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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놓고 보면 일생일대 후회할 일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브레이크를 걸었어야 했는데, 나 역시 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4대강 사업이 추진되던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수자원학회장을 역임했던, 지홍기 영남대학교 대외협력 부총장의 말이라고 한다. 이 보도를 접하는 순간, 친구 J가 생각났다. 친구 J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맺어온 친구다.

나도 그다지 부유하게 살아 온 것은 아니지만 이 친구 J는 너무너무 가난하게 살았다. 어릴 적의 이 친구를 생각하면, 있으면 있는 듯 없으면 없는 듯 존재하는... 그다지 키도 크지 않고, 성질도 부리지 않고, 장난기도 심하지 않고, 까무잡잡하고...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꼭 필요한 자기 일을 하는 친구, 성실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런 친구가 바로 J였다.

대학을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에 그 미련곰팅이 같은 성격을 가지고 한 회사를 꾸준히 다니면서 실력을 쌓았다. 설계용역회사였는데 그 회사만 무려 12년을 다닌 것이다. 2008년에는 1년 동안 어학연수도 다녀올 정도로 자기 개발에 충실한, 참 괜찮은 친구다. 그런데 이 친구가 갑자기 만나자고 했다. 왜 그러지?

"세상과 타협을 해야만 하니?"

숨 돌릴 틈도 없이 이 친구는 자신의 고민을 쏟아내더니 압축적으로 이 한마디를 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이 성실한 친구 J가 그날따라 술잔을 들었다. 돈도 잘 벌고 아이들 키우면서 생활도 잘 하던 J가 자신이 다니던 설계용역회사를 그만 두고 어학연수를 다녀 온 이유가 따로 있었다.

"대한민국의 건설업계는 모조리 뇌물과 상납의 고리로 엮여 있어... 너는 정치와 관련된 평론을 하니까 잘 알겠지만,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이런 부패의 고리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하나도 없겠지만, 이곳 건설업계는 그 어떤 곳보다 심해..."

J가 속해 있는 설계용역회사도, 그리고 그 자신도 한반도 대운하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정말 억수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현 듯 이런 상황 속에서 '습관적 뇌물'과 '조건 없는 뇌물'이 실제로 존재하고 거기에 자신이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성공했는데...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너무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최근에는 큰 형님이 돌아가시는 등 집안의 어려운 일이 생긴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더욱 안타까웠다. 이 친구 J의 명의로 집을 한칸 마련하니까 어머니께서 우시더라고, 담담히 이야기 하는 J의 눈가가 촉촉하다. 그렇게 보수도 좋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이 친구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두니까 난리가 났단다.

실력이 대한민국 최고 1%안에 들어가는 최고 숙련 설계사! 회사도 짱짱하게 잘 나가는 상황! 이런 조건을 모두 그만 두는 J를 주변 모두는 이해하지 못했단다. J는 답답해하며 말을 이어갔다.

"모두 가짜! 모두 사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그래서 이미 구속된 김영윤 회장의 도화엔지니어링에 대해서도 이야길 했다.

"도화는 경화, 한종, ○○ 등의 회사로 구성되어 있고, 내가 다닌 ○○은 하청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계열사야, 설계용역을 수주했던 또 다른 설계·감리업체 '유신'은 도화의 라이벌 업체이고... 사실 토목 엔지니어링 빅5라고 한다면 유신, 도화, 한종, 동명 그리고 내가 다녔던 ○○일 때가 있었지. 처음에는 도화의 계열사였지만 4대강 사업 이후 규모가 아주 커졌어..."

모두 가짜이고 모두 사기라고 단정을 했다. 4대강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국민을 속인 것으로 전문가와 설계자들은 4대강 사업의 시작부터 대운하를 염두에 둔 것, 그리고 경제성이 제로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뻔한 거짓말에 동참하기 싫었단다. 그리고 스스로 뇌물과 상납구조에 빠져 들어가는 자신의 현실을 용납할 수 없단다. 어학연수를 다녀오니까 회사에서 다시 나오라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그 전보다 훨씬 조건도 좋아졌고, 대우도 좋아졌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로 NO! 수원의 자그마한 환경관련 시민단체에 취직을 했단다. J가 평소에 받는 보수의 3분의1도 안 된다고 한다. 가난하더라도 양심을 지키며 살고 싶다는 친구 J의 소박한 꿈이 현실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실현 될까?

J는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설계를 맡았던 회사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도대체 운하가 아니고는 이렇게 설계할 필요가 없다고... 설계하는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는 거야. 하지만 토목의 특성상 모든 발주가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에 절대 밉보이는 행동을 할 수 없는 거야. 이상돈 교수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원전 마피아 보다 토목 마피아가 더 심하다는 말! 나는 절대 동감이야."

성격상 티 나게 양심선언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이 친구 J는 자신의 삶을 던져서 4대강에 저항을 한 셈이다. 직접적인 비교는 무리겠지만, 4대강추진본부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던 국토해양부 '관리'들, 감사원이 밝힌 대운하 안을 반영한 마스터플랜 작성(2009년 6월) 당시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팀장이었던 이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 혹은 답변을 거부했다고 한다.

내 친구 J와 이들 관리들을 비교해 보니, 명확한 것이 무엇인지 떠올랐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태복음 10장 26절)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에 개입을 한 국정원 직원들의 양심고백과 실천을 기대한다.


태그:#4대강 사업, #설계사, #도화, #양심고백,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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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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