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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와 문명>
 <시계와 문명>
ⓒ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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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워치 메이커라 한다. 우리나라 말로 옮기면 시계 기술자인데, 굉장히 세밀한 작업을 요하기 때문에 꼼꼼하고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정확히 '기술자'이다. 어떤 거대한 학문적 요람을 담고 있다고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시계는 '어떻게' '왜' 만들어졌을까? 결과론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시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꼼꼼하고 집중력 있는 기술자가 잘 만들었다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 시계가 점점 액세서리화되어 가는 지금의 세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시계의 태동은 단순하게 어떤 한 가지 이유로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단지 '기술자'의 손으로만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나아가 책 <시계와 문명>(미지북스)은 시계가 역사를 바꿨다고 말하고 있다. 새삼스레 시계를 다시 보게 만든 이 책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저자 카를로 M. 치폴라의 전작 <대포, 범선, 제국>(미지북스)의 주장인 "유럽은 대포와 범선으로 바다를 지배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임과 동시에 딱 들어도 수긍이 가지만, 이 책은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궁금증을 유포시킨다. 도대체 어떻게 시계가 세계를 바꾼 것인지?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서 시계를 만든 기술자(수공업자)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들은 어떻게 유럽 기계 문명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는가? 우선 농촌 경제가 피폐해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그 중 상당수가 미숙련 노동자이다. 이들로 인해 도시 노동력이 확대되고, 도시(자유)가 농촌(봉건)에 승리하기에 이른다.

도시에 점차 실리주의와 실용성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러며 기술 진보가 일어나고, 기계가 발명되기에 이른다. 유행병으로 인한 인구감소가 '결정적 한 방'이었다. 그로 인해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지위가 올라갔고, 이를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기계 지향적이 되어갔다는 것이다. 그 사이 경험주의와 실용주의의 집합체인 과학이 발달했고, 숙련 기계공들과 과학자들은 합심한다. 그 결과 기술 진보의 속도는 폭발적인 힘을 갖는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시계를 출현시킨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시간을 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장치를 만들며 고심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며, 14세기에 와서는 기술 진보에 의한 기계의 발명이 시계에 대한 니즈(needs)와 결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계식 시계가 출현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저자는 또 하나의 니즈를 내세운다. 바로 시계의 패셔너블한 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다.

커다랗고 아주 비쌌던 시계 태동 시기의 시계는, 단순히 실용성에 의해 발명되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지위와 도시의 자부심을 상징할 정도의 가치로 인해 발명되어지고 계속해서 확산된 것이라는 뜻이다.

초기의 커다란 시계는 점차 작고 운반하기 쉽게 바뀐다. 마치 초창기의 커다란 컴퓨터가 점점 작고 운반하기 쉽게 바뀐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에 따라 기술자들의 지위는 점차 높아지고, 시계의 값은 점차 낮아진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시계를 만든 사람들, 즉 시계공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초창기의 시계공들은 대체로 대장장이나 자물쇠공, 대포 주조공이었다. 대포 주조공? 그렇다. 기계식 시계와 대포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것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후 하나는 초정밀 기계의 계보를, 하나는 거대 집합체 기계의 계보를 이룬다. 그렇게 점차 세분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단지 실용성만을 위한 시계가 아닌 유행을 타는 시계, 즉 사치품으로써의 시계가 필요해지면서 말이다. 대장장이나 자물쇠공보다 보석 세공인의 기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뿌리는 하나였다.

현재 세계 최고의 시계 생산국은 스위스다. 스위스 시계는 초정밀 기계의 특징과 함께 사치품으로써의 특징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위스는 시계의 태동국이 아닌 후발국이었다. 애초에 시계는 독일 지방에서 부상하였다. 이후 개방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스위스와 영국이 숙련 기계공들을 대량으로 받아들여서 급속히 부상하게 된다. 마치 자원은 풍부한데 인적 자원이 부족했던 오스트레일리아가 대량으로 기술이민을 받아들이면서 해결하려 한 것과 같다. 컴퓨터의 역사, 오스트레일리아의 전략이 시계의 역사와 일맥상통하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그렇게 유럽은 시계(정확히 기계)에 미쳐 있었고, 계속해서 미쳐 있게 된다. 이는 종국에 가서 과학 혁명과 산업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에 이른다. 곧 시계는 서양 문명을 완전히 바꾸는 데 크나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시계 제작은 물리학과 역학의 이론적 발견이 실용화된 최초의 산업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응용역학의 전반적 발달에서 첨단을 달리며 과학 기구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본문 속에서)

"정밀 기기는 과학의 진보를 가져온 반면, 과학은 정밀 기기의 향상을 가능케 했다...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가 근대 산업 사회의 핵심 기계"(본문 속에서)

시계는 나아가 세계 역사까지도 바꾸게 되었는가? 유럽이 시계에 미쳐 있을 때, 시계는 실용성에서의 정확도와 사치품으로써의 외모(?)를 충실히 갖춘다. 그리고 때마침 도래한 대항해시대에 발맞춰 동방무역의 핵심적인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가진 게 은밖에 없었다는 유럽이 내세웠던 것 중에 하나가 시계고, 중국은 다른 의미로 시계에 열광한다. 실용성은 배제한 채 장식품 또는 사치품 또는 장난감으로써의 특징에 눈을 뜬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양은 기계 발달이 늦어지고, 서양은 기계 발달이 월등해져 지금에 이르게 된 것 아닐까?

이 책은 역사를 다룸에 있어 생각지도 못한, 혹은 그냥 지나치곤 했던 부분들을 아주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굉장히 미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1300~1700년의 긴 역사를 다루고 있기에 거시적인 부분도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140쪽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이라면 더더욱.

세계적인 석학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균·쇠>(문학사상사) 역시 세계를 바꾼 상징적인 무엇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총기와 세균, 그리고 금속을 통해 서양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정작 말하고자 한 바는 지극히 우연의 일치로 좋은 지리적 위치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 이면에는 서양이 진짜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였고, 지금 세계는 서양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계와 문명> 또한 마찬가지다.

서양에 의한 세계 지배, 서양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 누구는 총기와 세균과 금속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대포와 범선이라고 말한다. 이제 같은 누구는 시계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세계적인 석학이고 그들의 저서들이 명저인 이유는 분명하다. '어떻게'에 대한 탁월한 답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서양에 의한 세계 지배'라는 명제의 모호함 말이다.

이런 면에서 <시계와 문명>은 탁월성을 넘어 나름 위대하다고 까지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다. 서양에서 들여온 시계를 장난감처럼 취급하여 기계의 진보를 더디게 한 당시 중국의 시선에서 보고자 하는 점 때문이다. 저자는 분명 서양의 승리를 명제로 깔고 있지만, 반대의 시선과 생각도 읽으려 하였다.

"왜 16세기와 17세기, 18세기에 걸쳐 중국이 유럽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는가라고 묻는 것은 다소 예의 없을 뿐 아니라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본문 속에서)

그 이면에는 저자의 인류 보편적 인문에 대한 강력한 관심과 역사적 상대성 차원에의 끝없는 비평적 시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기계를 좋고 훌륭한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철학의 발전과 인간사를 다루는 능력의 발전도 간절히 필요로 한다."(본문 속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계와 문명>, (카를로 M. 치폴라 지음,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 펴냄, 2013년 8월)



시계와 문명 - 1300~1700년, 유럽의 시계는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 지음,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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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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