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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8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대구·경북·울산입니다. [편집자말]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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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신앙공동체가 아닌 학문공동체다. 학문의 자유가 대학의 근간이다. 학문적인 양심에 따라 소신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수 의견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예교수직을 거부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영남대학교에서 29년 동안 학생을 가르치고 교무처장과 부총장까지 지낸 정지창 교수. 그는 지난 2월 정년퇴임을 했지만 명예교수직에서 배제됐다.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정 교수는 지난해 10월 국회, 11월 대구에서 각각 열린 '영남학원 공공성과 정통성 회복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독재자 리더십을 가르치는 걸 이해할 수 없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비판했다.

"대학은 신앙공동체가 아니다"

정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영남대학교 재단을 소유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7명의 이사 중 4명을 박 대통령이 지명해 사실상 영남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설령 영남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향으로 발전했다 하더라도 영남대의 전신인 청구대학·대구대학 설립자 후손들보다는 발언권이 적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 교수는 "학내 구성원과 시민사회가 참여해 영남대 운영방식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말 대구 호텔 노보텔 커피숍에서 정 교수를 만나 그간의 소회를 들어봤다. 인터뷰 현장은 영남대의 전신인 청구대학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작은 표지석만이 남아 있다. 아래는 정 교수와 나는 일문일답이다.

- 정년퇴임 후 자연스럽게 추대하는 명예교수직에서 배제됐다.
"청춘을 바쳐 봉직했던 대학인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명예교수직을 거부당해 서운함을 숨길 수 없다. 명예교수가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교의) 새마을운동 강화에 대한 비판, 영남학원 정통성 회복을 위한 활동을 문제삼아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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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서는 내부 비판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대학은 신앙공동체가 아니다. 학문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대학 위상이 흔들리는 걸 피부로 느끼지만, 이지경까지 왔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낀다. 다수 의견을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한다는 집단 사고방식이 대학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젠 사상검증까지 강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프다."

- 왜 영남대를 비판했나.
"1984년 영남대에 왔을 때, 박근혜씨는 영남학원 법인이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학교를 운영하지 않고, 신뢰하는 사람을 보냈다. 그 중 한 사람이 입시부정을 저질렀다. 몇 년에 걸쳐 꽤 많은 학생에게 돈을 받고 부정입학시킨 사실이 발각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결국 학생과 교수, 직원, 동문, 시민사회 등이 격렬히 항의했고, 그 결과 박근혜씨가 1988년 영남학원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2000년대 들어 박근혜씨가 학교에 복귀하려 했다. 교수 양심상 '부정 책임자'가 다시 재단에 돌아오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가 아닌 밑에 있는 사람 잘못이라고 하는데, 납득할 수 없다. 박근혜씨의 재단 복귀는 도덕적으로 문제 있고, 학교 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정수장학회든 영남학원이든 정치적 영향력, 독재권력으로 획득한 것은 사회에 환원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내 의견은 소수에 불과했다. 다수는 박근혜의 정치역량이 커지면 영남학원도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영남대학교는 뿌리는 대구대학과 청구대학

- 2011년 4월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영남학원의 '교주'로 되어 있었다. 
"대학은 회사나 구멍가게가 아니다. 공공 교육기관이다. '교주'나 '사주'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 아마 전 세계 대학에서 '교주'라는 표현을 쓰는 대학은 없을 것이다. 학교 설립에 관여했어도 개인의 사유물일 수 없다."

지난 2012년 11월 13일 영남대재단 환수 시민대책위는 토론회를 갖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영남대에서 환전히 손을 뗄 것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 정지창 교수도 참석했다.
 지난 2012년 11월 13일 영남대재단 환수 시민대책위는 토론회를 갖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영남대에서 환전히 손을 뗄 것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 정지창 교수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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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대학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게 아닌가?
"해방 이후 야청 최해청 선생 등이 시민대학인 청구대학을 설립했고, 대구지역 유림과 독지가들이 대구대학을 설립했다. 두 대학은 대구에서 양대 사립대학으로 많은 기여를 했다. 1967년 교사를 증축하다가 청구대학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다. 학교가 위기에 처해 힘들어진 틈을 타 일부 관계자들이 설립자의 동의도 얻지 않고 박정희에게 헌납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대구대학도 설립자 중 한 분인 최준 선생이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운영을 맡겼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 사건' 등으로 위기에 처하자 이를 모면하기 위해 대구대학을 박정희에게 헌납했다. 이후 박정희의 심복이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이 두 대학을 통합해 1967년 영남대학을 설립했다. 두 대학을 강탈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면서 '교주 박정희'라는 이름을 넣어 대구시내에 있던 대학을 경산으로 옮겼다. 박정희가 영남대학 운영에 직접 나서지는 않았고 영남대학은 1970년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학문 공동체로 존재하면서 학교 위상도 발전했다. 문제는 박정희 대통령이 유고되고 박근혜에게 넘어가면서부터이다. 정수장학회를 주변의 권유에도 놓지 않았던 것처럼 박근혜는 영남학원도 포기하지 않았다."

