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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손종욱 교장. 그는 "얼굴이 나와도 된다"고 말했지만 뒷모습만 찍었다.
 학교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손종욱 교장. 그는 "얼굴이 나와도 된다"고 말했지만 뒷모습만 찍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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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개학을 하루 앞뒀던 지난 15일, 손종욱(57) 서울 인창중 교장이 학교 건물 4층 셔터를 열고 옥상에 올라가 천막을 쳤다. '사립학교법 폐기'를 요구하는 무기한 농성을 벌이기 위해서다. 현직 사립중 교장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학교 옥상에 농성장을 차린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교육의 이념 이용 금지법' 만들자면서 왜 펼침막은...

'점점 사악해지는 사학법 폐기!'
'시의회의 사악한 사학조례 폐기!'
'교육의 이념적 이용 금지법 제정!'

손 교장이 농성을 시작한 지 11일째가 되는 지난 26일 오후. 인창중 건물에는 이 같은 글귀가 적힌 가로 2m, 세로 5m 크기의 대형 펼침막 세 개가 초가을 바람에 흔들렸다. 펼침막들은 두 개 층에 걸쳐 모두 여섯 개의 교실 창문 대부분을 가리고 있다. 손 교장이 농성을 시작하면서 걸어놓은 것이다.

2000년 8월부터 12년째 교장으로 일해 온 손 교장은 오는 8월 31일 이후엔 교장 자리를 내놓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8년 이상 교장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 사립학교법이 공포됐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법 때문에) 교장을 더 할 수도 없어요. 누나가 이사이기 때문에 이사장 길도 막혔어요. 노무현이 교묘하게 대못을 다 박아놓은 거예요."

가로 4.5m 세로 9m 크기로 된 천막 속은 교장실에서 갖고 온 에어컨 바람 덕분에 무척 시원했다. 이 천막 안에는 선풍기와 온풍기 그리고 '죽부인'도 있었다. 손 교장은 "에어컨과 죽부인은 낮에 너무 더워서 갖다 놓은 것이고, 온풍기는 새벽에 너무 추워서 갖다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직 사립중 교장의 갑작스러운 농성을 두고 해당 중학교 안팎에서는 따가운 눈총이 나오고 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학교를 사유화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손 교장은 '교육의 이념적 이용 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그런 손 교장은 왜 스스로 옥상 농성을 벌이며 '이념적인 행동'을 하고 나선 것일까. 그의 행위는 사익을 위한 것일까, 공익을 위한 것일까.

이날 손 교장과 인터뷰는 이날 오후 4시 50분부터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최근 "허리뼈 시술까지 해서 몸이 성치 않다"는 그가 '에어컨·온풍기' 농성까지 벌이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손 교장이 자신이 농성하는 학교 건물에 걸어놓은 펼침막.
 손 교장이 자신이 농성하는 학교 건물에 걸어놓은 펼침막.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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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교육 노조원들처럼 옥상 농성을 벌이는 절박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다급한 것은 서울시의회가 만들려는 사학지원조례다. 내용 자체도 반대지만 '무대뽀' 진행을 반대하는 것이다. 옛날 노무현 대통령 때 만든 사악한 사학법도 폐기해야 한다."

- 사학조례와 개정 사학법이 왜 문제라고 생각하나?
"사학법은 학교 경영을 침탈하고 있다. 수업료도 제대로 못 받게 하고 학생들도 강제 배정한다. (이사회) 인사권도 빼앗아갔다. 사외이사(개방형 이사)를 두게 하지 않았나. 우린 사학이지 공기업이 아니다. 사학조례를 통해 사학에 문제가 발생하면 지원을 끊으려고 한다. 학생들이 받는 피해가 엄청나다."

"내가 개정 사학법 적용 받는 첫 타자"

- 개정 사학법 때문에 교장을 곧 그만둬야 하는데.
"내가 이 사학법을 적용받는 첫 타자다. 2006년쯤에 학교 정관을 고치면 교장을 더 할 수 있다는 교육청 구두 해석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한다. 제발 교육을 갖고 이념적으로 장난치지 말아야 한다. 왜 우리 교장들이 자꾸 거리로 나가야 하나?"

