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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은 격리와 유폐가 아니다. 참된 힐링은 상처 있는 것들끼리의 위로와 공존이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에는 수려한 자연풍광과 노동하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잔파도처럼 함께 넘실대는 많은 섬길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천사의 섬, 신안군'에 보석처럼 나 있는 '힐링 섬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오늘은 그 열한 번째로 지도 힐링 섬길이다. [편집자말]
 그 봄날, 지도읍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씨름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 봄날, 지도읍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씨름 구경을 하고 있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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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이었다. 평시에도 지도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1000여 명의 주민이 몰려 나름 번잡을 이루는 읍내가 더욱 북적였다. 주민들이 한복이며 양복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총총 걸음을 하는 것으로 보아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지도 오일장은 1955년 무렵에 처음 섰다. 지도는 서해안 황금어장터인 증도와 임자도로 가는 길목에 있으면서 육지인 무안군 해제와 다리 하나를 건너 통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섬 지역의 해산물과 무안지역의 축산물이 만나는 '중장(中場)' 역할을 하게 됐다.

아무튼, 주민들을 따라가 보니 갯벌이 창연하게 펼쳐진 바로 옆 공터에서 '지도읍민의 날' 행사가 한창이었다. 근래엔 좀처럼 보기 힘든 동네 씨름대회에 마을마다 선수를 내보냈다. 우승하는 주민에겐 송아지 한 마리가 주어질 판이었다.

마을마다 편을 갈라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데, 어디서 불쑥 막걸리 사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돌아보니 한 사람은 막걸리와 사발을 들고 서 있고, 또 한 사람은 일회용 접시에 안주를 들고 섰다.

"응원 안 하세요?"
"누가 이기믄 어쨌다요? 다 우리 지도 사람인디. 어서 왔소? 막걸리나 한잔 하시오."

목이 마르던 차에 마시는 찬 막걸리는 꿀맛이었다. 사발을 들이키고 나니 "오늘 아침에 송도 위판장에서 사온 놈"이라며 병어회를 안주로 건넸다. 식신(食神) 든 사람처럼 병어회를 게걸스럽게 먹었더니 "요즘은 병어가 제철이고 여름에는 민어가 한철"이라며 "송도 위판장 가믄 다 살 수 있다"고 자랑했다.

"안다고 깎아주믄 잡는 사람 파는 사람은 뭔 재미로 산다요?"

 송도 위판장에서 민어를 경매하고 있는 중개인들.
 송도 위판장에서 민어를 경매하고 있는 중개인들.
ⓒ 강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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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에 찾은 송도 위판장은 민어가 지배했다. 지도읍에서 사옥도 가는 길에 송도 위판장이 있다. 한 주민은 "살다가 민어 1kg를 9만5000원에 팔아보기는 처음이었다"며 "지금은 가격이 많이 내려 1kg당 4만5000원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지도 주민들이 송도 위판장에 갖는 자부는 대단하다. 지도 인근 증도나 임자도 등지에서 난 것이 아니면 절대 팔지 않는다는 것. 또 제철이 돼 병어나 민엇값이 치솟아도 동네 사람이란 이유로 값을 후려치지 않는다고.

이유를 묻자 "안다고 깎아달라 그라고, 안다고 깎아주믄 잡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은 뭔 재미로 산다요?"란다. 전라도 서남권 특유의 억양이 짙게 배인 짧은 말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물씬 묻어나온다. 이 지역 사람들이 즐겨 하는 "나 좋자고 놈 죽이믄 된다요"와 닮은 꼴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경상도말을 매우 무뚝뚝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조차 전라도 서남권 말에 비하면 살가울 정도다. 전라도 서남권에선 상대의 살근한 질문에 "뭐?" "왜?"라며 단답식으로 되묻곤 한다. 불쾌해서 하는 말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되레 상대의 질문에 호감이 있다는 의미다. 정말 기분 나쁘면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아무 대꾸를 하지 않는다.

바람과 파도에 치여 살아온 전라도 서남권 사람들에게 말은 생존을 위한 밧줄이다. 거친 바람 속에서 긴 말은 상대가 알아듣기조차 힘들다. 넘실대는 파도 속에서 필요한 말은 명징한 요구를 담고 있어야 한다. 바다의 말은, 또 섬의 언어는 밧줄처럼 굵고 짧으며 튼튼해야 한다.

 지도 갯벌은 비옥해서 낙지 등이 실하다.
 지도 갯벌은 비옥해서 낙지 등이 실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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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깊은 섬으로 갈수록 말은 짧아지고 억양은 높아진다. 스스로를 교양인이라고 착각하는 도회지 사람들은 말 짧고 억양 높은 섬사람들의 언어습관을 '거칠다'고 코웃음을 친다. 진짜 거친 것은 무엇일까.