- 지난 2007년 영남대가 정상화되면서 재단이사 7명 중 4명을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했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재단의 주인은 박근혜 대통령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이 영남학원에서 손을 뗀 후 적극적으로 복귀하려는 시도는 하지않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007년 영남학원 정상화 과정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 나섰다기 보다는 교수나 동창회 등에서 영남학원을 다시 맡아달라고 강권하다시피 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대학 구성원들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이용해 학교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잘못됐다. 정치권력에 의지해 대학을 발전시키 것은 권위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당장은 이득을 얻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대학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해쳐 오히려 발전에 방해가 된다. <조선일보>도 지난해 사설로 영남학원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여권 안에서도 박 대통령이 영남학원의 주인으로 있는 걸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 박 대통령은 왜 침묵하고 보나.
"스타일이 그런 것 같다. 귀찮고 불편한 일은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넘어가는 것이 그분의 특징이다. 최근의 국정원 사건도 '나는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고 모르는 일이다'라고 한 것처럼. 밑에 있는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도 내 불찰이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다르더라'는 식인데, 이는 책임있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영남대학은 어디로 가야 할까

- 영남대학교에서 새마을운동을 교육하는 대학원을 설립해 아프리카 등 저소득 국가 공무원들을 데려다 교육시키고 있다.
"나는 어떤 내용을 교육하는지 모른다. 바람직한 교육이고 앞으로 야심차게 추진하겠다고 했으면 공개하고 알리는 것이 당연한데, 비밀리에 교육을 한다. 이해하기 힘들다. 강의계획서라든지 강의평가 등을 공개해야 한다. 세계 어떤 대학에서 독재자의 리더십을 교육할까? 나는 들어본 적 없다."

대구시 중구 문화동에 위치한 청구대학 자리. 지금은 노보텔이 들어서 있고 청구대학 자리였다는 표지석만 있다. 박정희 정권은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을 합쳐 영남대학교로 만들었다.
 대구시 중구 문화동에 위치한 청구대학 자리. 지금은 노보텔이 들어서 있고 청구대학 자리였다는 표지석만 있다. 박정희 정권은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을 합쳐 영남대학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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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학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애초 설립한 분들의 뜻에 따라 교육이념과 운영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청구대학이 추구했던 시민대학으로서의 역할, 대구대학이 추구했던 지역 인재 양성이라는 취지를 살려 미래지향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또 비리에 관련되지 않은 참신한 인사들이 대학을 운영하는 게 마땅하다. 대학 설립에 기여한 자, 대학 발전을 위해 재산을 출연한 자, 기타 대학 발전에 기여한 사람을 학교 운영에서 존중하는 게 사립학교법의 근본 취지이다.

대구대학과 청구대학 설립자 혹은 그 후손들에게 최대한 발언권을 주는 게 마땅하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두 대학을 통합해 발전시킨 박정희 대통령의 영향력도 일정정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나 그 가족들은 청구대학·대구대학 설립자 후손들 보다 발언권이 훨씬 적어야 한다. 대구대학 설립자 후손들은 영남학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한다. 청구대학을 설립한 최찬식 선생 후손은 일단 강탈당한 학교를 되찾은 다음 사회공공성을 가진 대학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는 3자의 의견을 존중해 영남학원의 운영방식을 결정해야 한다. 사립대학으로 남을지, 시립대학으로 갈 것인지, 또는 공립대학으로 갈 것인지 등 학내 구성원과 시민사회가 같이 참여해 결정하는 게 좋다."


태그:#정지창, #영남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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