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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은 격리와 유폐가 아니다. 참된 힐링은 상처 있는 것들끼리의 위로와 공존이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에는 수려한 자연풍광과 노동하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잔파도처럼 함께 넘실대는 많은 섬길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천사의 섬, 신안군'에 보석처럼 나 있는 '힐링 섬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오늘은 그 열 번째로 장산도 힐링 섬길이다. [편집자말]
장산도는 섬이 섬으로부터 보호받는 형국이다. 위로는 안좌도, 아래로는 진도, 오른쪽으론 해남, 왼쪽으론 비금·도초·하의·신의도가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다.
 장산도는 섬이 섬으로부터 보호받는 형국이다. 위로는 안좌도, 아래로는 진도, 오른쪽으론 해남, 왼쪽으론 비금·도초·하의·신의도가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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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섬으로부터 보호받는 형국이다. 위로는 안좌도, 아래로는 진도, 오른쪽으론 해남, 왼쪽으론 비금·도초·하의·신의도가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바다의 수심은 얕고, 파도는 잔잔하다.

지금은 섬이 산줄기로 이어져 있다 해서 장산도(長山島)라 불리지만 안파도(安波島) 혹은 안편도나 발음도로 불리기도 했다. 안파와 안편은 모두 파도가 잔잔하다는 뜻이다. 해남과 진도 사이 물살 거세기로 유명한 울돌목 파도가 장산도에 이르면 모두 잔잔해졌기 때문이다.

남해와 서남해를 오가며 왜적과 해전을 치른 이순신 장군. 그가 쓴 <난중일기>엔 숱한 섬들이 등장한다. 장산도 역시 '발음도'라는 이름으로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1597년(정유년) 10월11일 맑음. 정오에 발음도(장산도)에 도착했다. 바람이 자고, 날씨가 온화하다. 배에서 내려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전선(戰船)을 숨겨둘만한 곳을 살펴보았다. 동쪽으로는 앞에 섬이 있어 멀리 바라볼 수 없었고, 북쪽으로는 나주와 영암 월출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비금도까지 통하여 눈앞이 시원하다."

고요한 밤이면 울돌목의 소용돌이치는 물 울음소리가 들리는 섬이라고 해서 '발음도'라 했다. 울돌목과 장산도의 거리는 약 9.3Km. 멀리 진도 군도는 흐린 날을 제외하곤 가시권에 늘 잡히고, 산에라도 오를라치면 진도대교가 눈에 잡힐 때도 있다.

역사상 가장 능란하게 해전을 치렀던 해군 제독으로 평가받는 이순신

폭염 탓에 어부들도 갯일을 쉽게 엄두내지 않는다. 선외기 갑판에 펴진 우산이 이채롭다.
 폭염 탓에 어부들도 갯일을 쉽게 엄두내지 않는다. 선외기 갑판에 펴진 우산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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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도 오솔길. 수심 얕은 정산도 바다를 바라보며 잔솔을 따라 걷는 운치가 제법이다.
 장산도 오솔길. 수심 얕은 정산도 바다를 바라보며 잔솔을 따라 걷는 운치가 제법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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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능란하게 해전을 치렀던 해군 제독으로 평가받는 이순신. 굶주린 승냥이처럼 달려드는 왜적의 전투선단은 막강했다. 이에 맞서는 조선의 전투선단은 규모는 보잘 것 없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민첩할 수밖에 없었다. 기습적으로 타격을 가하고, 가장 손실이 적게 퇴각해야 했으며 갈매기에게도 들키지 않을 만큼 은폐는 완벽해야 했다.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것은 이를 철저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그가 장산도를 찾아 지형지세를 꼼꼼하게 검토한 까닭도 기습 타격 이후 완벽한 은폐를 위한 최적의 섬으로 장산도를 꼽았기 때문은 아닐까.

장산도 오솔길은 그렇게 섬들에게 감싸 안긴 바다를 따라 이어진다. 다수리 앤두마을 선착장이나 방파제에서 길을 잡으면 좋다. 다수리는 마을 뒤 대성산의 숲이 울창하고 사철 물이 많이 흐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수동(多水洞)이라 부르기도 했다. 앤두마을은 옛날에 상태도(현 신의도)와 이 마을을 건너다니던 나루터가 있었다 해서  '어도(於渡)' 또는 '앤두'라고 부른데서 연유했다.

오솔길 해수욕장까지 왕복 2km. 좌우로 잔솔을 끼고 걷는 바닷가 오솔한 길. 철없는 어린 노루가 낮 마실을 나왔다가 행인을 보고 화들짝 놀라 껑충 잔솔밭으로 몸을 숨긴다.

