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7월 법무부가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대형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경영권 위협과 경영권 방어비용 발생, 이로 인한 투자와 고용의 저해, 기업경영 효율성 저해 등을 주장하며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회장단과의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회장단과의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지난번 일감몰아주기 공정거래법 개정에서도 재계는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마치 기업의 모든 내부거래를 금지하는 것인양 호도하며 개혁안을 후퇴시킨 바 있다. 재계의 이러한 반발로 인하여 이미 7월 새누리당, 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이 비공개 당정청 회의를 열어 상법 개정안의 완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 8월 28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총수들과의 오찬에서 재계의 우려를 알고 있다며 한발 물러설 자세를 보였다. 법무부의 최종안이 나오기 앞서 벌써부터 개정안이 후퇴될 것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대주주의 의결권 3% 제한, 여전히 필요

회사의 감사는 경영진과 이사회를 모두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렇다 보니 감사는 경영진이나 이사회 그리고 이들을 선임하는데 가장 영향력이 큰 대주주와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야 제대로 감독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감사를 선임할 때, 3% 초과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3% 초과분 의결권은 제한하여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감사를 선임하도록 해왔다. 즉, 모든 회사는 최대주주 뿐만 아니라 3% 초과 지분을 보유한 모든 개별주주는 의결권을 제한받는 것이다(일명 '개별 3% 제한'). 

이러한 3% 제한 제도는 상법이 만들어진 1962년부터 도입되었다. 당시 상법 제정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입법에 참여한 한 원로 교수님의 글을 보면 3% 제한은 "소수주주의 보호의 견지에서 두어진 정책적 규정"이라고 설명하여 주주의 의결권 행사에 있어서 다수결의 원칙만큼이나 소수의 보호도 중요한 원칙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감사 선임 방법은 1997년과 2000년 증권거래법 개정을 통해 상장회사의 경우,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이 소유하는 주식의 합계가 3%를 초과하는 경우, 3% 초과분 의결권을 제한하는 일명 '합산 3% 제한'을 도입하였다. 최대주주의 영향력을 좀 더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하여 '개별 3% 제한'을 '합산 3% 제한'으로 강화한 것이다.

한편, 1999년 감사위원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그 취지를 살려 감사위원 선임 방법에 대해서 사내이사인 감사위원은 특수관계인의 주식을 합산하는 '합산 3% 제한'을,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은 특수관계인의 주식을 합산하지 않고 개별주주를 기준으로 제한하는 '개별 3% 제한'을 적용하였다. 따라서, 상장회사에 대한 특례가 적용되고, 감사 제도와 감사위원회 제도가 병존하면서 감사 및 감사위원의 선임 방법이 복잡하게 되었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경제개혁연대

관련사진보기


이러한 상법의 연혁을 보면, 약 50년간 감사 선임 방법에 있어 3% 초과 지분 보유 주주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소수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안착되었다. 특히 상장회사의 경우 최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감사 등을 선임하기 위하여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여 제한하여 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감사 및 감사위원이 모두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인물로만 구성되어 있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상장회사만 본다면 97년 이후로 약 15년 넘게 이 제도가 운영되었는데, 대주주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소수 주주가 제안한 감사가 선임된 사례는 아주 미미하다.

실제 기업지배구조펀드 운영을 자문한 필자도 3% 제한을 활용하여 펀드가 추천한 감사 등을 선임하려고 했으나, 대주주와 의결권대결이 되는 상황에서 최대주주 및 그 우호세력(전현직 임직원, 국내 기관투자자 등)으로 인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다고 이 제도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제도란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위기의 순간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는 것이다.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는 경우에도 독립적인 감사가 필요하겠지만, 실제 독립적인 감사가 정말 필요한 시점은 회사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때이다. 만일 한 회사의 경영진 또는 이사진이 불법행위를 일삼고 회사에 손실을 끼치고 있다면, 소수 주주들이 이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고, 이사보다 선임하기 쉬운  감사를 선임함으로써 불법행위를 막고 사후적으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또한, 이럴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경영진 등의 불법행위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대주주의 전횡이 여전한 한국의 상장 대기업에서 3% 제한은 아직도 유효한 법적 수단이며, 오히려 이를 강화하여 대주주의 전횡을 사전적으로 방지하는 제도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현재 복잡한 상장회사의 감사 및 감사위원 선임 방법을 합산 3% 제한으로 통일하여 감사 등이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으로 뽑힐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계는 이러한 3% 제한에 대해서 다수결에 반하는 제도이며, 특히 세계적으로도 유래없는 제도라며 이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다수결의 원칙과 함께 소수의 보호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이다. 또한, 회사의 지배구조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추구한다면, 주주의 구성비율에 따라 이사회의 구성비율이 결정되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에 맞을 수도 있다.

즉, 대주주가 60% 지분을 보유한다면 이사회도 60%가 대주주 측, 나머지는 40%는 기타주주 측으로 구성되는 것이 다수결에 부합되고 합리적일 수 있다. 마치 국회의 구성이 여야 한쪽 100%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회사의 이사회가 국회처럼 구성될 수 없기 때문에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는 이사회를 100% 장악할 수 있고 따라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다수의 횡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소수의 견제를 제도화 한 것이 3% 제한인 것이며, 그 필요성은 여전히 소유가 집중된 재벌에게는 50년 전과 동일하다.

