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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5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영장실질심사 마친 이석기 의원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5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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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국회의원의) 10%가 넘는 31명이 종북 아니면 간첩."

6일 새누리당 정해걸 전 의원(새누리당 실버대책위원장)의 발언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 4일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직후 트위터에 "이석기 체포 찬성 258, 반대 14, 기권 11, 무효 6(참석 289명중)...반대는 완전 대놓고 종북, 기권도 사실상 종북, 무효는 은근슬쩍 종북, 대한민국 국회에 종북의원이 최소 31명"이라고 올렸다.

새누리당의 이런 반응, 처음도 아니고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매카시즘 광풍이라며 반발하는 민주당과 정의당의 태도가 더 어쭙잖게 보인다. 체포동의안 표결 전에 찬성을 당론으로 정했던 민주당과 정의당. 종북과의 선긋기를 시도했으나 몇몇 의원의 당론 이탈로 오히려 종북의 굴레가 덧씌워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자초한 일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체포동의안 찬성을 당론으로 정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체포동의안 표결이 기정사실로 굳어 졌더라도 의원 소신에 의한 자유 투표를 하라고 했더라면 떡 주고 뺨 맞는 어이없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의원 개인의 사상과 비밀 투표의 자유마저 보장하지 않았던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31명 의원이 종북과 간첩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건 민주당과 정의당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사실상 종북, 은근슬쩍 종북...' 민주당과 정의당이 자초 

8월 28일, 이석기 의원 사건과 관련 청와대가 보인 첫 반응은 "만약 사실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역풍을 염두에 두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 진보진영은 달랐다.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생각하지 않는 무리를 용납 않겠다" "통합진보당이 참석하는 촛불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라며 일찌감치 통합진보당을 내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단절을 선언한 건 민주당이었다. 정의당도 다르지 않았다. 심상정 원내대표는 "헌법 밖의 진보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신도들의 주사파 부흥회" "정치 포르노물을 압수당한 야동사건" "정신병자" 등 통합진보당을 향한 진짜(?) 진보주의자들의 독설도 거침없었다. 이쯤 되니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면 안 된다'는 보수 논객 정미홍의 지적은 오히려 점잖은 충고라 할 수 있다.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또 국정원이 보여준 내란의 증거가 조작인지 아닌지도 판단할 근거가 명확치 않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논란에서 보여준 소위 진보 진영이나 진보 인사의 언행과 행동은 도를 넘어섰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이 정도의 편협한 정치의식을 가지고 수권정당을 꿈꾸고 있는 건지 실망스럽다. 종북의 프레임을 제대로 한번 걷어 차 보지도 못하고 매번 자기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진보가 권력과 자본, 언론의 거대한 카르텔인 보수를 어떻게 넘겠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녹취록을 근거로 이석기 의원 등이 참여했던 모임에서 나왔던 말들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지만, 과연 국정원이 언론을 통해 흘리는 내용이 과연 다 맞는 이야기인지 의문이다. 국정원이 어떤 곳인가. 직원들을 동원하여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하고 대선에 개입했다. 여동생에게 김현희처럼 만들어 줄테니 오빠를 간첩이라고 말하라고 해서 만들어진 '서울시 공무원 남매 간첩사건'은 국정원이 2013년 1월에 한 일이였다.

김대중 내란 음모와 인혁당 사건에서도 무수한 증거를 언론 등을 통해 제시했지만,  김대중 내란 음모, 인혁당 사건 모두 무죄로 밝혀졌다. 녹취록이 절대적인 증거물이 될 수 있다면 1992년 '우리가 남이가'라며 관권선거를 자행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법의 심판을 받았어야 했다.

종북의 프레임에 갇혀 사는 야당, 수권을 꿈꿀 수 있나

국정원은 이번 사건에서 조력자를 통한 녹취를 인정하고 있다. 이 조력자에게 얼마간의 활동비를 준 사실도 시인했다. 또 통합진보당 변호인 측의 주장에 따르면 국정원은 3년 이상 감청을 했고 녹취록만도 6000여 쪽에 달한다고 한다. 국정원은 합법적인 수사, 합법적인 감청을 주장하고 있지만 공당을 3년 동안 감청하고 프락치를 운영해서 정보를 수집한 것을 과연 합법이라고 할 수 있는지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삼성 X파일 사건의 경우, 삼성그룹이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을 통해 97년 대선에서 약 100억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녹취록이 폭로되었음에도 처벌받은 이는 오히려 도청테이프 녹취록을 공개한 MBC 이상호 기자였다. 노회찬 전 의원은 실명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소위 RO 모임의 녹취록. 그것이 절대적인 증거물이라고 주장하려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 등이 녹취록에서 범법 행위가 드러났음에도 면죄를 받은 것과 녹취록 폭로 당사자가 처벌을 받은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게 먼저다.

그러나 민주당과 정의당 모두 국정원의 녹취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도청 시설이 있을까봐 화분을 복도로 내어 놓았다는 민주당의 한 의원. 참 안쓰럽다. 또 다른 내란사건을 수사하는 도청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부패한 권력자일수록 검찰과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자신의 치부를 감추는 대신 정적의 작은 부패를 도려내려고 한다. 거기에다 개혁의 월계관을 씌운다."

6.15 공동선언을 반역이라며 공공연하게 내란을 선동하던 책 <우리도 무기를 들자>에 쓰인 조갑제씨의 주장이다. 박근혜 정권을 두고 한 독설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처지에 견주어 보면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다. 그러나 진보 진영 어디에도 이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목소리가 커야 신앙심을 인정받는 빗나간 부흥회처럼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지금까지 어깨 걸고 싸워 왔다는 진영논리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이성적 사고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국정원 대선개입·정치공작 규탄 제11차 범국민촛불대회'가 열렸다.
▲ 청계광장 밝힌 '제11차 범국민촛불대회' 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국정원 대선개입·정치공작 규탄 제11차 범국민촛불대회'가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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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는 물고기 두고, 잡힌 물고기 배부터 가르자니

새누리당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발의되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 심사도 16일 재개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제명안과 자격 심사를 하게 되면 통합진보당의 정당 해산까지도 요구할 태세인 것이 지금의 새누리당이다. 그러나 문제는 새누리당이 아니라 민주당과 정의당이다. 지난 비례 경선 논란에도 이석기-김재연 의원은 검찰에 기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 쪽 인사들이 사법처리 되었다. 제명안도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가 유죄로 인정되지 않는 이상 법밖의 일이다.

무작정 통합진보당을 감싸고 이석기 의원을 보호하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도망가는 물고기(국정원) 놔두고, 잡은 물고기(통합진보당) 배부터 갈라 보자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또 성립되기 힘든 내란 음모를 빼고 나면 국가보안법만 남는 건데, 이것을 빌미로 돌팔매질하는 진보는 제대로 된 진보라 할 수 없다. 헌법 밖의 진보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국가보안법 준수 서약이 아니라면 말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변화를 기대한다.


태그:#이석기, #내란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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