동네 슈퍼와 동네 빵집은 물론 포장지 유통까지 가로채 독식하는 재벌의 행태는 거칠다 못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사납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고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외면하는 대기업 노조의 차디찬 외면은 추하게 거칠다. 적어도 섬사람들은 싸울지언정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

송도에서 지도대교를 건너면 사옥도다. 모래가 많고 옥이 나왔다고 해서 사옥도(沙玉島)라 했다던가. 한때는 사옥면으로 독자적인 행정구역을 꾸리기도 했지만 지도읍 당촌리와 탄동리로 편입된 지 오래다.

옛 사옥도 우체국은 탄동리에 있다. 사옥도 역시 지도처럼 간척사업으로 아래탑섬·원달섬·안섬·탑섬 등 이어지면서 한 섬이 됐다. 탄동리 경로당에서 약 3km 간척길을 따라 걸으면 사옥도 우체국이 있는 탑섬 마을에 도착한다.

'금쪽보다 귀한 내 새끼'로 시작한 편지

 탄동리에는 수령 200년의 주엽나무가 있다. 신안군에서 보호를 하고 있는 보호수다. 자갈같은 나무 줄기 껍질 사이를 뚫고 새싹이 움트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다.
 탄동리에는 수령 200년의 주엽나무가 있다. 신안군에서 보호를 하고 있는 보호수다. 자갈같은 나무 줄기 껍질 사이를 뚫고 새싹이 움트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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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문을 닫은 지도우체국 사옥도 분국. 안마당에 편지 대신 어구가 가득하다.
 지금은 문을 닫은 지도우체국 사옥도 분국. 안마당에 편지 대신 어구가 가득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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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문을 닫은 바닷가 우체국, 사옥도 우체국은 지난 1979년에 문을 열었다. 정식 명칭은 '지도우체국 사옥도 분국'이었다. 섬과 육지, 섬과 섬을 오간 숱한 사연들이 쌓여있었을 바닷가 우체국 안마당엔 이젠 편지 대신 어구(漁具)들이 쌓여 있다.

편지 한 통 제날짜에 받기 힘든 외딴 섬. 문자를 몰랐던 늙은 어미는 우푯값을 치르고 집배원에게 편지를 불렀다. 늙은 어미의 편지는 늘 '금쪽보다 귀한 내 새끼'로 시작해 '하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아무 걱정 말고 고향집 어미 곁으로 돌아오라'는 당부로 끝났다.

늙은 어미의 편지가 바다를 건너 뭍으로 올라가고 한참이 지나도 '금쪽 보다 귀한 새끼'로부턴 답장이 오지 않기 일쑤였다. 집배원이 올 시간이 다가오면 늙은 어미는 무담시('괜히'의 전라도말)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자식보다 되레 미안해진 집배원이 "뭐한디 또 나와 있소?" 하고 염려하는 말에 어미는 "그냥 바람이 수상해서…" 하고는 안방으로 돌아갔다.  

육지로 나가 출세는커녕 변변한 돈벌이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자식은 어미가 그리워도 편지 한 장 부칠 수 없었다. 고향에 계신 늙은 어미에게 편지라도 쓸라치면 서러운 타향살이에 눈물부터 쏟아졌다. 눈물로 구겨진 편지를 자식은 차마 부치지 못했던 것이다.

편지 대신 혼자서 흘리는 쓰린 눈물이 통신을 대신하던 시절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일년이 가도 소식은 오가지 않았다. 하지만 통신은 끊어지지 않았다. 어딘가 잘 살고 있으리라는 믿음, 아니 건강하게 잘살고 있어야 한다는 피보다 진한 바람이 세상 어떤 통신선보다 질긴 망을 구축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물망보다 더 촘촘하게 통신망을 잇고 산다. 그리고 그 통신망을 통해 초 단위로 상대의 반응을 확인하고 살면서도 외롭다고 투정이다. 외로움이 잘아서다. 잘고 잔 외로움과 함께 관계도 잘아진다.

문 닫은 바닷가 우체국에서 편지를 쓴다. 한 통은 멀리 흑산도에 있는 늙은 어미에게, 또 한 통은 이토록 함께 살아왔으면서 아직도 낯선 나에게. 편지가 닿을 즈음, 난 또 세상 어떤 섬을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사옥도 주민들은 양파며 대파 등 농사를 짓고 산다.
 사옥도 주민들은 양파며 대파 등 농사를 짓고 산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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