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표지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표지
ⓒ 동아일보사

관련사진보기

거의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역의 가장 번화한 출구 쪽에 몇 달 전 손칼국숫집이 생겼다. 간판 이름에 '손'자를 넣은 손칼국숫집이라 반갑다. 그 식당 앞을 지나노라면 칼국숫집 아저씨가 면발 만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문 옆에 칼국수 면발 만드는 작업대를 놓았기 때문에 눈에 쉽게 띈다.

분식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인용 테이블 4개와 2인용 테이블 2개가 전부일 정도로 작은 식당이다. 그러니 속사정을 잘 모르는 우리 생각엔 아저씨가 면발 만드는 작업을 주방에서 해결하고, 작업대가 있던 자리에 테이블을 놓으면 그만큼 손님을 더 받을 수 있으니 이익일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요즘 식당들의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생각이다. 이 식당이 칼국수 면발 만드는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손으로 직접 반죽해 만드는 '손칼국수'라는 것을 '알리거나', '강조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역 앞 손칼국숫집, '진짜' 손칼국수 아닐 수도 있다?  

식당 주인의 이런 의도는 효과가 좋다. 그 앞을 지나노라면 "직접 만드니까 훨씬 맛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칼국수보다는 잔치국수를 더 좋아하는 딸도 오래 전 내가 밀대를 밀어 끓여주던 칼국수 이야길 하며 그 집의 칼국수를 먹고 싶어 한다. 지날 때마다 맛있는 국물 냄새가 군침 돌게 한단다.

그 손칼국숫집 옆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밀가루 음식을 유독 좋아하셔서 여름이면 어제는 팥칼국수, 오늘은 수제비, 내일은 칼국수, 모레는 잔치국수, 글피는 부침개... 이런 식으로 해드려도 맛있게 잡수시곤 하던 친정아버지가 생각났다. 그와 함께 칼국수 반죽 밀던 날의 풍경들이 잔잔하게 떠올랐다.

칼국수는 그 어떤 음식보다 손으로 직접 하고 안하고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는 음식 중 하나다. 그래서 나도 그 집 칼국수 맛이 궁금하긴 하다. 내가 어렸을 때 자주 먹었던 칼국수들 맛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밀가루 한 덩어리를 반죽해 밀어낸 다음 썰어서 팥칼국수도 해먹고 그냥 칼국수도 해먹던 그 손칼국수니 말이다. 그래서 딸과 "언제 한번 먹으러 가자"고 막연한 약속을 해둔 상태다. 

이 손칼국수 거리의 식당들은 칼국수 면을 공장에서 납품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직접 칼국수 면발을 반죽한다는 이웃 식당에 대해서 이렇게 귀띔했다.

"집에서 한다고 하는데, 그 면을 갖다가 꼬불꼬불하게 손으로 쥐어서 집에서 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예요."

즉, 공장에서 만든 칼국수 면을 직접 손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위해 다시 손질을 한다는 얘기였다. 다음날 아침, 다시 처음의 손칼국숫집을 찾았다. 식당 주인은 홍두깨로 매끈한 면발을 눌러 얇게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원래의 면발과 비교해보니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좀 더 지켜봤지만 반죽을 밀거나 칼로 써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식당 한 귀퉁이에서 다른 식당 주인이 보여준 면제품 포장지, 공장과 거래한 전표를 찾을 수 있었다. -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그런데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동아일보사 펴냄)에 의하면 이 손칼국숫집의 칼국수는 100%의 손칼국수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밀가루에 물과 소금만을 넣고 직접 반죽한 다음 밀대로 밀어낸 후 썰어 끓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칼국숫집의 칼국수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그런 칼국수 말이다.

그보다는 공장에 주문해 납품받은 반죽 덩어리(기자 주 : 유통업자들은 판칼국수라고 부르기도 한다)를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냉장고에서 꺼내 썰기만 하거나 혹은 썰기까지 마친 면발을 적당하게 섞어 쓰면서 일부분만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직접 썰어 섞는 식으로 만드는 칼국수일 가능성도 높다. 

단순한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먹거리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은 우리 곁의 바람직하지 않은 먹거리들을 파헤치면서, 동시에 바람직한 먹거리를 생산해 내는 사람들이나 식당 등을 소개하는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제작팀이 그간의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 이 책에 의하면 시중 대부분의 손칼국숫집들은 그 이름과는 달리 공장에서 대량 반죽된 것을 받아쓰고 있다.