3% 제한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재벌총수의 견제장치가 될 것

한편, 이번 상법 개정안 중 재계가 가장 반발하는 것이 감사위원의 분리선출이다. 먼저, 감사위원 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 제도는 98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IMF의 권고로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의무적으로 감사 대신 감사위원회를 두게 되었다. 감사위원회는 이사회 내 위원회이므로 이사가 되어야 감사위원이 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독립적인 감사위원이 선임될 수 있도록, 이사와 감사위원 선임을 분리하여 선출하고, 감사위원 선임은 3% 제한을 적용하였다(감사위원 분리선출). 그런데, 2009년 이를 규정하고 있던 증권거래법이 폐지되고 관련 내용이 상법으로 이관되면서 감사위원은 이사로 선임된 자 중에 선임하도록 조항이 신설되었다(감사위원 일괄선출).

당시 이 부분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가 없었는데, 어찌 보면 은근슬쩍 이사와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던 것이 일괄선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감사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사로 선임되어야 하는데, 이사선임 투표에서는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지 않다보니 이사는 대주주의 입맛에 맞는 사람만 선임되고, 결국 감사위원이 독립적인 사람으로 선임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즉, 3% 제한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이를 원상복구하여 감사위원을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으로 선임될 수 있도록 하고,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매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재벌총수의 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을 보면, 재벌총수 일가는 그룹 전체적으로 1% 내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재벌총수들은 그룹을 마치 개인회사처럼 전횡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도 재벌에 대한 검찰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재벌총수들은 여전히 횡령·배임, 조세포탈을 일삼고 있으며,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을 하고, 약자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과의 불공정한 거래로 자신만이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회사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재도입되고, 집중투표제 및 전자투표제 등이 함께 도입된다면 예전과 달리 재벌총수들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장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재계의 논리와 그 허상

재계는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감사위원 선임을 통해 외국계 펀드들이 이사회를 장악하여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사회가 장악되면 기업의 주요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펀드는 국적을 불문하고, 특정기업의 경영권을 노리는 M&A펀드라기 보다는 분산투자로 배당이익이나 시세차익을 얻고자 하는 뮤추얼펀드들이다. 현실적으로 적대적인 M&A는 엄청난 자금을 한 기업에 쏟아부어 대주주보다 지분을 더 확보하여, 기존 경영진을 해임시키고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해서 장기간 기업을 경영하거나 회사를 되팔아 투자이익을 회수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뮤추얼펀드는 분산투자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특정기업에 집중투자를 하지 않으며, 아무리 큰 뮤추얼펀드라 하더라도 대주주보다 더 많은 주식을 매집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을 뮤추얼펀드는 없다. 또한, 현재 상법 개정안이 적용될 회사는 자산총액 2조원의 대형 상장법인인데, 수많은 뮤추얼펀드들이 갑자기 연합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한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자고 나설 가능성도 없다. 게다가 기존 경영진을 대신할 새로운 경영진을 찾는 것이 한국의 전문경영인 인력풀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적대적인 M&A펀드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 중에서 이러한 경영권 위협을 당할 만큼 지분구조가 취약하거나 시가총액이 낮아 적대적인 M&A의 목표가 될 만한 회사는 없다고 본다. 결국, 재계가 우려하는 것은 국적을 불문하고 펀드가 소액주주들로서 회사의 경영진을 감독할 감사위원을 한두명 선임하려는 것인데, 이를 경영권 위협이라고 주장한다면 도대체 회사의 주인인 주주는 돈만 투자하고 아무말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즉, 재계의 주장은 대주주의 눈에 거슬리는 단 한 명의 감사위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는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경영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고 자멸하기 마련인데도 말이다.

한편,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못하게 될 것이고, 특히, 현금을 쌓아두거나 자사주 매입 등에 경영권 방어에 자금을 사용하여 R&D 및 시설투자를 못하게 되고 결국은 고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회사의 실제 가치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이나 현금 등 유휴자산을 많이 보유하여 자기자본수익율이 낮은 기업이 M&A의 대상이 된다. 즉, 기업이 높은 수익이 낼 투자안이 있다면 이에 투자하여 기업가치를 올리고 주가도 올려야 할 것인데, 경영권 방어를 위해 투자를 포기하고 현금을 쌓아두거나 자사주를 매입한다면 주가는 떨어지고, 이는 더욱 M&A를 부추기는 것이다.

또한, 재계는 현재도 경영권이 불안하여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도 고용도 못했다는 있다고 주장하는데, 최근 투자와 고용의 저조는 세계적인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나 내수의 부족 등 때문이지 경영권 위협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재계가 투자와 고용을 무기로 경영권 안정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꾼 논리이다.

마지막으로 재계는 기업지배구조는 법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탄력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기업은 업종이나 기업문화에 맞는 각자의 기업지배구조를 가져야 기업도 좋은 성과를 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업의 자율에 맡긴 결과는 전횡을 일삼고, 반대의견은 용인하지 않고,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한심한 모습이 되었다.

이런데도 기업지배구조의 탄력성을 주장하며 기업의 자율을 더 강조한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자율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도 따라야 하는 것을 재계는 곱씹어보기 바란다. 이번 개정안은 최소한의 건강한 기업지배구조를 위해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재계는 자발적인 변화를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주춧돌, 경제민주화!

지금까지 얘기한 상법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담합에 대해 소비자가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집단소송제 도입 등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계속 개정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개정안들이 나올 때마다 재계는 경영권 위협과 투자와 고용을 빌미로 정부의 법안을 좌절시키려는 시도를 계속 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법안이 제대로 마련되어야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 신상필벌의 경제정의가 세워지고, 이를 기반으로 창조경제도 가능해지며 투자도 늘고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즉, 경제민주화가 경제성장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경제성장의 주춧돌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국회는 다시 한번 현재의 재벌의 문제점을 재인식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생태계가 건강해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생각해 주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채이배 기자는 공인회계사로 경제개혁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상법 개정안
댓글

경제개혁연대는 소액주주 권익보호,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부의 재벌·금융정책 감시 등 1997년 이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활동을 보다 전문화하고 발전시키려는 경제전문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