작은 포구에 선외기 서너 척이 폭염을 피해 쉬고 있다. 한 녀석은 알록달록한 우산도 걸쳤다. 예년에 비해 수온이 평균 3~4도 이상으로 바다 속은 이미 열탕. 물고기들은 열탕으로 변한 장산바다를 벗어나 수온이 조금 더 찬 곳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해송이 마중하는 오솔길 해수욕장의 풍광은 지극히 장산도답다. 수심은 완만하게 얕고, 시야는 어느 쪽을 향해도 섬들과 마주한다. 끝이 보이는 바다, 섬으로 둘러싸인 섬. 이곳에서 다시 길은 시작한다.

장산도가 국도 2호선 기점이 된 까닭은...

장산도는 지난 2001년부터 국도 2호선 기점이 되었다.
 장산도는 지난 2001년부터 국도 2호선 기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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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도는 국도 2호선의 기점이다. 국도 2호선은 '신안-부산선'이라고도 한다. 서해안 남부 도서지역인 신안군 장산도를 기점으로 목포, 강진, 장흥, 광양 등 전남 남해안 지역과 경남 남해안의 하동, 사천, 진주, 창원을 거쳐 부산광역시 중구까지 이어진다.

원래 국도 1, 2호선의 기점은 모두 목포였다. 국도 2호선 기점이 장산도로 바뀐 해는 지난 2001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섬이 육지의 도로교통 핵심 축인 국도 2호선 기점이 됐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는 2018년이면 신안군 14개 읍·면 가운데 서남해 최남단 흑산도를 제외한 13개 읍·면에 모두 26개의 다리가 놓아진다. 예산만 3조2121억 원이 투입되고 있는 이 공사가 끝나면 신안군은 거의 대부분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다. 장산도가 새로운 국도 2호선 기점이 된 것은 이 대규모 연육사업 때문이다.

아직 다리는 놓아지지 않았지만 장산도 오음리 북강선착장엔 국도 2호선 기점 표지석이 서있다. 섬사람들에겐 한처럼 진한 소원이 있다. 바다가 육지여서 오가는 일이 쉽고 자유로웠으면 한다는 것이다.

바람 불면 갈 수 없고, 안개 끼면 갈 수 없는 곳이 섬이다. 섬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섬사람들은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산다. 그 이른 표지석은 섬사람들의 소원이 얼마나 애절한지 말해주는 슬픈 비석이다.

섬은 바람과 운명이 맞닿아 있다. 바람의 방향, 바람의 속도가 섬살이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은 바람과 운명이 맞닿아 있다. 바람의 방향, 바람의 속도가 섬살이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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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도 오솔길 끝엔 오솔길 해수욕장이 있다. 해송 세 그루가 마중하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장산도 오솔길 끝엔 오솔길 해수욕장이 있다. 해송 세 그루가 마중하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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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단절과 고립의 슬픔을 스스로 감내해야 했기에 섬에선 씻김굿이 성행했다. '육지것들'은 '섬놈들'이라며 존재 자체를 비하했다. 바다는, 바람과 함께 패당을 지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목숨을 앗아갔다. 스스로 위무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 가련한 존재….

장산도 씻김굿은 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씻김굿으로 통한다. 육자배기 가락을 타고 전라도말의 사설이 '징하디 징하게' 슬픔을 증폭시킨다. 그 폭발적인 슬픔의 증폭이야말로 참된 정화 아니었던가. 인간의 언어로는 감당하기 힘든 서러운 한탄과 기막힌 운명의 저주를 풀어야 산다. 씻김굿에 구음 시나위가 많은 까닭이다.

씻김굿은 주로 사람이 죽었을 때 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장산도에선 산 사람을 위해서(산 씻김이굿)하기도 하고,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씻김굿(날받이 씻김굿)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산 씻김이굿'은 주모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하는 일종의 '축원굿'이다. '날받이 씻김굿'은 조상의 넋을 풀어 일가의 평온을 희망하는 굿이다.

씻김굿은 결국 산자를 위한 것이다. 망자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기 위해 '고풀이'를 한다지만 살아남은 자의 주체 못할 슬픔을 해제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언젠가 객귀중천(客鬼中天)이 되어 우주처럼 드넓은 바다를 헤맬 나를 위한 씻김굿.

둥 둥 둥 징이 울리고, 당골은 하얀 천을 공중에 내던지며 천천히 무가(巫歌)를 부른다. 다시, 지독한 삶은 시작되었다.

장산도 오솔길이 시작하는 다수리 앤두마을 포구 전경.
 장산도 오솔길이 시작하는 다수리 앤두마을 포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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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안군 힐링섬길, #장산도, #이순신 장군, #씻김굿, #국도2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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