'프로필렌글리콜'은
프로필렌글리콜은 글리세린과 유사한 무색투명한 액체다. 습기를 흡수하는 수분보유효과와 약간의 방부효과 때문에 품질보호유지제로 자주 사용된다. 면제품에 첨가하면 질감이나 식감 등이 향상되기 때문에 2% 이내의 양을 첨가할 수 있다. 합성보존료, 착색료 등의 용해제, 화장품, 의약품, 부동액 등의 첨가물로도 사용된다. 유통기한이 넉넉해야 덜 손해를 보는 탓에 칼국숫집에서는 이와 같은 첨가물이 들어간 공장 생산 면발들을 쓰는 경우가 많다. (책 내용 바탕으로 정리)
사실 시중의 손칼국수집들이 공장에서 대량 반죽한 것을 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유통기한이 길어서 버리는 일도 적고, 손님들이 좋아하는 쫄깃함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는 몇 천원으로 어머니의 손맛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것이 어쩌면 뻔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제는 이처럼 대량 생산된 칼국수 반죽들이 그다지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량 유통과 오랜 보관을 위해,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도 쫄깃함이 살아있는 면발을 위해 옥수수 전분, 전분을 화학적으로 변성시켜 점착성을 높이는 타피오카 전분 조제품, 프로필렌글리콜(박스 기사 참고)과 같은 유화제 등을 첨가됐기 때문. 이처럼 칼국숫집에서 반죽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100% 직접 반죽해 만든 손칼국수인 것처럼 속여 파는 것은 손님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참으로 불편한 진실은 거의 대부분의 먹거리들이 각종 식품 첨가물들과 조미료로 오염되는 등 수익만을 우선하는 사람들에 의해 단순한 상품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시중의 분식집 중 상당수는 튀김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직접 만들기보다 식자재 유통업체에서 받아서 쓴다. 도로변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튀김은 말할 것도 없다. 아예 튀겨진 포장상태의 완제품을 받아 손님에게는 살짝 데우는 정도로 튀겨서 낸다.

분식집에 튀김을 납품한다는 몇몇 튀김 공장을 찾았다. 다양한 종류의 튀김을 대량으로 만드는 곳인데, 한눈에도 위생수준이나 식자재 관리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첫 번째 튀김공장에서는 마침 김말이에 넣을 당면을 삶고 있었는데, 팔팔 끓는 물에 당면을 포대째 집어넣고 당면이 풀어질 때까지 한참 동안 삶았다. 그리고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삶아낸 당면을 김에 싸서 기름에 튀겨냈다. 두 번째 튀김 공장에서는 오징어 튀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오징어 포대를 들춰보니 마른 오징어 다리만 가득했다. 몸통은 없고 죄다 말라비틀어진 다리뿐인데, 이것을 물에 불려서 사용한다고 한다.

튀김 공장에서 살펴본 기름은 모두 거무튀튀했다. 확인 결과, 튀김 공장에서는 기름을 갈지 않고 계속 새 기름을 보충하면서 사용하고 있었다. 국자로 기름을 떠서 보니 오래된 튀김 찌꺼기와 함께 진한 색의 기름이 드러났다. -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한눈에 찾아보는 착한 식당' 정보도 소개  

책은 가짜 손칼국수 외에 ▲ 떡볶이나 순대와 함께 다양한 연령층에 사랑받는 튀김 ▲ 보리를 태워 거무튀튀한 색을 내는 가짜 메밀국수 ▲ 콩가루를 물에 풀어 만드는 콩국수 ▲ 전혀 검증되지 않은 효능을 앞세워 턱없이 비싸게 팔리는 달걀들의 실체 ▲ 빵집 사장이나 직원들도 성분과 제조 과정을 모르는 빵과 첨가물로 눈속임한 빵 일색인 프랜차이즈 빵집▲ 각종 인공 조미료와 식품 첨가물 범벅인 카레 ▲ 소고기 맛 조미료와 첨가물들로 만드는 냉면 육수 ▲ 만능 양념 수프로 맛내는 감자탕 국물과 손님이 먹다 남긴 돼지등뼈를 세척해 만드는 1인용 뼈다귀 해장국 등의 실태를 파헤친다.

이 책은 동시에 건강하고 양심적인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착한 식당'을 선정해 그들의 음식 이야기를 전하고, 이들 착한 식당들의 위치 등을 소개한다. 나아가 '한눈에 찾아보는 착한 식당, 양심 식당, 착한 먹거리' 목록을 부록으로 실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방송을 보면서 어디에 있는 어떤 식당이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이야기 틈틈이 ▲ MSG 첨가, 손님이 선택하기 ▲ 짜지 않게, 나트륨 줄이기 ▲ 빙초산 사용, 엄격히 제한하기 ▲ 반찬 재탕하지 않기와 같은 착한 먹거리를 위한 제안들과 ▲ 우리 밀 칼국수 색깔이 짙은 까닭 ▲ 도정에 따른 메밀 색깔의 변화 ▲ 콩국을 그날 갈아 먹어야 맛있고 안전한 이유 ▲ 1등급 세척 달걀이 더 빨리 상하는 이유 ▲ 오래 사용한 기름의 폐해 ▲ 냉면 육수 집에서 만드는 방법 등 알고 있으면 건강한 먹거리 생활에 도움이 될 것들을 실었다.

여기까지 쓰는 내내 우리 동네 지하철 역 인근 칼국숫집의 진실이 몹시 궁금하다. 염려하는 것과 달리 밀가루에 물을 부어 반죽을 하는 그런 식당일지도 모르겠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딸과 그 집의 손칼국수를 먹으면서 유독 밀가루 음식을 좋아한 외할아버지 덕분에 참 많이 먹었던, 그만큼 얽힌 추억도 많은 내 어린 시절 건강한 음식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착한 식당을 찾아서|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 제작팀 씀| 동아일보사 | 2013-08-05 | 15,000원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 착한 식당을 찾아서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 제작팀 지음, 동아일보사(2013)


태그:#감자탕 , #손칼국수 , #착한식당, #이영돈 PD, #먹거리 X파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