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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은 1906년 개통되어 남북을 연결하는 대동맥 역할을 했던 철길이다. 그랬던 경의선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5년부터 지하화에 들어갔으며 그 결과 용산역부터 가좌역까지 6.3km의 공터를 남겼다. 이 구간은 대부분 마포구에 속한다. 마포구는 이곳 경의선 폐선부지에 '숲길 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대흥동 일대 1단계(760m) 공사를 끝내고 연남동 2단계(1.9km) 공사 발주에 들어간 상태다.

그런데 그러한 숲길 조성과 무관하게 장터로 탈바꿈한 곳이 있다. 공덕역 인근의 부지다. 큰길에서 한 골목 들어와 있긴 하지만 전철역과 가깝다 보니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마포구는 이곳에 벼룩시장을 연다는 결정을 내리고 최근 민간에 사업을 위탁했다. 여기까지는 그만그만한 이야기다. 별로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인다.

청년들의 아이디어로 운영되는 상설 시장

 서울시 청년혁신활동가들이 운영하는 경의선 폐선부지의 상설시장 '늘장'의 모습. 퇴근하는 시민들이 독특한 장터 분위기와 물건에 관심을 보인다. 공덕역 1번 출구에서 가깝다. 8월에는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개장한다.
 서울시 청년혁신활동가들이 운영하는 경의선 폐선부지의 상설시장 '늘장'의 모습. 퇴근하는 시민들이 독특한 장터 분위기와 물건에 관심을 보인다. 공덕역 1번 출구에서 가깝다. 8월에는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개장한다.
ⓒ 장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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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집안의 중고품을 내놓고 파는 일반적인 벼룩시장과는 다른 점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일단 생소하다. 협동조합, 친환경, 수공예품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띄고 내어놓은 물건들은 다채롭고 아기자기하다. 컨테이너 시설물들도 투박하기는커녕 도리어 예술적이다. 공덕역 방향으로 입구에는 '늘장'이라고 적힌 기가 휘날린다. 늘 열리는 장터라는 뜻이다.

늘 열리는 장터 '늘장', 이곳이 보통의 벼룩시장과 다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청년들의 아이디어로 운영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혁신활동가들(단체명 : 어반라이트)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현장에서 체험과 학습, 자기성장의 과정을 밟는 그들은 연초부터 경의선 폐선부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대로 두면 전부 비슷비슷하게 공원화될 텐데 일부라도 조금은 다르게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이다. '공공 공간을 시민과 함께 창의적으로 꾸미는 것', 그들은 잡은 혁신활동의 방향이었다.

중금속 가득한 폐선부지 위 생명의 공간

청년들은 일단 장터를 생명의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대량으로 생산된 물건들이 바쁘게 소비되는 장터가 아니라, 느리지만 생명의 오고감이 있는 장터를 구상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수제품, 환경을 생각한 제품, 손때 묻은 중고품, 건강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상인들과 계약을 맺었다. 고장 난 물건을 고치고 공유하는 사회적기업들과 생산자-소비자의 공생을 목표로 하는 지역농산물 판매점도 인상적이다.

장터 가운데 텃밭은 오랫동안 철길이었던 관계로 중금속 오염이 심해 식용 작물을 심을 수가 없다. 그래서 토지를 정화하는 회복 절차에 들어갔는데 식물재배정화법을 썼다고 한다. 중금속을 흡수하는 식물을 심어 친환경적으로 오염된 환경을 복원하는 기술이다. 지금은 절기상 가장 적합한 메리골드를 심어놓은 상태다. 노랗고 도톰한 꽃송이는 꽃송이대로 화사하고 뿌리로는 토양을 살리는 메리골드가 건강한 젊은이들처럼 줄지어 햇살 아래 빛나고 있었다.

 장터 한가운데 '마포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텃밭. 오랫동안 철길이 놓여있던 땅이라 중금속 오염 정도가 심해 식용 작물을 심지는 못한다. 중금속을 흡수하는 식물(메리골드)를 심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정화 과정을 밟고 있다.
 장터 한가운데 '마포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텃밭. 오랫동안 철길이 놓여있던 땅이라 중금속 오염 정도가 심해 식용 작물을 심지는 못한다. 중금속을 흡수하는 식물(메리골드)를 심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정화 과정을 밟고 있다.
ⓒ 장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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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장터의 꿈 많은 처자들 - '단풍' '정마담' '워푸'

하지만 현실은 메리골드가 뿌리 내린 척박한 토양과도 같아서 '늘장'이 청년들이 바라는 새롭고 특별한 공간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7월 말 개장을 하고 8월 폭염 속에서 야시장으로 운영 시간대를 바꾼 '늘장'을 찾아갔다. 아직까지는 장터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기 바빠 보였다. 천막과 부스를 옮기는 일부터, 상인들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매출을 걱정하는 일까지 청년들의 몫이었다. 서열을 확인하는 호칭 대신 서로 간에 친근하게 별명을 부르는 그들을 한 명씩 만나봤다.

