 생각했다.
교장 선생님은 우리에게 행운을 빌었다.
그러는 자신은 신과 다른 근엄한 신사들과 함께
천연덕스레 고향에 남았다.(본문 163~165쪽에서 재인용)

어제까지만 해도 반갑게 웃으며 놀았던 친구가 자고 일어나니 적이 돼 있다면?
 어제까지만 해도 반갑게 웃으며 놀았던 친구가 자고 일어나니 적이 돼 있다면?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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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는 소설을 읽지는 못했어도, 제목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1898~1970)의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알려지고 많이 읽히는 반전 소설 중 하나입니다.

1차 세계대전 때 일반 병사로 서부 전선에 참전한 레마르크는 주인공 파울 보이머를 통해 전쟁터의 참상과 지옥을 생생하게 묘사했어요. 그와 함께 전쟁이 어떻게 모든 인간적 문화적 가치를 말살하고 병사들의 미래를 영원히 파괴하는지 인상적으로 보여줬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런 예술 작품들을 보면서, 작품이 담고 있는 목소리까지 읽을 수 있어야겠지요. 특히 전쟁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세요. 그렇다면 전쟁의 결과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전쟁은 꼭 국가 사이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한 국가 안에서도 전쟁이 일어납니다. 내전이 그런 경우지요. 얼마 전 이집트가 그랬고, 지금 시리아가 그렇습니다. 내전은 참 비극적인 일이에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이웃이나 심지어 자기 가족과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어제까지만 해도 반갑게 웃으며 놀았던 친구가 자고 일어나니 적이 돼 있다고요.

전쟁이냐 평화냐

이런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군비증강으로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대방이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군사력을 확보해두자는 것이지요. 그럼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요. 나날이 늘어가는 우리의 군사력을 보면서 상대방은 가만히 있을까요. 그 경쟁을 언제까지 해야 끝이 날지 알 수 없습니다.

전쟁이라는 게 참 뭔가 복잡한 것 같지만, 역사적으로 전쟁이 증명하는 진리가 꼭 하나 있습니다. 결국 아무도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전쟁과 테러·무력 개입은 번번이 새로운 폭력의 싹을 품고 있다가 또 다른 유혈 충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일입니다. 과연 '불가피한 전쟁'이 있는가, '정의로운 전쟁'은 있는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세상에 좋은 전쟁이나 나쁜 평화는 결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작가 쿠르트 투홀스키도 말했지요. "모든 전쟁은 패배다, 생명을 파괴하기 때문에"라고요.

하지만 지금껏 명분이 없는 전쟁은 없었습니다. 모두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웁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은 불가피한 정치 수단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무력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과 타협해야 합니다."

이 연설에 대해 독일의 한 신문은 다음날 즉각 비판했지요.

"버락 오바마는 오슬로에서 거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연설을 했다. 오바마는 하필이면 노벨 평화상을 받는 자리에서 전쟁을 정당화했다."(본문 42쪽)

혹여 전쟁은 인간의 본능이라 생각하는 친구들에게는 '폭력에 관한 세비야 선언'을 소개하고 싶군요. 1986년 5월, 유네스코가 주관한 국제 학술회의의 결과로 채택된 선언문입니다. 유엔이 인정한 이 선언문의 핵심적인 내용을 발췌해보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동물 조상으로부터 전쟁을 일으키는 경향을 물려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 전쟁이나 여타 폭력적 행위가 우리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다름 아닌 공격적인 행위를 선택해 왔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 인간이 폭력적인 두뇌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 전쟁이 본능이나 다른 어떤 단일한 동기에 의해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본문 220~221쪽 재인용)

이 선언문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전쟁이 인간의 머릿속에서 시작되듯이 평화도 우리의 머릿속에서 시작된다. 전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다면 평화를 이룰 수도 있다. 그 책임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다."

여러분도 한 번 '전쟁과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결국 우리의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미래는 여러분의 세상입니다. 전쟁은 결코 딴 나라에서만, TV 속에서만, 게임으로만 존재하는 일이 아닙니다. 전쟁을 택할 것인가, 평화를 지킬 것인가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결과니까요.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를 읽고 더 생각해볼 문제
- 정의로운 전쟁은 존재할까?
- 총을 쏘는 게임과 실제 전쟁의 차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 전쟁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일까?
- 군비증강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덧붙이는 글 |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게르트 슈나이더 씀·이수영 옮김 | 돌베개 | 2013.08. | 1만1000원)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 - 청소년을 위한 ‘전쟁과 평화’ 이야기

게르트 슈나이더 지음, 이수영 옮김, 돌베개(2013)


태그:#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 #게르트 슈나이더, #이수영,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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