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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국립현충원) 안 와보면 모르지. 요즘 젊은이들이 뭐 관심이나 있을까? 가끔 TV에서, 정치인들이 인사하러 오는 거나 보겠지. 사람 많은 곳에 있으면 더 많이 보고 느끼고 감사할 수 있을 건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난 이아무개씨(70·경북 경주시 동천동)는 말했다. 이씨는 6·25 전쟁 중에 돌아가신 막내 삼촌의 위패를 모실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약 4시간이 걸려 현충원에 도착했다. 아내와 함께 왔다는 그는 "날씨도 더운데 사람들이 여기까지 찾아오겠나, 별로 관심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은 약 43만 평의 대지 위에 16만 5천여위의 순국선열이 안장돼있으나 이 중에는 신원을 식별할 수 없는 용사들의 영현도 7천여 명에 이른다.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은 약 43만 평의 대지 위에 16만 5천여위의 순국선열이 안장돼있으나 이 중에는 신원을 식별할 수 없는 용사들의 영현도 7천여 명에 이른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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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 강조하지만... 독립군 무명용사비는 현충원에 '꼭꼭'

제68주년 광복절을 맞아 온 나라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감사가 넘쳐난다. 15일 오전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독립을 향한 투쟁" 덕분에 역사가 계속될 수 있었다며 "정부는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선열들의 고결한 뜻을 기리고, 유적과 기록을 보존·관리하는 일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순국선열에는 이름을 남기고 산화한 사람들만 포함되는 것일까. 중국 만주와 연해주 등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다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들에 대한 예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한국 전쟁 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돌봐주는 가족이나 찾아주는 친구도 없는 이들을 위해, 사람들이 접하기 쉬운 광장에 무명용사비를 세워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나 프랑스의 파리 개선문, 러시아의 크렘린 광장 등 해외의 대표 광장에는 어김없이 역사 속에서 스러져간 무명용사들을 추모하는 동상이나 추모비가 서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무명용사비가 광장이 아닌 서울 동작구 현충원 내에, 그것도 사람들이 찾기 힘든 후미진 장소에 있다.

캐나다 오타와 광장 중심부에 위치한 무명용사비의 모습.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캐나다 오타와 광장 중심부에 위치한 무명용사비의 모습.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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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와 만주 등에서 독립투쟁을 하다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는 '대한독립군 무명용사위령탑'은 현충원 정문에서부터 10여분을 더 걸어 올라가야만 찾을 수 있다. 앞서 만난 이씨가 "굳이 오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한 이유다.

실제로 지난 14일 오후 찾은 서울현충원은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낮 최고기온이 32도까지 오른 이날, 현충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걷기 운동을 하거나 그늘에 앉아 휴대폰으로 라디오를 듣는 등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다. 정문에 서 있던 한 관계자는 "유가족들도 오시지만 동네 주민들이 산책 겸 많이 온다"고 말했다. 기자가 현장에 머무른 4시간 동안 확인한 유가족은 노부부와 부녀 등 세 팀뿐이었다.

독립투쟁을 위해 이름 없이 숨진 이들을 위한 추모비. 그러나 접근성이 너무 낮아 관심도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정문에서 약 10여분간 걸어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독립투쟁을 위해 이름 없이 숨진 이들을 위한 추모비. 그러나 접근성이 너무 낮아 관심도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정문에서 약 10여분간 걸어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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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도는 있었지만... 부처간 갈등으로 여전히 난항    

추모비를 세우려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국가보훈처에서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추모하는 상징물인 '호국보훈의 불꽃' 조형물 건립을 추진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해당 조형물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12월. 다음 해인 2011년 대통령 연초 업무보고 때 건립의견이 제시됐다.

이후 2012년 5월 7일부터 3주간, 후보지 선정을 위해 국민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투표를 실시한 결과 최종 1위로 뽑힌 장소는 광화문광장. 국가보훈처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추모시설이 대부분 산악지역(전적지)에 조성돼 국민 참여가 저조했다"면서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을 건국했던 곳으로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장소다"라며 추천사유를 밝혔다. 관계자는 캐나다의 시청광장 등 외국에서도 상징성 있는 곳에 설치한다고 주장했다.

광화문 광장은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 중 하나다. 사람들이 세종대왕 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광화문 광장은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 중 하나다. 사람들이 세종대왕 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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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반대에 부딪혔다. 2012년 9월 회의록에 따르면, 서울시 자문기구인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추모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의미 있지만 광화문광장이 적합한 곳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광화문광장을 운영·관리하는 백인호 서울시 역사도심관리과 도심관리팀장 또한,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필요하다고는 보지만 광화문에는 이미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상이 있어 꼭 여기여야 하느냐는 의견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광화문 광장은 우리나라 대표 광장으로써 최대한 '비움'의 공간으로 놔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국가보훈처 담당자인 윤형중 나라사랑정책과 사무관은 "광화문 광장이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서울시 관계자와 계속 협의중"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조형물 건립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두 관계 부처 모두 건립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장소 선정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모습이었다.

시민동상 없는 광장 

2013년 8월 현재 광화문 광장 옆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세종이야기'와 '충무공이야기'라는 전시관이 설치돼있다.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의 생애를 '4D 체험' 등 첨단 전시 기법으로 구현해 놓은 상설전시관이다. 데스크에 서 있던 안내원은 "하루에 1만 명 정도 찾아오는데, 그 중에 한 40% 정도는 외국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일평균 방문객이 약 3천 명 정도인 서울현충원에 비해 3배가 넘는 수치다.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마련된 세종이야기/충무공이야기 전시실에는 각각 생애와 업적, 일대기 등을 전시실과 4D체험관 등으로 구성해 다루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마련된 세종이야기/충무공이야기 전시실에는 각각 생애와 업적, 일대기 등을 전시실과 4D체험관 등으로 구성해 다루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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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에서 만난 외국인 여행객 수잔느(Susanne·40·오스트리아)는 "나는 조용한 곳을 좋아해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왔지만, 함께 온 젊은 친구들은 다른 곳에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3주간 한국을 여행 중이라는 그녀는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광장에도 그런 게 있다면 자연스럽게 보고 한국 역사도 알 수 있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를 보도하지 않는 언론을 놓고, "언론에는 촛불이 없고 국민들은 어이가 없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민이 주인'이라는 도심 내 광장에도 전쟁 중에 죽어간 일반인을 기리는 무명용사비, 즉 시민을 위한 동상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광복절을 맞아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선열들의 고결한 뜻을 기려 유적을 관리하는 일에 적극 나설 것"이며 "그 뜻이 후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라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공채6기 신입 기자들로 구성된 '독립편집국'에서 생산한 기사입니다. 오마이뉴스는 '행복하게 일하는 회사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독립편집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립편집국'은 오마이뉴스 모든 기자들이 뉴스게릴라본부(편집국)에서 독립해 1인 혹은 팀을 짜서 자율적으로 콘텐츠를 기획-취재-생산합니다.



태그:#시민, #광복절, #무명용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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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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