'단풍'(23)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막내다. 하는 일이 어떤지 물었더니 막내답게 '아무 것도 몰라서 걱정'이라는 대답이다. 다양한 육체노동과 함께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글쟁이' 냄새가 나서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문예창작과 출신이라고 한다. 문예창작과 출신이 어떻게 경의선 폐선부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청년혁신활동가 모집 공고에 들어갔다가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 관한 동영상을 인상 깊게 봤어요. 청년들이 유휴공간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매력적인 이야기로 다가왔어요. 여기서도 나중에 좋은 소설을 썼으면 하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많이 관찰해요. 장터가 잘 돼서 상인들, 손님들,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정마담'(26)은 문래동의 '정다방' 출신으로 지금도 코디네이터 일을 병행하고 있다.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별명인데 진짜 다방에서 커피와 차를 팔았던 것은 아니다. '정다방'은 남부지방법원 이전으로 손님이 끊기면서 문화예술인들에게 임대된 예술창작촌이다.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무료로 대관하고 있다. 당장은 장터가 잘 되어야겠지만 그 자체가 그녀의 목표는 아니다.

"장터가 안정되면 이곳에서 미디어아트 영상물도 틀고 전시회도 열고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판매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 유명작가의 모조품을 걸어놓잖아요. 공공 공간에서 예술작품들을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쉽게 생각하고 진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면 시민들과 작가들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워푸'(29)는 건축과 출신으로 기존의 것을 깡그리 부수고 새로 짓는 건축 방식에 비판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건축이라고 하면 오랫동안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공간은 역사가 단절된 채 그때그때의 기능으로만 정의된다. 만약 그대로 둔다면 경의선 폐선부지 또한 처음부터 공원이나 공터였던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맏언니답게 그녀는 '늘장'을 경의선의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하는 것 이외에 다양한 구상을 내어놓았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버려진 물건들을 재사용하는 일을 했어요. 그래서 여기서도 '불편한 시장'을 열어볼 생각이었어요. 시민들이 와서 버려진 물건들로 뭔가를 고치거나 만들어서 싸게 살 수 있게 하는 건데 생산과 소비, 학습이 결합된 시장인 거죠."

 (왼쪽부터) '늘장'의 단풍, 정마담, 워푸. 유난히 더웠던 8월 폭염 속에서 맨땅을 장터로 일구고 있다. 그들의 진짜 꿈은 시민들이 모이고 소통하고 함께 건강한 문화를 만드는 '도시 공간 활용'의 새로운 방식을 하나의 사례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왼쪽부터) '늘장'의 단풍, 정마담, 워푸. 유난히 더웠던 8월 폭염 속에서 맨땅을 장터로 일구고 있다. 그들의 진짜 꿈은 시민들이 모이고 소통하고 함께 건강한 문화를 만드는 '도시 공간 활용'의 새로운 방식을 하나의 사례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 장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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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과 함께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때까지

하지만 우선은 쉼터와 놀이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 경의선 폐선부지를 일률적으로 공원화하는 데 문제의식을 느껴 장터를 열었지만 현재로서는 시민들이 편안하게 모이는 공원 시설이 부러운 상황이다. 돈과 인력은 부족하고 장터를 정비하고 알리는 일도 만만치 않다. 트랙을 따라 걷는 공원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활동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지만 그녀들의 실험은 올해 시행착오만을 경험한 무모한 도전으로 그칠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창조'라는 말은 제 자신의 무게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실패의 대가에 비해 너무 쉽게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에게, 회사에 나가는 배우자에게 남들 하는 식의 관행 대신에 튀는 행동을 권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돌아보면 이해하기 쉽다. 실패에 대해 호되게 책임을 묻는 사회, 몇 개의 틀에 박힌 성공사례와 공식만을 강변하는 사회에서 개인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장'의 청년들 역시 관행과 공식을 깨고 처음 시도하는 일에 두려움이 크다. 해바라기처럼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들이 없었다면 공덕동 경의선 폐선부지에는 애당초 한여름 폭염에 맞서는 창조의 땀방울은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가 빤하게 보인다면 창조가 아니다. 그녀들의 페이스북, '늘장'을 소개하는 글의 한 구절을 음미해 본다.

만남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생각이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가 되고 사람이 모여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늘장'은 도시를 느리게 변화시키고, 그 가치는 경의선 폐선부지 전체로 늘어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어반라이트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urbanlight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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