- 노무현 정부 시절 사학법 개정에 이념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나?
"당연하다. 다른 의도가 있었다. 교장이 힘 못쓰게 해서 서울의 사학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고교 18세 선거권도 특정단체 교사들이 (특정 정치집단에) 표를 몰아주려는 것 아니냐."

- 지금 '특정단체'라고 표현했는데, 그 단체가 전교조 맞나?
"전교조다. (정치권이) 전교조 눈치를 본 이유는 선동권이 엄청나다고 본 것이다. 교장들은 선동 못한다. 하지만 전교조 선생님 한 명만 있으면 선동이 된다. 그래서 '교육의 이념적 이용 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것이다."

- '사학법 폐기'라는 구호를 현수막으로 걸어놓은 것 자체가 이념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사학에 대못 박은 것을 뽑자고 하는 게 왜 이념적인 것인가? 교육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념적인 것이 아니다."

- 개정 사학법은 사학비리 예방 효과도 있지 않나.
"사학은 알아서 잘 한다. 잘못한 것 있으면 형법으로 처벌하면 되지 왜 사학법이 필요한가? 편의점 주인이 문제라고 편의점 규제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 필요는 없다. 형법이 있지 않느냐."

- 사학법 폐기를 주장하는 이유가 혹시 손 교장 임기 보장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닌가?
"나는 어차피 교장 임기 이달 말에 끝난다. 교육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지 그런 것 때문은 아니다."

- 사학법 폐기 농성을 하려면 청와대나 교육부 앞이 더 적당하지 않나?
"교장 신분이면 거기 앉아 있어도 되지만 난 9월 1일부터는 교사가 된다. 그래서 근무지 이탈이 된다. 당연히 학교에 안 나오는 것이니까."

- 그럼 옥상에서 농성하는 것은 근무지 이탈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

- 그럼 농성하면서 학생들 수업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일주일에 6시간 진로 수업을 맡았다. 외부에서 강사가 오기 때문에 여기(농성장)에서 출석 체크만 할 생각이다. 넷미팅(프로그램)을 하거나 무전기를 쓰려고 한다. 나는 원래 기술 선생이었다."

"학생 수업? 농성장에서 무전기로..."

손 교장이 농성하고 있는 천막 안. 이동식 에어컨과 노트북, 선풍기 등이 보인다.
 손 교장이 농성하고 있는 천막 안. 이동식 에어컨과 노트북, 선풍기 등이 보인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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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교원으로서 '성실의무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출석을 체크하지 않나. 내가 교사가 되면 원로교사가 되는 것이다."

- 지금은 현직 교장인데 결재는 어떻게 하나?
"인터넷 선을 끌어와서 업무에 지장이 없다. 도장 찍는 것은 애들이 (농성하는 것을) 보면 분위기가 어수선하니까 새벽에 빨래를 하러 내려가서 종이에 결재를 한다. 현금 결제는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한다."

- 학교법인 이사장은 이번 농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교법인 이사장이) 아버님 친구 분이다."

-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증증조가 이 학교를 설립했다. 큰 누님이 이사다. 학교법인 이사장은 아버님 친구인데, 만류하긴 한다. 그런데 눈치 볼 게 없지 않나. 내가 이사도 아니고, 교장도 끝났고, 눈치 볼 필요 없다."

- 사학 교장들은 이번 농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내가 서울사립중등교장회 회장이다. 교장 20명이 지지하는 방문을 했다. 건강을 걱정하는 분들은 있었지만 만류하는 분은 없었다."

- 교사가 학교에서 농성을 한다면 교장으로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것은 안 된다."

- 본인은 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나는 옥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학생들 안 보이게. 어차피 오래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관건이다. 오래 버티면 입소문 퍼지고 메이저(언론)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 그럼 농성은 계속할 생각인가?
"계속한다. 나는 작은 불씨가 될 것이다. 워낙 정치인들이 꿈쩍도 안 하니까. 노무현이 교묘하게 대못을 다 박아놓은 사학법을 폐기할 때까지 (농성을) 할 것이다. 태풍에 (천막이) 날아가도 할 것이다."

- 농성장에 에어컨·냉장고·냉온풍기·죽부인 등이 있는 것이 색다르다.
"죽부인은 집에서 갖고 온 것이고 나머지는 교장실에서 들고 올라온 것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죽부인을 갖고 왔다. 새벽에 추워서 온풍기를 갖다 놓았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사립교장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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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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