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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은 격리와 유폐가 아니다. 참된 힐링은 상처 있는 것들끼리의 위로와 공존이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에는 수려한 자연풍광과 노동하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잔파도처럼 함께 넘실대는 많은 섬길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천사의 섬, 신안군'에 보석처럼 나 있는 '힐링 섬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오늘은 그 열두 번째로 압해도 힐링 섬길이다. [편집자말]
 가란도 뻘등에서 그 유명한 압해 갯벌 낙지의 약 70%가 난다.
 가란도 뻘등에서 그 유명한 압해 갯벌 낙지의 약 70%가 난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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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복막염을 앓았던 시인에게 유일한 위안은 창밖 너머 압해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압해도는 시인의 고향이 아니다. 시인의 고향은 해남, 목포로 이사와 살던 그에게 압해도는 비록 3km 지척에 있었지만 배를 타고 가야 했다. 엉금엉금 힘겨운 무릎걸음으로 창가까지 기어와 바라보곤 했던 압해도.

언젠가 시인은 "고향이란 단순히 태어나 태를 묻고 온 고장만이 아니라, 나이 들어도 잊지 못하고 늘 가고 싶은 마음의 공간"이라고 썼다. 시인에겐 압해도가 그런 곳이다. 그래서 시인 노향림은 '압해도 시인'으로 불린다.

"...일렬로 늘어선 풀들이
깨금발로 돌아다니고
집집의 지붕마다 귀가 잘려
사시사철 한쪽 귀로만 풀들이 피는
나지막한 마을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압해도를 듣지 못하네."
- 노향림 <압해도 8> 중에서

낙지 다리가 세 방향으로 뻗어나가면서 바다와 갯벌을 누르고 있는 형상이라 '압해도'라 부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자로 표기된 섬의 이름에선 심상찮은 기운과 이력이 느껴진다. 압해도(押海島), 바다를 제압하는 섬. 세상 어떤 지명이 이렇게 도도하던가.

그러니까 서기 912년이었다. <고려사>는 한 사내의 죽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왕건이 드디어 이 일대까지 진출했는데 압해현의 능창이 도망친 자들을 불러 모으고 인근 세력과 결탁을 시도하고 있었다. 압해현 도적의 우두머리 능창은 섬 출신으로 수전에 능하여 수달(水獺)이라고 불렸다.

왕건이 말하기를 '능창이 이미 내가 올 것을 알고서 반드시 도적과 함께 변란을 꾀할 것이니 도적의 무리가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승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 헤엄을 잘 치는 십여 인으로 하여 밤중에 나가 나룻가를 오가며 일을 꾸미는 자를 생포하라'고 하였다...

왕건이 능창을 잡아 궁예(당시 상관)에게 보내자 그는 크게 기뻐했다. 궁예는 능창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해적들은 모두가 너를 괴수라고 추대하였으나 이제 포로가 되었으니 어찌 나의 신묘한 계책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능창의 목을 베었다."

역사적 상상력을 크게 발휘하지 않더라도 '수달 장군'이라 불렸던 능창이 왕건과 궁예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다. 능창은 장보고 사후 반세기만에 등장한 해양세력의 대표였다. 서남해 대부분의 호족들이 대세를 잡은 왕건과 궁예에게 투항했지만 그는 '변란을 꾀'했다. 시들지 않는 해양세력의 야망이 압해도를 거점으로 꿈틀거렸던 것이다.

 압해읍에서 가란도로 가는 보행교. 섬사람들은 400년 만에 이 다리를 건너 육지로 나왔다.
 압해읍에서 가란도로 가는 보행교. 섬사람들은 400년 만에 이 다리를 건너 육지로 나왔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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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자신의 쉼은 중하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의 생활은 극단적으로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가란리 바닷가 풍경.
 사람들은 자신의 쉼은 중하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의 생활은 극단적으로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가란리 바닷가 풍경.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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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4월, 서남해 해양세력의 천년 야망을 이어갈 압해도 시대가 다시 열렸다. 1969년 무안군으로부터 분군(分郡)한 지 42년 만에 신안군 청사가 압해도에 들어선 것이다. 압해대교가 개통돼 내륙과의 소통도 원활해졌다.

압해읍 분매리에서 가란도 가는 길로 들어선다. 자연산 난초가 풍부하여 가란도(街蘭島)라 불렸던 섬. 하지만 지금은 난초보다 갯벌 낙지가 더 유명하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압해 갯벌낙지의 약 70%가 가란도 뻘등에서 난다.

가란도 가는 바다 위로 길이 275m, 폭 2.5m의 작은 다리가 놓아졌다. 자동차는 다닐 수 없는 보행교다. 2013년 5월 이 다리가 놓아지면서 가란도 주민들은 4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걸어서 육지 나들이를 하게 됐다.

이 작은 다리를 사람들만이 건너는 것은 아니다. 다리 밑으로 설치된 50mm 상수도관을 통해 장흥 탐진댐의 물이 가란도로 흘러들어간다. 60가구 120여 명의 주민은 이 물로 고질적인 식수난에서 벗어났다.

다리 상판에는 통신선이 사람과 함께 가란도로 들어간다. 주민들은 이 통신망을 통해 세상과 교호한다. 물에 목마르고, 정보에 목말랐던 섬사람들의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절을 느낀다. 이 느낌은 매우 구체적인 경험에서 온다. 가란도 주민 도성인(48)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보행교를 둘러보러 나간다. 다리가 놓아진 후 부쩍 낚시꾼들이 늘었다. 주로 도시에서 온 이들은 낚시가 금지된 보행교 위에서 낚시를 하거나 텐트를 치고 밥을 해먹으며 술까지 마신다. 심지어 보행교 위에 배설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고.

도씨는 주민을 대표해 이를 감시하는 일을 한다. 그는 "육지에 길이 있듯 바다에도 길이 있고, 사람에게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법인데 일부 낚시꾼들이 하는 짓을 보면 천불이 난다"고 쓴 한숨을 내뱉는다.

 가란교 건너 가란도 잿등을 넘다보면 서늘한 대숲이 나온다.
 가란교 건너 가란도 잿등을 넘다보면 서늘한 대숲이 나온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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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란도 잿등을 넘어 만나는 대숲이 서늘하다. '세계가 지켜 보니 잘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국격에 맞다' 등등 한국 사람들은 '우리'라는 틀이 유지되면 늘 '모범'이고 싶어 안달이다.

'눈치 보는 모범'은 기형적으로 변한 경쟁의식일 뿐이다. '나'로 시작되는 상황에선 늘 극단의 이기로 치닫는 것이 그 징표다. 다른 사람이 보는 눈은 의식하면서 나의 눈은 의식하지 않는 이율배반 속에 '나와 너는 다르다'는 탐욕의 위계가 도사리고 있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처럼 위세하면서 결국 차별을 고착시키는 삐뚤어진 위계 의식이 사람들을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이 탐욕의 위계를 깨칠 대나무 회초리는 어디에 있을까.

 맑은 하늘을 나는 고추잠자리 날개에 언뜻 가을이 얹혀 있다.
 맑은 하늘을 나는 고추잠자리 날개에 언뜻 가을이 얹혀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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