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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8일 국정원이 통합진보당(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포함해, 우위영 보좌관 등 10여 명의 진보당 인사들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국정원이 밝힌 주된 혐의는 내란예비음모죄와 국가보안법이다.

21세기판 내란죄 부활

29일 오후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의원실을 나오고 있다.
▲ 신체 압수수색 받은 이석기 의원 29일 오후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의원실을 나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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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는 봉건왕조시대 대역죄, 또는 모반죄라고 불리던 끔찍한 범죄다. 우리나라 형법 제87조는 내란죄를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시킬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죄'로 규정하고 있고, 이 내란죄를 저지른 단체의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의 처벌을 규정하고 있어, 죽거나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 이 죄가 얼마나 중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제90조에서는 내란의 예비, 음모, 선동, 선전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내란을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번에 국정원이 전격 압수수색에 나선 죄목이 바로 내란예비음모죄다.

현직 국회의원이 주축이 돼 내란을 준비하다가 발각되었다는 국정원발 언론보도는 온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30일자 언론에는 일제히 "내란예비음모혐의로 국정원이 수사 중인 지하혁명조직(Revolution Organization·RO)이 지난 5월 12일 모임에서 무기 확보, 기간시설 타격, 기간시설 종사자 포섭 등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녹취록 내용을 공개했다.

이 녹취록이 원본인지 아니면 일부만 내놓은 건지 의도적으로 짜깁기를 했는지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이 내용만 가지고는 아직까지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 "다까끼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되려 한다"며 박근혜 후보를 공격했던 이정희 진보당 대표를 보면서 많은 이들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기도 했다. 이런 우려가 유신의 퍼스트 레이디가 대통령이 되고, 유신시대 중앙정보부 출신의 대표적 공안검사 김기춘이 비서실장으로 정권의 수뇌부가 되면서 현실이 되고 있다.

유신시대 '인혁당 사건',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등 다수의 내란음모 사건이 조작돼 당사자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무기징역을 당하는 등 민주인사들이 탄압을 받았다. 그 유신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박근혜가 지금은 대통령이 되었다. '저도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 시대의 이런 용공조작을 모를 리 없다.

유신의 용공조작을 기억하는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유신의 핵심이었던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에서 대공수사국부장, 비서관, 대공수사국장을 역임했고,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노태우 정부에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정치검사의 맏형으로 불리던 그가 2013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레드 콤플렉스' 뛰어넘어야 민주주의 가능

한국 현대사는 공산주의라는 망령에 시달린 100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제와 군사독재정권은 독립투사와 민주인사를 잡아가고,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 인권을 탄압을 정당화하는 만병통치약으로 '빨갱이'를 갖다붙였다. 지금은 '종북'으로 포장이 바뀌었을 뿐이다.

일제 경찰은 무장독립투쟁을 하던 독립군을 공비(공산비적)라며 감옥에 보내고 총으로 쏴 죽였다. 일제 경찰의 기준에 의하면 김일성뿐 아니라 김구, 신채호, 김원봉도 모두 공산주의자 또는 그 동조자들이었다.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이나 남북협상에 의한 단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김구, 여운형 등은 모두 공산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사주를 받은 세력, 최소 공산주의와 손잡은 세력으로 몰려 정치 테러와 암살 대상이 되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국정원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사앞에서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들이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 특수임무유공자회 통합진보당사앞 시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국정원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사앞에서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들이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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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 시절 한국전쟁 중 억울하게 죽은 수십만의 보도연맹원들에게도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이 씌워졌다. 평화통일을 주장했다고 공산주의자 혐의가 씌워진 진보당 조봉암 당수와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4·19 때는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민주주의를 요구한 학생과 시민들도 모두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불순분자들로 조작되었다.

군사독재시절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 결탁 세력으로 조작되어 고초를 겪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부들이 간첩으로, 민주화를 요구한 학생들이 공산주의자로 조작되었다. 법이 보장한 노조를 만들고, 8시간노동제와 최저임금을 요구한 노동자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한 것이 군사독재정권이었다.

심지어는 이 공산주의 망령은 사립학교 비리를 없애자는 사립학교법 개정운동도 학교공산화 음모로 색칠을 했고, 학교에서 아이들 밥 한끼 공짜로 먹이자는 무상급식 운동도 좌익세력의 국가전복 음모로 공격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와 종북 노이로제이고, 이를 확대재생산한 것이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다. 군사독재 정권은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는 거짓말로 레드 콤플렉스를 조작, 강화해온 것이다.

인류 최악의 독재정권인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법과 질서를 내세우며 가장 먼저 탄압한 것이 공산주의자였다. 미국에서 흑백차별 철폐운동을 펼친 마틴 루터킹 목사와 이 운동에 대해 미국 보수세력과 주류 백인들은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와 결탁해 방화와 폭동을 일삼는 불순세력으로 공격했다.

찰리 채플린 같은 예술가들, 오펜하이머 같은 과학자들까지도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여 탄압했던 매카시즘이 미국 사회를 얼마나 공포에 몰아넣었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얼마나 정체시켰는지 인류는 똑똑히 목격했다. 그 20세기 망령이 21세기 한국에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셈이다.

비밀권력 국정원과 민주주의, 공존할 수 없다

국정원은 불법 대선 개입 댓글 사건으로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여당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도 말로는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잘못한 것이 없다는 국정원에게 스스로 개혁을 하라고 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까운 일이지만 국정원 개혁은 시대적 요구다.

대한민국의 국정원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국내파트와 국외파트, 정보수집과 수사권, 나아가 대공업무뿐 아니라 국내정치부분까지 간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정치파트의 해체, 국내파트와 국외파트의 분리, 정보수집과 수사권의 분리(수사권 박탈)등이 될 것으로 이야기가 나왔었다.

