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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6일 오전에 국가정보원에 신고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필자는 경희대학교에서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라는 2학점짜리 교양수업을 가르치고 있는데, 9월 6일은 그 수업 첫날이었다.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및 역사 유물론을 쉽게 가르치는 강의다.

수업 전에 학교에 도착해 잠시 쉬고 있는데, 학교 기관에서 필자가 국정원에 신고됐음을 알려줬다. 신고자는 경희대학교 관련 기관들에 메일을 보내, 필자를 국정원에 신고했으며 왜 신고했는지를 알려왔다는 것이다. 신고 이유가 궁금했다. 그저 책 쓰고 강의하고 애들 먹여살리기 바쁜 사람을 무엇으로 신고했을까? 내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반미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다. 그 근거로 든 것은 우선 내가 쓴 책들이다.

국정원에 신고됐다는 학교 관계자의 전화

 필자가 쓴 책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표지. 이런 책 쓴다고 국가정보원에 신고당하면 기분 참 더럽다.
 필자가 쓴 책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표지. 이런 책 쓴다고 국가정보원에 신고당하면 기분 참 더럽다.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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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을 썼냐고?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국가의 거짓말> <다극화 체제, 미국 이후의 세계> 등이다. 아! 맞다. 2011년 말에는 팍팍한 생계해결을 위해 <글쓰기 클리닉>이란 책도 썼다.

또 다른 이유도 들었다. 내가 예전에 민주노동당의 간부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필자는 2006년에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에서 교육부장을 했다. 하지만 이후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합당해서 통합진보당으로 바뀔 때 그에 반대하여 탈당한 이후 당적이 없는 상태다.

요컨대 이런 무시무시한(?) 책들을 쓰고 한때 민주노동당에서 간부였던,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반미사상을 가진 사람이 경희대학교에서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란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을 세뇌시키고 있어서, 국가정보원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학교에 신고사실을 알린 이유는 빤하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강의하도록 놔두느냐'고 항의하는 것일 테다.

신고자는 최근 이석기 의원의 구속사건을 예로 들었다고 한다. 학교 관계자와 통화를 마치고 내 입에서는 장탄식이 끊이지를 않았다.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떻게 책 내고 강의한다고, 그리고 한때 민주노동당 간부였다는 이유로 사람을 국가정보원에 신고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여기가 과연 민주주의 사회인가?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자가 학교에 신고 사실을 알린 메일에서 이석기 의원 구속사건을 예로 들었다는 것이 자꾸 머릿속에 머물렀다. 그래서 이석기 사건을 곰곰이 복기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석기 사건을 복기하다

현재 이석기 의원이 소위 내란예비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이유로 구속된 결정적인 근거는 '녹취록'이다.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내에 포섭한 사람을 통해 지난 5월에 있었던 모임의 내용을 음성 및 영상으로 확보했다고 알려져 있다. 녹취록이란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 당사자가 한 '말'이다. 좀 거칠게 얘기하자면 이석기 의원 및 관련자들이 체포되고 구속되는 이유는 그들이 특정한 '말'을 했다는 데에 있다.

오해가 있을까봐 좀 부연설명을 하자면, 필자는 만약 국정원에서 증거로 제시한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관련자들은 정치적 도의적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통합진보당에 쏟아지는 여론의 공분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내 글에 조금이라도 객관성을 부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라면 최소한 어떤 사람이나 세력이 어떤 특정한 '말'을 하고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나 구속을 하면 안된다. 상식 아닌가. 물론 그 말이나 글을 근거로 수사를 진행할 수는 있지만, 과연 '말'과 '글'이 체포나 구속의 사유가 되는 이 상황이 정상적인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만약 사회가 이것을 용인한다면, 그동안 군부독재와 싸우면서 어렵게 획득한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 허물어지는 것 아닌가.

국가기관이 나서서 '말'과 '글'만을 이유로 사람을 체포하고 구속하는 현 상황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능하게 만든다.

'저 사람은 저런 책을 쓰고 저런 말을 하니 내가 신고해서 체포하고 구속시켜야겠구나.'

나를 신고한 사람이 신고 사실을 경희대학교 관련 기관에 메일로 떳떳하게 알리기까지 한 데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부기관인 국가정보원도 '말'과 '글'만을 이유로 사람을 체포하는데, 자신도 당연히 '말'과 '글'을 이유로 신고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석기 의원 구속 사태가 벌어지면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많이 회자되던 시를 하나 옮기겠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 마르틴 니묄러

나치가 공산당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태인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항의해 줄 누구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

신고 전화를 받은 후 수업에 들어가 한 말

이석기 구속영장실질심사, "혐의 인정 안 한다"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이끌려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 이석기 구속영장실질심사, "혐의 인정 안 한다"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이끌려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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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에 신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은 후, 수업에 들어가 필자는 다음과 같은 비루한 얘기를 했다.

"이 수업은 여러분이 내 강의를 듣고 마르크스 사상에 세뇌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물이나 현상, 사건을 특정한 측면에서만 보면 항상 같은 부분이 보일 뿐입니다. 이 수업은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세계관을 함께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마르크스의 세계관을 통해서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보면, 자유시장경제라는 특정한 관점에서 봤을 때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의 다른 모습이 드러납니다. 사물이나 현상, 사건을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볼 수 있을 때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지지요. 이 수업이 여러분에게 그런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학에서 학생 가르치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이런 얘기를 하게 만드는 이 상황은 정상이라 할 수 없다. '말'과 '글'만을 이유로 사람을 구속하고, 타인을 신고하게 만드는 사회는 최악의 사회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구속 사건은 우리에게 최악의 사회로 회귀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단순히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적절치 않았다는 이유로 상황을 방관하게 되면, 결국 그들이 '말'과 '글'을 이유로 나에게 왔을 때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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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몇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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