내란음모예비죄가 그 시기와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0년만에 부활한 내란죄 수사는 국정원이 대북 정보수집과 수사권의 유지 필요성을 보여줘 현재 진행 중인 국정원 개혁 논의를 되돌리기 위한 기획이라는 의심이다.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이 트위터에 "타이밍이 정치개입이다.... 국정원이 수사권 떼내지 말라고 존재증명하며 시위하는 거다. 조직안보와 국면전환을 위한 승부수!"라고 국정원의 승부수를 비판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의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는 1924년부터 1972년 죽을 때까지, 30대 캘빈 쿨리지부터 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8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48년 동안 FBI(연방수사국)의 수장이었다. 지금도 워싱턴DC의 FBI 본부 빌딩 이름이 후버 빌딩이다.

그는 헬렌 켈러, 마틴 루터 킹 목사, 존 스타인벡, 아인슈타인, 찰리 채플린 등을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 인물로 분류해 그들에 대한 정보 파일을 만들어 관리했고, 케네디 암살 사건과 마를린 먼로 자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를 독점해 FBI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고 종신 국장을 했지만, 사후 연방수사국의 수사권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비난을 받았다.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 중 한 사람이었던 후버 국장에 대해서 당시에는 감히 누구도 비판할 수 없었고, 그의 경질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정보독점과 수사권이라는 막강한 권력 때문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야 FBI 국장 임기는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법이 만들어졌다.

독점은 독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역사 속에서도 독재정권은 언제나 정보를 독점하는 것을 최고의 무기로 악용해왔다. 모든 독재정권의 배후에는 언제나 비밀경찰 또는 비밀정보조직이 있었다. 나치 히틀러 시대의 게슈타포와 스탈린 치하의 KGB가 대표적인 경우다.

유신시절의 중앙정보부로부터 5공 군사정권의 안전기획부를 거쳐 현재의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용공조작사건에 대해서 국정원은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다. 최근 서울시 탈북공무원 간첩사건도 무죄판결을 받았고, 친북의식화 교육지침서로 논란이 됐던 전교조 소속 교사 사건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들은 어떤 사과나 반성도 하지 않았다.

모든 정보를 가지고, 모든 분야에 관여할 수 있고, 수사권까지 가진 비밀정보기관은 무소불위의 권력일 수밖에 없다. 이런 무소불위 비밀권력을 두고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게슈타포와 KGB를 그대로 두고 인권을 논하는 것과 같다. 현재의 정보수집권과 수사권, 국내파트와 국외파트, 공안업무와 정치업무까지 맡고 있는 대한민국 국정원과 민주주의는 공존하기 어렵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내란음모예비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마르틴 니묄러 신부가 생각나는 2013년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압수물품을 가지고 나서고 있다.
이날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는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이석기 의원실 압수수색 마친 국정원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압수물품을 가지고 나서고 있다. 이날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는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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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은 1년 전 부정선거 시비와 종북 시비로 존폐의 기로에 놓였었다. 반년 동안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을 부정경선 핵심으로 여론몰이 했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그런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이 다시 큰 난관에 봉착했다. 이석기 의원에게는 그리 선택의 폭이 넓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이 "위기에 놓인 국정원이 조작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말로만 하는 해명으로는 국민을 설득시키기 힘들다. 이미 방송3사와 조중동 등 주요 언론들은 그를 '내란 수괴' 정도로 낙인 찍고, 앞으로 그렇게 몰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체포영장도 피할 수 없고, 강도 높은 수사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은 국민들 앞에 더 당당하고 솔직하게 나서야 한다. 그리고 국민 앞에 "내란음모예비죄가 사실이면 정치적 생명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내놓겠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 아니면 국정원장이 자리를 내놓고, 국정원은 해체해야 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러한 솔직함과 결기 있어야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이 뒤로 빠질수록 보수언론은 "변장 도주", "Ro 가입하여 적기가"와 같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쏟아낼 것이다. 이석기 의원이 종편 재허가 반대에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해온  점, 그리고 지난해 부정경선 논란 보도에서 보듯 어떤 언론도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 등 지금은 그에게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고 민주당과 정의당, 노동당 같은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등 진보진영이 이 사태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곤란하다.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충격과 공포" 발언이나,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사실이면 충격" 발언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진보진영은 SNS상에 나치 히틀러에 저항했던 신학자이자 목사인 마르틴 니묄러의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시가 왜 많이 인용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시는 '다음은 우리다'라는 부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 민주당, 정의당과 노동당 등 야당과 소위 진보세력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침묵이 아니다. 보수우익의 시각에서 보면 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이 종북이면 민주당과 정의당, 노동당 등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름끼치는 침묵과 행동하는 양심

박근혜, 김기춘 등 공교롭게도 유신시대에 활약했던 이들이 부활하는 순간 내란죄도 부활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이번 내란예비음모죄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정의는 악의 편"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사회적 전환기에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라고 통탄한 바 있다.

지금 우리는 국정원, 경찰청, 새누리당의 대선 개입 혐의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국정원을 개혁해 민주주의를 한단계 성숙시키느냐 유신으로 돌아가느냐라는 중대한 전환기에 놓여있다. 이 시기에 소름끼치는 침묵을 선택할지, 행동하는 양심을 선택할지 여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시민 개개인의 선택이 유신으로의 회귀냐, 민주주의의 성숙이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30여 년만에 부활한 내란예비음모 사건은 이제 시작이다. 분명한 것은 국정원과 이석기 의원 둘 중 하나는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태그:#내란죄, #국정원, #이석기,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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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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